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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빠다(Dhammapada)/담마빠다 이야기

[게송11] ~ [게송12]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장로 이야기

moksha 2018. 4. 19. 21:02

[게송11] ~ [게송12]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장로 이야기

 

라자가하 근처의 작은 지방에 우빠띳사(Upatissa)와 꼴리따(Kolita)라는 이름을 가진 두개의 마을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때 우빠띳사 마을의 브라흐민 부인 루빠사리(Rūpasāri)가 아이를 가졌는데, 비슷한 때에 이웃 꼴리따 마을에 사는 꼴리따 부인 역시 아이를 가졌다.

 

이들 두 집안은 오랜 선조 때부터 친형제처럼 지내오던 막역한 사이여서 궂은일이든 좋은 일이든 모두 터놓고 상의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로의 임신 소식이 전해지며 서로 돕는 가운데 열 달이 지나갔다.

 

마침내 아기들이 태어났는데, 둘 다 사내아이였다. 아기들의 이름을 짓게 되는 날 루빠사리 부인의 아기는 우빠띳사 마을에서 태어났다 하여 우빠띳사, 꼴리따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기도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서 꼴리따라고 지었다.

 

그들 두 아기는 씩씩한 소년들로 자라났으며, 당시 최고급 학문을 모두 섭렵해갔다. 과학, 자연, 천문학 등등 소년 우빠띳사는 가끔씩 집에서 가까운 강둑에 나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럴 때면 많은 어린아이들이 우빠띳사를 따라다녔다.

 

그들은 우빠띳사를 매우 따랐고 그런 사정은 꼴리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꼴리따에게도 많은 어린아이들이 구름 떼처럼 뒤따라 참으로 장관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때, 라자가하에 축제의 계절이 왔다. 매년 이때가 되면 라자가하의 젊은 남녀들은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곳으로 부터 모여들곤 했다. 이들 두 젊은이들 또한 예년과 다름 없이 이 마을 축제에 참석했고 우빠띳사(Upatissa)와 꼴리따(Kolita)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날 축제에도 함께 마을 축제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제 장성한 두 사람은 축제의 여러 가지 놀이나 우스운 행사들을 보아도 아무런 흥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울어야 할 때 울음이 나오지 않았고, 웃어야 할 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웬일인지 모든 것이 덧없고 무의미하게 보였다. 그들 두 젊은이는 그때 사람들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가 앉아 내려다 보이는 저 아래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며 춤추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보고 있는 저 광경은 무엇인가. 아! 불과 백년도 지나지 못하여 저 밑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 땅 위에서 사라져 아무도 남지 않게 될 텐데 이런 사실은 실로 두렵다.'

그러던 중 꼴리따가 우빠띳사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지난해 축제 때처럼 즐거워하지 않는 구나. 표정도 어둡고, 도대체 무슨 행각을 하고 있는 거니?

우빠띳사가 대답했다.

“꼴리따야,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인생에 있어서 만족은 오래 가지 않는 다고 나는 저기 춤추고 노래 부르며 흥겨워 하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렇게 살다 죽는 것이 인생인지 그러한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생각해 봤어. 그러자 이런 인생의 무의미로 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그런데 꼴리따야 내가 보기에는 네 표정도 침울한데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자 꼴리따는 우빠띳사가 자기에게 한 것과 비슷한 생각들을 대답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가 순간 너무나 유사한 생각들을 한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참 희한한 일이야. 우리 두 사람이 그런 똑같은 생각들을 했으니. 우리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날까?"라고 말하게 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진리와 스승을 찾아 집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당시 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있던 수행자인 산자야(Sañjaya)가 제자들과 함께 라자가하성에 오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우빠띳사가 꼴리따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저 산자야를 따라 그의 제자가 되어 수행하기로 하자.”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사람들과 화려하게 장식된 수레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 그 즉시 가정을 떠나 산자야의 수행 단체에 들어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로써 산자야로서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들처럼 우수한 제자는 실로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두 젊은이는 산자야 밑에 들어가 수행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자야가 가르치는 모든 지식과 수행에 숙달하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스승에게 물어보았다.

“스승님, 이것이 스승님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남아 있습니까?”

스승인 산자야는 대답했다.

“이것이 전부다. 너희는 이제 내가 아는 것을 모두 알고 깨달았다. 너희들은 이제 더 배울 것이 없다.”

스승의 이런 대답을 들은 우빠띳사와 꼴리따는 매우 실망했다. 그들은 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에 스승이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제 이 수행 단체에 더 이상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것은 스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삶의 무의미로 부터 벗어나고자 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스승이 알고 깨달은 것을 모두 배워 그것에 통달했지만 우리 마음은 출구를 찾지 못했구나. 이제 이 스승으로 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을 희망은 보이지 않는 구나. 그러나 이 세상은 넓고 사람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 마을과 마을, 시장과 시장들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스승을 찾아보자.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보여 주실 스승을 꼭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들은 산자야를 떠나 진리와 스승을 찾아 세상을 헤매며 떠돌아 다녔다.

그들은 어느 곳이든 스승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만났던 스승 중에는 출가한 수행자도 있었고, 혹은 속인들도 있었다. 또 그들은 그런 여행 중에 상대방의 질문을 받게 되면 그에 대하여 대답해 주기도 했는데, 일단 토론이 벌어지면 그들을 당해 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그들은 진리와 스승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그들을 만족시켜 줄 스승을 끝내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 두 사람은 마침내 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때 우빠띳사가 말했다.

“벗 꼴리따여, 우리 이런 약속을 하자. 누구든지 먼저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만나거든 지체하지 말고 서로에게 알려 주기로.”

그들은 진리와 스승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런 약속을 간직한 채 각기 집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사르나트의 사슴 동산1(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첫 설법을 하신 곳)에서 초전법륜을 설하셨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시게 되었다.

그즈음 부처님께서는 초기 제자들로 하여금 전법을 떠나게 하시고 당신께서도 붓다가야에 오시어 우루벨라까사빠 삼형제를 제자로 삼으시었다. 그런 다음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으로 부터 웰루와나 수도원을 기증 받으셨다.

 

그때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 다섯 사람가운데 막내 격인 앗사지(Assaji) 비구는 부처님과 함께 여행하며 웰루와나 수도원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아침 일찍이 라자가하 시내로 탁발을 나갔다. 바로 이때 우빠띳사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암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을 찾아보기 위해서 라자가하 시내를 걸어가다가 앗사지 비구와 마주쳤다.

 

우빠띳사는 앗사지 비구가 탁발을 하기 위해 점잖고 위엄있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마음속에 큰 감응이 일어났다. 그는 아직까지 다만 걷고 있을 뿐인데도 저렇게 단아하고, 맑고, 평온한 기품이 흐르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우빠띳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저렇게 진정 수행자다운 태도와 자태를 지닌 이를 만난적이 없었는데, 저 수행자는 분명 고귀한 성자일 거야.”

이렇게 단지 걸어가고 있는 앗사지 비구에게 감동을 받은 우빠띳사는 곧 그에게 다가갔고 마음속으로 당장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예컨대 당신은 무엇을 구해서 출가하여 수행자가 됐는지. 당신은 어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지. 당신은 어떤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지 등등 그렇지만 그는 곧 지금 이 수행자는 위엄과 기품을 갖추고 정중한 태도로 탁발을 하는 중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우빠띳사는 생각했다.

‘내가 내 바램만을 앞세워 지금 이 분에게 여러 말을 시킨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다. 이 분은 지금 탁발을 하고 계시지 않는가. 우선 이 분을 조용히 따라 가자 그러다 보면 어느 땐가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 할 수 있는 기회가 올꺼야.’우빠띳사는 이렇게 생각하고 설레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앗사지 비구의 뒤를 따랐다.

 

마침내 앗사지 비구는 음식을 얻은 다음 어떤 장소로 향하는 것이었다. 앗사지 비구가 그 장소에 이르러 자리를 잡아 앉으려 하자 우빠띳사는 재빨리 자기의 좌복을 꺼내 얼른 나서서 바닥에 깔아놓아 앗사지로 하여금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곤 앗사지 비구가 음식을 다 들기를 기다렸다. 자기의 물병을 꺼내어 공손히 내밀었다. 이런 모든 행위는 제자가 스승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였다.

 

그렇게 앗사지 비구가 식사를 마쳤고 드디어 두 사람은 즐거운 인사를 나누었다. 우빠띳사는 앗사지 비구에게 물었다.

“수행자시여 당신의 안면은 매우 밝고 깨끗하며 표정은 고요하고, 또한 밝습니다. 당신의 피부는 아주 투명하고 빛이 납니다. 당신은 분명 매우 깊고 높은 가르침을 닦는 분일 것입니다. 당신에게 듣고 싶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구하여 가정을 떠나 수행자가 되셨는지요? 그리고 당신에겐 스승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어떤 분입니까?

 

앗사지 비구는 대답했다.

“형제여 나는 진리에 관한 한 초보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수행하는 담마를 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빠띳사는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앗사지의 겸허하고 겸손한 태도에 깊은 호의를 느꼈다. 그리곤 다시 진지하게 청했다.

 

“제 이름은 우빠띳사 입니다. 지금 저는 당신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수행정도에 관계없이 오로지 진리에 목말라 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아시는 것 만이라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아주 짧게 말씀해 주신다 해도 저는 그 가르침을 가지고 그 수백 배나 될지도 모르는 넓고 깊은 의미와 뜻을 직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에 이르러 앗사지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게송 하나를 골라내어 읊었다.

“모든 현상은 원인으로 부터 시작된다.”

 

우빠띳사가 이 한 문장을 듣자 크나큰 환희심을 일으키는 것을 본 앗사지 비구는 다시 게송을 더 읊어 주었다.

 

Ye dhammā hetuppabhavā “원인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법들,

tesam hetum tathāgato āha 그들에 관해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Tesam ca yo nirodho 또 그들의 소멸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나니,

Evaṃ vādi mahā samano. 이것이 대사문의 가르침이라네.” [연기법송(緣起法頌)](Vin.i.40)

 

우빠띳사는 앗사지 비구에게 말했다.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이정도로 충분합니다. 지금 스승이신 그 분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아사지 비구가 대답했다.

“형제여, 부처님께서는 지금 웰루와나 수도원[Veḷuvanārāma,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십니다.”

이에 우빠띳사는 앗사지 비구에게 말했다.

“제게는 아주 절친한 친구가 한 사람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누구든지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발견하면 지체 없이 서로에게 알려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진리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곧 친구와 함께 수행자님의 뒤를 따라 스승께서 계시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곤 우빠띳사는 앗사지 비구에게 오체투지로 절을 한 뒤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돌아 최상의 존경을 표시한 다음 곧 그 자리를 떠나 꼴리따를 찾으러 갔다.

 

꼴리따는 우빠띳사가 기쁨에 찬 모습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우빠띳사의 얼굴에 광명이 서려 있구나.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아, 우빠띳사가 드디어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어.’

 

이렇게 생각한 그는 우빳띳사와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질문을 퍼부어 댔다. 그러자 숨 돌릴 여유도 없는 친구의 질문을 받은 우빠띳사가 대답했다.

“그래, 꼴리따 이제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찾았어.”

“그래? 그렇다면 우리의 스승이 될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거야?”

“그분께선 지금 웰루와나 수도원에 계신다고 해.”

이에 꼴리따가 말했다.

“너무나 기쁘구나! 우빳띳사 우리 당장 스승을 찾아뵈러 그곳으로 가자.”

 

물론 그런 꼴리따의 마음을 우빠띳사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행복한 여정의 순간을 앞두고 우빳띳사에겐 불현듯 옛 스승인 산자야가 떠올랐다. 그래서 우빳띳사는 꼴리따에게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해. 그렇지만, 우리의 과거 스승인 산자야스승님께도 이 소식을 전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분도 아직은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이 소식을 듣게 되면 그분도 기뻐하며 기꺼이 부처님께 귀의 할 거야. 혹 만일 그 분이 예상과 달리 귀의하지 않겠다 해도 그 선택에 관계없이 우선은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

 

이런 우빠띳사의 제안을 듣자 꼴리따 역시 동의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산자야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공손하게 청했다.

“스승이시여, 드디어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가르치시는 스승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그분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고 의미가 없는 길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들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뵙고 귀의하여 함께 진리의 길을 가길 청합니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제안은 산자야에겐 비참함과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그는 외쳤다.

“나는 가고 싶지 않다! 가고 싶다면 너희들이나 가도록 해라!”

“왜 그러십니까?”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거느리는 스승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누군가의 제자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항아리가 찻잔에 들어가려는 것과도 같은 것, 나는 누군가의 제자가 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지혜로운 자는 적고 어리석은 자는 많다. 지혜로운 자는 밝은 스승을 찾아갈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나를 찾아오리라.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너희들이나 너희의 새 스승을 찾아가거라.”

 

그렇게 두 사람과 산자야 사이엔 논쟁의 시간이 흘렀고 끝내 산자야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나 웰루와나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려 할 때 산자야와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 본 산자야의 많은 제자들은 우빠띳사와 꼴리따를 따라 산자야를 떠나려 했다.

 

그들이 볼 때엔 두 사람의 태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합당한 자세로 여겨졌고 두 사람의 진리를 추구하는 안목과 성실성을 존경해 왔던 터이기에 산자야가 아닌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리하여 500명이나 되던 산자야의 제자 가운데 반 정도가 우빳띠사를 나머지 반정도는 꼴리따를 따르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수행처가 비게 되자 산자야는 그만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웰루와나를 향해 가던 중 그 무리의 일행 중 반 정도는 다시 발길을 돌려 산자야에게 돌아갔고 그리하여 마침내 250명 정도의 일행과 두 사람은 웰루와나에 도착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부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하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하시다가 멀리서 우빠띳사와 꼴리따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고 있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기에 우빠띳사와 꼴리따가 오고 있구나. 그들은 머지않아 뛰어난 제자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많은 수행자와 함께 부처님 앞에 도착하여 엎드려 예를 올리고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자신들을 제자로 받아주실 것을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잘 설해졌다. 이제 그대들은 성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모든 고통을 없애고, 일체 윤회를 멈추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은 곧 비구가 되었는데, 마치 백 년 동안 비구로 생활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듯 능숙해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구가 된 우빠띳사는 사리뿟따[Sāriputta, 사리불(舍利弗)]로, 꼴리따는 마하목갈리나[Mahamogallāna, 목건련(目健蓮)]로 불리었다.

 

마하목갈리나는 비구가 된 다음에 마가다 국의 깔라왈라라는 도시에서 좌선 수행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레째가 되던 날 그는 혼침에 직면하여 수행에 장애가 일어났다. 그가 그러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를 혼침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셨고 그는 장애를 떨쳐내고 다시 정진하여 삼매를 증득해 있는 그대로를 보고 알게 됐으며 흔들림 없는 정진으로 마침내는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그것은 그가 비구가 된지 이레만의 일이었다.

 

한편 사리뿟따 비구는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 근처에 있는 석굴인 수까라카따에 계시었다. 사리뿟따 역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그것은 열 나흘만의 일이었다.

 

사리붓다와 마하목갈라나가 승단에 들어오던 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두 웰루나와로 부르시어 그들을 으뜸가는 제자로 선언하시었다. 그런데 많은 비구들은 이를 의아해 했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으뜸가는 제자를 세우시려면 마땅히 입교한 순서에 따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초의 다섯 제자 중에서 고르시거나, 그들이 양보한다면 그 다음에 입교한 야사비구나 그 밖에 쉰네명의 비구 중에서 고르셔야 하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들 또한 아무런 이의가 없다면 까사빠 삼형제 중에서 고르거나. 그 다음 순서가 그 밖의 다른 비구들 일테고 사리뿟따나 마하목갈라나는 이제 막 출가했으니 가장 마지막 차례가 아닌가?'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다가와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지금 무엇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가?”

비구들은 토론한 내용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결코 사사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으뜸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다. 여래는 비구들이 전생에 어떤 서원을 세웠는지에 따라 으뜸 제자로 삼거나 삼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안냐꼰단냐는 여래의 첫 번째 제자이지만, 그는 지난 아홉 생에 걸쳐서 첫 수확한 곡식을 수행자들에게 공양하면서 내가 이 다음에 부처님의 으뜸 제자가 되겠노라고 서원하지 않았느니라. 그는 모든 수행 가운데에서 위없는 경지와 부처님이 출현할 때 첫 번째 제자가 되겠다고 서원했고, 그 결과 그의 서원대로 그는 맨 처음의 제자로서 여래를 만났고 제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두 비구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과거 아홉 생에 걸쳐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부처님 곁에서 수행하며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서원했느니라. 그러므로 이는 그들 스스로의 서원의 결과일 뿐 여래의 사사로운 판단이 아니니라.”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는 얼마 뒤에 부처님과 많은 비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들이 진리를 찾아 스승을 찾아 헤맸던 날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스승 산자야의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산자야는 올바르지 않은 견해를 지님으로써 올바르지 않은 것을 올바른 것으로 알고 올바른 것을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알았으니,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행위니라. 그러나 이들 두 비구는 진실을 진실로 알았고, 거짓을 거짓으로 알았으니, 이는 매우 현명하고 지혜로운 일로써 마침내는 깨달음을 얻고 번뇌를 해탈하여 위없는 경지를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거짓은 거부하고, 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 두 편을 읊으셨다.

 

핵심이 아닌 것을 핵심이라 생각하고

핵심을 핵심이 아닌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릇된 사유의 행경을 거닐며

그들은 핵심적인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

 

핵심인 것을 핵심인 것이라고 여기고

핵심이 아닌 것을 핵심이 아닌 것이라고 여긴다면,

올바른 사유의 행경을 거닐며

그들은 바로 핵심적인 것에 도달한다.”

 

 

  1. 사슴동산[녹야원(鹿野苑)] = 미가다야(Migadāyā) : 베사깔라(Bhesakalā)숲 속의 녹야원(鹿野園)으로 사슴과 사냥으로 잡은 동물들이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게 되어 있는 동물원과 같은 곳이다. 까씨(Kasi) 국의 수도 바라나씨(Bāraṇasi)의 이씨빠따나(Isipatana)에 있는 미가다야(Migadāyā, 녹야원(鹿野園)에서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이 이루어 졌던 곳이다. 녹야원(鹿野苑)이란 ‘사슴동산’으로 원어는 미가다야(Migadāya)이다. 맛지마 니까야의 주석서(MA.ii.188)는 “사슴들(Miga)에게 두려움 없이 머무는 장소로 주어졌기(dāya) 때문에 미가다야(Migadāya)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