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다나상가(Dānasaṅgha)담마 이야기

(2) 업에 대한 큰 분석의 경(Mahākammavibhaṅgasutta, M136)

moksha 2017. 8. 21. 17:42

업에 대한 큰 분석의 경(Mahākammavibhaṅgasutta, M13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라자가하 시의 벨루 숲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에 계셨다.

 

2. 그 때 존자 싸밋디1가 숲속의 초암에 있었다. 마침 뽀딸리뿟따라는 유행자가 산책을 하며 거닐다가 존자 싸밋디가 있는 곳을 찾았다. 가까이 와서 존자 싸밋디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은 유행자 뽀딸리뿟따는 존자 싸밋디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3. “벗이여, 싸밋디여, 나는 수행자 고따마로부터 ‘신체적 행위는 허무하다. 언어적 행위는 허무하다. 단지 정신적 행위만이 진실하다.2 그리고 선정이 있는데, 선정을 성취하면, 어떠한 느낌도 없어진다.’라고 이와 같이 직접 듣고 배웠습니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그와 같이 말하지 마시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그와 같이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잘못 대변하지 마시오. 세존을 잘못 대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신체적 행위는 허무하다. 언어적 행위도 허무하다. 단지 정신적 행위만이 진실하다. 그리고 선정이 있는데, 선정을 성취하면, 어떠한 느낌도 없어진다.’라고 설하시지 않았습니다.”

 

4. “벗이여 싸밋디여, 그대는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벗이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삼 년입니다.”

“새내기 수행승이 이와 같이 스승을 변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우리는 장로 수행승들에게 무엇이라 말해야 합니까? 벗이여 싸밋디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의도적 행위를 하고 나면 무엇을 경험합니까?”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의도적 행위를 하고 나면 괴로움을 느낍니다.”

 

5. 그러자 유행자 뽀딸리뿟따는 존자 싸밋디가 말한 것에 대하여 찬성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는 찬성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6. 그래서 존자 싸밋띠는 유행자 뽀딸리뿟따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존자 아난다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조자 아난다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서로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존자 싸밋디는 유행자 뽀딸리뿟따와 함께 나눈 대화의 모든 것을 존자 아난다에게 알렸다. 그와 같이 말하자 존자 아난다는 존자 싸밋디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7. “벗이여, 싸밋디여, 세존을 찾아뵙고 이 대화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벗이여 싸밋디여,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갑시다. 찾아뵙고 그 의미를 여쭈어봅시다. 세존께서 설명하시는 대로 우리가 마음에 새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벗이여, 그렇게 합시다.”

 존자 싸밋디는 존자 아난다에게 대답했다.

 

8. 그래서 존자 아난다와 존자 싸밋디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존자 아난다는 존자 싸밋디와 유행자 뽀딸리뿟따와 함께 나눈 대화의 모든 것을 세존께 말씀드렸다. 그와 같이 말하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9.“아난다여, 나는 유행자 뽀딸리뿟따를 만난 기억조차 없다. 그러니 어떻게 그와 같은 대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유행자 뽀딸리뿟따의 질문에 대하여 분석한 뒤에 대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싸밋디가 일방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10. 이처럼 말씀하시자 존자 우다인3이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존자 싸밋디는 아마도‘어떠한 것이든 느껴진 것은 괴로움 속에 있다.4’라는 것에 관하여 말한 것입니다.”

 

11. 그러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아난다여, 어리석게도 우다인이 끼어드는 것을 보라. 아난다여, 나는 지금 어리석게도 우다인이 끼어들어 이치에 맞지 않게 간섭하는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유행자 뽀딸리뿟따는 세 가지 느낌에 관하여 물었다. 아난다여, 어리석은 자인 싸밋디는 유행자 뽀딸리뿟따가 질문한 것에 대하여 이와 같이 대답했어야 했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결과가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의도적 행위를 하면, 그는 즐거움을 느낀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결과가 괴로움으로 느껴지는 의도적 행위를 하면, 그는 괴로움을 느낀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결과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의도적 행위를 하면,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을 느낀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대답하면 어리석은 자인 싸밋디는 유행자 뽀딸리뿟따가 질문한 것에 대하여 올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아난다여, 어리석고 생각 없는 이교도의 유행자들이 어떻게 여래가 업에 대한 큰 분석을 하는 것에 관하여 알 수 있을 것인가?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래가 업에 대한 큰 분석을 설할 때에 잘 들어야 한다.”

 

12.“세상에서 존경받는 님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이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세존께서는 업에 대한 큰 분석에 관하여 설해주십시오. 세존으로부터 듣고 수행승들은 새길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듣고 잘 새겨라. 내가 설하겠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3. "아난다여, 세상에는 존재하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5 네 종류란 어떠한 것인가?

1)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6

2)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3)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4)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지옥에 태어난다.

 

14. 그런데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중에 의하고, 노력에 의하고, 수행에 의하고, 방일하지 않음에 의하고, 올바로 정신활동을 기울임에 의하여7,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를8 경험한다. 즉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 속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어떤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으면,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참으로 악한 행위가 있고 악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있다. 나는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진다면, 어떤 사람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그는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진다면,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이와 같이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

 

15. 그런데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중에 의하고, 노력에 의하고, 수행에 의하고, 방일하지 않음에 의하고, 올바로 정신활동을 기울임에 의하고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를 경험한다.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 속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어떤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더라도,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참으로 악한 행위도 없고 악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다. 나는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어떤 사람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그는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지면,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이와 같이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

 

16. 그런데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중에 의하고, 노력에 의하고, 수행에 의하고, 방일하지 않음에 의하고, 올바로 정신활동을 기울임에 의하고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를 경험한다. 즉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 속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어떤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으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참으로 선한 행위도 있고 선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있다. 나는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가진다면, 어떤 사람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그는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가지면,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

 

17. 그런데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중에 의하고, 노력에 의하고, 수행에 의하고, 방일하지 않음에 의하고, 올바로 정신활동을 기울임에 의해서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를 경험한다. 즉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 속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어떤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참으로 선한 행위도 없고 선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다. 나는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어떤 사람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

 

18. 그런데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가 ‘참으로 악한 행위가 있고 악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에 동의한다.9 또한 그가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진다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라고 말한다면, 나도 이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진다면,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큰 분석의 지혜는 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19.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들이 ‘참으로 악한 행위도 없고 악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여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큰 분석의 지혜는 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20.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가 ‘참으로 선한 행위도 있고 선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한다. 그가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가진다면, 어떤 사람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가지면,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큰 분석의 지혜는 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21.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가‘참으로 선한 행위도 없고, 선한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어떤 사람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그 모두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안다면, 올바로 아는 것이다. 만약에 달리 안다면, 그는 잘못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큰 분석의 지혜는 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22. 그리고 아난다여10,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고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면, 그 사람은 이전에 고통스럽게 느껴질 악한 행위를 했거나 나중에 고통스럽게 느껴질 악한 행위를 했거나 죽을 때에 잘못된 견해를 갖거나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11 그것으로 인해서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면, 그 과보가 현세에서 혹은 다음 세상에서 혹은 후세에서 나타나서, 그가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12

 

23. 아난다여,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더라도,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면, 그 사람은 이전에 즐겁게 느껴질 선한 행위를 했거나 나중에 즐겁게 느껴질 선한 행위를 했거나 죽을 때에 올바른 견해를 갖거나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13 그것으로 인해서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면, 그 과보가 현세에서 혹은 다음 세상에서 혹은 후세에서 나타나서, 그가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24.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고,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면, 그 사람은 이전에 즐겁게 느껴질 선한 행위를 했거나 나중에 즐겁게 느껴질 선한 행위를 했거나 죽을 때에 올바른 견해를 갖거나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는다면, 그 과보가 현세에서 혹은 다음 세상에서 혹은 후세에서 나타나서, 그가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25.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면, 그 사람은 이전에 고통스럽게 느껴질 악한 행위를 했거나 나중에 고통스럽게 느껴질 악한 행위를 했거나 죽을 때에 잘못된 견해를 갖거나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삼가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탐욕스러운 것을 삼가고, 분노하는 것을 삼가고, 올바른 견해를 갖더라도, 그 과보가 현세에서 혹은 다음 세상에서 혹은 후세에서 나타나서, 그가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26. 아난다여, 이와 같이 불가능한 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불가능한 업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가능한 업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능한 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14

 

27.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며 기뻐했다.

 

업에 대한 큰 분석의 경이 끝났다.


  1. 싸밋디(Samiddhi) : 장로는 경전에 자주 나온다. SN.Ⅰ.9에 등장하고 SN.Ⅰ.119와 Thag.46, SN.Ⅳ.38에서는 부처님께 많은 질문을 던지며, AN.Ⅳ.385에서는 싸리뿟따(Sariputta)를 형이상학적 질문으로 시험한다. [본문으로]
  2. 뽀딸리뿟따(Potaliputta)는 이 경에만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는 실제로 부처님에게 듣지 않았으나 이러한 진술이 부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악한 정신적 행위가 악한 신체적, 언어적 행위 가운데 가장 비난할 만하다는 우빨리의 경(Upālisutta, MN.56)에서의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왜곡된 설명이다. [본문으로]
  3. 여기서의 우다인(Udāyī)는 다른 우다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마하 우다인(Mahā Udāyī) 또는 빤디따 우다인(Paṇḍita Udāyī)이라고 불린다. 그는 까삘라밧투(Kapilavatthu)의 바라문 아들이었는데, 친척을 방문했다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위력을 보고 출가했다. 그는 아난다가 부처님과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다고 야유해서 부처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부처님은 그에게 아난다가 거룩한 님이 될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본문으로]
  4. 이는 ‘모든 형성은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속성으로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모든 것은 괴롭다는 것을 의미하고 윤회의 괴로움, 오염의 괴로움, 형성의 괴로움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싸밋디(Samiddhi)는 모든 느낌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오해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본문으로]
  5. Pps.Ⅴ.18에 따르면, 이 단락은 업에 대한 큰 분석에 관한 여래의 지식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그 설명에 대한 개괄을 시설하기 위한 것이다. [본문으로]
  6. 괴로운 곳[고처(苦處), apāya], 나쁜 곳[악취(惡趣), duggati], 타락한 곳[타처(墮處), vinipāti], 지옥[地獄, niraya]은 모두 지옥의 동의어이다. 그러나 주석서에 따르면 이들은 서로 다른 네 가지 하층의 세계를 의미한다. 괴로운 곳[고처(苦處), apāya]은 축생(畜生, tiraccahāna), 나쁜 곳[악취(惡趣), duggati]은 아귀의 세계(餓鬼, pettivisaya), 타락한 곳[타처(墮處), vinipāti]은 아수라의 세계(阿修羅, asuranikāya), 지옥[地獄, niraya]을 의미한다. 지옥은 어원적으로 ‘산산 조각난 것’이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경전상에서는 네 가지는 동의어로서 네 가지 하층의 세계를 모두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7. Pps.Ⅴ.18에 따르면, 이것들을 다섯 가지 정진(pañca viriyā)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8. Pps.Ⅴ.18에 따르면, 천안삼매(天眼三昧, dibbacakkhusamādhi)를 말한다. [본문으로]
  9. 이 단락도 역시 업에 대한 큰 분석에 관한 여래의 지식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그 설명에 대한 개괄을 시설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목적은 외부의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의 주장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직접적인 관찰에 대한 보고를 제시하는 전제는 받아들이지만, 그들이 관찰에서부터 일반화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본문으로]
  10. 여기서부터 업에 대한 큰 분석이 시작된다. [본문으로]
  11. Pps.Ⅴ.20에 따르면, 천안으로 관찰할 때에 살생 등의 행위를 한 사람은 이전에 행한 다른 살생 등 때문에 지옥에 가거나 지금의 살생 등의 행위와 그 이후에 행한 살생 등의 악한 행위와 죽을 때의 잘못된 견해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강력한 업의 이숙과 약한 업의 이숙의 차이가 존재한다. 비록 경에서 그가 행한 것과는 다른 어떤 행동 때문에 지옥에 필연적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필연적인 것의 언명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가능성에 대한 진술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저지른 악한 행동 때문에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은 진실일 수 있지만, 그가 이전이나 이후 또는 잘못된 견해 때문에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본문으로]
  12. 이 진술은 악한 업이 다시 태어남을 낳지 않더라도 이 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나 먼 미래에 과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13.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도 그가 행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다른 착하고 건전한 업에 의해 기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악한 행위는 행복한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4. Pps.Ⅴ.20에 따르면, 첫 번째는 살생을 해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그의 행위는 불건전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가 불가능하다. 또한 지옥에 태어나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가 불가능하다. 두 번째는 살생을 해서 하늘나라에 태어난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그의 행위도 불건전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가 불가능하지만 하늘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교도의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그것을 하늘나라에 다시 태어나는 것의 원인으로 여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