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담마빠다(Dhammapada)/담마빠다 이야기

[게송17] 데와닷따 이야기

moksha 2018. 4. 21. 18:03

[게송17] 데와닷따 이야기

 

어느 때 데와닷따 비구는 부처님과 함께 꼬삼비 지방의 한 수도원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부처님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크나큰 존경을 받으시는 걸 보며 그의 마음엔 거센 시기심이 일어났다.

 

그 후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Veḷuvanarāma, 죽림정사1(竹林精舍)]으로 돌아가셔서 그곳의 많은 대중들과 자리하고 계실 때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자기에게 상가를 맡겨 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제안을 했다. 부처님께서는 그 제안은 그릇된 것이라고 꾸짖으셨다.

이에 대해 데와닷따는 분노를 느끼고 이번 일에 대해 언젠가 복수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 번씩이나 부처님을 해치려고 했다.

 

첫 번째는 자객을 보내어 부처님을 살해하려 했다. 그러나 자객은 부처님에게 발각되었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되자 제자가 되어 버렸다.

 

두번째는 깃자꾸따2(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 근처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독수리와 비슷하여 독수리봉이라 부르기도 하는 산,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많은 설법을 하셨고 부처님 열반 후 500명의 아라한들이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송, 결집하여 후대에 전한 곳)에 올라가서 부처님께서 탁발을 끝내시고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려 산위로부터 큰 바위를 굴려 부처님을 해치려고 했는데, 바위가 방향을 바꾸어 굴러갔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때 굴러 떨어지던 바위의 파편이 부처님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부딪쳐 상처를 입으셨다.

 

세 번째는 사나운 코끼리 날라기리(Nalāgiri)에게 술을 먹여서 난폭하게 만든 다음 부처님과 비구 일행을 향해 돌진하게 했다. 이때 아난다는 자기 생명을 희생하여 부처님을 보호하려고 부처님 앞에 나가 코끼리를 막아섰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 이르자 부처님에게서 흐르는 자애에 조복되어 순종스럽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그 뒤 데와닷따는 상가를 분열시키고자 상가의 계율을 트집 잡으며 보다 강화된 계율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보다 강화된 다섯 가지 계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후로 모든 비구들은 숲 속에서만 생활한다. 큰 비용을 들여 지은 수도원에서 지내는 것은 수행자로서 합당하지 않다.

둘째, 모든 비구는 일체 신도들의 공양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 공양 초청을 받으면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차별하게 되므로 오직 탁발만 해서 먹도록 한다.

셋째, 모든 비구들은 쓰레기 중에서 찾은 천으로만 가사를 지어 입어야 한다. 새천으로 가사를 짓는 것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넷째, 모든 비구는 나무등걸 위나 무덤 사이에서만 생활해간다.

다섯째, 모든 비구들은 생선이나 고기로 만든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 같은 음식을 먹으면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살생이 증가하므로.

 

이와 같은 데와닷따의 제안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이 제안의 대부분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며, 음식의 경우 비구가 음식을 가려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만일 비구가 음식을 가려서 받게 되면 신자들은 비구들에게 음식을 올리기가 번거롭게 되고, 급기야는 비구들이 음식을 받기가 어렵게 되고, 그렇게 되면 비구 숫자가 줄어들고 마침내 비구 상가가 존재할 수 없게 되고, 그리하여 이 진리의 가르침도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때 아직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구들 중의 일부가 데와닷따의 제안에 찬동했다. 그들은 그를 추종하여 붇다가야와 라자가하 중간에 있는 가야시사(Gayāsīsa)3에 모였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뿟따와 마하테라 장로를 그곳에 보내시어 그 비구들이 해로운 법에 물들기 전에 되돌아오게 하도록 이르셨다.

 

사리뿟따와 목갈리나 장로가 오는 것을 본 데와닷따는 매우 기뻐하여 자기 추종자들에게 “너희들은 뒤를 돌아보아라. 고따마의 양팔이라는 두 제자도 나에게 오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두 제자가 도착한 후 데와닷따는 사리뿟따에게 “나는 피곤하다. 그대가 내 대신 이 비구들에게 설법하라.” 이렇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때 사리뿟따 장로는 비구들에게 그들의 행동이 유익한 것이 아님을 일러 주었고 그리하여 데와닷따를 따라갔던 비구들은 상가로 다시 돌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뒤 데와닷따는 중병에 걸렸다. 그는 그 병으로 아홉달 동안 앓아누워 있으면서 한사코 부처님을 뵙고 싶다고 애원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병든 그를 데리고 제따와나 수도원4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그때, “데와닷따는 결코 여래를 다시 볼 수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데와닷따가 탄 가마는 마침내 제따와나 수도원 근처의 한 연못에 이르렀다. 그는 잠시 가마에서 내려 물에 몸을 씻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마에서 발을 내려 땅을 딛자마자 땅이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는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아비지옥으로 떨어져 생전에 저지른 갖은 악행에 합당한 고통을 겪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악행을 하면, 두 곳에서 괴로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괴로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괴로워한다.

‘내가 악을 지었다.’고 후회하고

나쁜 곳에 떨어져 한층 더 고통스러워한다.”

 

 

  1. 웰루와나라마(Veḷuvanārāma, 죽림정사竹林精舍)를 깔란다까니와빠(Kalandakanivāpa)라 부르기도 하는데, 다람쥐(Kalandaka)에게 먹이를 주는 곳(nivāpa)이었기 때문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 Veḷuvana)는 라자가하 북방에 있었으며, 마가다(Magadha)의 빔비사라(Bimbisāra)왕이 부처님과 승가에게 바친 최초의 정사이다. 꼬살라국 사왓티의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ana)와 함께 불교 최초의 2대 정사로 불린다. [본문으로]
  2. 깃자꾸따(Gijjhakūṭa) : 깃자(gijjha)는 독수리이고, 꾸따(kūṭa)는 뽀족하게 솟은 봉우리를 말한다. 그래서 영취산(靈鷲山)으로 한역하며 독수리봉이라고 한다. 깃자(짓자, gijjha)에 해당하는 산스끄리뜨가 그리드라(Grdhra)이기 때문에 그리드라꾸따(Grdhrakūta)를 기사굴산(耆闍堀山)이라 음역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가야시사(Gayāsīsa)를 오분율에서는 가야산(伽倻山), 사분율에서는 상두산(象頭山)이라고 번역하지만‘sisa'는 산(山, pabbata)이 아니라 평지보다 조금 높은 구릉(丘陵)을 의미한다. 이곳을 상두산(象頭山)이라 한 것은‘코끼리 머리모양의 평평한 바위’(gajasīsa sadisa-piṭṭhipāsāno)가 있기 때문이다. 가야시사는 가야에서 남서쪽으로 1 mile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산이요, 현재의 브라흐마요니(Brahmāyoni)이다. ▣부처님은 가야시사에서 1,000명의 비구들에게‘세상이 온통 욕망의 불길에 타고 있다’는 아딧따빠리야아 숫따(Ādittapariyāya Sutta)를 설했다. 아딧따(Āditta)는 불길을 뜻하고, 빠리야아(pariyāya)는 교훈이란 뜻이다.‘불의 교훈’이라 할 수 있는 가야시사에서의 이 설법을 유럽의 불교학자들은 붓다의‘산상설법(山上說法)에라 했는데, 그것은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에 비교한대서 온 말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ana) : 기원정사[祇園精舍, 제따와나라마(Jetavanārāma)]는 중인도 꼬살라(Kosala)국의 수도 사왓티(Sāvatthi)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제따태자 소유의 동산에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장자가 지어 승가에 헌납한 정사(精舍, 수도원, ārāma)이다. 아나타삔디까는 백만장자‘쑤닷따(Sudatta)’의 별명으로‘외로운 이를 부양하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역으로‘급고독장자(給孤獨長子)’라고 한다. 제따와나라마(Jetavanārāma)를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 하며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 또는 아나타삔디까라마(Anāthapiṇḍikārāma)라 한다. 세존께서는 말년 22년간을 여기서 보내셨다. 세존이 아난다(Ānanda) 존자를 시자로 삼으신 것도 여기에 계시기 시작 무렵이었다. 많은 경들이 이 기원정사에서 설해진 것으로 나타나며 특히 맛지마 니까야와 상윳따 니까야의 반 정도가 이곳에서 설해졌다. ▣ 제따와나라마(Jetavanārāma)=제따(Jeta)+왕자의 숲(vana)+수도원(ārāma)=기원정사(祇園精舍)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