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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5장 한국불교사

Ⅱ. 고려의 불교 1. 고려 통일국가의 전개 2. 고려의 불교

moksha 2016. 9. 26. 14:00


Ⅱ. 고려의 불교

 

선(禪)・교(敎)에 도참(圖讖)의 요소가 가미된 불교로서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고려시대의 불교이다. 현재 한국불교의 성격이 이 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고려 통일국가의 전개(918-1392)


  (1) 고려 초기의 왕권확립:무신정권의 지배(1170에서 백년간):元의 지배

  (2) 고려 초기의 거란의 침입:3차례의 침공(993년, 1010년, 1018년)

  (3) 지배체제의 안정:11세기에서 12세기 초

  (4) 12세기 이후 각종 반란, 민란이 잇따름. 후에 무신정권의 확립으로 이어짐.

  (5) 원 지배 하에 주자학의 전래

       안향(1289년), 백이정(1313년)등에 의해 고려의 신흥관료에 주자학 유입 ⇒ 억불의 조짐

 

2. 고려의 불교

 

  (1) 신라말기의 9산 선문(禪門) 확립

 

  (2) 태조의 불교 숭상

     1) 불교를 건국 이념과 국가신앙으로 정착

     2) 도선(道詵:809~898)의 영향

       ① 풍수지리설과 도참설(圖讖說)에 의해 많은 사찰과 불상, 탑 건립

       ②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

          ♣동국의 흉처를 사탑(寺塔)으로 돕고(비 裨) 더하여(보 補)하여 사원의 군사적, 경제적 실용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③ 훈요십조(訓要十條):세 개의 조(條)가 불교에 관련

       ④ 팔관회 개최(918):연례행사로 규정

       ⑤ 불교를 왕권 아래에 복속

          * 讖(참서, 비결 참), 裨(도울 비), 補(기울, 돕다 보)

 

도참설(圖讖說)

   중국 고대 복희씨때 황하강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하도(河圖)의 도(圖)와 참(讖)이 합쳐

   진 용어로써 세운(世運)과 인사(人事)의 미래를 예언하고 그것을 믿는 사상을 말한다.

   *讖 [참서 참, 비결(秘訣) 참, 미래기(未來記) 참]

 

도선(道詵) ⇒ 찾아보기 참조

훈요십조(訓要十條) ⇒ 찾아보기 참조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 ⇒ 찾아보기 참조

 

  (3) 왕실의 기복적 불교

 

  (4) 광종(제4대:949~975)

      ① 승려의 국가고시 제도인 승과제도(僧科制度)를 시작(광종 9년:958)

    ② 고승이었던 제관(諦觀)으로 하여금 천태교학 관계의 논소전적(論疏典籍)을 오(吳)・월(越)의 왕인

        전숙(錢俶)에게 보냄

      ③귀법사(歸法寺) 창건:균여(均如:923~973)와 탄문(坦文:900~974)

         ♣제위보(濟危寶:구호기관) 설치:각종 법회 개최

         ♣호족 세력에 반발하는 민중을 포섭:개혁의 사회기반으로 삼음.

      ③ 홍화사(弘化寺), 유엄사(遊嚴寺), 삼귀사(三歸寺) 창건(968):자신의 죄 소멸 기원

    ④ 혜거(慧居)를 국사에, 탄문(坦文)을 왕사에 임명하여 국사와 왕사제도를 제도화하였다.

 

제관(諦觀:?~970)

고려시대의 광종때의 고승(高僧)으로 960년(광종 11) 전란으로 소실된 천태(天台)의 전적(典籍)을 수집하던 중국 오월왕(吳越王) 전숙(錢淑)의 요청으로, 천태 논소전적(論疏典籍)을 가지고 송나라에 들어가 나계사(螺溪寺)의 의적(義寂) 밑에서 공부하였다. 천태교 입문서인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겨서 중국 불교계의 발전에 기여한바 컸다.

 

의통(義通:927~988)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앞서 천태종의 교의를 터득한 스님으로 오(吳)・월(越)에 건너가 중국 천태산(天台山) 운거사(雲居寺)에서 수업하고 중국의 천태종을 부흥시켜 천태 16조가 되었으며 사명보운존자(四明寶雲尊者)로 불렸으며, 광종 19년(968년)에 귀국하여 보운사(寶雲寺)에 머물러 보운존자(寶雲尊者)로도 불려 졌다.

 

탄문(坦文:900~975)

고려 태조로부터 별화상(別和尙)이라는 칭호를 받고 926년(태조 9) 왕후 유씨(劉氏)가 임신하자 왕명으로 아들을 낳도록 기도를 드려 왕자(훗날의 광종)를 낳게 한 뒤 더욱 총애를 받았다. 혜종・정종 두 왕에게도 스승 대우를 받았으며, 949년 광종이 즉위하자 대궐 안에서 대장법회(大藏法會)를 연 뒤 새로 낙성한 귀법사(歸法寺)의 주지로 왕사(王師)가 되었다. 975년(광종 26) 국사(國師)에 임명되어 왕의 환송을 받고 가야사(伽倻寺)에서 입적하였다. 탑비(塔碑)가 서산시 가야산 보원사지(普願寺址)에 있다.

 

균여(均, 923~973)

   신라 이래로 화엄학을 깊이 연구하여 당대 최고의 화엄학자로 명성을 날렸고 보현십종원왕가(普賢十種願

   往歌:약칭 普賢十願歌)라는 11수(首)의 향가(鄕歌)를 지어 노래로 불교의 교리를 알기 쉽게 부르게 함

   으로써, 민중이 불교에 친근해지도록 노력하였으며, 불교계의 종파 통합에도 힘을 기울여 관혜(觀惠)의

   남악파(南岳派)와 희랑(希朗)의 북악파(北岳派)의 종파 통합에도 힘을 기울여 종파 간의 분쟁을 종식시

   켰다.

958년(광종 9)에는 시관(試官)이 되어 유능한 승려들을 많이 선발했다. 법계(法階)는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에 이르렀다. 963년(광종 14) 왕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歸法寺)에서 주지로 있다가 입적하였다.

 

(5) 현종(제8대:1009~1031)

    ① 12세에 승려가 되어 숭교사, 신혈사에 머뭄.

    ② 강조(康兆)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되고 왕위에 오름

    ③ 거란의 침입(현종 1년:1010):나주로 피난

    ④ 대장경(초조장경) 판각 시작

 

향도(香徒)

불교신앙활동을 위해 결성한 신도들의 단체로, 원래는 '향을 피우는 것을 유지하기 위한 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수용 이후 널리 결성되었는데, 기록상 최초의 향도는 신라에서 609년(진평왕 31)경에 결성된 김유신의 화랑도 조직인 용화향도(龍華香徒)이다. 그들의 활동내용은 불상·종·석탑·불화·사찰의 조성, 음식·의복·향목(香木) 등의 법회 시주, 매향(埋香) 등으로 주로 불교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향도의 구성원은 승려 및 일반 신도였는데, 일반 신도 중에는 촌주(村主) 등 지방유력층도 포함되어 있었다.

향도의 규모는 20명에서 3,000여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고려 전기에는 향도가 전국적으로 분포했는데 전국적으로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연등회나 팔관회를 실행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향도들이 국가질서 속에 포섭되거나 지역사회 내에서 정치공동체화되는 일과 관련이 깊었다.

1011년(현종 2)에 완성된 예천 개심사(開心寺) 5층석탑의 건립에 참여한 미륵향도(彌勒香徒), 추향도(椎香徒)의 경우가 그러했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자 향도의 조직과 성격은 다양화되었다. 주요활동내용이 불상·석탑·사찰 등의 조성보다는 재회(齋會)·소향(燒香)·염불·상호부조행위 등으로 바뀌어갔다.

 

(6) 정종(제10대:1034~1046):경행(經行)의식을 시행

    경행이란 질병이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불교행사로서 대중을 세 무리로 나누어, 맨 앞 받침대에 <인왕

    반야경>을 올려놓고 걸어가면, 그 뒤에서 승려들이 <인왕반야경>을 독경하고, 그 뒤에는 관리와 백성

    들이 뒤따르면서 개경의 거리를 도는 의식이었다.

 

(7) 문종(제11대:1046~1083)

   ① 불교의식의 전성기:점차 사치와 타락의 기운이 일기 시작

   ② 축재(蓄財) 승려들의 환속(1056)

   ③ 대각국사 의천(義天):문종의 4째 아들:문종 19년에 출가

   ④ 승려의 자격 관리를 위하여 도첩제를 실시하였으나 확실하게 정착되지 못하여 승려 자질이 저하되었

       다.

   ⑤ 승려들의 사치와 부패도 심하여 일부 유학자들의 비판의 대상

 

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101) ⇒ 찾아보기 참조

   ♣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

   ♣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고 속장경(續藏經) 간행

   ♣ 교선일치(敎禪一致) 역설

   ♣ 저서: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 주전관(鑄錢官) 설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편저로서 선종7년(1090)에 확인된 불경에 대한 주석서들을 경전별로 분류한 교장(敎藏)으로 3권이며 여기에는 총 1,010종 4,857권의 총목록이 수록되었다.


주전관(鑄錢官) 주전도감(鑄錢都監)

고려는 이미 996년(성종 15)에 철전(鐵錢)을 만들어 사용하게 하였는데, 일반 백성들은 명목가치가 큰 철전을 사용할 수 없어 큰 불편을 겪게 되었다. 때마침 송나라에 다녀온 의천은 금속화폐의 사용을 강력히 주장하여 숙종2년(1097년)에 주전관(鑄錢官)을 설치하였으며, 1101년에 주전도감(鑄錢都監)이 설치되고 실제로 주전을 시작한 것은 1102년 12월이었다. 처음 해동통보(海東通寶) 1만 5천 관(貫)을 만들어 재상(宰相)・문무 양반・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주화 유통의 시초가 되었다.

 

(8)천태종의 개창:교(敎)의 입장에서 선(禪)을 융합.


(9) 인종(제17대:1122~1146)

   1) 묘청(妙淸)의 난

      서경의 승려인 묘청이 인종13년(1135)에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일으킨 것으로 그는 금(金)에

      대항하여 정금론(征金論)을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을 내세우며 서경천도를 꾀하려는 원대한 포

      부까지 내 걸었으나 개경파인 김부식일파에게 진압된 사건을 말한다.

 

☞묘청(妙淸)・묘청(妙淸)의 난 ⇒ 찾아보기 참조

 

   2) 삼국사기 편찬 : 김부식에 의해 1145년에 완성 (12C)

 

(10)화엄종과 법상종의 우위

 

승록사(僧錄司)

고려시대에 불교와 관련된 업무를 주관하던 관청으로써 승려의 승적・승계 및 주지 인사 등을 집행하고 왕사・국사의 임명, 입적한 고승의 장례, 탑(塔)・비(碑) 등의 건립 등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였다. 또한 승적을 맡아 승려를 등록하고 정리하는 일도 맡았다. 대개 교단과 정부의 행정적 협력기구로서의 기능 또는 불교계의 운영에 대한 국가의 정책수행에 대한 보조임무를 담당하였다.

조선 초기까지 존속되어 1405년(태종 5년) 6조의 분직(分職)을 정할 때 예조에 부속되었다가

1424년(세종 6년) 불교를 선교양종(禪敎兩宗) 36사(寺)로 폐합할 때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