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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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끼의 경(Caṅkīsutta, M95) (2) : 진리를 깨달음의 길, 진리의 수호, 진리의 성취와 그 길

moksha 2016. 8. 12. 17:13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3번)

               나모    땃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쌈마쌈붓닷싸 (3번)

그 분,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예경하나이다.



짱끼의 경(Caṅkīsutta, M95) (2)



23. 그래서 바라문 청년 까빠티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질문했다.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입으로 외워서 서로 전하는 옛날 성직자들의 성전 구절을 담은 경장에 의거하여, 성직자들은 그것에 관해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였는데, 이것에 대해 존자 고따마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24. [세존] “그런데 바라드와자여, 모든 성직자들 가운데 단 한분의 성직자라도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 분이 있습니까?”

[까빠티까] “존자여, 없습니다.”

 

25. [세존] “ 그런데 바라드와자여, 모든 성직자들 가운데 한 스승으로서 스승들의 스승인 칠대의 스승 세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분의 성직자라도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 분이 있습니까?”

[까빠티까] “존자여, 없습니다.”

 

26. [세존] “그렇다면 바라드와자여, 성직자들 가운데 옛 선인들이 성전을 쓰고 전했는데, 지금의 성직자들은 그 성전이 외어지고 설해져서 모아진 것을 따라서 외우고 따라서 설하고, 그 설해진 것을 따라서 설하고 가르쳐진 것을 따라서 가르칩니다. 이를테면, 앗타까, 바마까, 바마데바, 벳싸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싸, 바라드와자, 바쎗타, 깟싸빠, 바구와 같은 이들이라도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까빠티까] “존자여, 없습니다.”

 

27. [세존] “바라드와자여, 이처럼 모든 성직자들 가운데 단 한 분의 성직자라도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 분이 결코 없습니다. 모든 성직자들 가운데 한 스승으로서 스승들의 스승인 칠대의 스승 세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분의 성직자라도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 분이 결코 없습니다. 성직자들 가운데 옛 선인들이 성전을 쓰고 전했는데, 지금의 성직자들은 그 성전이 외어지고 설해져서 모아진 것을 따라서 외우고 따라서 설하고, 그 설해진 것을 따라서 설하고 가르쳐진 것을 따라서 가르칩니다. 이를테면, 앗타까, 바마까, 바마데바, 벳싸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싸, 바라드와자, 바쎗타, 깟싸빠, 바구와 같은 이들이라도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마치 봉사들이 줄을 섰는데, 앞선 자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선 자도 보지 못하고 뒤에 선 자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모든 성직자들이 설한 것은 봉사들이 줄을 선 것과 같이 앞선 자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선 자도 보지 못하고 뒤에 선 자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8. [세존] “바라드와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성직자들의 믿음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성직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믿음으로만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입으로 외워서 전승된 것이기 때문에 경의를 표합니다.”

 

29. [세존]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먼저 믿음에 관하여 언급했고 지금은 전승에 관하여 언급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는 지금 여기에서 두 종류의 과보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란 어떠한 것입니까? 믿음, 취향, 전승, 상태에 대한 분석, 견해에 대한 이해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는 지금 여기에서 두 종류의 과보를 갖습니다.

바라드와자여, 잘 믿음이 가더라도 그것이 공허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잘 믿음이 가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 사실인 것, 진실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바라드와자여, 잘 취향에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허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 사실인 것, 진실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바라드와자여, 잘 전승되더라도 그것이 공허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잘 전승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 사실인 것, 진실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바라드와자여, 잘 상태가 분별되더라도 그것이 공허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잘 상태가 분별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 사실인 것, 진실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바라드와자여, 잘 견해가 이해되더라도 그것이 공허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잘 견해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 사실인 것, 진실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바라드와자여, 진리를 수호하는 현자라면, ‘이것은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30.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진리가 수호됩니까? 어떠한 방법으로 진리를 수호합니까? 저희는 존자 고따마에게 진리의 수호에 대하여 여쭙니다.”

[세존]

1)“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람이 믿음을 받아들인다면,‘이와 같은 나는 믿음이 있다.’라고 말하고,‘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가 수호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수호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진리의 수호에 관해 말합니다. 그때까지는 진리가 깨달아진 것이 아닙니다.

 

2) 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람이 취향을 받아들인다면,‘이와 같이 나는 취향이 있다.’라고 말하고‘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가 수호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수호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진리의 수호에 관해 말합니다. 그때까지는 진리가 깨달아진 것이 아닙니다.

 

3) 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람이 전승을 받아들인다면‘이와 같이 나는 전승을 계승한다.’라고 말하고‘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가 수호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수호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진리의 수호에 관해 말합니다. 그때까지는 진리가 깨달아진 것이 아닙니다.

 

4) 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람이 상태의 분별을 받아들인다면,‘이와 같이 나는 상태를 분별한다.’라고 말하고‘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가 수호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수호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진리의 수호에 관해 말합니다. 그때까지는 진리가 깨달아진 것이 아닙니다.

 

5) 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람이 견해의 이해를 받아들인다면,‘이와 같이 나는 견해를 이해한다.’라고 말하고‘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가 수호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수호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진리의 수호에 관해 말합니다. 그때까지는 진리가 깨달아진 것이 아닙니다.”

 

31.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과연 그렇게 해서 진리가 수호되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수호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해서 진리를 수호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런데 어떻게 진리가 깨닫게 됩니까? 어떻게 진리를 깨닫습니까? 저희는 진리의 깨달음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세상에서 한 수행승이 어떤 마을 또는 동네 근처에 머무는데, 장자 또는 장자의 아들이 접근해서 세 가지 현상, 탐욕의 상태, 성냄의 상태, 어리석음의 상태에 관하여 조사했습니다.

 

32. ‘이 존자는 탐욕의 상태에 있으면서 탐욕의 상태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나는 본다.’라고 말하며, 또한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닌가?’그는 그를 조사하여 이와 같이‘그가 탐욕의 상태에 있으면서 탐욕의 상태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면서‘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존자의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는 탐욕을 지닌 자가 행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이 존자가 설한 법은 매우 깊고,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를 뛰어넘고, 미묘해서 슬기로운 이 하나 하나에 알려지는 것으로 탐욕에 사로잡힌 자가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알았습니다.

 

33. 그는 그를 조사해서 탐욕의 상태에서 벗어나 청정한 것을 알았으므로 계속해서 성냄의 상태에 관해 조사했습니다.‘이 존자가 성냄의 상태에 있으면서 성냄의 상태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나는 본다.’라고 말하며,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닌가?’그는 그를 조사하여 이와 같이‘그가 성냄의 상태에 있으면서 성냄의 상태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존자의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는 성냄을 지닌 자가 행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이 존자가 설한 법은 매우 깊고,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를 뛰어넘고, 미묘해서 슬기로운 이 하나 하나에 알려지는 것으로 성냄에 사로잡힌 자가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알았습니다.

 

34. 그는 그를 조사해서 성냄의 상태에서 벗어나 청정한 것을 알았으므로 계속해서 어리석음의 상태에 관해 조사했습니다.‘이 존자가 어리석음의 상태에 있으면서 어리석음의 상태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면서‘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나는 본다.’라고 말하며, 또한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닌가?’그는 그를 조사하여 이와 같이‘그가 어리석음의 상태에 있으면서 어리석음의 상태에 사로잡혀서 알지 못하면서‘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존자의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는 어리석음을 지닌 자가 행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이 존자가 설한 법은 매우 깊고,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를 뛰어넘고, 미묘해서 슬기로운 이 하나 하나에게 알려지는 것으로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자가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알았습니다.

 

35. 그는 그를 조사해서 어리석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청정한 것을 알았으므로, 그에게 믿음이 확립되고, 믿음이 확립되면 섬기게 되고, 섬기면 존중하게 되고, 존중하면 청문하게 되고, 청문하게 되면 가르침을 배우게 되고, 배우게 되면, 가르침에 대한 새김이 생겨나고, 새김이 생겨나면, 가르침에 대한 의미를 고찰하게 되고, 의미를 고찰하게 되면, 가르침에 대한 성찰을 수용하게 되고, 가르침에 대한 성찰을 수용하게 되면, 의욕이 생겨나게 되고, 의욕이 생겨나면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면 깊이 관찰하게 되고, 깊이 관찰하면 정근하게 되고, 정근하면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며, 마침내 지혜로서 꿰뚫어 보게 됩니다.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해서 진리의 깨달음이 있게 되고, 이렇게 진리를 깨닫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깨닫는다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진리를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은 아닙니다.”

 

36. [까빠티까]“존자 고따마여, 과연 그렇게 해서 진리가 깨달아지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깨닫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해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존자 고따마여, 어떻게 진리가 궁극적 성취가 있게 되고 어떻게 진리를 궁극적으로 성취합니까? 저희는 진리의 궁극적 성취에 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바라드와자여, 그 모든 진리를 섬기고 닦아나가고 키워나가면 진리의 궁극적 성취가 있게 됩니다. 바라드와자여, 이러한 진리의 궁극적 성취가 있게 되고 이러한 진리를 궁극적으로 성취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나는 진리의 궁극적 성취에 관하여 시설합니다.”

 

37. [까빠티까]“존자 고따마여, 과연 그렇게 해서 진리의 궁극적 성취가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궁극적으로 성취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해서 진리를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존자 고따마여, 진리의 궁극적 성취를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진리의 궁극적 성취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진리의 궁극적 성취를 위하여 정근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정근하지 않으면, 진리를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정근 하는 까닭에 진리를 성취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성취를 위하여 정근이 도움이 됩니다.”

 

38.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정근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정근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정근을 위하여 깊이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깊이 관찰하지 않으면, 정근할 수가 없습니다. 깊이 관찰하는 까닭에 정근합니다. 그러므로 정근을 위하여 깊이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9.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깊이 관찰하는 것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깊이 관찰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깊이 관찰하는 것을 위하여 노력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노력이 없다면, 깊이 관찰할 수가 없습니다. 노력이 있는 까닭에 깊이 관찰합니다. 그러므로 깊이 관찰하는 것을 위하여 노력이 도움이 됩니다.”

 

40.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노력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노력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노력을 위하여 의욕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의욕이 없다면, 노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의욕이 있는 까닭에 노력을 합니다. 그러므로 노력을 위하여 의욕이 도움이 됩니다.

 

41.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의욕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의욕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의욕을 위하여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이 없다면, 의욕을 낼 수가 없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이 있는 까닭에 의욕을 냅니다. 그러므로 의욕을 위하여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이 도움이 됩니다.

 

42.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을 위하여 의미를 고찰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의미의 고찰이 없다면, 가르침에 대한 성찰을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의미의 고찰이 있는 까닭에 가르침에 대한 성찰을 수용합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에 대한 성찰의 수용을 위하여 의미의 고찰이 도움이 됩니다.

43.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의미의 고찰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의미의 고찰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의미에 대한 고찰을 위하여 가르침에 대한 새김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가르침에 대한 새김이 없다면, 가르침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새김이 있는 까닭에 가르침의 의미를 고찰합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에 대한 의미의 고찰을 위하여 가르침에 대한 새김이 도움이 됩니다.”

 

44.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가르침에 대한 새김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가르침에 대한 새김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가르침에 대한 새김을 위하여 가르침에 대한 배움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가르침에 대한 배움이 없다면, 가르침에 대해 새길 수 없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배움이 있는 까닭에 가르침에 대한 새김을 합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에 대한 새김을 위하여 가르침에 대한 배움이 도움이 됩니다.

 

45.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가르침에 대한 배움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가르침에 대한 배움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가르침에 대한 배움을 위하여 청문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청문이 없다면, 가르침에 대해 배울 수가 없습니다. 청문이 있는 까닭에 가르침에 대해 배웁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에 대한 배움을 위하여 청문이 도움이 됩니다.

 

46.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청문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청문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청문을 위하여 존중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존중이 없다면, 청문할 수가 없습니다. 존중이 있는 까닭에 청문합니다. 그러므로 청문을 위하여 존중이 도움이 됩니다.”

 

47.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존중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존중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존중을 위하여 섬김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섬김이 없다면, 존중할 수가 없습니다.

섬김이 있는 까닭에 존중합니다. 그러므로 존중을 위하여 섬김이 도움이 됩니다.”

 

48.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다면, 섬김을 위하여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됩니까? 저희는 섬김에 관하여 존자 고따마께 여쭙니다.”

[세존] “바라드와자여, 섬김을 위하여 믿음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섬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까닭에 섬깁니다. 그러므로 섬김을 위하여 믿음이 도움이 됩니다.”

49. [까빠티까] “존자 고따마께 진리의 수호에 관하여 여쭈었는데 존자 고따마께서는 진리의 수호에 대해 대답하셨고, 저희는 그것을 찬성하고 수용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존자 고따마께 진리의 깨달음에 관하여 여쭈었는데 존자 고따마께서는 진리의 깨달음에 대해 대답하셨고, 저희는 그것을 찬성하고 수용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존자 고따마께 진리의 성취에 관하여 여쭈었는데 존자 고따마께서는 진리의 성취에 대해 대답하셨고, 저희는 그것에 찬성하고 수용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존자 고따마께 진리의 성취에 가장 도움이 되는 가르침에 관하여 여쭈었는데 존자 고따마께서는 진리의 성취에 가장 도움이 되는 가르침에 관하여 대답하셨고, 저희는 그것을 찬성하고 수용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존자 고따마께 여쭙는 것이 무엇이든지 존자 고따마께서는 대답하셨고, 저희는 그것을 찬성하고 수용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50. 존자 고따마여, 저는 예전에 이와 같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바라문들]‘빡빡 깎은 수행자, 천한 노예, 검은 노예, 하느님의 다리에서 생겨난 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진리를 아는 자들일까?’

 

51. 그러나 존자 고따마께서는 저희에게 수행자의 수행자에 대한 사랑, 수행자의 수행자에 대한 믿음, 수행자의 수행자에 대한 존경을 불러일으켰습니다.

 

52. [까빠티까]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짱끼의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