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5장 한국불교사

Ⅲ. 조선의 불교 2. 조선초기의 불교

moksha 2016. 9. 26. 17:16


2. 조선초기의 불교

 

  (1) 태조 이성계 (1392∼1398)

      ① 무학대사를 왕사(王師)로 삼고 천태종 승려 조구(祖丘)를 국사(國師)로 삼았다.

      ② 개경의 연복사(演福寺)를 중창하고 문수회(文殊會)를 베풀었다.

      ③ 한양에 조계선종의 본사가 된 흥천사(興天寺)를 세움.

      ④ 도첩제를 엄격하게 실시

 

☞무학 자초(無學 自超) (1327∼1405) ⇒ 찾아보기 참조

 

☞흥천사(興天寺)

   1396년(태조 5)에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가 별세하자 창건된 사찰로써 극락보전에는 태조 왕실

   의 궁중원불(宮中願佛)인 명국보타(明國普陀) 낙가산(落伽山)의 42수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고 국태민

   안(國泰民安)을 기원했다.

   불량답(佛糧畓)을 봉납하고 국재(國齋)를 거행하며 수도행자를 정진케 하였으므로 왕실에서 사찰의 위용

   을 보아 나라의 명찰이라 하여 조계종의 본산으로 명명했다.


  (2) 태종(3대:1400∼1418):불교에 심한 타격을 줌


① 사찰폐쇄, 승려환속, 사찰토지 국유화, 사찰에 딸린 하층민의 군정화, 도첩제 실시, 왕사 국사제도

    폐지, 왕릉에 사찰을 못 짓도록 함

② 11종을 7종으로 통합:태종7년(1407)


11종

  조계종, 총지종, 천태소자종, 천태법사종, 화엄종, 도문종, 자은종,

  중도종, 신인종, 남산종, 시흥종

7종

  조계종, 천태종, 화엄종, 자은종, 중신종, 총남종, 시흥종


함허 득통(涵虛 得通) : 찾아보기 참조

  무학자초(無學自超:1327~1405)의 제자로서 함허당(涵虛堂) 기화(己和:1376~1433)라고도 하며,

  현정론(顯正論),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을 지어 불교 배척론에 반론을 제기하였다.

 

(3) 세종(4대:1418∼1450)불교에 결정적인 타격을 줌


① 사원노비를 폐지, 5교 양종을 선교2종으로 개혁, 경성에 2절 이외는 폐쇄, 승려의 성내 출입 금지,

    전국에 36개의 사찰만 남김

     ② 선・교 양종으로 통합:세종6년(1424)

선종(禪宗)

  조계・천태・총남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

 :흥천사(興天寺)

교종(敎宗)

  화엄・자은・중신・시흥

 교종도회소(敎宗都會所)

 :흥덕사(興德寺)


③ 국가에서 불교계를 관리하던 승록사를 폐지하고 그 대신에 불교 자체의 기관으로서 선종과 교종의 도회소(都會所)를 설치하였다.

선종과 교종의 도회소는 각기 흥천사와 흥덕사에 설치되어 각 종단의 업무를 따로 관장하였다.

⑤ 흥천사의 사리각을 중수하는 등 각종 불사를 행하였고 세종 자신 점차 불교를 숭신하며 호의적인 태

    도를 견지하였다.

     ⑥ 내불당(內佛堂) 건립

 

내불당(內佛堂)

세종 때 세운 왕실사찰로써 세종 즉위년(1418년) 경복궁 안의 문소전(文昭殿) 뒤에 세우고 흥천사(興天寺) 석탑에 안치되어 있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4과(顆)와 두골ㆍ패엽경(貝葉經)ㆍ가사 등을 옮겨 봉안하였다.

세조 때에는 법회(法會)ㆍ법석(法席)ㆍ간경회(看經會) 등이 베풀어져 크게 일어났고, 임진왜란 이후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