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9장 불교 문화

3. 불교 조형물 (1) 탑(塔) (Ⅰ)

moksha 2017. 6. 17. 22:54

3. 불교 조형물


(1) 탑(塔) (Ⅰ)


탑파(塔婆) 혹은 솔탑파(率塔婆) 혹은 솔도파(率堵婆)의 약칭


명 칭

설 명

스투파(Stupa)

 산스크리트어(범어)의 명칭

투파(thupa)

 팔리어 명칭

다고파(dagoba)

 스리랑카에서 부르는 명칭

파고다(pagoda)

 미얀마에서 부르는 명칭

 :유럽이나 미국 등

 

②원래 탑은 부처님의 신골인 사리(舍利)를 모신 일종의 무덤으로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만들었던 것이 기

   원이며,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었음.

③최초의 탑

   부처님 열반 후 나온 사리를 주변 8개 나라에서 나누어 가지고 이를 봉안하기 위해 8개의 탑(=근본팔탑

   根本八塔)을 세운 것이 최초의 탑이다.

④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부처님의 위격이 높아짐에 따라 부처님의 사리 신앙이 강조되어 많은 탑들이 세워

   지게 되었다.

⑤중국에서는 전탑(塼塔), 일본에서는 목탑(木塔)이 주로 만들어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석탑(石塔)이 발

   달하였다.

 

팔만사천탑

    호불왕인 아쇼카왕(=아육왕:B.C 272~232경)이 근본8탑 가운데 7개의 탑을 헐고 사리를 다시 나누어

    전국 방방곡곡에 팔만사천탑을 세웠다고 한다.

 

모전석탑(模塼石塔)

석재(石材)를 벽돌과 같은 모양으로 가공하여 건조한 탑을 말하며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경주 분황사 석탑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다.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백제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분황사 석탑과 인왕상> (국보 제30호)


⑥우리나라 최고의 탑:익산 미륵사지 석탑

⑦대표적 탑:불국사 석가탑(釋迦塔)과 다보탑(多寶塔)

    

불국사 다보탑(多寶塔) (국보 제20호)


♣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 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 다보탑은 특수형 이형탑(異形塔)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법화경의 견보탑품의 석가여래 상주 설법의 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았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불국사 석가탑(釋迦塔) (국보 제21호)


♣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으며 사리함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 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불국사가 절의 규모를 제대로 갖추던 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아, 절을 창건한 연대인 경문왕 10년(751) 이후로 보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보 제126호)

1966년 10월 13일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탑신부(塔身部) 제2층에 안치된 사리함(舍利函) 속에서 총 28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1967년 9월 16일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으며 통일신라 때의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木板) 불경인쇄본(佛經印刷本)이다.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불국사 다보탑( 국보 20호)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21호)


 

⑧목탑 양식의 건물: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 (국보 제55호)

♣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이후 신라 720년(성덕왕 19)과 776년(혜공왕 12), 1006년(고려 목종 9) 당시 중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왕을 거치며 수차례의 중수와 중창을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 속리산(俗離山) 자락에 위치한 법주사는 기본적으로는 산지에 위치한 산지가람(山地伽藍)이지만, 속리산 주능선의 동쪽 계곡에 있는 넓은 평지에 조영되었으므로 평지가람(平地伽藍) 형식의 사찰을 구성하였다.

♣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쌍봉사 대웅전(雙峰寺大雄殿) (보물 제 163호)


♣ 평면이 정사각형인 3층 전각으로서 목조탑 형식을 유지한 희귀한 건축이다.

♣ 이 건물은 1690년(숙종 16) 이중창 때에 세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4년 4월 신도의 실화로 불타버리고 말았으며, 그 후 복원하였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쌍봉사 대웅전(보물 제 163호)


감은사지 석탑(感恩寺址 石塔):경북 경주시 양북면

♣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감은사지 3층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동・서 두 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이다.

♣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의 전체높이는 13.4m이다.

♣ 감은사는 682년(신라 신문왕 2)에 창건되었으므로 이 탑의 건립도 그 무렵으로 추정되며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코자 절을 짓다가 돌아가자 그 아들인 신문왕이 절을 완성하고 부왕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절 이름을 지었다.

♣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에서 사리각외함과 그 안에 들어 있던 사리기(舍利器), 사리병(舍利甁) 등이 출토되었으며, 지난 1996년 동탑의 해체수리시에도 이와 비슷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高仙寺址 三層石塔) (국보 제38호)

♣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 탑은 2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 통일신라시대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국보 112호)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


⑪ 익산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 (국보 제11호)

♣ 국보 제11호 이며 백제 말기인 600~640년에 건립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목탑이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

♣ 한국 석탑양식의 시원양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양식상으로 볼 때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건립연대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원래 7층 석탑으로 추정한다면 20m 안팎의 거대한 탑이었을 것이다.

♣ 탑의 규모로 보더라도 한국 석탑 중 최대의 걸작이다.

♣ 일제강점기 때, 붕괴가 우려된다고 콘크리트를 발라놓아 훼손이 심하다.

 

⑫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국보 제9호)

♣ 백제 말기에 축조된 석탑으로 흔히 백제오층석탑이라고도 한다.

♣ 화강석으로 되었으며, 높이는 8.33m이다.

♣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2기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석탑이다.

♣ 특이한 양식은 한국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 (국보 11호)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9호)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 > 제9장 불교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부도(浮屠)  (0) 2017.06.19
3. 불교 조형물 (1) 탑(塔) (Ⅱ)  (0) 2017.06.17
(4) 불이문(不二門)  (0) 2017.06.15
(3) 천왕문(天王門)  (0) 2017.06.15
(2) 금강문(金剛門)  (0) 201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