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으로, 제5차 8.24 목요촛불법회
매주 목요일 저녁에
매주 목요일 종각행 1호선 전철을 탑니다. 명학역에서 타면 약 55분 가량 걸립니다. 목적지는 조계사일주문입니다. 조계종총무원장직선실현과 적폐청산실현 피켓팅 현장입니다. 5월 22일 이후 매일 피켓팅이 열리는 곳입니다. 주말도 없습니다. 도착하니 낯익은 현장활동가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피켓팅현장에 도착하면 우선 인증샷부터 찍습니다. 일종의 신고식입니다. 누구나 오가는 사람은 피켓들고 인증샷 찍을 수 있습니다. 카톡이나 밴드에 올려서 공유하는데 서로 유대를 강화 하는데 그만입니다. 다음 장소는 우정공원입니다. 명진스님이 단식하고 있는 곳입니다.
새로운 천막이 처지고
벌써 8일째입니다. 지난주 8.17 목요촛불 때 단식을 선언한 이후 꼭 일주일 되었습니다. 사람이 한끼만 먹지 않아도 허기져서 죽을 듯 하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벌써 8일째가 되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한 단식입니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불자들과 명망가들이 줄을 잇습니다
단식현장 우정공원에는 또 하나의 천막이 쳐졌습니다. 동조단식자들을 위한 천막입니다. 효림스님과 대안스님이 8.24 촛불법회 날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기 때문에 준비한 것입니다. 우정공원 앞 마당에는 현재 세 동의 천막이 쳐져 있습니다.
타블로이드판 전단지 등장
회수가 거듭될수록 목요촛불도 진화되는 듯 합니다. 이번에는 타블로이드판 전단지가 등장했습니다. 특보라 하여 마치 신문처럼 보이는 전단지로서 8면에 현재 활동상황과 심층보도 형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발행인은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허태곤-신학림 공동대표’로 되어 있습니다. 이날 4천부가 발행 되었습니다. 촛불법회 참여자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여름밤 도심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6시 반이 되면 보신각광장에서는 촛불법회가 열립니다. 일종의 촛불잔치라 볼 수 있습니다. 더위의 열기가 가긴 한여름밤 도심 광장에서 한바탕 축제가 벌어집니다. 공식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식전 행사로서 초청가수의 흥겨운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행사를 위하여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승OUT’조끼를 입고 장내 정리와 질서를 유지합니다. 봉사자들은 자리를 깔고, 깃발을 세우고, 촛불을 나누어 줍니다. 이날 처음으로 떡이 등장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떡을 나누어 줍니다. 이날 백설기 500개가 준비 되었습니다.
돈받고 참가했다고?
촛불참가자들은 대부분 자발적 참여자들입니다. 그 중에는 현장활동가들의 설명을 듣고 참가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계사일주문 앞에서 활동하고 있는 법우님은 조계사를 출입하는 불자에게 30분 가량 설명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설명 들은 불자를 보신각광장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힘들게 설명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돈받고 참가한 것 아니냐?”라며 의심한다고 합니다. 일당 받고 피켓팅하고, 일당받고 광장에 나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단 한사람도 돈 받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자발적 참여자들입니다. 일주문 앞에서 설명을 듣고 참여하고, 전단지를 보고 참여하고, 교계신문을 보고 참여하고, 에스엔에스를 보고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작년 광화문촛불이 그랬던 것처럼 불자들은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먼 길을 마다 하지 않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주 천명 이상 참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설령 단체로 참여해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모든 행사는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물리치고
촛불참여자 중에는 스님들도 많습니다. 많으면 40여명이고 보통 20여명 됩니다. 그런데 총무원에서는 참가한 스님들에게 갖은 협박을 가한다고 합니다. 스님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 호법부스님들이 찾아 와서 신상을 파악하고 사진을 찍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스님들의 참여가 저조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모자와 마스크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비구니스님들은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24촛불을 앞두고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8.24 목요촛불에 참석하겠다는 문자입니다. 천리 떨어진 곳에서 오시는 수좌스님입니다. 하안거 때 스님의 선원 불자들과 대중공양에 참석한 바도 있습니다. 이런 스님에게도 호법부에서 조사가 들어가고 불이익 줄지도 모릅니다.
자승종권과 반대편에 서 있으면 조롱하고 모욕주고 중상모략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스님들에게 두려움을 주어서 참여를 막겠다는 발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마다 하지 않고 참여하는 것은 촛불을 드는 행위가 정당함을 말합니다. 비법을 물리치고 정법을 세우겠다는 의지가 발현된 것입니다.
불교신문 쓰레기더미
행사장 한켠에 신문지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불교신문입니다. 마치 쓰레기더미를 보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는 반대편에 서 있는 불교신문과 법보신문 기자들도 많이 와 있습니다. 불만 붙이면 모두 타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화형식 퍼포먼스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쓰레기로서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행사가 끝나자 불교신문 쓰레기는 폐지수집하는 할아버지 손으로 인계 되었습니다.
실시간검색어 1위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김영란님이 사회를 보았습니다. 차분하게 격조 있게 대중을 이끌어 갔습니다. 매번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실시간검색어 만들기 입니다. 다음 검색창에 ‘보신각 촛불법회’를 쳐 넣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색창에 입력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수 차례 반복합니다. 약 이십분 가령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실시간 이슈로서 ‘보신각 촛불법회’가 1위로 랭크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리자 현장에 있던 불자들은 환호합니다.
행사는 여법하게
행사는 여법하게 합니다. 어느 법회에서도 삼귀의는 빠지지 않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불자들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삼겠다는 다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삼귀의 하는 불자들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많이 모였을까?
촛불법회가 열리면 매번 큰 관심사는 숫자입니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민감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는 점점 더 늘어 납니다. 이날 8.24 목요촛불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천명이 넘는 불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보신각광장을 가득 매웠습니다. 간신히 지나칠 수 있는 통로만 남겨 놓고 꽉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촛불
어둠이 내릴수록 열기는 더해갑니다. 주위가 어두워 감에 따라 촛불은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요즘은 꺼지지 않는 LED촛불이 대세입니다. 건전지를 이용한 양초모양의 LED촛불에 종이컵을 끼우는 방식입니다. 매주 목요일 촛불이 열리기 때문에 LED촛불은 재활용됩니다. 촛불도 시대에 따라 진화합니다.
법사승(法師僧)제도에 대하여
식전행사는 문화공연위주입니다. 식후행사는 스님법문과 자유발언위주로 진행됩니다. 이날 법문은 김천 수도원 선원장 ‘원인스님’이 말씀했습니다. 전종정 법전스님의 제자로서 산중에서 40여년간 수행정진한 스님입니다. 스님은 부처님 앞에 평등, 오욕락경계, 법사승제도, 은상좌폐지, 이렇게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 중에 인상적인 것은 법사승제도입니다.
원인스님에 따르면 한국적 상황에서 법사스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법사스님은 놀랍게도 결혼한 스님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독신비구승은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고 법사스님은 가정을 가지면서 포교와 운영에 전념하는 제도라 합니다.
원인스님이 법사제도를 들고 나온 것은 현재 한국불교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계종 종헌종법에는 독신비구종단으로 되어 있으나 처자식을 두고 있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법사스님제도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처자식을 부양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법사스님은 ‘재가자’에 속합니다. 독신비구승은 출가승에 속합니다. 이렇게 재가승과 출가승으로 이원하자는 것이 원인스님의 주장입니다.
재가승과 출가승으로 이원화
법사스님제도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각산스님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유튜브에 각산스님 법문이 수 십개 있는데 그 중에 한 법문에서 스님은 ‘재가성직자제도’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스님은 법문에서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대가입니다. 나이가 60이 되든 70이 되든 그 분의 인생이 다시 시작 됩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이 세계에서 너무너무 고준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인류를 빛낼 수 있는 이 고철학적 불교를 배운분들 입니다. 이 분들이 이만큼 배웠는데 왜 여러분들이 성직자가 못 됩니까?”(각산스님, 불교방송 명상강좌 -제18강- 각산스님의 "선정의 행복, 팔풍")라고 말했습니다.
각산스님에 따르면 누구나 성직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재가자도 성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만이 성직자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재가성직자는 마치 기독교 목사처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육칠십대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한 재가의 시니어들이 포교에 앞장서야 함을 말합니다. 출가자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출가하겠다는 사람들도 줄어 드는 현실에서 대안이 ‘재가성직자제도’라 합니다.
원인스님은 법사제도를 도입하자고 했습니다. 독신비구종단에서 돈 있고 힘 있는 스님들은 몰래 처자식을 두고 사는데 이를 양성화 시키자는 이야기로도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재가성직자제도와 같습니다. 기독교의 목사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법사제도에 대하여 원인스님은 ‘은처승 예방’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수행승은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재정 관리는 법사들에게 맡기면 된다. 계율을 지키지 못할 사람들은 법사승이 되면 될 것”이라며 제도개혁을 강조했습니다.
정화운동은 실패했다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고 있는 총무원장스님은 은처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팔년전 총무원장이 되기 이전부터 교단자정센터에서 성명이 나올 정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승종권 8년 동안 은처승이 본사주지를 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대하여 용주사신도비대위에서는 “재가자들도 본사주지 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 놓았습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처자식이 있는 스님들이 대놓고 본사주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정화운동 실패라 볼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에서 정화운동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당시 정화유시가 시초입니다. 이후 5.16 군사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처승과 비구승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에 불과했던 비구승들이 종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아는 정화라는 이름의 불교운동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화라는 말은 사실상 ‘절뺏기’라 합니다. 그래서 “정화하러 간다”라는 말은 “절 빼앗으로 간다”라는 말과 동의어라 합니다.
오십년대와 육십년대 소수의 비구승들은 다수의 대처승을 정회라는 이름으로 절뺏기 하여 오늘날 조계종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종단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런데 정화운동 오십년 만에 다시 ‘대처종단’이 된 듯합니다. 이는 정화운동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더구나 처자식을 허용하는 법사스님제도를 만들자는 것은 옛날 대처승제도로 되돌아 가자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그러려면 뭐하러 정화 했느냐?”라는 말일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다수종교가 아닙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기독교인구의 절반 가량에 지나지 않는 소수종교입니다. 그러나 소위 정화당시에 한국불교는 기독교를 압도했습니다. 대처승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대처승 중에는 많이 배운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정화운동을 하지 않고 대처승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한국불교가 더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원인스님이 말한 법사승제도는 재가승을 말합니다. 비구승은 독신승으로서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고 재가승이 일선에서 포교와 절의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비구승은 출가승이 되고, 재가승은 대처승이 됩니다. 이미 오래 전에 운영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위 정화라는 명목으로 절뺏기 하여 기득권이 되자 한국불교는 다시 대처승 종단이 된 것입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화이전처럼 대처승제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불교에서 정화운동은 실패했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치사하고 치졸하고 유치한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자들은 촛불을 들고 조계사길로 나아 갔습니다. 그런데 이날 행진은 비교적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영상차량이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광스님 폭행동영상을 틀어 주는 영상차량을 조계사 주차장에 잠시 주차해 두었는데 총무원측에서 막아 버린 것입니다. 옆에는 탑차가 뒤에는 트럭이 막아서 몇 일째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경찰서에 신고하여 조치를 바랬으나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참으로 치사하고 치졸하고 유치한 발상입니다.
바다가 사체(死體)를 밀어내듯이
촛불행진을 이끄는 영상차량이 봉쇄 되었지만 자발적인 구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적폐청산” 과 “자승퇴진”입니다. 비록 임기가 두달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부적격자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청정한 승가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오염된 승려를 끌어 내라고 했습니다. 우다나와 앙굿따라니까야에 ‘포살의 경’이 있습니다. 포살일에 부처님은 “아난다여, 대중이 청정하지 못하다.”(Ud.51)라 했습니다. 청정하지 못한 비구가 포살당에 앉아 있는 것을 나무란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 마음을 읽은 목갈라나 존자는 청정하지 못한 사람을 발견하고 “탐욕으로 가득차고 쓰레기로 오염된 사람을 보았다. (Ud.51)”라 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세 번에 걸쳐서 “벗이여, 일어나라, 세존께서 보셨다. 그대는 수행승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 (Ud.51)”라 했습니다. 그러나 오염된 수행승은 버티기로 일관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수행승들이 오염된 수행승의 팔을 잡아 문밖으로 끌어내고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부처님은 바다의 공덕 여덟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체를 밀어는 것입니다. 이를 오염된 수행승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커다란 바다는 죽은 사체와 함께 지내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바다에 죽은 사체가 생기면 그것을 신속하게 해안으로 옮겨서 육지에 올려 놓듯,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계행을 지키지 않고 악행을 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을 하고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고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체 하고 청정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청정한 삶을 사는 체하고 안으로 부패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고 쓰레기로 오염되었는데,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참모임은 그와 함께 살지 않으며, 즉시 모여서 그를 쫓아내며, 그가 수행승의 참모임에 앉아 있더라도, 그는 참모임과 멀어져 있고 참모임도 그와 멀어져 있다.”
(Ud.51, A8.19)
부처님은 오염된 수행승과 함께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포살의 날에 포살당에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득 오염된 자가 앉아 있을 때 더 이상 법회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염된 자의 양팔을 잡고 문밖으로 끌어낸 다음 법회를 진행 했습니다. 이는 바다가 사체(死體)를 밀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를 승단 바깥으로 쫓아 내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천명이 넘는 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손에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걷자 마침내 조계사일주문앞에 다다랗습니다. 불자들은 일제히 일주문과 우정공원 앞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특히 우정공원 앞에 많이 집결했습니다. 8일째 단식중에 있는 명진스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명진스님은 대중을 향해 거듭 “미안합니다”를 외쳤습니다. 오늘날 이런 상황을 맞이 한 것에 대하여 먼저 참회한다고 했습니다.
명진스님은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식은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데 목숨을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면 무슨 일이든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한몸 던져 법을 구하겠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정신일 것입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 한몸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설산동자투신설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설산동자가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이라는 문구를 듣고 감명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 구절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야차는 목숨을 요구했습니다.
설산동자는 나머지 게송을 듣기 위하여 절벽에서 몸을 날렸습니다. 그 나머지 게송은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爲樂)”입니다. 뜻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그 현상의 적멸이야말로 지복이다”입니다. 설산동자는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한몸 기꺼이 바친 것입니다. 이에 감동한 야차는 제석천으로 변하여 설산동자를 받아 줍니다. 이것이 위법망구의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부처님은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는 숫따니빠따 ‘정진의 경’에서 “차라리 나는 문자 풀을 걸치겠다. 이 세상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stn440)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정진을 방해하는 악마와의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도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Thag.670)라 했습니다. 이 게송은 명진스님이 법문에서 즐겨 사용합니다.
명진스님의 단식은 위법망구라 볼 수 있습니다. 담마아닌 것(非法)이 판치는 현실에서 담마(正法)를 지켜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두 명의 스님이 무기한 동조단식에 들어갔습니다. 효림스님과 대안스님이 새로 합류했습니다.
공은 자승총무원장측에
이제 공은 자승총무원장측에 넘어 갔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 촛불로 매회 천명이 넘는 불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총무원측에서는 기관지를 통하여 왜곡하고 폄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조롱하고 모욕하기 까지 합니다.
한편에서는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켜 보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생즉사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각오로, 위법망구의 자세로 임했을 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큰도둑의 무리들은 치사하고 치졸하고 유치한 전략을 펼쳐 보이지만 역사의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에 떠밀려 가고 말 것입니다.
2017-08-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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