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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5장 한국불교사

Ⅳ. 한국 근대불교사 1. 일제하의 불교

moksha 2016. 9. 27. 15:39

Ⅳ. 한국 근대불교사


1. 일제하의 불교

 

(1) 원종(圓宗)․임제종(臨濟宗)의 성립과 조계종(曹溪宗)의 탄생

 

연도

주 요 사 건

1895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해제

1899

창신동에 원흥사 설립(이회광(李晦光)이 설립)

1906

원흥사에 불교연구회 창설(이보담, 홍월초) 

명진(明進)학교 (동국대학교의 전신)설립

1908

종단의 이름을 원종(圓宗)으로 결정하고 원흥사에 종무원을 설치(전국 승려대표 52인 참석)

초대 종무원장에 이회광(李晦光)이 선출

1910

종로구 수송동에 각황사(覺皇寺, 조계사의 전신)을 창건

이회광(李晦光)은 원종과 일본의 조동종과의 합종(合宗)조약을 체결

1911

조계산 송광사에서 총회를 열고 임제종을 세움.

1911

사찰령 반포(조선총독부)

1912

조선승려들이 13도의 주요 사찰에서 맹렬히 반대

임시종무소를 범어사로 옮김

1915

서울의 각황사(覺皇寺)에 30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

1920.

6월

각황사(覺皇寺)에 조선불교 청년회 설립 (젊은 스님 100여명)

사찰령에 의한 본사 주지들의 전횡에 대항

1922

?조선불교선교양종중앙종무원?이 각황사에 설치됨.

1941

태고사(太古寺, 현재 曹溪寺)를 총본산으로 하여 종명을 조계종(曹溪宗)으로 결정하였고,

   초대 종정으로 방한암(方漢岩) 선사 선출

1945.

10월

일제의 사찰령과 사법(寺法)을 폐지하여 교단을 정비한 다음, 초대 종정에 박한영(朴漢永)

   스님을 추대하고 중앙총무원장에 김법린을 선출


☞이회광(李晦光)

범해(梵海)가 편찬한 <동사열전(東師列傳)>에 기록된 조선왕조 마지막 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었으나, 일본불교에 한국불교를 흡수시키려는 매종역조(賣宗易祖)의 친일권승으로 전락하였다.

원종(圓宗)

   불교 종단의 명칭이기도 하며, 신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원종 종무원이 발간한 한국 불교계 최초 잡지의 이

   름이기도 하다.


(2) 항일운동과 친일불교

 

  1) 만당(卍黨)의 조직

     ① 1930년대에 암울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이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결성된 불교계의 항일 비빌결

         사단체.

     ② 당수로는 한용운 스님을 추대하였으나 한용운 스님에게는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③ 정교분립, 교정확립, 불교대중의 3대 강령을 내세웠음.

     ④ 백성욱, 김법린, 이용조, 최범술 등의 젊은 스님이 중심이 되었으며, 비밀 유지를 의하여 일체의 문서

         화를 금지하였다.

     ⑤ 비밀한사엄수(秘密限死嚴守)와 절대 복종을 서약하였다.

     ⑥ 중일 전쟁이후 일본경찰에 체포, 구금되는 등 모진 고초를 겪음.

 

  2) 친일 행적

     ① 1937년 8월 중일전쟁의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원제 및 법요식을 봉행하고, 북방 헌금과 위문금을

         모금

      ② 탁발을 해서 일본군에게 바치는 탁발보국까지 행함.

      ③ 1942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에서?조선불교호?라는 포격기 헌납식까지 거행되었다. 

  

(3) 선학원의 창립

   ① 총독부 명령으로 임제종은 개원한지 한달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됨.

   ② 1919년 3.1운동 후 임제종에 관여했던 한용, 백용성 등 여러 선승들이 선풍을 진작시키고 민족의 전

       통을 지켜나가며 한국 불교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목적으로 창립.

   ③ 총독부는 반일 저항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④ 1934년에 조선불교선리참구원으로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4) 근세의 종교가 및 사상가

 

  1) 백용성(白龍城)

     ① 속명 상규(相奎)이고 용성은 법호(法號)로서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②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③ 출옥 후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힘쓰고 대처승의 법통계승(法統繼承)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

         책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④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저술에 진력하면서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였다.

     ⑤ 저서 : 각해일륜(覺海日輪), 수심론(修心論), 귀원정종(歸源正宗),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등

 

  2) 한용운(韓龍雲:1879~1944)

   ① 호는 만해(萬海․卍海)이고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② 독립선언서에 공약삼장을 추가하였고 서명하여,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③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불교

       계 최초의 월간지인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

       에 힘썼다.

   ④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⑤ 대장경 국역 간행을 위하여 법보회를 조직

   ⑥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

       장하였다.

   ⑦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黙)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

       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⑧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

       다.

   ⑨ 저서 : 시집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佛敎大典),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

 

☞만당(卍黨)

   1930년 결성된 불교계의 항일비밀결사단체로써 한용운 스님을 당수로 추대하였으나 한용운 스님에게는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유홍기(劉鴻基)

     ① 조선 후기의 개화(開化)사상가로서 호가 대치(大致)라서 유대치(劉大致)라고도 불린다.

     ② 중인(中人) 계급 출신 한의(漢醫)로서, 친구 오경석(吳慶錫)이 청나라에서 가져온 선진문물을 소개

         한 서적들을 탐독, 일찍부터 개화에 눈을 떴다.

     ③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 등을 지도, 당시 정계의 막후에서 이들 개화당 인사들에 영향력을 행

         사하여?백의정승(白衣政丞)'으로 불리었다.

     ④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발맞춘 문호개방과 정치혁신을 주장했으나, 개화당의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행

         방불명되었다.

 

  4) 이능화(李能和)

     ① 한국의 역사학자․민속학자로서 1912년 능인(能仁)보통학교를 세워 교장을 맡았으며, 1915년에 설립

         된 불교진흥회에도 참여하였다.

     ② 저서(종교서)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조선신교원류고(朝鮮新敎源流考)등이 있으며 불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5) 김법광(金法光)

      1921년 12월 불교의 유신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조선불교 유신회’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