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등불은 꺼지고
수밧다가 물러나자 부처님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숲에 더욱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한참 지난 후, 힘겹게 눈을 뜨신 부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셨다. 흩어진 살라나무 꽃잎처럼 비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난다는 어디 있느냐?”
“슬픔을 견디지 못해 울고 있습니다.”
“내가 찾는다고 전하라.”
천년을 견디고도 그늘이 줄지 않는 살라나무, 어두운 살라나무 그늘에서 소리죽여 울던 아난다가 다가왔다. 두 눈에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아난다, 눈물을 거두어라. 너는 오랫동안 나에게 정성을 다하였다. 이 세상 어는 누구도 너처럼 여래를 잘 섬기진 못했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 머지않아 무지와 탐욕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
아난다는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부처님께서 힘겹게 목소리를 높이셨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눈짓만 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곤 하였다.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탁월함이 있다. 비구들은 아난다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였고, 아난다가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기쁨이 충만하였다.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은 아난다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였고, 아난다가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설법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기쁨이 충만하였다. 아난다에겐 이런 네 가지 탁월함이 있다.”
눈물을 거둔 아난다가 무릎을 꿇고 여쭈었다.
“부처님, 찬나(Channa) 비구는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멸도한 후 찬나가 승가의 규율을 따르지 않고 가르침을 받들지 않거든 범단벌(梵檀罰)1로 다스려라. 모든 비구들에게 명하여 그와 더불어 말하지 말고, 서로 왕래하지도 말며, 그를 가르치지도 말고, 일을 시키지도 말라.”
잠시 침묵하신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아난다, 내가 멸도한 뒤 너를 보호해줄 이가 없을 것이라 걱정하는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내가 설하고 제정한 법과 율이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 내가 떠난 뒤에는 법과 율이 너희의 스승이다. 아난다, 오늘부터 모든 비구들에게 소소한 계는 버려도 좋다고 허락한다.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여 예의와 법도를 따르도록 하라. 이것이 출가한 사람들이 공경하고 순종할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부처와 법과 승가에 대해 의심이 있는 사람은 없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빨리 물어라.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내 살아 있는 동안 그대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부처님께서 두 번이나 물었지만 비구들은 침묵만 지켰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부끄러워 직접 묻지 못하겠거든 벗을 통해서라도 빨리 물어라. 뒷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비구들이 여전히 침묵하자 아난다가 대답하였다.
“이 자리의 대중은 모두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곳에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대해 의심하는 비구는 없습니다.”
오백 비구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하나하나 확인하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 가장 어린 비구도 도의 자취를 보아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천상을 일곱 번 오가고 나서는 반드시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리라.”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할 마지막 말은 이렇다.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지나니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부처님이 눈을 감자 등불이 꺼졌다. 깊은 어둠과 침묵 속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부처님 곁을 지키던 아누룻다(Anuruddha)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세존의 선정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지금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계십니다. 세존께서는 제4선에서 깨어나 반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부처님은 멸수상정에서 깨어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드셨고, 비상비비상처정에서 깨어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드셨다. 그렇게 차례로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ㆍ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ㆍ제4선ㆍ제3선ㆍ제2선ㆍ초선에 드셨다. 그리고 초선에서 깨어나 제2선ㆍ제3선ㆍ제4선에 드셨고, 제4선에서 반열반하셨다. 갑자기 대지가 크게 진동하고, 캄캄한 어둠이 대낮처럼 밝았다.
아누룻다가 게송을 읊었다.
무위에 머무시는 부처님
나고 드는 숨결 멈추시도다.
본래 적멸에서 오신 부처님
신비로운 광채 이곳에서 거두시도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80년, 깨달음을 이루신 후 45년인 기원전 544년 2월 15일이었다.
- 범단벌(梵檀罰) : 하늘사람의 벌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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