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다나상가(Dānasaṅgha)담마 이야기

18. 윤회의 법칙

moksha 2017. 6. 13. 22:46

18. 윤회의 법칙

 

윤회의 법칙은 빠알리어로 바왕가 소따(bhavaṅga-sota)라고 부르는 소위 ‘잠재의식적 생명의 흐름’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재생, 업 혹은 전생의 기억 등과 같은 다양한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데 전제가 되는 바왕가(bhavaṅga) 혹은 바왕가 소따(bhavaṅga-sota)라는 말은 융(Jung)을 포함한 기타 근대 심리학자들이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말하고 있는 불멸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해가는 잠재의식의 진행과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잠재의식적 생명의 흐름이야말로 모든 윤회 전생(轉生)의 필수 조건이며 그 안에는 모든 인상과 경험들이 축적된다.

다시 말해 그 안에서 과거의 영상이나 기억된 모습들이 중첩되어 하나의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들은 깨어 있는 의식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특히 꿈속에서 의식의 문턱을 넘어올 때 똑똑히 알 수 있다.

 

잠재의식적 생명의 흐름인 바왕가 소따(bhavaṅga-sota)가 있어야만 우리는 사고할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인지하고, 생각하고, 안팎으로 경험하고 행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어딘가에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극히 복잡한 신경계나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 안에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바로 앞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을 것이며, 다른 생물과 사물의 존재에 대해 아무 것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또 우리의 부모, 스승, 친구 등도 알아볼 재간이 없을 것이고,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며 (사고란 이전의 경험들을 기억함으로써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므로) 우리의 마음은 방금 태어난 갓난아이의 마음보다도, 아니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태아의 마음보다도 더 비어 있는 완전한 백지 상태일 것이다.

 

따라서 이 잠재의식적 생명의 흐름인 바왕가 소따(bhavaṅga-sota)는 이전의 모든 행동과 경험들의 침전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태고적부터 전해 내려와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두고 이어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기타 존재의 진정하고도 가장 깊은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모두 이 잠재의식적 생명의 흐름이며, 우리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적이건 의식적이건 잠재의식적이건 간에 모든 생명은 유전(流轉)하는 것이며 계속적인 생성, 변화 및 변모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변치 않는 요소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따라서 항구적인 자아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이러한 무상한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고정된 사물과 같은 정신 상태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느낌, 지각, 의식 등은 실제로는 단지 느낌과 지각, 의식의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지 그 안이나 밖에 개별적인 혹은 항구적인 실체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