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진리의 바다/진리의 종교, 불교(佛敎)

가나까 목갈라나의 경(Gaṇakamoggallānasutta, MN107) : 여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moksha 2016. 9. 5. 22:09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3번)

               나모     땃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쌈마쌈붓닷싸 (3번)

그 분,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예경하나이다.


가나까 목갈라나의 경(Gaṇakamoggallānasutta, MN107)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의 뿝빠라마에 있는 미가라마뚜 강당1에 계셨다. 

 

2. 그 때 바라문 가나까 목갈라나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서로 주고 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3. 한 쪽으로 물러나 앉은 바라문 가나까 목갈라나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존자 고따마여, 이 미가라마뚜 강당에는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이 있습니다. 즉 최후에 계단을 향한 것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바라문에게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이 있습니다. 즉 공부를 향한 것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활쏘는 사람에게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이 있습니다. 즉 활쏘는 기술을 향한 것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우리와 같은 회계사에게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이 있습니다. 즉 회계를 향한 것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우리는 제자를 얻어 먼저 이와 같이 헤아리게 합니다. 하나는 하나, 둘은 둘, 셋은 셋, 넷은 넷, 다섯은 다섯, 여섯은 여섯, 일곱은 일곱, 여덟은 여덟, 아홉은 아홉, 열은 열, 이와 같이 백까지, 이와 같이 존자 고따마여, 우리는 헤아리게 합니다. 이와 같이 존자 고따마여, 가르침과 계율에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을 설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4. “바라문이여, 가르침과 계율에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을 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현명한 조련사가 성질이 좋은 우량한 말을 얻어서 먼저 고삐에 능숙해지도록 하고 길들이는 것과 같이, 여래가 길들일 사람을 얻으면 먼저 이와 같이 ‘오라. 수행승이여, 모름지기 계행을 닦고 계율을 갖추어라. 계율의 항목을 수호하고 지켜서 행동규범을 완성하라. 사소한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율을 받아 배우라.”라고 길들입니다.

 

5. 바라문이여, 수행승이 모름지기 계행을 닦고 계율을 갖추고, 계율의 항목을 수호하고 지켜서 행동규범을 완성하고, 사소한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배우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와 같이 길들입니다.

 ‘오라 수행승이여, 그대는 감각능력의 문들을 수호하라.

1) 시각으로 형상을 보고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시각능력을 수호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그대에게 침입할 것이므로 절제의 길을 닦고 시각능력을 수호하고 시각능력을 제어하라.

2) 청각으로 소리를 듣고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청각능력을 수호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그대에게 침입할 것이므로 절제의 길을 닦고 청각능력을 수호하고 청각능력을 제어하라.

3) 후각으로 냄새를 맡고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후각능력을 수호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그대에게 침입할 것이므로 절제의 길을 닦고 후각능력을 수호하고 후각능력을 제어하라.

4) 미각으로 맛을 보고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미각능력을 수호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그대에게 침입할 것이므로 절제의 길을 닦고 미각능력을 수호하고 미각능력을 제어하라.

5) 촉각으로 감촉을 느끼고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촉각능력을 수호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그대에게 침입할 것이므로 절제의 길을 닦고 촉각능력을 수호하고 촉각능력을 제어하라.

6) 정신으로 사실을 인식하고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정신능력을 수호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그대에게 침입할 것이므로 절제의 길을 닦고 정신능력을 수호하고 정신능력을 제어하라.’

 

6. 바라문이여, 수행승이 감각능력의 문들을 수호하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와 같이 ‘오라 수행승이여, 식사하는데 분량을 알아라.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취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매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건강을 지키고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나는 예전의 고통을 끊고 새로운 고통을 일으키지 않고 건강하고 허물없이 안온하리라.’라고 생각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음식을 취하라.’라고 길들입니다.

 

7. 바라문이여, 수행승이 식사하는데 분량을 알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와 같이 ‘오라 수행승이여, 깨어있음에 전념하라. 낮에는 경행과 좌선으로 모든 장애에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 밤의 초야에도 경행과 좌선으로 모든 장애에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 밤의 중야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다시 일어남에 정신활동을 기울여 눕는다. 그리고 밤의 후야에는 일어나서 경행과 좌선으로 모든 장애에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라고 길들입니다. 

 

8. 바라문이여, 수행승이 깨어있음을 닦으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와 같이 ‘오라 수행승이여,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려라. 앞으로 나아가건 뒤로 돌아오건, 올바로 알아차려라. 앞으로 바라보건 뒤로 바라보건, 올바로 알아차려라. 몸을 굽히건 몸을 펴건, 올바로 알아차려라.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먹거나 마시거나 삼키거나 소화시킬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대소변을 볼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거나 말하거나 침묵할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라고 길들입니다.

 

9. 바라문이여, 수행승이 새김의 확립과 올바른 알아차림을 성취하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와 같이 ‘오라 수행승이여, 그대는 한적한 숲이나 나무아래나 산이나 계곡이나 동굴이나 묘지나 숲속이나 노지나 짚더미가 있는 외딴 곳의 처소에서 수행하라.’라고 길들입니다.

 

10. 그는 한적한 숲이나 나무아래나 산이나 계곡이나 동굴이나 묘지나 숲속이나 노지나 짚더미가 있는 외딴 곳의 처소에서 수행합니다. 그는 식사를 한 뒤에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펴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앉습니다.

1) 그는 세간에 대한 탐욕을 끊어 정신적으로 탐욕에서 벗어나고 탐욕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2) 그는 분노와 원한을 끊어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모든 뭇삶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애민히 여기며, 분노와 원한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3) 그는 해태와 혼침을 끊고 해태와 혼침에서 멀리 떠나 광명에 대한 지각을 갖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4) 그는 흥분과 회한을 끊고 혼란되지 않아 안으로 마음을 고요히 해서 흥분과 회한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5) 그는 의심을 끊고 의심을 뛰어넘어 착하고 건전한 것들에 대한 의혹에 흔들리지 않고 착하고 건전한 것들에 대한 의심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11. 그는 이와 같이 지혜를 약화시키는 마음의 오염인 다섯 가지 장애를 끊고 나서, 

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2)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3)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 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4)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12.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마음이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속박으로부터 최상의 안온을 바라는 보다 높은 수행의 단계에 있는 수행승들에 대한 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청정한 삶을 영위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목표에 이르고, 존재의 장애를 부수고, 궁극적인 지혜로 완전히 해탈하여 번뇌를 부순 거룩한 님인 수행승들에게 지금 여기에서의 즐거운 삶뿐만 아니라 새김의 확립과 올바른 알아차림으로 이끕니다.”

 

13. 이처럼 말씀하시자 바라문 가나까 목갈라나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존자 고따마의 제자들이 존자 고따마로부터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으면, 그들이 모두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합니까, 또는 그 일부만 성취합니까?”

“바라문이여, 나의 제자들이 내게서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으면, 어떠한 자들은 궁극적인 목표와 열반을 성취하고 또는 어떤 자들은 성취하지 못합니다.”

 

14. “존자 고따마여,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존자 고따마가 안내자로서 있는데도, 존자 고따마의 제자들이 존자 고따마로부터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 어떠한 자들은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지만, 어떠한 자들은 성취하지 못하는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다시 되묻겠습니다. 그대의 생각대로 답변하십시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라자가하 시로 가는 길에 익숙합니까?”

“존자 고따마여, 나는 라자가하 시로 가는 길에 익숙합니다.”

 

16.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 사람이 라자가하 시로 가고자 그대에게 다가와서 이와 같이 ‘존자여, 나는 라자가하 시로 가고자 합니다. 라자가하 시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대는 그에게 ‘존자여, 이 길이 라자가하 시로 가는 길입니다. 잠시 이 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어떤 마을이 보일 것이다. 조금 더 가면, 그대는 어떤 도시가 보일 것이고 조금만 더 가면, 아름다운 공원들과 아름다운 숲들,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라자가하 시가 보일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대에게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는 잘못된 길을 택해서 서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17. 바라문이여, 두 번째 사람이 라자가하 시로 가고자 그대에게 다가와서 이와 같이 ‘존자여, 나는 라자가하 시로 가고자 합니다. 라자가하 시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대는 그에게 ‘존자여, 이 길이 라자가하 시로 가는 길입니다. 잠시 이 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어떤 마을이 보일 것이다. 조금 더 가면, 그대는 어떤 도시가 보일 것이고 조금만 더 가면, 아름다운 공원들과 아름다운 숲들,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라자가하 시가 보일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대에게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 안전하게 라자가하 시에 도착합니다. 바라문이여, 지금 라자가하 시는 있고, 라자가하 시에 이르는 길도 있고, 그대가 안내자로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대에게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잘못된 길을 택해서 서쪽으로 가고 어떤 이는 안전하게 라자가하 시에 도착하는 원인은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존자 고따마여, 그것에 대하여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자일뿐입니다.”

“바라문이여, 열반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내가 안내자로서 있는데, 나의 제자들이 나에게서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 어떠한 이들은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고 또는 어떤 이들은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19.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가나까 목갈라나는 세존께 말했다.

“존자 고따마여, 믿음 없이 생활하며,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였으면서도, 속이고, 기만하고, 교만하고, 오만하고, 동요하고, 욕설을 하고, 수다스럽고, 감관을 자제하지 못하고, 식사의 분량을 알지 못하고, 깨어있음을 닦지 못하고, 수행자의 삶을 살피지 않고, 학습계율을 존중하지 않고, 사치스럽고, 방일하고, 타락에 앞장서고, 멀리 여읨을 소홀히 하고, 게으르고 정진이 없고, 새김이 없고,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고, 지혜가 없고, 바보 멍텅구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러한 사람들과 살지 않습니다.

 

20. 그러나 믿음으로 생활하며,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속이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욕설을 하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감관을 자제하고, 식사의 분량을 알고, 깨어있음을 닦고, 수행자의 삶을 살피고, 학습계율을 존중하고, 사치스럽지 않고, 방일하지 않고, 멀리 여읨에 앞장서고, 게으르지 않고, 정진이 있고, 새김이 있고, 알아차림이 있고, 집중하고, 마음이 통일되고, 지혜가 있고, 바보 멍텅구리가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러한 사람들과 살고 있습니다.

 

21. 존자 고따마여, 이를테면, 어떠한 뿌리의 향이 있든지, 그들 가운데 흑단향이 최상이라고 불리고, 어떠한 나무심의 향이 있든지 그들 가운데 적단향이 최상이라고 불리고, 어떠한 꽃의 향이 있든지 그들 가운데 자스민향이 최상이라고 불리듯, 존자 고따마의 충고는 오늘날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 최상입니다.

 

22.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을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가나까 목갈라나 경이 끝났다.


  1. 미가라마뚜 빠사다(Migāramātu pāsāda) : 이 정사는 사밧티의 동쪽 교외에 있었는데, 비사카(Visākhā)의 별명인 녹자모(鹿子母)를 따서 미가라마뚜-빠사다(Migāramātu pāsāda) 즉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이라 하기도 하며, 사밧티의 동쪽에 있는 정사이므로 동원정사(東園精舍, 뿝바라마(Pubbārāma)라고도 부르고 혹은 동원녹자모강당(東園鹿子母講堂)이라 하였다. 1층과 2층에는 각각 5백 개의 승방이 만들어졌다. 비사카는 뿝바라마를 9천만 까하빠나로 사들여 다시 9천만 까하빠나를 들여 각층에 500개의 방사가 있는 중각(重閣)의 미가라마뚜 강당을 지었고, 6개월 만에 완성되자 다시 9천만 까하빠나를 들여 4개월간 낙성축제를 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