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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다나상가(Dānasaṅgha)담마 이야기

8. 도덕적 인과율 인연과(因緣果)의 법칙

moksha 2017. 6. 12. 23:41

8. 도덕적 인과율 인연과(因緣果)의 법칙

만물의 차별현상은 우연히 혹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선행하는 원인과 필요한 조건들이 갖추어 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원인[인(因)]과 조건[연(緣)]이 갖추어지면 그것에 따른 결과[과(果)]가 온다는 법칙을 말한다. 인연과(因緣果)를 줄여서 인연(因緣)이라고 한다. 어떤 행위를 하면 틀림없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의도된 행위의 결과를 업보(業報)라고 한다.

콩의 씨앗[원인, 의도적 행위]을 심으면 콩의 싹이 나고 자라서 콩의 열매[결과, 행위의 과보]가 열린다. 그 열매의 모양과 맛과 같은 특성은 전적으로 그 씨앗을 따른다. 마찬가지로 업을 지으면 그것은 성숙하게 되고 언젠가는 반드시 과보를 초래한다. 그리고 과보의 성질은 전적으로 업의 성질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짓는 행위를 신구의삼업(身口意三業)이라 한다.

 

신구의삼업(身口意三業)에 의하여 언젠가 나타나는 업의 결과를 업이숙1[業異熟, 깜마위빠까(kamma-vipāka)]이라 한다. 업의 과보(果報)라는 의미에서 업보(業報)라고도 한다. 업보는 업이 열매를 맺기에 적당한 조건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특정한 식(識)의 상태나 정신적인 요인을 뜻한다. 신구의삼업(身口意三業)에 의한 도덕적 행위의 결과물인 선한 행동에는 선한 결과[선인선과(善因善果)]를 악한 행동에는 악한 결과[악인악과(惡因惡果)]를 가져오는 것이다. 업(業)이란 바로 “도덕적 인과율” 이다.

 

썩은 콩의 씨앗으로 모양이 둥글고 결함이 없는 콩을 억을 수 없듯이 전생(前生)에 악의를 푸고 했던 행위 즉 악업은 다음 생에서 악운을 맞게 하는 씨앗(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좋은 운명이나 나쁜 운명, 타고 난 용모나 성품은 단순히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반드시 전생에 그 원인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행위에 대한 업보가 일단 결정되고 나면 그 과보는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로 그냥 소멸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업보를 지은 사람에게 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난다.

 

“수행승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가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간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지울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의도 경 ①(A10:206)]


  1. 위빠까(vipāka)라는 빠알리(pāli)어는 일반적으로 결과라는 뜻의 ‘effect’ 나 ‘result’ 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두 번역어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논사(論事, kathā vatthu)』에 따르면 이 말은 단지 업이 만들어 낸 ‘심적 결과’ 들을 지칭한다. 몸에 대한 즐겁고 괴로운 느낌과 그 밖의 기본적인 심적 현상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반면 다섯 가지 육체적 감각 기관 등과 같은 모든 물질적 현상들은 ‘위빠아까’라 부르지 않고 ‘깜마자(kammaja, 업으로 태어난 것)’ 혹은 ‘깜마 사무타아나(kamma-samuṭṭhāna, 업이 산출한 것)’라 부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