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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6장 인도불교사

2. 부파불교

moksha 2017. 4. 27. 18:14

2. 부파불교

 

(1) 부파불교 시대의 사회적 변동

   1) 아쇼카왕 이후

      ①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전파

      ② 각지에 승원이 건립, 예불당 완비, 승가 확장(B.C.2세기~AD3세기)

      ③ 스투파(불탑)가 각지에 세워지고, 신자의 수 증대

      ④ 비구들은 경․율․론 3장을 편찬하고 특히 아비달마라는 복잡한 불교교리의 체계도 발전, 완성

 

   2) 각지에 전파된 불교의 모습

     ① 동인도

        ♣ 불교 수행의 중심지

            마우리아왕조의 수도 파탈리푸트라에 있던 쿡쿠타아라마는 많은 승려들을 받아들임.

        ♣ 거대한 조각이 출토

           불교가 민간 신앙적인 요소를 수행하면서 민중 사이로 전파되어 갔음을 보여주고 있음.

        ♣ 오래된 승원 자리가 근처에서 발견

 

    ② 서인도

        ♣ 불교의 중심지로서 많은 스투파가 건립(B.C 3세기~A.D 12세기)

            ⇒바르후트 불탑산치대탑 등 유명

 

     

             

<산치 대탑과 복발탑의 구조>

기단(基壇)

귀중한 것을 높이 모셔 경의를 나타냄

복발(覆鉢)

발우를 엎어 놓은 모양

평두(平頭)

상자형으로 복발위에 놓여 신성한 곳을 둘러 싸는 울타리

산개(傘蓋)

일산(日傘)의 모습으로 고귀함을 나타냄

 

산치대탑(shanchi Stupa B.C 3세기경:웃제니(Ujjni) 지방의 태수로 있을 때 현재 산치의 북서 12Km쪽에 위치한 베다샤(Vedisa)지방의 데비(devi)라는 처녀를 사랑했는데 그 옛 여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불탑이다. 그 사이에 난 아들이 스리랑카에 불법을 전한 마힌다(Mahinda)장로이다.

 

스투파(Stupa)

스투파는 불사리탑 혹은 불제자의 사리탑으로서 재가 불자의 예배 대상인 동시에 공덕을 쌓는 장소이기도 하다. 스투파 숭배는 시대와 더불어 점차 일반화되어 갔으며 나중에는 비구들도 여기 관여하게 된다. 이 당시까지는 불상의 조성이 금지되었으므로 재가신도들에게는 예배대상이 없었던 터이라, 그들이 불탑을 통해 불타께 예배를 드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르후트 불탑

슝가 왕조의 불탑(佛塔)으로 1873년에 커닝엄이 파괴했던 스투파(stupa)와 함께 이를 둘러싸고 있던 난순(欄楯)의 일부와 동쪽 탑문(塔門)이 발견되었으며, 그 후로 이들 유품은 캘커타의 인도박물관에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다. 동문(東門)과 12개의 난순 속석(束石)과 입석(笠石) 및 인방돌로 이루어지는데, 탑문 기둥의 각명(刻銘)으로 슝가 왕조(BC 184~BC 72)의 유품임이 밝혀졌으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불교조각으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불전도(佛傳圖)는 본생도(本生圖)의 반수 가량밖에 없으며, 산치(Sanchi)의 것이나 후대의 양각과는 그 비율이 반대로 되어 있다. 탑문의 양각은 산치만큼 풍부하지 않고 오히려 난순에서 많다. 그러나 깊이 새기지 않아서 평면적이고 선적(線的)이므로 세련미가 덜하다.

 

산치(Sanchi) 대탑

유적은 높이 약 90m의 고립된 언덕 위에 있고, 대탑(大塔:제1스투파)을 중심으로 여러 건조물 및 유지(遺址)가 군재(群在)하고 서쪽 중복(中腹)에는 제2탑이 있다. 최초로 이곳에 불탑을 세운 것은 아쇼카왕(王)으로, 왕이 건립한 석주(石柱)의 사자주두(獅子柱頭)가 남아 있다. 인도에 현존하는 복발탑(覆鉢塔) 중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탑이다. 장식하는 조각과 아울러 미술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대탑의 문의 높이는 10m, 앞뒤 전면에 많은 불전도(佛傳圖)․본생도(本生圖), 숭배의 대상도(對象圖)․문양도(文樣圖) 등이 돋을새김[浮彫]되어 있다. 대탑의 남문이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데, 북․동․서, 제3탑문의 순으로 완성된 듯하다. 또, 대탑 부근에는 당시의 차이티야당(堂) 유지(遺址)도 있다. 제3탑은 제1탑의 북동쪽 약 4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바깥 둘레의 난순은 없어졌고, 원형의 기단(基壇)과 복발(覆鉢)․평두(平頭)․산개․기단 위의 옥원(玉垣), 요도(繞道)에 이어지는 남쪽의 계단, 남문 1기(基)가 현존한다. 복발부의 널방[玄室] 안에서 불제자(佛弟子)의 사리용기(舍利容器)가 발견되었고 기단의 지름은 15.2m, 복발의 지름은 10m, 총높이 8.2m이다. 남문은 1세기경의 제작으로 높이 약 5m이고 제1탑의 탑문(塔門)과 같은 형식을 나타낸다. 1989년에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③ 데칸서부

      ♣서방세계와 무역으로 활기를 띠었으며 상공업이 번창

      ♣데칸고원에는 온갖 석굴 사원이 조성(B.C 1세기~A.D 8세기)

      ♣불교교단은 상인과 왕족의 비호를 받아가며 발전

      ♣보시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인도 전역에 걸쳐 상가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고, 불교교단은 늦어도 1세

         기경부터는 장원제도의 바탕 위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져가게 되었다.

 

   ④ 안드라

      ♣현존하는 불탑과 승원 유적들이 당시의 불교의 융성을 나타냄.

      ♣대중부 계통의 부파가 번창하여 대승불교가 성립할 때까지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⑤ 스리랑카

      ♣마힌다 장로(아쇼카왕의 아들)가 BC 3세기에 상좌부 불교를 전함.

      ♣상좌부 불교의 본거지로서 불교를 계승․발전시켜 왔음.

      ♣불교상가는 국왕과 부호들이 기부한 노비와 토지를 바탕으로 장원적인 경제기반 위에서 발전

 

   ⑥ 마투라

      ♣마우리아왕조 이후 여러 부파가 정착하는데 특히 설일체유부의 중심이 되었으며 마투라의 교단은 얼

         마후 북서인도의 캐시미르와 간다라 지방으로 진출

 

     ⑦ 카시쉬카왕과 불교

       ♣쿠샨시대에는 마투라부터 간다라지방에 유부를 비롯한 부파불교의 여러 파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으

          며 대승불교도 점차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음.

       ♣서기 2세기에는 카니쉬카왕이 출현하여 유부(有部)를 크게 비호.

      ♣파르쉬바 존자의 제의에 따라 캐시미르에 500명의 장로를 모아 결집을 행하였음. (제4결집)

       ♣이 때에 불상조각이 출현되었음은 특기할만한 일임.

       ♣당시 불교도들은 민간신앙적인 조각은 만들었지만 교리와 전통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불상은 제작하

          지 못하고 다만 불탑 숭배가 일반화되고 있었음.

       ♣간다라에서부터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하고, 비슷한 시기에 마투라에서도 불상이 조성됨.

          (1세기 말~2세기초 무렵)

       ♣불상의 출현에 의해 불교의 신앙 형태는 커다란 진전임.

          (지금까지 재가신도의 신앙은 불탑과 민간신앙적인 조각에 대해 현세 구복적인 기원을 하고 있었으

            며, 그 속에서 불상이 출현하였음.)

       ♣대승불교에서는 힌두세계로부터 여러 보살, 명왕(明王) 등을 풍부하게 흡수하였는데, 제불 보살에

          대한 숭배는 수행의 과정 속에 편입되는 동시에 현세구복의 대상이 됨.

 

카니쉬카(Kanishka)왕

인도 쿠샨왕조의 제3대 왕으로 쿠샨왕조의 최성기를 맞이하게 한 대왕으로, 한역불전(漢譯佛典)과 현장(玄)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가니색가(迦貳色迦) 라고 음역되어 있다.

왕이 2세기에 생존하였다는 것은 학계가 인정하고 있다. 푸루샤푸라(페샤와르)를 도성으로 정하고 간다라를 중심으로 사방을 정복하여 판도를 넓혔다. 동으로는 마가다의 도성 파탈리푸트라에 원정, 그 지방을 총독정치로 다스렸는데, 이는 발굴 자료에 의해 인정되었다. 또한 파르티아인의 잔존 세력을 정복하고 서북 인도를 통일하였으며,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투르키스탄)의 일부를 영유하여, 결국 불교의 극동전파를 도왔다.

캐시미르를 지배한 것 역시 확실하며, 왕이 불교를 비호한 사실은, 화폐에 불타의 명(銘)과 불상을 새긴 사실, 페샤와르에 있는 카니시카 대탑(大塔) 자리의 발굴, 왕의 상(像)과 명을 새긴 불타의 유골상자 발견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 시대는 문화적인 움직임도 활발하여 새로운 천문학과 의학이 발달하였고, 간다라를 중심으로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불교 예술이 출현하였다. 왕은 협존자(脇尊者:Parsva)를 매우 존경하였으며, 중인도로부터 종교고문으로 마명(馬鳴:아스바고샤:Asvaghosa)장로에게 불교의 경전을 배웠다.

왕의 불교사업은

① 도처에 가람(伽藍)과 불탑(佛塔)을 건립.

② 간다라 미술을 보호.

③ 제4회 결집

④ 불교가 서역 제국으로 전파되고 중국․우리나라로 유전(流傳)되는 발판을 마련한 것 등으로 볼 수 있다.

 

쿠샨왕조(Kushan Dynasty)

기원 전후부터 5세기 중엽까지 존재한 북서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에 미치는 왕조로서 대월지(大月氏)가 서쪽으로 옮겨서 서(西)투르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북반부를 지배했을 때에 영지(領地) 안에 설치한 5제후(諸侯)의 하나인 귀상(貴霜:쿠샨)에서 발전하였다. 기원 전후 쿠줄라 카드피세스 때에 다른 4제후를 쓰러뜨리고 힌두쿠시 이남으로 진출하여 간다라를 지배하였다. 그 후 카니슈카왕은 사방으로 영토를 넓히는 등 쿠샨왕조 전성기를 이루어 간다라 미술 등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대승불교도 이 때 성립 발전하였다.

 

간다라(Gandhara)

인더스강 중류에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 주변의 옛지명으로 현재는 파키스탄 페샤와르현에 속한다. 인더스강의 지류인 카불강 하류 평원지대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고대 중앙아시아와 서부아시아의 여러 문화가 교류하였다. BC 1500년경 아리아인이 이곳을 거쳐 인도에 들어갔으며, 그 후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왕조, 알렉산드로스대왕, 박트리아의 그리스인, 샤카족, 파르티아족, 쿠샨족, 사산왕조의 페르시아, 키다라, 엡타르, 서돌궐 등 외래 종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와 같이 이민족이 인도로 오는 통로이기도 했으며, 불교와 같은 인도문화가 다른 세계로 전파되는 길목이기도 하였다.

특히 BC 4세기 알렉산더대왕이 침입한 이후 동서간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기원전후 수세기 동안 독특한 불교문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의 불교문화를 간다라문화라고 하는데, 2세기 쿠산왕조를 일으킨 카니시카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불상조성에 헬레니즘 양식을 반영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주 석굴암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불상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불교문화가 사라지고 대신 이슬람문화가 번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