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6장 인도불교사

7. 결집(結集) (=합송 合誦) (=상기티 Samgiti)

moksha 2017. 4. 26. 23:40


7. 결집(結集) (=합송 合誦) (=상기띠saṁgīti)

 

(1) 제1결집

 

디가니까야 주석서인 쑤망갈라빌라씨니[Sumaṅgalavilāsini, 묘길상찬(妙吉祥贊)]에 따르면, 제1결집은 붓다가 열반에 든 바로 그해, 마가다(Māgadhā)국의 수도 라자가하(Rājagaha, 왕사성)웨바라(Vebhara)산 칠엽굴(七葉窟, Sattapaṇṇiguhā) 에서 500명의 아라한(Arhan, 거룩한 님)이 모여 실행하였다. 장로 마하깟사빠(mahakassapa, 대가섭)이 사회자가 되고 우팔리(upali)가 율(律)을, 아난다(ananda)가 경(經)을 합송하여 결집하였다.

 

(2) 제2결집

디빠방싸(Dīpavaṃsa)와 마하방싸(Mahāvaṃsa)에 의하면 아자따쌋뚜 왕의 후손인 깔라쇼까왕 치세시인 불멸(佛滅) 100년(또는110년)에 베살리(vesali)에서 밧지(Vajjī)족 출신의 비구들이 다음의 열 가지 사실[십사(十事)]에 대해 합법(kappati:淨)이라고 주장하였다.

 

① 뿔로 만든 용기에 식염(을 축적하는) 관행(慣行, kappa)

② (규정된 시간에서 태양의 그림자가)손가락 두 마디정도(넘긴 때의 식사)관행

③ 다른 부락(에 가서 음식을 취하는)관행

④ (동일한 교구안의 다른)주처(에서 포살회를 운영하는)관행

⑤ (곧 도착할 비구의)동의(를 예상하여 정족수가 부족하여도 의결을 행하는) 관행

⑥ (화상ㆍ아사리의)습관(에 따르는)관행

⑦ (식사후에도)응고하지 않은 우유(를 마시는 )관행

⑧ (발효하지 않은)야자즙을 마시는 관행

⑨ 테두리에 장식이 없는 방석(의 크기에 관한)관행

⑩ 금ㆍ은(을 받는)관행

 

이러한 10사(十事)에 대하여 보수적인 장로들은 이를 위법이라고 반대하여 교단내 논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베살리(vesali)의 700명의 아라한들이 집회를 열어 검토한 결과 밧지(Vajjī)비구들이 주장한 10사를 비법(非法)으로 배척하였다. 이로 인해 보수적 상좌부(上座部, 테라와다 Theravāda)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 Mahāsaṅgika)로 근본분열이 일어났다.

결집(結集) (=합송 合誦) (=상기티 Samgiti)

 

제1결집

제2결집

제3결집

제4결집

시 기

부처님의 입멸 직후

부처님 열반후

약100년 또는 60년

(B․C 3C경)

부처님 열반 후

(236년 후)

AD 1세기 또는 2세기

(불멸후 500~600년후)

(기원전 80~94년)

기 간

하안거 3개월

약 8개월

약 9개월

장 소

라자가하(Rajāgaha)

왕사성 칠엽굴

(Sattapaṇṇiguhā,

삿타파니 동굴)

마가다 국

베살리(Vesāli)의 발루까(Vālukā)정사

마우리야 왕국

수도인 빠딸리뿟따(Paṭliputta)의 아쇼카라마(Aśokarāma)ㆍ계원사(鷄園寺)

케시미르의 환림사(環林寺)

계 기

나이 많아서 늦게 출가한 수밧다 빅쿠의 망언

계율에 관한 문제(십사 十事)

적주비구(賊住比丘)문제

이설(異說)의 통일

지 원

아자타삿투왕

(마가다국)

깔라쇼까왕

(쉬시나가 왕조)

아쇼카왕

(마우리아 왕조)

카니시카왕

(쿠샨왕조)

인 원

500아라한

700아라한

1,000아라한

500아라한

마하가섭 존자

(Mahākassapa)

야사(耶舍)

(Yasa Kākaṇ-ḍakaputta)

목갈리뿟따 띳싸

(Moggaliputta

-tissa)

협존자(脇尊者, Parsva)와 세우(世友, Vasumitra)

스님

경장과 율장 성립

 

경장:아난다(Ānanda)존자

율장:우빨리(Upāli)존자

ㆍ계율상의 10가지 문제를 비법(非法)으로 판결

ㆍ상좌부와 대중부의 분열원인

ㆍ삼장(三藏)의 형성(논장의 성립)

ㆍ문자화

ㆍ경전을 구리판에 인각

ㆍ삼장을 각각 10만송씩 확정

:우빠데사(Upadesa)

ㆍ중국으로 불교가

전달되는 계기

 

(3) 제3결집

디빠방싸(Dīpavaṃsa)와 마하방싸(Mahāvaṃsa)에 의하면, 부처님 열반 후 236년 아쇼카 대왕의 후원 하에 빠딸리뿟따(Paṭliputta) 시에서 장로 목갈리뿟따 띳싸(Moggaliputta-tissa)의 주재로 1,000명의 아라한이 참여하여 분별설(分別說) 이외의 비정통파를 교단에서 추방하고 논사(論事, Kathavathu)를 완성한 것을 말한다.

 

(4) 제4결집

부처님 열반 후 500년 경 스리랑카의 밧따가마니(Vaṭṭagāmani) 왕의 치세시에 남인도의 비불교도들의 침입으로 인한 전란과 한발에 의한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승려들이 죽어가게 되어, 더 이상 암송과 합송에 의거하여 구전으로 불경을 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마하비하라(Mahāvihāra)파의 스님들이 불전을 오늘날의 형태로 문자로 기록한 것을 말한다.

 

(5) 제5결집

  미얀마 북쪽의 만달레이(Mandalay)에서 1871년 민돈 왕의 후원으로 개최되어 빠알리 삼장이 729개 대리석의 석판(율장111개, 경장410개, 논장208개)위에 새겨지게 된 것을 말한다.

 

(6) 제6결집

   1954년에서 1956년에 걸쳐 미얀마의 양곤 근처의 인공바위굴에서 2,500명의 불제자가 참여하여 삼장  을 교열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