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청원에 대한 경(Brahmāyācanasutta, S6:1(1-1))
브리흐마야짜나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직후, 우루벨라마을의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아자빨라1 보리수 아래에 계셨다.
2. 그때 세존께서 그 한적한 곳에서 홀로 고요히 명상하고 계셨는데, 이와 같은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세존]‘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2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란이 될 것이다.’
3. 마침 세존께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다.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왜 내가 지금 설해야 하나.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드네.
4. 흐름을 거슬러3가 오묘하며 심오하고 미세한 진리는 보기 어렵네.
어둠의 무리에 뒤덮인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하네.
5.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성찰하셔서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하였다.4
6. 그 때 하느님 싸함빠띠5가 세존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시는 바를 알아차리고 이와 같이 생각했다.‘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이와 같이 성찰하셔서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하신다면 세계는 멸망한다. 참으로 세계는 파멸한다.’
7. 그래서 하느님 싸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사이에, 하느님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세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8. 그리고 하느님 싸함빠띠는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세존께서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9.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싸함빠띠]
“일찍이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不死)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10.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윈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11.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12. 그러자 세존께서는 하느님의 청원을 알고는 뭇삶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13. 그때 세존께서는 깨달은 님의 눈6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금 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14. 마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의 연못에서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수중에 잠겨 자라고,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에까지 나와 있으며,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을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15. 보고 나서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시로 대답하셨다.
[세존]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7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곤란을 예견하고
나는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16. 그 때야 비로소 하느님 싸함빠띠는 생각했다.‘세존께서는 진리를 설하는 것을 내게 동의하셨다.’ 그는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하느님의 청원에 대한 경이 끝났다.
- 보리수(菩提樹) 이름이 아자빨라(ajapāla)나무이다. 보리수는 부처님이 최상의 올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은 장소에 있었던 아자빨라니그로다(Ajapālanigrodha) 나무를 말한다. 이를 니그로다(nigrodha) 나무라고도 한다. 아자빨라(ajapāla)는 ‘염소 치는 사람’ 을 뜻하고 니그로다(nigrodha) 나무는 일종의 무화과 나무로 뱅골보리수로 알려져 있고 한역에서는 용수(榕樹) 또는 니구율(尼拘律)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 집착(取, upādāna) : 네 가지 집착(取, upādāna)은 다음과 같다. (1)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욕취(慾取), kāmā-upādāna] :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욕애(慾愛), kāma-taṇhā)에서 비롯된 집착이다. (2)사견에 대한 집착[견취(見取), diṭṭhi-upādāna] : 업과 그 과보는 없으며 내생, 정등각자, 아라한이 없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이다. (3)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계금취(戒禁取), sīlabbata-parāmāsa-upādāna) : 팔정도와 아무 상관없는 의식과 의례를 행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다. (4)자아의 교리에 대한 집착[아어취(我語取), atta-vāda-upādāna] : 영혼, 자아, 살아있는 실체에 대한 믿음에 대한 집착이다. [본문으로]
- 흐름을 거슬러 : 이를 역류도(逆流道, Paṭisotagāmī)라 한다. 흐름의 경(Anusotasutta, A4:5)에 의하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빠지지 않고, 악업을 저지르지 않고, 고통에 불구하고 불만에 불구하고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완전한 청정한 삶을 실천한다면 그를 두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라는 말씀이 있다. 또한 형상의 즐거움에 대한 경(rūparāmasutta, S35:136)에 의하면 “다른 사람이 즐겁다고 하는 것, 고귀한 님은 괴롭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괴롭다고 말하는 것, 고귀한 님은 즐겁다고 하네.”라는 말씀이 있다. [본문으로]
-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붓다가 되기를 서원하고 4아승기겁 10만 대겁 동안 십바라밀을 완성하고 일체지를 얻으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생제도를 주저하셨는가? 여기에 대해 쌍윳따 니까야 주석서에서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①부처님께서 열반을 살현하고서야 열반이 얼마나 깊고 미묘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생들의 무명업장(無明業障)이 너무 두터워 이해시키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②당시 바라문교에서 섬기는 지고무상의 유일신 브라흐마(범천)이었다. 그래서 브라흐마의 권청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법이 뛰어남을 입증하게 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의 법을 믿고 들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싸함빠띠(Sahaṁpati) : 범천(梵天)을 하느님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하느님 싸함빠띠는 깟싸빠(Kassapa Baddha) 시대에 싸하까(Sahaka)라는 장로였다. 그는 첫 번째의 선정(禪定)에서 열반(涅槃)에 들어 일 겁(劫, 56억 7천만년)을 사는 하느님(Kappāyugabrahmā)이 되었다. ▣대범천(大梵天, Mahā-brahmā)은 초선천(初禪天)의 세 천 즉 범중천(梵衆天, Brahma-pārisajjā)과 범보천(梵輔天, brahmapurohita)과 대범천(大梵天, Mahā-brahmā)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범천(大梵天)은 세 번째 천상을 뜻하기도 하고 여기서처럼 유력한 범천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력한 범천으로 경에서는 뚜두(Tudu), 나라다(Nārada), 가띠까라(Ghaṭikāra), 바까(Baka), 사냥꾸마라(Sanaṅkumarā), 사함빠띠(Sahampatī) 등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서 사함빠띠 범천이 대범천으로 많이 등장한다. 부처님께 법륜을 굴려주시길 간청한 대범천이 바로 사함빠띠이다. 쌍윳따니까야 ‘사함빠띠 범천 경(Sahampatibrahmasutta, S48:57)’에 의하면 사함빠띠는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사하까(Sahaka)빅쿠였으며 이때 오근(五根)을 닦아 대범천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그는 빅쿠였을 때 초선정을 얻어 대범천에 태어났으며, 그 당시 인도에서 가장 경배하는 최고의 신 마하브라흐마(Mahābrahmā)라고 말하고 있다. 사함빠띠는 부처님께 법을 설하기를 권하고(S6:1), 부처님께서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위대한 사람이 없어 의지할 것이 없으니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법에 의지해야겠다고 생각하실 때 사함빠띠가 나타난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법을 존중하고 법에 의지하였음을 증명하였다.(S6:2), 사함빠띠는 고깔리까 빅쿠가 두 상수제자를 비난하고 죽었을 때 홍련지옥에 태어났음을 증명하였다.(S6:10), 그리고 부처님께서 꾸시나라에서 빠리닙바나에 드셨을 때 이를 추모하는 게송을 읊었다.(S6:15) [본문으로]
- 깨달은 님의 눈 : 오안(五眼) 중에서 불안(佛眼)을 말한다. 오안은 ①육체의 눈[육안(肉眼), maṁsacakkhu ②하늘 눈[천안(天眼), dibbacakkhu]: 존재들이 업에 따라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재생하는 것을 아는 지혜. 광명(āloka)이 넘쳐흘러서 생긴 눈으로 중생들의 죽고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이다. ③ 보편적인 눈[보안(普眼), samantacakkhu] : 부처님의 전능(全能)한 일체를 아는 지혜(一切智, sabbaññuta-ñāṇa)이다. ④법의 눈[법안(法眼), dhammacakkhu]: 수다원도부터 사다함과까지의 도와 과에 대한 지혜이다. ⑤부처의 눈[불안(佛眼), Buddhacakkhu]: 존재들의 성향(성벽)과 잠재성향(기질)을 아는 지혜(āsaya-anusaya-ñāṇa)와 그들의 정신적인 기능의 성숙을 아는 지혜(indriya-paropariyatta-ñāṇa)를 말한다. [본문으로]
- 고귀한 구함의 경(Ariyapariyesana suttaṃ, M26)에도 동일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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