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한국 근대불교사
1. 일제하의 불교
(1) 원종(圓宗)․임제종(臨濟宗)의 성립과 조계종(曹溪宗)의 탄생
연도 | 주 요 사 건 |
1895 | ㆍ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해제 |
1899 | ㆍ창신동에 원흥사 설립(이회광(李晦光)이 설립) |
1906 | ㆍ원흥사에 불교연구회 창설(이보담, 홍월초) ㆍ명진(明進)학교 (동국대학교의 전신)설립 |
1908 | ㆍ종단의 이름을 원종(圓宗)으로 결정하고 원흥사에 종무원을 설치(전국 승려대표 52인 참석) ㆍ초대 종무원장에 이회광(李晦光)이 선출 |
1910 | ㆍ종로구 수송동에 각황사(覺皇寺, 조계사의 전신)을 창건 ㆍ이회광(李晦光)은 원종과 일본의 조동종과의 합종(合宗)조약을 체결 |
1911 | ㆍ조계산 송광사에서 총회를 열고 임제종을 세움. |
1911 | ㆍ사찰령 반포(조선총독부) |
1912 | ㆍ조선승려들이 13도의 주요 사찰에서 맹렬히 반대 ㆍ임시종무소를 범어사로 옮김 |
1915 | ㆍ서울의 각황사(覺皇寺)에 30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 |
1920. 6월 | ㆍ각황사(覺皇寺)에 ‘조선불교 청년회’ 설립 (젊은 스님 100여명) ㆍ사찰령에 의한 본사 주지들의 전횡에 대항 |
1922 | ㆍ?조선불교선교양종중앙종무원?이 각황사에 설치됨. |
1941 | ㆍ태고사(太古寺, 현재 曹溪寺)를 총본산으로 하여 종명을 조계종(曹溪宗)으로 결정하였고, 초대 종정으로 방한암(方漢岩) 선사 선출 |
1945. 10월 | ㆍ일제의 사찰령과 사법(寺法)을 폐지하여 교단을 정비한 다음, 초대 종정에 박한영(朴漢永) 스님을 추대하고 중앙총무원장에 김법린을 선출 |
☞이회광(李晦光)
범해(梵海)가 편찬한 <동사열전(東師列傳)>에 기록된 조선왕조 마지막 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었으나, 일본불교에 한국불교를 흡수시키려는 매종역조(賣宗易祖)의 친일권승으로 전락하였다.
☞원종(圓宗)
불교 종단의 명칭이기도 하며, 신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원종 종무원이 발간한 한국 불교계 최초 잡지의 이
름이기도 하다.
(2) 항일운동과 친일불교
1) 만당(卍黨)의 조직
① 1930년대에 암울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이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결성된 불교계의 항일 비빌결
사단체.
② 당수로는 한용운 스님을 추대하였으나 한용운 스님에게는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③ 정교분립, 교정확립, 불교대중의 3대 강령을 내세웠음.
④ 백성욱, 김법린, 이용조, 최범술 등의 젊은 스님이 중심이 되었으며, 비밀 유지를 의하여 일체의 문서
화를 금지하였다.
⑤ 비밀한사엄수(秘密限死嚴守)와 절대 복종을 서약하였다.
⑥ 중일 전쟁이후 일본경찰에 체포, 구금되는 등 모진 고초를 겪음.
2) 친일 행적
① 1937년 8월 중일전쟁의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원제 및 법요식을 봉행하고, 북방 헌금과 위문금을
모금
② 탁발을 해서 일본군에게 바치는 탁발보국까지 행함.
③ 1942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에서?조선불교호?라는 포격기 헌납식까지 거행되었다.
(3) 선학원의 창립
① 총독부 명령으로 임제종은 개원한지 한달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됨.
② 1919년 3.1운동 후 임제종에 관여했던 한용운, 백용성 등 여러 선승들이 선풍을 진작시키고 민족의 전
통을 지켜나가며 한국 불교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목적으로 창립.
③ 총독부는 반일 저항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④ 1934년에 조선불교선리참구원으로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4) 근세의 종교가 및 사상가
1) 백용성(白龍城)
① 속명 상규(相奎)이고 용성은 법호(法號)로서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②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③ 출옥 후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힘쓰고 대처승의 법통계승(法統繼承)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
책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④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저술에 진력하면서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였다.
⑤ 저서 : 각해일륜(覺海日輪), 수심론(修心論), 귀원정종(歸源正宗),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등
2) 한용운(韓龍雲:1879~1944)
① 호는 만해(萬海․卍海)이고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② 독립선언서에 공약삼장을 추가하였고 서명하여,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③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불교
계 최초의 월간지인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
에 힘썼다.
④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⑤ 대장경 국역 간행을 위하여 법보회를 조직
⑥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
장하였다.
⑦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黙)’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
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⑧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
다.
⑨ 저서 : 시집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佛敎大典),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
☞만당(卍黨)
1930년 결성된 불교계의 항일비밀결사단체로써 한용운 스님을 당수로 추대하였으나 한용운 스님에게는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유홍기(劉鴻基)
① 조선 후기의 개화(開化)사상가로서 호가 대치(大致)라서 유대치(劉大致)라고도 불린다.
② 중인(中人) 계급 출신 한의(漢醫)로서, 친구 오경석(吳慶錫)이 청나라에서 가져온 선진문물을 소개
한 서적들을 탐독, 일찍부터 개화에 눈을 떴다.
③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 등을 지도, 당시 정계의 막후에서 이들 개화당 인사들에 영향력을 행
사하여?백의정승(白衣政丞)'으로 불리었다.
④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발맞춘 문호개방과 정치혁신을 주장했으나, 개화당의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행
방불명되었다.
4) 이능화(李能和)
① 한국의 역사학자․민속학자로서 1912년 능인(能仁)보통학교를 세워 교장을 맡았으며, 1915년에 설립
된 불교진흥회에도 참여하였다.
② 저서(종교서)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조선신교원류고(朝鮮新敎源流考)등이 있으며 불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5) 김법광(金法光)
1921년 12월 불교의 유신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조선불교 유신회’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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