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부처님 일생 중에 부처님을 슬프게 한 세 가지 사건
①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의 멸망
♣꼬살라(Kosala)국의 비루다까[Virudhaka(=비유리왕毘瑠璃王), 빠세나디(Pasenadi=파사익(波斯匿)왕의 아들]
②부처님의 수제자인 사리불[舍利弗, 사리뿟따(Sāriputta)]과 목건련[目健蓮, 마하목갈라나(Mahamogallāna)]의 열반
③아난다(Ananda)의 형이었던 데와닷타(Devadatta)의 반역
사리뿟따[Sāriputta, 사리불(舍利弗)]와 마하목갈라나[Mahamogallāna, 목건련(目健蓮)]
☞데와닷따(Devadatta)
마가다국 빔비사라(Bimbisāra)왕의 아들인 아자타삿투(Ajatasattu, 아사세)의 후원을 받아 부처님 교단을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며 자객을 보내고, 영취산[
靈鷲山,
깃자꾸따(Gijjhakūṭa)]에서 내려오시는 부처님에게 바위를 굴리고, 라자가하[Rajagaha, 왕사성(王舍城)] 거리에서 성질이 포악한 코끼리 날라기리(Nālāgiri)를 풀어 부처님을 해치려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뿐만아니라 부처님 교단의 분열을 획책하여 다섯 가지 주장을 하며 추종자를 모아 교단을 떠났으며, 부처님께서는 두 명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Sāriputta, 사리불)와 마하목갈라나(Mahamogallāna, 목건련)를 가야시사[Gayāsīsa, 상두산(象頭山)]로 보내어 미혹에 빠진 비구들을 데려오도록 하셨다.
죽음이 가까워 오자, 데와닷따는 부처님을 뵙고 사죄를 드리려 했지만 부처님은 이제 다시는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와닷따는 부처님을 뵙기 위해 시종들을 데리고 여정을 떠났지만 기원정사(Jetavana) 근처의 연못가에 이르러 잠시 자신의 들것을 멈추게 한 뒤 씻으려 했다. 바로 그때 데와닷따의 악업이 성숙하여 대지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산 채로 나락(奈落)에 떨어졌다고 한다.
밀린다빵하(Milindapañhā)(Mil.101)에 따르면 데와닷따는 부처님 당시에 산채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간 다섯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그 다섯이란 바로 웁빨라완나(Uppalavaṇṇā) 비구니를 겁탈한 아난다(Ananda), 사리뿟따 존자의 머리를 내리친 난다까(Nandaka)야차, 부처님을 중상한 찐짜 마나위까(Ciñcā-mānavikā), 부처님의 앞길을 가로 막은 숩빠붓다(Suppabuddha), 그리고 데와닷따(Devadatta)였다.
▣ 데와닷따의 5가지 주장
첫째, 평생 삼림주자(森林住者)로 살아야 하며 촌락에 들어가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둘째, 평생 걸식자(乞食者)로 살아야 하며 초대를 받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셋째, 평생 분소의자(糞掃衣者)로 살아야 하며 거사의를 받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넷째, 평생 수하주자(樹下住者)로 살아야 하며 지붕이 있는 곳에 다가가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다섯째, 평생 생선과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며 이를 먹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나락(奈落)
순수한 불교용어 중 하나로 지옥(地獄)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산스크리트어 나라까(naraka)를 음역한 것으로, 본래는 ‘밑이 없는 구멍’을 뜻한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일반용어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흔히 ‘나락에 떨어졌다’ 또는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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