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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생각한다/한국불교를 생각하다

[스크랩] 강력한 재가불자공동체의 출현을 기대하며, 우중에 열린 8.10 3차 촛불법회

moksha 2017. 8. 11. 17:25

 

강력한 재가불자공동체의 출현을 기대하며, 우중에 열린 8.10 3차 촛불법회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하필이면 오늘 비가 내리는 것일까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인터넷 예보를 보니 저녁에 비올 확률이 60%라 합니다. 모든 행사에서 비는 적입니다. 행사를 망치는 주범을 비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행사일정을 잡을 때 일기예보를 고려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네 자리 숫자의 8.10 3차 촛불법회

 

비 오는 날 8.10 3차 촛불법회가 열렸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이 되면 불자들의 축제가 시작 됩니다. 보신각광장에서입니다. 벌써 두 차례 촛불로 열기가 고조 되어 3차 촛불을 앞두고 그만 비가 오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불자들의 염원이 있어서일까 비도 비켜 갔습니다. 오후에 주룩주륵 내리던 비는 가늘어지면서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6 30분이 되자 맞아도 그만 안맞아도 그만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1차 촛불 때는 오백명, 2차 촛불 때는 육칠백명, 이번 3차 촛불 때에는 네 자리 숫자를 예견 했습니다. 예측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우중에도 불구하고 스님들과 불자들은 천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보신각 광장이 꽉 들어 찰 정도로 성황이었습니다. 비옷을 입은 불자들, 우산을 든 불자들, 피켓을 든 불자들로 어수선한 분위기이었지만 불교개혁에 대한 열기는 막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불교, 신불교에 대한 이야기

 

이날 3차 법회에서는 하안거를 마친 스님들이 참석했습니다. 수좌스님들은 대구 서봉사에 모여서 승려대회를 결의한 바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위기에 닥칠 때 마다 승려대회가 열리곤 했는데 이번에 승려대회가 열린다면 1998년 이래 19년만이라 합니다. 그 정도로 한국불교가 위기 상황을 맞았음을 말합니다.

 

수좌스님을 대표하여 월암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월암스님의 법문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단순하고 명쾌한 법문입니다. 더구나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서 이런 것이 사자후이구나라고 생각들 정도입니다. 월암스님은 먼저 통렬한 반성부터 했습니다. 오늘 이지경이 되기 까지 막아 내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불교운동을 제창했습니다.

 

새로운 불교, 신불교에 대한 이야기는 연사로 나서 이도흠교수도 말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지리멸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청정불자공동체를 만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현 종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때 독립적인 재가불자공동체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합니다.

 

 

 

 

 

 

 

반승반속(半僧半俗)의 무리들이

 

한국불교가 위기상황이라 합니다. 불자들이 3백만명이나 빠져 나가고 위상도 갈수록 추락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단군이래 한국불교가 이렇게 융성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극과 극으로 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관점도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불교가 정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요즘 빠알리니까야가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고 더구나 빠알리위나야(율장)까지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어서 불자들은 누구나 사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불자들은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했는지 낱낱이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부처님의 법과 율을 지키지 않는 반승반속(半僧半俗)의 무리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반승반속의 무리들이 있는 한 한국불교는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도들은 갈수록 빠져 나가고 불교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해도 소위 돈 되는 백여 개의 사찰만 쥐고 있으면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 오기 때문에, 불자들이 떠나건 말건 한국불교가 망하건 말건 절에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들은 반승반속의 무리들일 것입니다.

 

 

 

 

 

신불교운동은 시대의 요청사항

 

신불교운동은 시대의 요청사항입니다. 그런데 신불교운동은 매번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깝게는 70년대 광덕스님에 의하여 주도된 불광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70년대 중반 광덕스님을 중심으로 하여 신불교운동이 일어났는데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불교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매번 새로운 불교, 신불교 운동이 있었습니다. 90년대에는 94년 종단개혁이 대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속된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종단개혁이 실패한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방법으로는 매번 똑 같은 실수만 반복할 뿐입니다. 이제 방법을 달리 해야 합니다.

 

 

 

 

 

견제수단이 필요하다

 

견제수단이 필요합니다. 제동장치가 없어서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는 종단에서는 제2의 서의현, 2의 자승이 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가가 승가를 견제하고, 재가가 승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감사제도를 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 권력을 내려 놓으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변화를 불온시합니다. 긴장과 갈등이 고조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부적인 개혁이 거의 불가능하다면 외부적 충격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법회도 외부적 압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기득권자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법과 율을 무시하는 반승반속의 무리들이 때문입니다. 최후의 방법은 독립적인 교단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불교 시스템은 서의현이나 자승체제로 귀결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훌륭해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일인집중시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똑 같은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결국 견제장치를 필요로 합니다. 승단을 견제할 수 있는 사부대중 교단이 출현해야 함을 말합니다.

 

 

 

 

 

새로운 교단이 출현해야

 

미래 한국불교는 승단과 교단으로 이원화 되어야 합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승단에서는 출가목적에 맞게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청신사와 청신녀의 사부대중의 교단에서는 재가자가 교단 전반적인 운영을 맡아야 합니다.

 

교단의 책임자는 재가자가 맡되 국무총리급 명망가가 맡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교단의 재가자가 운영해야 합니다. 재가자가 교단의 운영, 행사, 봉사, 교육을 주관합니다. 교단의 감사는 비구와 비구니로 합니다. 이렇게 사부대중의 교단이 성립되면 승단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승단과 교단으로 이원화 되면, 승단과 교단은 서로 견제하고, 교단은 내부적으로 운영과 감사가 있어서 견제하게 됩니다. 이렇게 승단과 교단의 견제시스템이 완성되었을 때 제2의 서의현, 2의 자승이 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불교에서 사부대중의 교단이 성립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스리랑카의 ACBC가 그것입니다. 스리랑카 사부대중 교단이라 볼 수 있는 ACBC‘All Ceylon Buddhist Congress’의 약자로서 우리말로 ‘전스리랑카불교도회’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

 

스리랑카에서는 승단과 교단으로 확실하게 분리 되어 있습니다. 승단은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교단은 운영을 맡고 있는데 재가자의 몫입니다. 이렇게 ACBC라는 교단이 형성되기 까지 거의 백년이 걸렸습니다.

 

 

 

 

 

강력한 재가불자공동체의 출현을 기대하며

 

이번 3차 촛불에서는 새로운 불교, 신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에 바탕을 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운영하는 자의 달렸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더 나은 제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상호견제시스템입니다. 스리랑카와 같은 사부대중의 교단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지금 부터라도 한걸음한걸음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실현되리라 봅니다. 이에 앞서 강력한 재가불자공동체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비구승들의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비구승의, 비구승에 의한, 비구승들을 위한 불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똑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2의 서의현, 2의 자승이 출현할 풍토가 마련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부수려면 강력한 재가불자공동체가 출현해야 합니다.

 

재가불자공동체가 출현하면 재가불자의 교육, 행사, 봉사 등 모든 것을 공동체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수행과 교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보다 더 수행자다운 재가불자가 되었을 때불교개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 봅니다.

 

청정한 재가불자공동체가 출현 했을 때 승단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승단 보다 더 청정한 재가불자공동체가 출현했을 때 자연스럽게 개혁이 될 것입니다. 경쟁관계속에서 발전됩니다. 단일체제에서 독주한다면 패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현재 자승체제가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법과 율에 따라 청정을 향한 경쟁이 되어야 한국불교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이번 촛불법회의 성과에 따라 한국불교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촛불법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종단이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다행이지만, 오로지 비구승만의 체제로 유지된다면 과거를 답습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강력한 재가불자공동체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2017-08-1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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