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삼국시대의 불교
1. 불교의 전래와 역사
(1) 고구려〔동명성왕(BC37) ∼ 28대 보장왕(642-668)〕
1) 불교의 전래
① 17대 소수림왕 원년(372) 공인
②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이 사신과 순도(順道)를 통해 불상, 불경을 보냄
③ 승려 아도(阿道)가 옴(소수림왕 4년:374)
2) 우리나라 사원(寺院)의 시초(始初)
① 초문사(肖門寺):순도(順道)가 머무름
② 이불란사(伊弗蘭寺):아도(阿道)가 머무름.
3) 고국양왕(故國壤王:18대 384∼391)
말년(391)에 불법을 숭신하여 복을 구하라[숭신불법구복(崇信佛法求福)]고 영을 내렸다는 기록
4)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19대 391~413)
2년(서기 393)에 평양에다 9사(寺)를 창건한 기록과 절이란 복을 닦고 죄업을 소멸시키는 도량[수복
멸죄지처(修福滅罪之處)]이라고 하는 기록
5) 양원왕(陽原王:24대 545∼559)
7년(551)쯤에 혜량(惠亮)스님이 신라에 가서 진흥왕(眞興王)의 명을 받아 최초의 국통(國統)이 되
어 백고좌회(百高座會)와 팔관회(八關會)등을 처음 설치하여 신라 불교 초흥기(初興起)에 지대한 영
향을 미쳤다.
6) 영유왕(榮留王) 7년(624)에 도교(道敎)가 당(唐)으로부터 전해졌다.
7) 28대 보장왕(寶藏王) 2년(643)에 실권자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당나라로부터 도교의 한 갈래인 오
두미교(五斗米敎)를 받아들이고 불사(佛寺)를 빼앗아 도관(道館:도교의 사원)으로 삼게 하였다.
8) 보덕(普德)화상
비래방장(飛來方丈):신통력으로 방장(方丈)[고승(高僧)의 거실(居室)]을 남쪽으로 날려[비래방장
(飛來方丈)] 완산주(完山州) 고대산(孤大山)[고달산(高達山)]으로 옮겨갔다고 전해진다.
9) 유명한 스님
승랑 (僧朗) | ①20대 장수왕(長壽王413-491)때 중국으로 건너가 삼론(三論)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삼론학을 집대성하고 중국 삼론종(三論宗) 창설의 선구자 ②양무제(梁武帝)가 그의 명성을 듣고 삼론(三論)을 배우고자 그를 궁(宮)으로 초빙하였으나 “배울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에게 오는 법이라”고 하면서 궁에 들어가는 것을 사양 |
혜자 (惠慈) | 595년에 일본으로 건너감. |
담징 (曇徵) | ①제26대 영양왕21년(서기 610)에 일본으로 건너감. ②불교와 오경(五經), 색칠하는 법 그리고 종이와 먹 및 붓 만드는 법을 전하였다. |
혜관 (惠灌) | ①27대 영유왕(榮留王) 8년(서기 625)에 일본에 건너감. ②백제 관륵(觀勒)의 뒤를 이어 일본 제2대의 승정이 되었고, 삼론학을 널리 전파하여 일본 삼론종의 시조가 되었다. ③백제 관륵(觀勒)의 뒤를 이어 일본 제2대의 승정(僧正)이 됨 |
도등 (道登) | 627년에 일본으로 건너감. |
도현 (道顯) | ① 668년에 일본으로 건너감. ② 대안사(大安寺)에 머물며 「일본서기」를 저술 |
지황 (智晃) | 중국의 강남지방에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능통하여 독보적인 존재로서 활약 |
인(印)법사 | 수나라때 중국의 고승들을 지도한 삼론학의 대가 |
실(實)법사 | 수나라때 중국의 고승들을 지도한 삼론학의 대가 |
☞삼론종(三論宗) ⇒ 제7장 중국불교사 참조
(2) 백제〔온조왕(BC18) ∼ 31대 의자왕(641-660)〕
1) 불교의 전래
① 15대 침류왕 원년(384)
② 동진(東晋)에서 인도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왔다.
2) 불교의 일본 전래
① 26대 성왕(聖王:523∼554)이 일본 흠명(欽明 겐메이:538년) 13년에 1차, 흠명(欽明 :552년)
27년 2차에 걸쳐 일본에 불교를 전하였다.
(일본 학계에서는 538년에 불교가 일본에 전해 진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② 불경과 율사를 일본으로 보냄:577년
③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짐에 따라 불법을 공경하게 되고 일본에 비로소 문자(文字)가 쓰이게 되었
다. [왕인(王仁)박사는 일본에 건너가 본격적으로 글자를 가르치고 일깨우는 일을 하였다.]
3) 26대 성왕(聖王:523∼554)
①중국의 양조(梁朝)와 빈번한 교류를 가지면서 열반경(涅槃經)이 전래되었다.
②인도로부터 범어(梵語)로 된 5부율(五部律)을 가지고 온 겸익(謙益)을 우대하여 고승들을 모아 5부
율을 번역하였다.
③아울러 담욱(曇旭), 혜인(惠仁) 등이 지은 율소(律疏) 30권에 친히 비담신율서(毗曇新律序)를 써서
백제신율을 성립시켰다.
④성왕의 이러한 계율의 장려는 불교 교단의 정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⑤달솔(達率), 노리사치계(怒唎思致契) 등을 일본에 파송하여 석가불금동상 1구, 번개(幡蓋)약간, 경
론(經論) 약간권을 보내어 줌으로써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게 되었다.
⑥이밖에도 성왕은 의박사・역박사 등의 전문가와 기술자를 교대로 파견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선진문물
의 전수자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4) 29대 법왕(法王:599∼600)
① 불교를 독신(篤信)하여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모두 불태우게 하고 기
르는 새를 모두 방생하게 하였다.
② 왕흥사(王興寺)를 창건:600년
5) 유명한 스님
겸익(謙益) | ① 율종(律宗)의 시조 ②제26대 성왕4년(526)에 인도의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서 5년간 수학 후 범본 논서(아비담장)와 율문(律文)을 가지고 인도 승려 배달다(倍達多)와 함께 돌아왔다. |
관륵(觀勒) | ① 일본으로 건너가 삼론(三論)의 교학을 펼침. ② 602년(무왕3년)에는 천문・지리・역서 등을 전하였다. ③승단의 계율을 강조하여 일본 교단의 기초를 닦았고, 초대 승정(僧正)을 역임 |
혜총(惠聰) | ① 일본으로 건너가 삼론(三論)의 교학을 펼침. ②위덕왕(威德王) 42년(595)에 도일하여 고구려의 혜자(惠慈)스님과 함께 쇼오토쿠 태자(성덕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되었다. |
발정(發正) | 6세기초에 중국 양나라로 유학을 감 |
현광(玄光) | ①6세기 후반에 중국 진(陳)나라로 유학을 감 ②스승 남악(南岳) 혜사(慧思)로부터 법화삼매를 증득하였다. |
도장(道藏) | 성실론(成實論)을 연구하여 성실론소(成實論疏) 16권을 지어 일본에 성실론(成實論)을 널리 폈다. |
(3) 신라〔박혁거세(BC57) ∼ 56대 경순왕(927-935)〕
1) 불교의 전래
① 눌지왕(19대:417∼458)
② 고구려를 거쳐 온 묵호자(墨胡子), 아도(我道) 등의 승려가 모례의 집에서 전교(傳敎)하였다는 기
록이 있다.
2) 불교의 공인:6세기
① 법흥왕(23대:514∼540) 15년(528)
② 이차돈(異次頓, 506∼527)의 순교(법흥왕 14년:527)를 통해 불교 공인
3) 진흥왕(24대:540∼576)
① 황룡사(皇龍寺) 준공:566년
② 백고좌법회와 팔관회(八關會) 개최:572년
③ 황룡사의 장륙존상((丈六尊像)을 주조: 574년
신라 삼보[장륙상, 황룡사 구층탑, 진평왕(眞平王)의 옥대(玉帶)]의 하나이다.
④ 화랑제도를 창시 (576년) ⇒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
☞황룡사 구층목탑(皇龍寺 九層木塔)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장(慈藏)의 요청으
로 건조되었다 한다. 아홉 개의 층은 모두 신라 변방의 나라들을 가리켰고 탑을 세움으로써 이웃의 침해를
누를 수 있었다고 한다. 1238년(고려 고종 25) 몽골의 병화(兵火)로 가람 전체가 불타 버려 그 후로는 중
수되지 못하였다.
4) 각덕(覺德)
549년에는 양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5) 혜량(惠亮)
551년에 처음으로 백고좌강회와 팔관회를 개최하였다..
6) 명관(明觀)
565년에는 진으로 유학 갔다가 1700여권의 경론을 가지고 돌아왔다.
7)원광(圓光:532~630 혹은 555∼638)
① 589년 진(陳)에 가서 <열반경>, <섭대승론> 등을 배우고 귀국하여 <여래장경사기>, <대방등여
래장경소>를 지어 불교의 새로운 지식을 신라에 전했다.
② 세속오계(世俗五戒)
♣운문산 가서사(嘉栖寺)에 화랑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찾아가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을 청
하자, 원광이 이 오계를 주었다고 한다.
♣이는 뒤에 화랑도의 신조가 되어 화랑도가 크게 발전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이룩하게 하는 데 크
게 기여하였다.
사군이충(事君以忠) |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 |
사친이효(事親以孝) |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 |
교우이신(交友以信) | 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 |
임전무퇴(臨戰無退) |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 |
살생유택(殺生有擇) | 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다. |
8)자장(慈藏)
① 당에서 7년 간의 유학을 마치고 643년에 귀국
② 분황사와 홍룡사에 머물면서 <섭대승론>과 <보살계본>을 강의
③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金剛階段)을 만들어 계율을 널리 설함
(4) 통일신라(669~935)
1) 삼국의 통일
태종 무열왕 7년(660)에는 백제를, 문무왕 8년(668)에는 고구려를 평정하고 그로부터 6, 7년 사이에
당의 세력을 몰아내어 최초의 통일국가를 형성
2) 일반 서민(庶民)의 교화:불교의 대중화(大衆化)
①혜숙(惠宿)
♣국선(國仙) 구참공(瞿旵公)이 사냥을 했는데 혜숙스님은 자기 다리 살을 베어서까지 국선의 잔인
과 어질지 못한 마음을 깨우쳤다.
♣이 소문을 들은 진평왕이 사람을 보내어 맞아 오게 하였으나 혜숙스님은 왕의 사자가 오는 것을 미
리 알고 피하기 때문에 왕의 사자는 한 번도 혜숙스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였다.
♣ 혜숙스님은 그대로 시골에 머물러서 교화하다가 죽었는데, 생사가 자재(自在)했다고 한다.
②혜공(惠空:생몰연대 미상)
♣언제나 조그만 절에 살면서 매일 미치광이처럼 술에 대취하여 삼태기[궤(籄)]를 등에 지고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었으므로 그를 부궤화상(負籄和尙)이라 불렀고, 그가 사는 절을 부개사(夫蓋寺)라 하였다.
♣영묘사(靈廟寺)의 화재를 미리 예방했고, 생사를 자재로 했으며, 또 당대의 고승 신인(神印)조사(祖師) 명랑(明朗)스님의 금강사(金剛寺) 낙성회(落成會)에서는 당시 대덕(大德) 가운데서 가장 존경받는 스님으로 초청받아 비 속에 왔으나 옷이 젖지 않았으며, 우물 속에서 잠을 자고 나와도 옷이 젖지 않는 등 신이(神異)가 많았다.
♣공중에 떠서 입적했는데 사리(舍利)가 그 수를 혜아리지 못할만큼 많았다고 한다.
③대안(大安:571~644)
♣항상 장터거리에 살면서 동발(銅鉢)을 두드리고, “대안(大安) 대안(大安)”하는 소리를 외쳤기 때문에 대안(大安)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용궁(龍宮)에서 가져왔다는『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헝클어진 경(經)[산경(散經)]을 차례로 맞추어 정리하라는 왕명을 받고, 대안스님은 궁궐로 들어가지 않겠다면서 그 경을 가져오게 하여 장바닥에서 완성시켜 주었다.
④원효(元曉:617~686)
♣『화엄경소』를 저술하던 붓을 던지고는 속복(俗服)을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고 이름하여, 무애박(無碍瓠)을 쥐고 천촌만락(千村萬落)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모든 중생들이 염불을 통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아미타 정토신앙을 강조 했다.
♣이러한 원효의 교화에 의하여 미천한 사람들까지도 불교를 알게 하였고, 곳곳에서 ‘나무아마타불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⑤혜통(惠通) : 665년에 당에서 귀국하여 밀교를 전하였다.
⑥진표(眞表)
점찰법회(占察法會)를 크게 일으켰다. 점찰법회는 불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고대사회부터 행해졌
던 주술과 점복이 불교의 참회법과 결합된 의식이다.
☞원효(元曉)(617~686): 찾아보기 참조 (P.577)
☞의상(義湘)(625~702): 찾아보기 참조 (P.577)
☞자장(慈藏)(590~658): 찾아보기 참조 (P.578)
☞진표(眞表, 718 ~ ):찾아보기 참조 (P578)
3) 불교의 전성기 : 문무왕(30대:661~681)에서 혜공왕(36대:765~780)까지
4)선종(禪宗)의 전래
① 시기:9세기초
② 법랑(法朗) : 진덕여왕 무렵 중국 선종 제4조인 도신의 선법을 전래하였다.
③ 신행(神行) : 신수의 북종선(北宗禪)을 전래:수용되지 못하였다.
④ 도의(道義)와 홍척(洪陟) : 마조 문하의 선법을 지장(智藏)으로부터 전해 받았다.
⑤ 구산선문(九山禪門)
당(唐)에서 남종선을 전수 받은 유학승이 귀국하면서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이르러 형성되었다.
☞ 도의(道義):찾아보기 참조
☞구산선문(九山禪門) ⇒ 5교9산(五敎九山)
한창 흥하던 신라불교가 신라 말 혜공왕 이후로 국가가 혼란해지면서 침체되었으나 삼국 통일 후 중국에
서 성행하던 선종(禪宗)이 들어오자 불교계는 다시 활발한 양상을 띄게 되었고 교학(敎學)위주였던 신라
교단에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이라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
지(禪指)가 풍미하게 되었다.
구산선문(九山禪門)
산문명 | 개산조 | 연도 | 개산지 | 현재 | 특기사항 |
가지산 (迦智山) | 도의 (道義) | 860 | 전남 장흥 | 보림사 | ㆍ조계종 종조 [6조 혜능의 4번째 법손으로 서당지장(西堂 智藏)의 법을 이었음] ㆍ최초로 귀국하여 남종선을 전래. ㆍ손제자인 보조체징 선사(804~880)가 개산 |
실상산 (實相山) | 홍척 (洪陟) | 828 | 전남 남원 | 실상사 | ㆍ9산 중 최초 산문개산 (구산선문의 효시) |
동리산 (銅裏山) | 혜철 (惠哲) | 839 이후 | 전남 곡성 | 태안사 | ㆍ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道詵)이 문하. |
성주산 (聖住山) | 무염 (無染) | 847 | 충남 보령 | 성주사지 | ㆍ탑비 현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ㆍ중국에 가서 마곡보철 화상의 회상에서 동방보살이라는 칭호를 받음. |
사굴산 (闍崛山) | 범일 (梵日) | 847 | 강원 강릉 | 굴산사지 | ㆍ9산문 중 가장 위세 떨침 (보조국사 지눌의 소속 산문) |
사자산 (獅子山) | 도윤 (道允) | 882 | 강원 영월 | 법흥사 | ㆍ9산문 중 최대 규모. |
봉림산 (鳳林山) | 현욱 (玄昱) | 890경 | 경남 창원 | 봉림사지 | ㆍ봉림사지는 가야불교의 터전으로 추측된다. |
수미산 (須彌山) | 이엄 (利嚴) | 932 | 황해 해주 | 광희사지 | ㆍ태조의 초청으로 궁중설법 ㆍ유일한 북한지역 |
희양산 (曦陽山) | 도헌 (道憲) | 935 | 경북 문경 | 봉암사 | ㆍ지선(智詵)으로도 불림 ㆍ도헌의 제자인 긍양이 개산 ㆍ9산문 중 마지막으로 개산 |
☞학림 도의(鶴林 道義)
40년 가까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헌덕왕 13년(821년)에 신라에 돌아왔다. 설악산에서 염거화상에게 법을 전하고 염거화상은 보조 체징(普照 體澄) 선사에게 법을 전하였다. 보조선사는 법을 전해 온 후 장흥 보림사(寶林寺)에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하였다. 그래서 도의선사는 보통 동국 선법의 초전자 (初傳者)로 일컬어진다.
(5) 5교(五敎)의 성립
5교(五敎)
5교 (五敎) | 열반종 (涅槃宗) | 율종 (律宗) | 화엄종 (華嚴宗) | 법상종 (法相宗) | 법성종 (法性宗) |
종조 | 보덕 | 자장율사 | 원효, 의상 | 진표율사 | 미상 |
시대 | 무열왕 | 선덕왕 | 문무왕 | 경덕왕 | 미상 |
1)화엄종(華嚴宗)
① 원효(617~686)의 독자적인 입장
② 의상(620~702)에 의해 신라 화엄학 성립
③ 의상의 제자:표훈(表訓), 의적(義寂), 지통(智通), 도신(道身) 등
2)법상종(法相宗)
① 진표율사:영심(永深), 보종(寶宗)등의 한 계보
② 현장(玄奘)→원측(圓測)→도증(道證)→대현(大賢)으로 이어지는 계보
③ 원측의 계통을 서명학파(西明學派)라고도 한다.
④ 대현(大賢):해동유가의 조(祖)
⑤ 다수의 유식가(唯識家)가 있었다.
☞ 법상종(法相宗) ⇒ 제7장 중국불교사 참조
☞ 원측(圓測:613~696):찾아보기 참조
신라의 왕손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627년(진평왕 49) 당(唐)나라에 유식론(唯識論)을 배
웠다. 중국어・산스크리트에 능통하여 당 태종(太宗)으로부터 도첩(度牒)을 받았으며, 저서에 <해심밀경
소(解深密經疏)>,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 <유가론소(喩伽論疏)> 등이 있다.
3)열반종(涅槃宗)
① 보덕(普德)이 개창
② 모든 중생은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증득(證得)하여 나타낸 것이 열반이라고 하는, 열반의
적극적인 핵을 종지로 한다.
4)법성종(法性宗)
① 삼론종(三論宗)이라고도 한다.
② 원효의 <삼론종요> 등 저술이 있다.
5)율종(律宗)
① 자장(慈藏)에 의해 개창
② 대승의 범망계 중시
2. 삼국불교 수용의 특징
(1) 현세이익적 경향:기복적, 주술적 신앙의 대상
(2) 호국 신앙적 경향:국왕 및 국가 이익의 대상
1) 윤회 또는 法 등에 대한 인도와 중국의 차이
2) 중국의 불교이해가 그대로 한국에 유입
3) 원광(圓光, 532~630)의 세속5계[=화랑5계(花郞五戒)]
3. 신라의 불교사상의 전개
(1) 통일신라(669~935)
(2) 가장 학문적으로 융성했던 시대
(3) 교학으로서는 5교가 정립 ; 특히 화엄종과 법상종이 성행
(4) 교학에 있어 융합 조화적 풍조가 강함
(5) 신라말 禪사상의 유입 : 신라 하대의 혼란과 함께 유행
(6) 일반 민중의 불교이해:미륵, 미타신앙의 유행(미륵경전과 정토경전)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 > 제5장 한국불교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Ⅱ. 고려의 불교 5. 고려 불교의 특징 6. 고려말의 불교계 (0) | 2016.09.26 |
---|---|
Ⅱ. 고려의 불교 4. 원지배하의 불교 (0) | 2016.09.26 |
Ⅱ. 고려의 불교 3. 무신정권하의 불교 (0) | 2016.09.26 |
Ⅱ. 고려의 불교 1. 고려 통일국가의 전개 2. 고려의 불교 (0) | 2016.09.26 |
한국불교 10대 사건 (0) | 2014.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