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비와 불사리탑
날이 밝았다. 대중 가운데 가장 어른인 아누룻다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꾸시나라(Kusinārā)로 가서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셨다고 말라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소식을 듣고 살라나무숲으로 찾아온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향과 꽃을 바치고 하루 종일 조곡을 올리며 공양하였다. 하루만 더 공양하고 다비하겠다던 그들은 6일이나 조곡을 그치지 않았다. 7일째 되는 날, 말라족은 꾸시나라 외곽을 돌아 남문 밖으로 부처님의 시신을 옮겨 다비하기로 결정하였다. 말라족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여덟 사람이 선발되어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고, 세존의 시신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움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꾸시나라의 원로들이 아누룻다에게 까닭을 무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장정이 부처님의 시신을 들 수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사람들의 뜻과 신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뜻은 무엇입니까?”
“신들은 북문을 통해 꾸시나라 거리로 들어가 시의 중앙에서 세존의 시신에 공양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동문으로 나와 마꾸따반다나(Makuṭabandhana)에서 다비하길 원합니다.”
“신들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꾸시나라 사람들은 깃발과 일산을 받쳐 들고 슬픈 음악을 연주하며 길을 인도하였다. 거리로 들어서자 골목을 깨끗이 쓸고 기다리던 백성들이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며 부처님의 법구(法軀)를 맞이하였다. 무릎까지 쌓이는 꽃잎을 헤치고 거리를 누빈 말라족은 동문을 나서 마꾸따반다나에 이르렀다. 아난다의 설명에 따라 부처님의 법구를 향탕으로 씻고, 천과 솜으로 싸고, 금관 속에 넣고, 다시 기름이 담긴 철곽에 안치한 다음 향나무를 쌓고 그 위에 철곽을 올렸다. 말라족 대신이 횃불을 들고 다가가 장작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불이 붙지 않았다. 대중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깨끗하지 못한 탓이라 여긴 대신이 횃불을 다른 이에게 넘겼지만 역시 불은 붙지 않았다. 수많은 말라족이 나서 애써보았지만 물속에 잠겼던 나무들처럼 이내 꺼져버렸다. 한 발 물러나 장례를 지켜보던 아누룻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기다리십시오.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윽고 누더기를 걸친 마하깟사빠가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도착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눈물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마하깟사빠는 옷깃을 가다듬고 아난다에게 다가가 청하였다.
“아난다, 부처님의 시신을 직접 뵙고 싶소.”
“이미 다비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아난다, 부처님께 마지막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시오.”
“그건 곤란합니다.”
“아난다, 꼭 뵙고 싶소.”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리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주위는 싸늘했다. 잠시 고개를 숙였던 마하깟사빠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신이 모셔진 쪽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시신 주위를 빽빽히 에워싸고 있던 말라족이 허리를 숙였고, 두꺼운 얼음이 쪼개지듯 길이 열렸다. 향나무로 쌓은 높은 단 아래까지 온 마하깟사빠가 걸음을 멈추자 튼튼한 철곽이 철커덩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황금 관 밖으로 부처님께서 두 발을 내미셨다. 외마디로 터지는 군중들의 탄성을 뒤로하고 마하깟사빠는 조용히 그 발아래 예배하였다. 자리에 모인 사부대중과 모든 신들까지 모두 마하깟사빠를 따라 부처님의 시신에 예배하였다. 바퀴 문양이 선명한 부처님의 두 발에 마하깟사빠가 이마를 조아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자 부처님께서는 두 발을 다시 관 속으로 거두셨다.
관과 곽이 다시 닫히고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저절로 붙은 불은 하늘을 삼킬 듯 치솟았다. 마하깟사빠를 비롯한 장로들의 설법 속에서 슬픈 시간이 흐르고 사납던 불길도 재를 날리며 사그라졌다. 말라족은 철과 황금마저 녹인 불길에도 타지 않은 사리를 수습하였다. 진주처럼 영롱한 빛을 띠는 사리를 공회당에 모시고 칠 일 동안 공양을 올렸다.
그 사이 각국의 사신들이 속속 꾸시나라에 도착하였다. 부처님의 반열반 소식을 들은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 웨살리의 릿차위족, 까삘라왓투의 사꺄족, 알라깝빠(Allakappa)의 불리(Buli)족, 라마촌의 꼴리야족, 웨타디빠(Veṭhadīpa)의 바라문들, 빠와의 말라족이 사리의 분배를 요구하고 나섰다.
“부처님은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탑을 세우고 공양할 수 있도록 사리를 나눠주십시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니 이 땅의 백성들이 공양을 올려야 마땅합니다. 사리는 나눠드릴 수 없습니다.”
“멀리서 찾아와 머리를 숙이고 청하는데 거절한단 말입니까?”
“수고를 아끼지 않고 찾아와 욕됨을 참아가며 머리를 숙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사리만큼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부드러운 말로 되지 않는 일이라면 힘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겠군요.”
“당신들에게만 군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와 꽃과 향이 넘쳤던 공회당은 어느 순간 작은 전쟁터로 변했다. 코끼리보다 용감하고, 칼과 창보다 날카로운 혀를 가진 사신들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자처럼 발톱을 세웠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아자따삿뚜왕의 사신으로 온 도나(Doṇa)가 입을 열었다.
“자애로운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우리 세존께서는 늘 관용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거룩한 분의 사리를 두고 사람을 다치게 할 전쟁을 일으킨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자애로운 여러분, 우리 모두 우정을 다지고 화목으로 하나가 됩시다. 부처님의 사리를 공평하게 나누러 온 세상에 사리탑을 세웁시다. 그리하여 인류 모두가 세상의 빛인 부처님을 믿고 따르게 합시다.”
긴 침묵이 흐르고 꾸시나라의 말라족이 한 발 물러섰다.
“덕망 있는 그대가 부처님의 사리를 공평하게 나눠주십시오.”
각국 사신과 비구들의 동의를 얻어 현명한 도나는 부처님의 사리를 여덟 등분으로 나누어 분배하였다. 그리고 사리를 분배할 때 사용한 용기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애로운 여러분, 사리를 담았던 이 그릇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도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불신과 반목이 엄습했던 자리를 관용의 장으로 바꾼 현명한 바라문 도나의 간청에 모두들 흔쾌히 승낙하였다.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마땅히 그대의 몫입니다.”
음악을 연주하고 꽃을 뿌리며 사신들이 떠난 후, 뒤늦게 삡팔리와나(Pipphalivana)의 몰리야(Moliya)족이 찾아왔다. 그들은 화장터의 타고 남은 재를 가지고 돌아가 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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