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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타까나가라의 경(Aṭṭhakanāgarasutta, A11:16) : 선정도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이다.

moksha 2019. 11. 21. 23:36

앗타까나가라의 경(Aṭṭhakanāgarasutta, A11:1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존자 아난다는 베쌀리 시의 벨루바가마까 마을에 있었다.

 

2. 그 때 앗타까나가라 시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가 무언가 할 일이 있어 빠딸리뿟따 시에 도착했다. 이 때 앗타까나가라 시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는 꾹꾸따라마 승원의 어떤 수행승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수행승에게 인사하고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앉아서 앗타까나가라 시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는 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다싸마]“존자여, 존자 아난다는 오늘 어디에 머무십니까? 저희들은 존자 아난다를 뵙고 싶습니다.”

[수행승]“장자여, 존자 아난다는 베쌀리 시의 벨루바가마까 마을에 있습니다.”

 

3. 그래서 앗타까나가라 시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는 빠딸리뿟따 시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베쌀리 시의 벨루바가마까 마을의 존자 아난다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아난다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앉은 앗타까나가라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는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다싸마]“존자 아난다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까?”

 

4.[아난다]“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다싸마]“존자 아난다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어떠한 것입니까?”

 

5.[아난다]“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이 첫 번째 선정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6.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두 번째 선정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외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7.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세 번째 선정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8.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네 번째 선정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9.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쪼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무량하게,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우게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자애의 마음에 의한 해탈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0.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연민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무량하게,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연민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우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이 연민의 마음에 의한 해탈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1.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기쁨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무량하게,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연민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우게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기쁨의 마음에 의한 해탈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2.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평정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무량하게,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정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우게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평정의 마음에 의한 해탈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3.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미세한 물질계에 대한 지각을 완전히 뛰어넘어 감각적 저촉의 지각이 사라진 뒤에 다양성의 지각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공간이 무한하다.’라고 알아채며 ‘무한공간의 세계’를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무한공간의 세계에 대한 성취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4.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무한공간의 세계’를 뛰어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라고 알아채며 ‘무한의식의 세계’를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무한의식의 세계에 대한 성취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5. 또한 장자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무한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아무 것도 없다.’라고 알아채며 ‘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성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성취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상하고 소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만약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욕구와 가르침에 대한 희열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됩니다. 장자여,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인 세존께서 설하신 바, 그것에 의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승이라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16. 이처럼 말하자 앗타까나가라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는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다싸마]“존자 아난다여,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감춰진 보물의 입구 한 곳을 찾으면 한꺼번에 보물의 열한 개 입구에 도달하듯, 존자여, 저는 하나의 불사의 문을 찾으면서 한꺼번에 열한 개의 불사의 문에 관하여 얻어듣게 되었습니다. 존자여, 마치 한 사람에게 열한 개의 문이 달린 집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집에 불이 났을 때에 열한 개의 각각의 문으로 스스로 피할 수 있듯, 존자여, 이와 같이 저는 열한 개의 불사의 문 가운데 열한 개의 각각의 불사의 문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존자여, 이교도들은 스승의 사례비를 요구할 것입니다. 제가 존자 아난다에게 어찌 공양을 올리지 않겠습니까?”

 

17. 그래서 앗타까나가라에 사는 장자인 다싸마는 빠딸리뿟따와 베쌀리 시의 수행승의 무리를 초대해서 자신의 손으로 갖가지 음식을 대접하여 그들을 기쁘게 했다. 그는 한 분 한 분의 수행승들에게 한 벌의 옷을 보시하고 존자 아난다에게는 세 벌의 가사를 보시했다. 그리고 존자 아난다를 위하여 오백의 가치가 있는 승방을 건립했다.

 

앗타까나가라의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