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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간답바는 시설(施設)된 것, 업생(業生)으로서 존재

moksha 2018. 6. 23. 23:14

 

간답바는 시설(施設)된 것, 업생(業生)으로서 존재

 



 

테라와다에서 간답바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답바는 시설(施設)된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오온으로 이루어진 것을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수태과정에서 업력이 작용한 것을 간답바로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A로 부르든 B로 부르든 명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입태과정 중의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유물론에서는 물질에서 정신이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이 소멸하면 정신도 소멸하여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이른바 단멸론(斷滅論)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정신이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말을 합니다. 이는 명상 중에 빛을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정신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식과 명색의 상호작용입니다. 이는 도시의 경(S12.65)’에서 식연명색(識緣名色)’명색연식(名色緣識)’으로 설명됩니다. 경에서는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난다.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S12.65)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어떤 존재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당연히 창조주도 없고 정신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도 없습니다.

 

결생의 과정은 우리의 인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추론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S12.377)라는 연기법이 그것입니다. 이는 조건발생하고 조건소멸하는 연기의 법칙을 알면 추론으로서 정신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네 것이 아님의 경(S12.37)’에서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Nāya bhikkhave, kāyo tumhāka. Nāpi aññesa. purāamida bhikkhave kamma abhisakhata abhisañcetayita vedayita daṭṭhabba.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몸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이전의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느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S12.37)

 

 

부처님은 이 몸에 대하여 “이 몸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니다.( Nāya bhikkhave, kāyo tumhāka. Nāpi aññesa)”라 했습니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현재 몸은 언제나 자기동일적인 본질이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와는 다른 본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몸과 과거의 삶의 연속적인 활동의 결과로써 주어진 것이다.”라 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조건발생에 따른 연기적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창조주나 우연론 등 다른 어떤 것이 개입될 여지는 없습니다.

 

또 이 몸에 대하여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느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라 했습니다. 이 말은 행위에 대한 과보로 우리 몸과 마음이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의 주체를 맛지마니까야 ‘갈애의 부숨에 대한 큰 경(M38)’에서는 간답바라 했는데, 이 간답바에 대히여 붓다고사의 주석에 따르면 ‘업의 힘에 의해서 태어날 준비가 된 존재’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현재의 내가 있습니다. 우리는 업력에따른 업의로서 존재, 즉 업생(業生)입니다. 이러한 업력을 편의상 간답바(gandhabba)라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업력에 대하여 주석서에서는 태어나나게 하는 자또는 실어나르는 자라는 의미로 간땁바(gantabba)라 합니다.

 

경에서 표현된 간답바라 표기 되어 있지만 주석가들은 이를 간땁바의 속어로 봅니다. 간땁바는 ‘should be gone’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대왕천의 천신이나 향기의 신이라는 간답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업력에 의해서 태어나게 하는 자라는 의미의 간땁빠의 속어가 간답바입니다. 세상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명칭인 간답바를 차용하여 입태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연기의 가르침에서 불변하는 실체를 가정할 수 없습니다. 간답바는 입태순간을 설명하기 위하여 시설된 명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후대 사람들은 간답바를 중유개념으로 보아 이세상과 저세상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부파불교시대 독자부가 대표적입니다.

 

독자부에서는 뿍갈라(puggala: 補特伽羅)라 하여 중유를 가정했는데, 이 중유로 인하여 오늘날 천도재를 지낼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만일 테라와다 불교에서 중유개념과 유사한, 그리고 영혼체와 유사한 간답바를 인정한다면 조건발생하는 연기의 법칙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전적 근거도 갖지 않습니다.

 

 

 

2018-06-2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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