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 친설 논쟁정리(11개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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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오민-제2.마성-제3.권오민-제4.마성-제5.권오민-제6.전재성-제7.권오민-제8.황순일-제9.권오민-제10.조성택-제11.안성두
제1 , 권오민 경상대 교수,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 탓”
최근 아함경과 니카야를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경전으로 간주하거나 이들 경전을 근거로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오는 가운데 아함경과 니카야도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대승경전을 불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교사상사에 대한 무지와 폐쇄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일 뿐 교학적·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부파불교 전공자인 권오민 경상대철학과 교수는 최근 「문학/사학/철학」(제17호)에 게재된‘불설(佛說)과비불설(非佛說)’이란 논문에서 ‘비불설 논쟁’이 대승과 소승 사이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논쟁이 결코 아니라 각 부파 간에 빈번하게 다뤄졌던 일반적인 논쟁이었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규명했다.
특히 오늘날 붓다의 친설로 여겨지는 한역 아함경과 남방불교의 니카야도 당시 설일체유부 상좌부 등 각 부파의 교학적 견해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때론 불설의 내용까지 바꾸면서까지 새롭게 편찬한 경전들로 대승경전의 편찬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 논문에 따르면 부파불교 시대에도 불설의 진위 논쟁은 끊이질 않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에 포함되고 율에 나타나면 불설이다”라는『대반열반경』의 정의에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이라는 이론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불타가 설한 것이든 제자가 설한 것이든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로 수지할 수 있다”(『대비바사론』)
“ 불법은 오로지 불타의 입으로 설해진 것만이 아니라 일체 세간의 진실하고 좋은 말은 다 불법이다.”(『대지도론』『성실론』)
라는 견해가 불설을 판정하는 교파 간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 부파의 불설론이 경전 편찬의 이론적 근거가 됐던 까닭에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아함경과 니카야를 곧이곧대로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과 니카야 또한 비불설이며 대승경전이 대승론자에 의해 찬술 결집된 것이라면 아함경과 니카야 역시 부파의 논사들에 의해취사 선택되고 찬술 결집된 경전들로 그 당시조차 비불설로 비판 받았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구의 복색을 한 마구니 설’이라고까지 아비달마불교를 비난했던 대승의 찬술자들도 아비달마의 불설론 전통을 ‘계승’해 경전을 편찬하고 당위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소승이나 대승 등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오늘날의 비불설 논쟁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논쟁은 구호나 선전에 근거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것일뿐더러 폐쇄적 신념에 기초한 것으로 ‘맹목의 논쟁’일 따름이다.
불설과 비불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열려 있었으며 진실(법성)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전통이라는 권위에 의지하지 말고 진실에 의지하라는 것이 대소승의 공통된 불설관이었다”며 “요즘 일각에서 아함경이나 니카야만을 올바른 붓다의 가르침으로 주장하거나 거꾸로 아함경이 나니카야를 초심자를 위한 경전쯤으로 얕잡아 보는 것은 큰 문제”라고지적했다.
특히 권 교수는 “오늘 우리가 시비 결택해야 할것은 종파에 따른 혹은 역사와 전통에 따른 불설·비불설이 아니라 ‘진실’ 바로 그것”이라며 “대승이 그러했듯 이제 바야흐로 오늘의 진실을 오늘의 언어형식으로 결집하고 그것의 불설과 비불설을 시비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2 , 마성 스님, 권오민 교수 “아함도 비불설” 주장 반박
최근 경상대 권오민 교수는 「문학/사학/철학」 제17호에 ‘불설과 비불설’이라는 논문에서 “대승경이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 또한 비불설이다”(p.179)라는 핵폭탄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방대한 분량의 논문을 단 몇 문장으로 논평한다는 자체가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워낙 충격적인 주장이기에 우선 몇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현존하는 아함이나 니까야도 전승되는 과정에서 개변(改變)·증광(增廣)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
아함이나 니까야 속에는 전승과정에서 불설이 아닌 내용도 많이 포함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함이나 니까야가 붓다의 친설이 아니라는 극단적인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함이나 니까야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붓다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논자는 불설과 비불설의 논쟁은 부파불교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불설/비불설 논쟁은 맹목의 논쟁일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비교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각 부파 간에 있었던 불설/비불설 논쟁은 붓다의 법과 율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긴 논쟁이었다.
그러나 후대의 대승불교도들이 찬술한 대승경전을 부파교단에서 비불설이라고 비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불멸후 승단이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붓다의 법과 율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파들 간에는 끊임없이 불설과 비불설의 논쟁이 있었다.
논자는 설일체유부(이하 유부로 약칭함)가 당시 분별설부로 알려져 있던 상좌부를 공격하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유부와 상좌부는 상반되는 교리가 많았기 때문에 논쟁이 치열했다.
현존하는 유부의 논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좌부의 니까야나 아비담마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원래 가짜가 진짜 혹은 원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짜는 자기가 진짜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무시하면 된다.
이러한 사례는 대승경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승경전에서는 부파교단의 가르침을 ‘비구의 복색을 한 악마’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상좌부의 삼장에는 이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
전통을 계승한 쪽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상좌부 전통에서는 정법을 유지 전승하기 위해 결집을 통해 비불교적 요소를 하나하나 배제시켜 나갔다.
그런데 자기 부파가 전통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설과 비불설을 구분하는 잣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반열반경』에 언급된 ‘사대교법(四大敎法)’에는 그 기준을 ‘법과 율에 합치하느냐?’로 판가름했다.
그러나 유부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는 거기에 ‘법성(法性, dharmata-)’ 혹은 정리(正理, 올바른 이치)를 삽입함으로써 자기 부파의 설이 불설임을 증명해 나갔다.
특히 논자는 유부의 설이 정설인양 대변하고 있지만, 결국 유부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논자는 결론적으로 아함이나 니까야도 부파불교 시대에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대승경전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불설이라고 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유부의 전통을 계승한 비바사사(毘婆娑師)의 논증을 끌어들여 대승경전이 불설임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경전은 후대의 대승불교도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불설로 가탁한 것이다.
대승경전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친설이 아님은 명명백백하다.
다만 대승경전에 서술된 내용이 초기 붓다의 가르침과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붓다의 친설은 아니라 할지라도 ‘깨달은 자’ 즉 제불(諸佛)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 즉 불교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아함이나 니까야도 변화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불설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마성 스님(팔리문헌연구소장)
제3 , 권오민 교수, “아함도 부파가 승인한 불설일 뿐”
불상이 성립되기 전에는 부처님의 모습 대신 법륜, 보리수,불족석(佛足石) 등으로 부처님을 표현했다.
마성 스님이 논평에서 ‘충격적’이라고 하였듯이 필자 역시 그러하였으며, 문제의 논문(「佛說과 非佛說」, 「문학/사학/철학」제17호)에서도 ‘놀라운 일’임을 거듭 밝혔다.
그러니 초기불교 전공자나 테라와다 불교에 신념을 두고 있는 이라면 말해 무엇 할 것인가.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하다는 말씀부터 올린다.
한정된 지면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마성 스님의 논평은 필자가 제시한 논거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어야 함에도 다만 개론서에 나옴직한 상식과 정의(情意)에 기댄 것이어서 반론할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고 여겼지만, 논쟁을 ‘종파적 대결’로 몰아가는 점만은 묵과할 수 없어 반론의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처음부터 그것을 경계하였으며, 그래서 논문 서두에서 대·소승 제 학파의 학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만 오늘의 우리보다는 경전성립시기에 훨씬 가까웠을 시대(대략 2~6세기)의 문헌상의 증거로만 이야기하겠다고 하였다.
필자는 제 부파 사이의 비불설의 사례를 20가지 이상 들었다.
“어떤 성문의 부파에서 전승한 경은 다만 성문이 설한 것일 뿐이다”는 『성실론』에서의 문제제기는 물론이고, 독자부(정량부를 포함하여)에서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는 무아에 관한 제경(예컨대 잡아함 제303경 등)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았다거나, 경량부가 눈 등의 5근과 색 등의 5경이 4대와 4대소조라고 설한 경(잡아함 제322경)을 유부에서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필자에게도 충격이었다. 더욱이 경량부는 경(經)을 지식의 표준(量)으로 삼는다고 표방한 부파였다.
그렇다고 필자는 승의의 자아(pudgala)를 인정하는 독자부와 정량부를 부법장(付法藏) 외도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또한 그것이 역사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정법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도 없다.
불교는 역사주의가 아니다.
유가행파(법상종)는 비록 역사상에서 사라졌지만 여래장이나 화엄을 통해 존속되고 있으며, 유부의 제법분별 또한 이후 불교교학의 토대가 되었다.
‘구사 8년 유식 3년’이란 말이 생겨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앞서 필자는 ‘불설/비불설’의 논쟁이 종파적 대결로 번지는 것을 경계한다고 하였는데, 마성 스님은 필자의 논문을 그렇게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하고 있다.
필자는 “유부의 학설이 정설인양 대변”한 적이 없으며, “비바사사(毘婆沙師)의 논증을 끌어들여 대승경전이 불설임을 논증”한 적도 없다.
다만 어느 시기 『대반열반경』의 ‘4대교법’에 근거하여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이에 따를 경우 說者는 중요하지 않다)는 등의 4의설(依說)과 “경과 율에 나타나고 법성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불설이다”는 불설의 정의가 확립되었고(문헌상으로는 유부에 의해), 그것이 무착, 세친, 청변 등의 대승논사를 비롯한 하리발마, 중현 등의 소승논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수용되었으며, 경전 또한 이에 기초하여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을 뿐이다.
또한 유부가 당시 분별설부로 알려져 있던 상좌부를 공격하던 내용을 ‘자세히’는 고사하고 한 번도 소개한 적이 없다.
아마 마성 스님은 상좌 슈리라타를 상좌부로 오인한 모양인데, 여기서 상좌는 『구사론』 상에서 ‘경량부’로 일컬어진 논사로서 세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자이다.
그리고 공격(비판)하였던 것은 상좌 슈리라타였지 유부가 아니었다.
주지하듯이 ‘아함’이나 ‘니카야’는 특정의 경명(經名)이 아니라 부파에 의해 결집 전승된 일군의 경전을 총칭하는 말로, 아함이 아함경으로 불려지게 된 것은 중국에 이르러서였다.
청변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전통’과 ‘진실’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 스님의 말대로 “상좌부 전통에서는 정법을 유지 전승하기 위해 결집했다.”
그렇다면 이 때 ‘정법’은 불교보편의 정법인가, 상좌부 전통에서의 정법인가.
스님은 계속하여 “이를 통해 비불교적 요소를 하나하나 배제시켜 나갔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상좌부 이외 부파, “유부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 ‘법성(진실)’이나 ‘정리(正理)’라는 이름 하에 결집한 불설”은 비법(非法)이라는 말인가.
오늘날에 있어 이 같은 독선적 발언이 어떻게 가능한가.
묻고 싶다. 대저 아함과 니카야는 초기경전인가, 유부 혹은 상좌부 경전인가.
결코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마성 스님은 “아함이나 니카야도 개변 증광되었고 전승과정에서 불설이 아닌 내용도 많이 포함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붓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비롯되었다’는 말과 ‘친설’은 분명 그 의미가 다르다.
필자는 논문에서 “대승경전이 친설이 아니기 때문에 비불설이라면, 아함이나 니카야 또한 친설이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불설이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제 논사들은 ‘불설(buddha vacana)’과 부파에 의해 결집된 ‘성교(聖敎, buddha ´Sa-sana 즉 아함과 니카야)’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성교는 말하자면 불설의 정의에 따라 각 부파에 의해 불법(佛法)으로 승인된 불설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아함이나 니카야는 불타친설이라기 보다는 유부나 상좌부에 의해 불법으로서 취사선택되고 편찬 결집된 불설로서, 제 부파간의 불설/비불설의 논쟁 또한 이에 따른 것이었다.
한편 마성 스님은 이러한 부파 간의 비불설 논쟁과 부파교단에서 비판한 대승 비불설론(실제 소승 논서에서는 발견되고 있지 않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자의 단순비교는 큰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필자로서는 잘 납득되지 않는다.
추측컨대 스님은 개론서에서의 진술처럼 대승과 소승을 칼로 무 자르듯이 시기적으로나 사상적으로, 혹은 교단 상으로 완전히 별개의 그룹으로 간주한 것 같다.
유부와 상좌부는 원래 동일계통이었기에 교학상의 크나큰 차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부 계통이나 정량부는 이들과는 교학체계 자체가 다르며, 유부 계통으로 알려진 경량부조차 유부와는 전혀 다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당시 불교를 전공한다는 필자도 그들의 논서(예컨대 삼미저부론, 성실론)를 읽어내기 어렵다.
유부교설(우리가 익히 아는 ‘불교기초교리’는 대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들 부파의 학설은 비법인가.
그러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당시 대중부와 정량부는 상좌부 유부와 더불어 가장 볼륨이 컸던 불교교단이었으며, 정량부가 특히 그러하였다.
그들 역시 삼장을 갖고 있었지만(현장은 그것을 갖고 오기도 하였다),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그들의 경전이 존재하였다면 대승경전에 대해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함에서 설한 18계의 ‘법계’와 여래장불교 계통의 ‘법계’는 그 자체만으로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지만, 경량부(상좌 슈리라타)를 통하면 ‘전혀 다른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부에 의하는 한, 여래는 항상 선정에 머물기 때문에 일생토록 한 말씀도 한 적이 없지만 중생들이 설하였다고 여겨 환희용약하며, 보살은 중생의 요익을 위해 스스로 악취에 태어난다.
이러한 불타관과 보살관은 유부나 상좌부의 그것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
해서 다만 현존의 아함경과 니카야에 근거하여 대승경전을 딴판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표를 던져 결정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나아가 세친도, 청변도, 중현도 제1결집은 모두 산실되었다고 전하며, 그 이후로도 무량의 경전이 은몰하였음을 증언하고 있다.(이는 필경 ‘정법의 소멸’과 관계 있다)
제1결집 또한 순탄한 것만도 아니었다.
교범파제는 율장을 결집할만한 이로 추천되었지만 이를 거절하였고(『대지도론』), 흔히 설법제일로 알려진 부루나는 결집의 추인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들은 것만을 전승하였으며(남전 율장 소품), 가섭 주도의 결집과는 별도로 대결집이 단행되기도 하였다.(『대당서역기』)
사실 제1결집에서 송출된 법 즉 경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경로를 거쳐 현존의 아함과 니카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문자로 작성되기(기원전 1세기 무렵?)까지 300여 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자 아무도 없다.
그 때는 이미 대승경전도 편찬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온갖 한계를 간과한 채 다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불교를 주어진 대로 해석하는 것은 불교학자의 소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정의(情意)와 신념에 의탁하여 당시 논사들의 증언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
제4 , “니까야 부정은 곧 불교사 몰이해”
필자의 반론문에 대한 권오민 교수님의 성실한 답변에 감사드리며, 평소 학문하는 자세나 열정과 성실함을 잘 알고 있기에 존경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려 작성한 논문을 필자가 오독한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문제의 논문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급히 읽고 반론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임을 인정한다.
이 논문의 가치는 불설/비불설 혹은 요의/불요의(유부와 대승)의 논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막연히 각 부파간은 물론 대·소승 간에 불설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논문에서 유부의 불설론은 물론 하리발마나 슈리라타 및 무착·세친·청변의 불설론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밝힌 점은 높이 평가한다.
만일 여기서 논문을 끝내고 사족을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필자가 반론을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논자는 반론문에서도 이 논문이 ‘종파적 논쟁’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그러나 논자의 주장 자체가 종파적 논쟁이다.
오늘날 학자들의 논문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불설/비불설을 간택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온갖 학문적 방법론을 동원해 붓다의 바른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설/비불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논문에서 불설/비불설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상, 이 문제는 결국 종파적 신념을 초월할 수 없다.
논자는 반론문에서 역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승단에서는 법맥이 어떻게 전승되었는가에 따라 정통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생명줄과 같다.
현재 상좌불교에서 단절된 비구니 승가를 복구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교단사를 무시한 연구는 철학적으로나 사상사적으로는 중요할지 모르나, 승단의 전승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승단이 단절되면 종교로서의 불교는 소멸되고 말기 때문이다.
논자는 “당시 논사들의 증언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이 불설이라고 주장했던 논리적 근거는 타당했는가.
전통을 계승한 상좌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불설의 근거로 삼았던 잣대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두 가지 잣대만 제시하고 있지만, 후술할 세 번째 잣대는 전통성에 대한 기준이 된다.
첫째, 불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원래의 잣대는 ‘사대교법(Mah?padesa)’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사의(四依)를 추가함으로써 기준이 되는 잣대를 변경시켰다.
그래야 불설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팔리본 『대반열반경』에서는 ‘경에 포함되고 율을 드러내면 불설이다’였지만, 유부 『대반열반경』에서는 ‘경에 포함되고 율을 드러내며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이다’로 잣대를 약간 수정한다.
나중에는 다시 이를 근거로 사의를 추가하게 되었다.
둘째, 상좌부를 제외한 제 부파와 대승에서는 ‘불설(佛說)과 성교(聖敎)’를 엄격히 구분했다.
이것도 앞의 경우와 동일하다.
그래야 이를 근거로 법성과 정리에 합치하기 때문에 불설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좌부에서는 처음부터 ‘불설과 불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팔리어 ‘붓다와짜나(Buddha-vacana)’는 ‘붓다의 말씀’(佛說, the word of the Buddha)이고, ‘붓다사사나(Buddha-s?sana)’는 ‘붓다의 가르침’(佛敎, the teaching of the Buddha)이다.
즉 불설이 곧 불교라는 뜻이다.
그런데 후대에 Buddha-s?sana(佛敎)를 성교(聖敎, Skt. buddha-??sana)로 변경시키고, 여기에 아함이나 니까야를 포함시킨다.
팔리어 대문자 Buddha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불을 뜻하지만, 소문자 buddha는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상좌부 전통에 의하면, “붓다 재세시 그의 가르침은 Buddha-vacana, Buddha-s?sana, Satthu-s?sana(스승의 가르침), S?sana, Dhamma와 같이 여러 가지로 알려져 있었다.” (Walpola Rahula, 『One Vehicle for Peace』 참조)
이와 같이 ‘붓다와짜나’와 ‘붓다사사나’는 원래 같은 의미로 쓰였다.
상좌불교에서는 지금도 불교를 ‘붓다사사나’로 부르고 있다.
‘불설과 성교’를 구분한 자체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의 상좌불교에서는 팔리문헌을 정전(正典)과 비정전(非正典)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전(canon)은 붓다로부터 전승된 정법이라는 뜻이고, 비정전은 불제자들이 불설을 재해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결집과 마찬가지로 정법을 고스란히 전승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교단사적으로는 파승(破僧, sanghabheda)의 정의가 잣대가 된다.
파승은 승단의 분열을 말한다.
붓다는 파승을 오역죄에 포함시켰다.
승단의 분열은 정법의 소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래의 상좌부를 제외한 다른 부파에서는 교리적 논쟁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분열의 명분 혹은 파승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첫째와 둘째의 잣대는 불설/비불설 혹은 정법/비법에 관한 논쟁이었다면, 셋째의 파승은 전통/비전통의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단사적으로는 세 번째 잣대가 가장 중요하다.
‘테라와다(Therav?da, 上座部)’는 글자 그대로 ‘장로들의 정교(正敎)’라는 뜻이다.
즉 불멸 후 제1결집을 주도했던 500명의 장로들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붓다의 적자’임을 자부하고, 2,500년 동안 단절 없이 전통을 계승해왔다.
그들은 파승으로 떨어져 나간 다른 부파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상좌부가 부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좌부 장로들은 그러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전통을 고수했다.
역사적으로 상좌부의 계맥이 단절되었을 때, 다른 나라의 장로를 초빙하여 계단을 복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소승 논사들은 상좌부를 여러 부파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자기 부파나 대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을 계승한 쪽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반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반론 자체가 없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전통을 고수한 원래의 상좌부만 살아남고, 다른 부파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따라서 니까야의 불설/비불설 논쟁은 상좌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논자는 ‘아가마(?gama, 阿含)’와 ‘니까야(Nik?ya, 部)’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엄격히 말해서 ‘아가마’와 ‘니까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니까야는 상좌부에서 전승한 것이고, 아가마는 유부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 전승한 것이다.
부파 간에 불설/비불설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아가마와 니까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자는 아가마와 니까야를 같은 분류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 자체가 상좌부의 전통성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논자는 필자가 대승을 모른다고 혹평하고 있지만, 대승의 근원은 붓다에까지 소급된다.
붓다의 ‘전도선언’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라는 대목은 대승의 이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단사적으로 말하는 대승교단(보살가나)는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불교였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부파교단 내에서의 불설/비불설의 논쟁과 부파교단과 보살가나와의 논쟁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현재의 조계종은 상좌부에, 군소종단은 부파교단, 전통과는 계통이 다른 원불교는 대승교단(보살가나)에 해당될 것이다.
끝으로 논자가 반론문에서 지적했듯이 초기경전의 전승과정에 대해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대승불교와 대승경전의 성립 과정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논자는 그러한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현존하는 니까야가 불설이 아니라고 단언적으로 선언한 학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논자 스스로 논리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마성 스님(팔리문헌연구소장)
제5 , 권오민 교수, “니카야만 불설 주장은 맹목일 뿐”
정말이지 명색이 학자라는 이가 이런 식의 논쟁에 명함을 내밀어야 하는지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이라는 권위를 빌려 다만 그럴 듯한 말로써 독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성 스님의 반론에 다시 재반론한다.
먼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필자는 문제의 논문(「불설과 비불설」, 『문학/역사/철학』 제17호)을 아함과 니카야가 비불설임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불설’이 아니라고 단정한 일도 없다.
필자가 그 논문을 쓰게 된 동기는 불교사에서 사라진 논사인 경량부의 상좌 슈리라타(Śrīlāta)의 학설을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현의 『순정리론』을 통해 재구하는 중에 그가 설일체유부에서 제시한 아함경설에 대해 빈번히 비불설론을 제기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유부 측의 대응을 탐색하던 중에 다양한 문헌적 변천과정을 거쳐 불설의 정의와 4의설(依說)이 생산되고, 이에 근거하여 불설의 취사(取捨) 개폐(開閉)와 더불어 새로운 경전이 찬술되었으며, 나아가 대․소승의 여러 논사들의 불설론의 초석이 되었음을 알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즉 필자는 평소 “역사적으로는 비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진정한 불설”이라는 우리학계의 대승 불설론의 논거가 너무나 허약하다고 생각하였기에(이를 역으로 말하면 “소승경은 역사적으로는 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비불설”이라는 이상한 판단으로 변질될뿐더러 소승에서는 대승의 사상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족(蛇足)’에서 단 한번 “대승경이 친설이 아니기 때문에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 또한 친설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필자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불설/비불설 논쟁은 맹목의 논쟁일 뿐이다.
그러한 논쟁은 구호나 선전에 근거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것일뿐더러 폐쇄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불설/비불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한다.
불교는 결코 교조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열려있었으며, 진실(법성)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중략)--그들은 결코 ‘역사’에 근거하여 불설/비불설을 논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불설/비불설의 기준은 정리(正理)였고 법성이었다.
아함(āgama, ‘전승되어 온 것’이라는 뜻)은 전통이었지만, 역사적 사실로서의 ‘불설(즉 친설)’은 아니었다.
이는 당시 초기 부파불교에서도 인정한 바였다.”
예컨대 중현은 “상좌 슈리라타는 잡아함 제322경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결집에 포함된 것(혹은 聖敎=아함)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거나 “전승한 교법에 따라 서로의 경을 부정하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하리발마는 “어떤 성문의 부파에서 [전승한] 경은 다만 성문이 설하였을 뿐이다”는 물음에 대해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지도 않았으며, “그렇다. 저들의 경은 모두 가짜이다”고 부화뇌동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러한 법의 근본은 다 불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들은 모두 불타의 말씀을 전하였을 뿐이다”고 말하고서 비나야 즉 율장을 논거로 제시하였으며, 『대지도론』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 비록 어투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현존 팔리율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율장에서 불설에는 불타가 설한 것뿐만 아니라 성문․선인․천․변화인이 설한 것도 있음을 전하고 있다.
헌데 마성 스님은 상좌부의 니카야는 아함을 포함한 저들의 경전과는 위상이 다르다고 말한다.
아니 상좌부는 ‘부파’가 아니라고 말한다.
상좌부는 교단사적으로 정통이기 때문에 성교(Buddha sasana=니카야)가 바로 불설(Buddha vacana)이고, 정법이라고 말한다.
아함과 니카야를 동류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상좌부의 전통성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테라와다(上座部)는 글자 그대로 ‘장로들의 정교(正敎)’로서 불멸 후 제1결집을 주도했던 500명의 장로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서 “이들은 스스로 ‘붓다의 적자’임을 자부하고, 2,500년 동안 단절 없이 전통을 계승해왔다”고 단정짓고 있다.
상좌불교의 전도용 팜플렛에나 나옴직한 이 같은 말이 어떤 인도불교사에 기술되어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러한 발언은, “여호와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모두 사교이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참으로 무례한 발언인가?
비록 댓글이기는 하지만 ‘대승경전을 모아 불지를 것’이라는 극단적이고도 독선적인 발언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도대체 니카야(nikaya)가 무슨 뜻인가?
‘부파’라는 뜻 아닌가?
부파에서 전승한 경전을 의미하지 않는가?
세친은 『구사론』에서 독자부가 전승한 경전을, 『석궤론』에서 18부파나 부파에 의해 결집된 경전을 ‘니카야’라고 부르고 있다.
니카야는 각각의 부파에 의해 불법(buddha sasana, 교법)으로 승인된 불설(buddha vacana, 말씀)의 모음집으로(팔리어에 대문자 소문자가 있다는 말도 금시초문이다) 각 부파의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어떤 부파든 자신들이 채택한 불설을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혹여 독자들께서는 ‘불설(혹은 불교)’이나 ‘불법’은 다 그게 그것이지 무슨 말장난하고 있느냐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불법은 부파에 의해 규정된 교리나 신조(sasana)이기 때문에 다만 불타의 말씀을 의미하는 ‘불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두 말의 차이를 간과한다면 앞의 중현의 말도, 『대지도론』의 “그대들이 들은 것은 불법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다”고 비난한 비구 복색의 마구니의 말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불법’은 마구니가 채택한 교리이고, ‘불교’는 통상의 불타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부파에서 전승한 ‘불설’은 어떤 것인가?
『대반열반경』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어떤 비구가 어떤 법문(경․율․교법)을
① 불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② 대다수 박식한 장로들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③ 경과 율과 논모(論母, 주석)를 지닌 다수의 비구로부터,
④ 혹은 그러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그의 말을 잘 듣고 단어와 문장을 잘 파악한 다음 경에 포함되어 있는지 율에 나타나는지를 검토하여,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불설로 판단하여 버려야 하고, 그러하다면 불설로 취해야 한다.”(각묵 스님 역, 『디가니까야』2에서 발췌)
이른바 4대교법(大敎法,mahā apadesa)이라 일컬어진 이 법문은 이후 개개인에 의해 수지 전승된 스승의 교법을 불설로 확정짓는 기초가 되지만, 이에 따르는 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들은 것도 경과 율에 부합하면 불설로 취해야 하고, 불타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한 것조차 비불설로 배척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설자(說者)가 아니라 경을 관통하는 정신 즉 ‘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범본 『대반열반경』이나 『유부비나야잡사』에는 이 법문에 앞서 “경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 설해지며, 마침내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밖으로 드러난 말에 의지하지 말고 거기에 담긴 뜻에 의지하라, 언어를 매개로 한 상대적 인식(識)에 의지하지 말고 통찰의 직관지(智)에 의지하라, 그 뜻이 애매하거나 부실한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경에 의지하라”는 4의(依)가 성립한다.
헌대 마성 스님은 상좌부에서는 4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비담마를 승법(勝法,dhammavisesa)으로 이해하는 상좌부에서. 그렇다면 4대교법은 어찌 인정하는가?
불설의 취사선택과 편찬은 부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유부비나야잡사』에는 “[각각이 전승한] 교법에는 진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대비바사론』에는 “불멸 후 어떤 이들은 수트라(經) 중에 거짓된 수트라를 안치하였다”고도 하였다.
파승(破僧)에 관한 언급 또한 반론은커녕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佐々木閑, 이자랑 역, 『인도불교의 변천』)에 따르면, 파승의 정의가 어떤 시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법륜(정법)의 파괴(破法輪僧)에서 갈마의 파괴(破羯磨僧, 동일교구 안에서 2部의 승가가 포살과 갈마를 별도로 시행하는 것)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교리를 달리하는 각각의 부파가 갈마를 함께 시행함으로써 하나의 불교승단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바야흐로 부파불교가 성립할 수 있었고, 대승불교 또한 이 같은 계기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자신들만이 정통이라 주장하는 상좌부에서의 파승의 정의는 무엇인가?(스님은 ‘승가의 분열’로 정의한다. 咄!)
과연 상좌부에서는 스님의 말처럼 파승으로 떨어져나간 다른 부파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정말 그러하였다면 상좌부는 대단히 고립적이고 독선적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앞의 연구에 의하면 그 반대이다.
헌데 “비유하면 조계종은 상좌부에, 군소종단은 부파교단에, 전통과는 계통이 다른 원불교는 대승교단(보살가나)에 해당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무슨 근거로 그같이 말한 것인지 참으로 신통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다.
부파(성문)교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보살가나’라고 하는 것도 히라카와(平川彰)가 제시한 개념으로 생각되는데, 이 또한 앞의 사사키 시즈카를 비롯한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상좌부가 전승한 니카야만이 불설이고 정법이며, 정통불교라는 맹목의 폐쇄적 신념에 기초하는 한 당시 제 논사들의 불설론도, 필자의 ‘사족’ 한 마디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성 스님의 재반론의 핵심은 “필자의 논의가 상좌부의 정통성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필자는 전도사도 종파주의자도 아니기에 어떤 ‘논리의 함정’에 어떻게 빠졌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님이야말로 새로운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구호’나 ‘선전’은 현실의 불교에서 전도를 위해 응당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불교학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근간 『불교학과 불교』에서 누차 강조하였지만, 이와 더불어 불교학도의 글 쓰기 문제점이나 인도불교사에 관한 몇 가지 근원적이고도 강고한 선입견, 사료를 취급하고 획득하는 방법 등 못다 한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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