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택 교수의 ‘무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의 양상들’을 읽고
하나의 잘 만든 콘텐츠는 사람들을 감동시키에게 충분합니다. 정평카페에 임승택 교수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22명 필진 가운데 하나인 임승택 교수의 방에 처음 올려진 글은 ‘논문-무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의 양상들’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모두 20페이지에 달하는 pdf문서입니다.
가르침에 갈증 나는 자들에게 단비를
임승택 교수는 올린 글에서 “비교적 최근에 발표했던 논문(인도철학 제51집 게재) 한 편을 올립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간 무아에 관해 논의가 많았음에도 오해와 혼돈이 많았던 것 같아 정리해본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카페에 걸맞는 글을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정평카페가 생겨난지 이제 42일 되었습니다. 5월 27일 현재, 누적 방문자 11.917명, 회원 144명, 게시글 293, 댓글 496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22명의 필진에서 이번에 임승택 교수의 글이 올라 옴으로 인하여 빈방은 3개가 되었습니다. 조만간 글이 올라와 방이 채워질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려 합니다.
임승택 교수는 경북대 철학과 교수입니다. 카페에 올려진 논문 ‘무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의 양상들’은 2015년 경북대학교 복현학술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카페에 공개함으로 인하여 부처님 가르침에 갈증 나는 자들에게 단비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형이상학적 무아 세 가지
임승택교수가 말하는 무아와 윤회는 어떤 것일까? 서문에 간략히 소개 되어 있고 본론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결론 부위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임승택 교수에 따르면 “필자는 무아 해석의 시대적 단층이 ‘형이상학적 무아’와 ‘실천적 무아’로 대별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라는 말로 논문을 시작합니다. 키워드는 형이상학적 무아와 실천적 무아입니다.
무아이면서 윤회할 수 있을까? 불교에 대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유아론을 배경으로 깔고 묻는 더러운 질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이런 논의는 부파불교시대때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최악이 단멸론적 무아윤회일 것입니다. 이는 형이상학적 무아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결론부에 있는 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윤회 부정의 무아’는 죽음 이후 자아를 부정한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부정도 긍정도 원칙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특히 ‘윤회 부정의 무아’는 삼매에 의한 초월적 지혜를 통해 제시되는 윤회의 교설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바로 이것은 사쌍팔배(四雙八輩)라는 교리체계를 거스르게 된다.
2) 한편 ‘비아와 교체 가능한 무아’는 직접적인 문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구사론의 비판 에서처럼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진실한 자아가 결코 초월적인 것일 수도 유의미한 것일 수 도 없다는 논리적 난점을 안고 있다.
3) 마지막으로 ‘무아 윤회’의 논리를 펼치는 ‘윤회와 공존 하는 무아’는 윤회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는 타당성을 지닐 수 있지만 무아 자체를 설명하는 것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 ‘무아 윤회’는 극복해야 할 윤회의 상태와 윤회가 멈춘 이상적 경지를 동일한 차원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문제점을 노출한다.”
(임승택 교수, 무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의 양상들)
숫자로 구분하여 편의상 나누어 보았습니다. 단멸론적 윤회는 1번 항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물질에 기반한 단멸론적 윤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교수는 유전자윤회론을 주장하는데 단멸론의 범주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2번항을 보면 비아(非我)를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한역 경전의 근거를 들어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의 빠알리문헌 번역가 나까무라 하지메와 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리스 데이비스 여사 역시 비아론의 신봉자라 합니다.
3번 항에서는 무아이지만 윤회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아와윤회라는 상반된 두 개념을 접목하여 이론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부류를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김승택 교수는 “경험적 차원을 벗어나는 논리로써 규명해 들어간다.”라고 비판합니다.
실천적 무아론에 대하여
임승택 교수가 주장하는 무아윤회론은 어떤 것일까 결론부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실천적 무아’의 양상은 오온(五蘊)에 대해 자아가 아니라고 진술하고 서 멈추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소극적 진술은 논리적 완결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바로 이것이 형이상학으로의 도약을 의도적으로 멈춘 무기(無記, avyākata)의 정신과 통해 있다고 생각한다.”(임승택 교수, 무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의 양상들)
임승택교수가 파악하는 무아윤회는 실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험적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 보여주는 문구에 근거하여 경험될 수 있고 입증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세 가지 형이상학적 무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름대로 의의와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주로 형이상학적 무아와 관련된 윤회 세 가지를 소개 했습니다. 가장 관심사인 실천적 무아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특히 말미에 “필자의 일관된 의도는 ‘형이상학적 무아’에 얽매이지 말고 원래의 가르침인 ‘실천적 무아’에 각성하자는 것이다.”라 했습니다. 누구나 지금 여기서 실천가능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번뇌의 소멸을 통해
임승택교수의 실천적 무아와 관련하여 청정도론의 한구절을 들었습니다. 청정도론에서 “번뇌의 소멸을 통해 윤회가 종식된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선명하게 밝힌다. 오온의 상속에 의한 윤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료가 다한 불처럼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Vism.22.88)라는 구절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라는 탐, 진, 치가 소멸하여 행위를 해도 업으로 남지 않고 단지 작용만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임승택 교수는 논문에서 주로 형이상학적 무아를 설명했습니다. 가장 관심사인 실천적 무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고 했습니다. 형이상학적 무아와 실천적 무아를 비교 검토하는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논문이 기다려 집니다.
Khīṇaṃ purāṇaṃ navaṃ natthi sambhavaṃ
Virattacittā āyatike bhavasmiṃ,
Te ṇīṇabilā avirūḷhicchandā
Nibbanti dhīrā yathāyampadīpo,
Idampi saṅ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그에게 과거는 소멸하고 새로운 태어남은 없으니,
마음은 미래의 생존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의 종자를 파괴하고 그 성장을 원치 않으니,
현자들은 등불처럼 꺼져서 열반에 드시나니,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Stn.234)
17, 무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의 양상들(인도철학회).pdf
2018-05-2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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