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 지키지 않는 당신들이 외부세력, 불교적폐청산이 곧 사회적폐청산
프레임(frame)이란
영어로 프레임(fra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틀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테두리에 가둔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프레임, 구조, 틀, 액자, 테두리’를 의미하지만 놀랍게도 또 다른 의미로 ‘(미속어) 남을 모함하기, 함정에 빠뜨리기’라 설명되어 있습니다.
프레임은 정치적 용어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할 때 상대방을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는 것입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폭력을 유발하여 집단 전체를 폭력집단으로 묶어 놓아 행동의 제약을 가하는 ‘폭력프레임’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프레임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라 볼 수 있는 ‘(미속어 남을 모함하기, 함정에 빠뜨리기’라 볼 수 있습니다.
“명진, 외부세력 끌어들여 종단 뒤엎으려 하나” 이 말은 법보신문에서 타이틀로 단 기사제목입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지현스님은 2차 사부대중공사에서 현재 조계사일주문앞 피켓팅과 보신각광장촛불법회, 그리고 우정공원에서의 명진스님 단식에 대하여 외부세력이 개입되었다고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것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개최된 대중공사에서 결의문으로 채택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조계종 총무부장 지현스님에 따르면 “제적을 당한 명진 스님이 불교와 아무 상관없는 목사, 신부, 노조 등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종단의 중진스님들을 적폐라 부르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 “종단 내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종헌종법 질서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하고 외부세력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존과 공감 의식이 떨어지는 것이자 부처님 법에 확신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 본 견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과 반대 되는 세력은 모두 외부세력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부세력프레임으로
지현스님으로 대표되는 총무원측에서 대반격에 나섰습니다. 보신각 촛불법회가 갈수록 대형화 되고 명진스님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임과 함께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마치 보수기득권 세력들이 위기 닥칠 때 마다 안보를 강조하고 반대편을 향하여 ‘친북프레임’에 가두려 하듯이, 현재 조계종 기득권 세력들은 반대편을 향하여 ‘외부세력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교도프레임’까지 씌우려 합니다.
기득권층에서는 명진스님과 친분 있는 노농운동가, 목사, 신부 등이 한국불교를 뒤집어 엎으려 한다고 합니다. 명진스님을 돕는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교도프레임을 걸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매우 치사하고 치졸한 것입니다. 그들이 못한 것을 명진스님이 한 것입니다. 용산참사현장, 세월호농성장, 쌍용자동차해고자농성현장에서 명진스님이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무려 30년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어느 노동운동가는 기고문에서 의리를 강조하며 “이제 우리가 손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30년 넘게 우리 손을 잡아 줬던 명진스님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 아닐까.”라 했습니다.
명진스님의 외부세력 정의
현재 한국불교에서는 프레임전쟁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단적폐청산을 바라는 세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간의 한판 싸움입니다. 현재 기득권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자승원장 측에서는 무자격자프레임, 외부세력프레임, 이교도프레임으로 가두어 두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사람이 명진스님일 것입니다. 명진스님은 외부세력프레임에 대하여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외부세력이라고 조계종에서 공격하면, 일체에 불성이 있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 안과 밖이 어딨으며 외부세력이 무슨 말이냐. 부처님이 언제 외부세력 내부세력 갈랐냐.종단의 주장은 부처님 말씀을 어기는 거고 불법을 모르는거다. 불이(不二) 너와 내가 없고. 자타일시성불도 너와 내가 함께 성불하자는 게 부처님법이다. 전두환 때부터 쭉 내려왔던 ‘제3자개입’과 똑같은 소리를 조계종이 하고 있다.”
(명진스님, 불교닷컴 2017-08-27)
명진스님이 단식현장을 방문한 추혜선 정의당 국회의원에게 한 말입니다. 명진스님은 외부세력에 대하여 나름대로 명확하게 개념정의를 했습니다. 일체중생에게는 불성, 즉 부처가 될 성품이 있기 때문에 인연만 닿으면 모두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에 따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모래 위에 부처님 형상만 그려도 그 인연으로 언젠가 먼 훗날 성불할 것이라 했습니다. 또 술취한 자가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라며 횡설수설해도 그 인연으로 언젠가 성불할 것이라 했습니다. 지금 불교를 믿지 않는 자라 하더라도 합장 한번 한 인연으로 성불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교도라 하더라도 명진스님 단식현장을 다녀 간 인연으로 언젠가 성불할 수 있습니다.
명진스님은 외부세력에 대하여 ‘불이(不二)사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 합니다. 그들이 설령이 부처님 가르침을 모른다 할지라도 모두 제도해야 할 중생임을 말합니다. 이를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 했는데 이 말은 나와 남이 동시에 성불하기를 발원하는 말입니다.
자타일시성불도라는 말은 칠정례에서 유래합나다. 마지막 발원이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원공 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熏加被力 願共 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입니다. 이 말은 모두 다 함께 성불하자는 발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불자이건 아니건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큰 원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발원은 금강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금강경 대승정종분에서 “소유일체 중생지류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생 약무색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비무상 아개여입 무여열반 이멸도지 여시멸도 무량무변 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라 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태생, 모든 습생, 모든 화생 등 사생과, 지옥 등 육도, 그리고 삼계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자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다만 ‘내가 있다’는 아상(我相)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조계종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과 반대편에 섰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두 외부세력이라 하여 외부세력프레임으로 가두어 두려 하고 있습니다.
허정스님 페이스북 글에서
조계종 총무원 자승종권측은 무자격자프레임, 외부세력프레임, 이교도프레임에 대한 시동을 걸었습니다. 소위 여당지라 불리우는 불교신문과 법보신문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원로의원 스님들 모임에서 외부세력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를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외부세력프레임은 시민사회단체를 겨냥한 것이기도 합니다. 명진스님의 단식현장을 찾는 각계각층의 명망가들은 그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종단을 뒤엎으려는 외부세력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나 명망가들 중에는 타종교인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크게 부각하여 이교도들이 종단을 뒤집어 엎으려 한다고 이교도프레임에 가두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외부세력프레임과 이교도프레임에 대한 대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이에 허정스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명진스님은 한국불교에서는 특이하게도 종교를 초월하여 보살의 삶을 살아오신 까닭에 명진스님을 걱정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명진스님을 찾아오고 지지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진스님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오셨는가를 증명해주는 증거들로서 마땅히 찬탄해야 하는 일 임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은 명진스님을 가슴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외부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불교내부의 문제를 간섭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박한 인식은 그들이 가진 불교관이 얼마나 얇은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부처님이라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실까요?
부처님이 깨달았을 때 모든 사람은 외부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부세력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려 했다면 지금의 불교가 있었을까요? 중생무변서원도라는 사홍서원의 큰 뜻은 다 어디에 두고 그들은 외부세력이라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처님에게 육사외도를 비롯한 모든 외부세력은 만나서 교화해야할 대상이었지 배척하고 멀리해야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 제자중에 외부세력이 아니었던 자들이 있었습니까?”
(허정스님, 페이스북)
허정스님은 사홍서원에서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들어 외부세력프레임과 이교도프레임을 부수고자 합니다. 여기서 중생이라하면 불교인 뿐만 아니라, 사생, 육도, 삼계의 모든 중생을 말합니다. 이교도도 중생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가르침과 인연이 되지 않아 이교도로 살고 있지만, 가르침과 인연이 되면 모두 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외부세력프레임을 건다면 반대편에 서는 스님들도 외부세력이고 재가불자들도 외부세력이 될 것입니다..
오계를 지키지 않는 당신들이 외부세력
한국불교는 자정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마치 뿌리가 썩은 보리수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면 갈수록 쇠망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부 비구승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테라가타에서는 “어떤 자들은 머리를 깍고 가사를 걸쳤으나, 이득과 명예에 빠져 공경을 받는 것만을 원한다.”(Thag.944)라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불교를 꼭 집어 내어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과 반대편에 서면 모두 외부세력이 됩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스님들도, 개혁을 바라는 재가불자들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외부세력입니다. 그런데 명진스님을 응원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하여 외부세력이라 하고 더구나 이교도들이 불교를 뒤집어 엎으려 한다고 마치 고장난 녹음기 틀어 놓은 것처럼 기회만 되면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외부세력입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자들, 부처님 계율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 외부세력이기 때문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반이 되면 보신각광장에서는 촛불법회가 열립니다. 지금까지 5차까지 진행되었는데 광장이 가득 찰 정도가 되었습니다. 천명이 넘는 불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적폐청산’입니다. 불교적폐에 대해서는 용주사은처승문제, 마곡사돈선거 문제 등 10문 10답 형식으로 정리 되어 있습니다.
불교적폐청산이 곧 사회적폐청산
불교적폐 10문 10답을 보면 현 자승종권은 외부세력이자 외도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것은 인과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인과법을 무시하는 자들을 불교인이라 볼 수 없습니다.
적광스님을 폭행하는 것은 오계에서 불살생계를 어긴 것입니다. 살인하지 않았어도 폭력을 행사하면 불살생계를 어긴 것으로 봅니다. 자승원장은 총무원장 재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쉽게 번복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불망어죄입니다. 제2교구 본사 용주사에는 처자식이 있는 은처승이 살고 있습니다. 자승총무원장 역시 은처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호계위원은 딸 같은 신도의 딸을 성폭행하여 아기를 출산하게 했습니다. 불사음죄입니다. 불교신문 사장으로 내정된 스님은 마곡사 인근 연수원에서 밤샘술판을 벌인바 있습니다. 불음주계를 어긴 것입니다. 자승종권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오계를 어긴 범법자집단입니다. 오계를 지키지 않는 자들이 외부세력이고 외도들입니다.
불교인들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불교적폐청산이 곧 사회적폐청산이라 합니다. 불교적폐청산과 사회적폐청산이 다르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는 현재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불교를 불교답게 부처님 가르침과 계율로 살아 가게 만드는 것이 불교적폐청산입니다. 불교적폐청산이 곧 사회적폐청산입니다. 그러나 한국불교 권승들은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행위에 대한 두려움
“사소한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율을 받아 배웁니다.”(D2) 이 말은 디가니까야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다름 아닌 ‘행위의 두려움’에 대한 것입니다. 의도적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이전에 지은 업(因)이 조건(緣)을 만나면 반드시 과보(果)를 낳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기법이고, 인연법이고, 인과법이고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비구에 대하여 “윤회에서(samsare) 두려움을(bhayam) 보기(ikkhati) 때문에 비구(bhikkhu)라 한다.”(Vism.1.7)라 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행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맛지마니까야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경’에서는 “존재에서, 나는 두려움을 보고 없는 것을 추구하려는 존재에 대하여 나는 그 존재를 긍정하지 않고 어떠한 환희에도 집착하지 않았네.”(M49)라 했습니다. 윤회의 두려움은 행위의 두려움이자 동시에 존재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행위함으로 인하여 업을 유발하였을 때 조건(緣)을 만나면 언젠가 익어서 존재로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보노라 (Bhavevāhaṃ bhayaṃ disvā)”라 했습니다. 인과법을 모르는 자들이 외부세력입니다.
외부세력에 장악된 불교
행위의 두려움, 존재의 두려움, 윤회의 두려움을 아는 자라면 계행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특히 모든 것을 버리고, 버려야 겠다는 마음까지 버리고, 마치 세상에서 죽은 자처럼 출가한 자들이 오계도 지키지 않고 구족계도 지키지 않는 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삭발하고 회색승복 입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틀림업는 스님입니다. 그런데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드르하여 탐욕이 가득하고, 너무 잘 먹어서인지 뒤뚱뒤뚱 걷는다면 겉보기에도 수행자가 아닙니다. 더구나 폭력을 행사하고 거짓말을 하고 은처행위를 하고 술을 마시는 등 오계를 어긴다면 일반사람들의 도덕적인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부처님은 계행을 지키지 않는 비구들을 몰아 내라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척 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대들은 화합해서 그러한 사람을 물리치고, 쌀겨처럼 그를 키질하여 쓰레기처럼 날려 버려라.”(stn281)라 했습니다. 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 사람을 쫓아내라. 수행승들이여, 이 사람을 쫓아내라. 수행승들이여, 이 사람을 멀리해라. 왜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A8.10)라 했습니다. 불자들도 계행을 지키지 않은 비구들을 쫓아 낼 수 있습니다. 계행이 엉망인 비구에게 “존자여, 존자 담미까는 이 처소를 떠나주십시오.”(A6.54)라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권승들에게 있어서 구족계는 단지 통과의례일 뿐입니다. 수 백 가지 항목의 비구계를 지키지 않는 자를 스님이라 볼 수 없습니다. 반승반속의 무리들입니다. 그리고 큰도둑의 무리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요직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면 승속을 막론하고 외부세력이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외부세력은 오계와 구족계를 지키지 않는 자들입니다. 폭력을 행사하고 거짓말을 하고 음란행위를 하고 술을 마시는 등 큰도둑들이 외부세력입니다. 그리고 인과법을 모르는 자들이 외부세력입니다. 한국불교는 외부세력과 외도들에게 장악되어 있습니다.
자승원장은 협잡꾼(Monkey Business)
시대를 막론하고 못된 비구는 꼭 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악행을 일삼는 비구가 있었습니다. 테라가타에서는 “사기꾼들, 협잡꾼들, 위증자들, 파렴치한들이니, 그들은 많은 수단을 동원하여 물질적 이익을 취한다.”(Thag.940) 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자승종권이 딱 이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협잡꾼이라는 말은 빠알리어로 ‘vañcanika’라 합니다. 영어로는 ‘deceiving; a cheat’의 뜻입니다.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자승원장을 협잡꾼이라 합니다. 이는 2013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자승원장에 대하여 ‘몽키비즈니스’라고 보도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승 스님은 최근에 사과하는데 능숙해졌다. 지난해 8명의 원로(senior) 승려들이 호텔방에서 술 마시며 담배 피우며 크게 돈을 걸고 포커 도박판을 벌인 것에 대해 대한민국 최대 불교종단의 리더 자승 스님은 108배 참회정진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자승 스님이 사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승 스님은 연임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자승 스님은 9월 16일 뒤늦게 총무원장 선거에 뛰어들었다(주: 9월 16일은 후보등록 마지막 날). 그리고는 출마하는 것에 대해 재빠르게 사과했다.’
( 英 이코노미스트 ‘한국불교, 몽키 비즈니스’ 보도, 불교닷컴 2013-10-05)
자승원장은 은처의혹에서부터 도박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2013년 당시 돈 많은 고위직 승려들의 도박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 되었습니다. 위기에 몰린 자승원장은 108배 하며 참회 했습니다. 총무원장 재임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습니다. 약속을 어기고 또 다시 총무원장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아바타’를 내세워 수렴청정 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세속에 물든 자승원장에게 ‘협잡꾼(Monkey Business)’같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을 예견한 빠싸리야존자의 26연시
협잡꾼 같은 자들이 종단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불자들이 3백만명 빠져 나가고 한국불교가 쇠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서 무능하고 부적격자가 CEO로 오래 앉아 있으면 도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듯이, 협잡꾼 소리 듣는 자승원장 8년은 쇠락의 길로 갔습니다. 불자수 3백만명 빠져 나간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아바타를 내세워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반대편에 서면 모두 외부세력이 됩니다. 그러나 오계를 지키지 않은 그들이 외부세력입니다. 비구계를 지키지 않는 반승반속의 협잡꾼들이 외부세력입니다. 테라가타에서는 오늘과 같은 상황을 예견해서일까 이천 수 백년 전에 빠라싸리야존자는 긴 26연시를 남겼습니다.
“세상의 수호자이신
위없는 님께서 살아 계실 때,
수행승들에게 위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변하여 달라 보인다.”
“찬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
알맞은 분량만을 먹었고,
어떠한 것에도 만족하였다.”
“맛있는 것이든 거친 것이든
적은 양이건 많은 양이건
탐욕을 여의고 미혹을 여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었다.”
“번뇌의 부숨을 열망했을 뿐,
생활의 필수품이나
약품이나 그 밖의 물품에 대해서도
그들에게는 강한 열망이 없었다.”
“숲속에서, 나무 밑에서,
협곡에서, 그리고 동굴 속에서
멀리 여읨을 닦으며
그것을 궁극으로 지냈다.”
“겸손하고, 부양하기 쉽고,
온유하고, 완고하지 않았고,
혼탁을 여의고, 수다를 여의고,
의취에 맞는 사유를 지향했다.”
“그래서 걷고, 식사하고,
행동하는 것이 경건하였고
위의가 유연하여
기름이 흐르는 강과 같았다.”
“일체의 번뇌를 부수었던
위대한 선정자이자 위대한 요익자였던
저 장로들은 소멸에 들었으니,
지금은 그러한 님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착하고 건전한 것들과
지혜가 파괴되어,
일체의 수승한 형태를 갖춘
승리자의 교법이 무너졌다.”
“악하고 불건전한 것과
오염의 시대가 되었으니,
멀리 여읨을 정립한 님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오염은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
어리석은 자들은 희롱하니, 생각건대,
나찰이 광인을 희롱하는 것과 같다.”
“오염에 사로잡혀
사람들은 오염의 토대 속에서
여기저기 달린다.
전쟁터에서 외치며 달리는 것과 같다.”
“올바른 가르침을 버리고
그들은 서로가 싸우니,
삿된 견해를 쫓아서
‘이것이 더욱 낫다.’라고 생각한다.”
“재산과 자식 그리고
아내를 버리고 출가하고도
한 웅쿰의 탁발음식 때문에
그들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추구한다.”
“배부르게 먹을 뿐 아니라
그들은 등을 대고 눕고
깨어서는 이야기를 즐기니,
스승께서 꾸짓은 것들이다.”
“온갖 기예자의 손재주를
중요시해서 그들은 배우니,
그들에게 내적인 안정이 없지만,
그것이 수행자의 의취인 셈이다.”
“진흙, 기름 그리고 분말,
또한 물과 자리와 음식을
재가자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은 더욱 많은 것을 바란다.”
“이쑤시개, 까삣따 열매,
그리고 꽃, 먹을 만한 것들을
가득 찬 발우음식과
망고 열매와 미로발란 열매를 준다.”
“의약에 대해서는 의사와 같고,
여러 할 일에 대해서는 재가자와 같고,
치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녀와 갖고,
권위에 대해서는 왕족과 같다.”
“사기꾼들, 협잡꾼들,
위증자들, 파렴치한들이니,
그들은 많은 수단을 동원하여
물질적 이익을 취한다.”
“온갖 핑계를 도모하여
수완과 술책으로 내달리며,
그들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모임을 자주 갖지만
일을 위한 것이지 가르침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은 남에게 가르침을 설하지만,
이득을 위한 것이지 의취를 위한 것이 아니다.”
“승단으로부터 밖에 살지만,
승단 내의 이익과 관련하여 싸우고,
그들은 타인의 소득으로 살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창피함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자들은
머리를 깍고 가사를 걸쳤으나,
이득과 명예에 빠져
공경을 받는 것만을 원한다.”
“이처럼 병폐가 생겨났으니,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거나
성취한 것을 수호하는 것은
이제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신발을 벗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듯,
그와 같이 성자라면
새김을 확립하고
마을에서 마을로 유행해야 하리.”
“예전의 수행자들을 새기고
그들의 실천을 새겨서,
가령 최후의 시간이 왔더라도,
불사(不死)의 경지에 닿아야 하리.”
(테라가타, 빠싸리야존자 Thag.921-947, 전재성님역)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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