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니까야(Nikāya) 항수 독송집

웨살리의 재앙과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 보배경의 시설연유

moksha 2016. 8. 9. 15:16


웨살리의 재앙과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보배경의 시설연유]

웨살리1는 심한 가뭄이 들어서 대단한 흉년을 당하게 되었다. 농작물은 모두 말라 죽어 아무것도 거두어들일 것이 없었고, 나무들도 열매를 맺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 나갔다. 그리고 이를 뒤따라 몹쓸 병이 유행하여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 갔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시체들을 치우는 일만 해도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채 치우지 못한 시체들이 많았던 탓에 웨살리의 이곳저곳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대단했다. 이 악취는 다시 많은 잡귀들을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원한 맺힌 귀신들이 집안 가득 우글거리게 되어, 사람들은 흉년에 따른 굶주림과, 유행병의 위험, 그리고 잡귀의 공포에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시민들은 절망과 슬픔 속에서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아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공화당에 모여 이에 대해 토론했는데, 이 같은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전 국민의 이름으로 큰 짐승을 잡아 제사를 올리는 한편, 당시의 유명한 여섯 종교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종교 의식을 행하며 설법을 듣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제안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 한 지혜로운 사람이 나오더니 말했다.

 

“지금 라자가하2에는 우리나라의 마할리 왕자님이 머물고 계시오. 그리고 그곳에는 위대한 스승 고따마 붓다가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러니 마할리 왕자님을 통하여 라자가하의 빔비사라 왕께 승낙을 얻어 부처님을 이곳으로 모셔 오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난과 액운은 다 사라질 것이며, 우리에게는 길이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라 믿소.”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서 왕실의 제사장과 바라문, 그리고 다른 왕자들로 사절단을 구성하여 라자가하에 파견하여 부처님을 모셔오게끔 했다. 사절단은 먼저 빔비사라 왕을 찾아가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자세히 설명하고 부처님을 웨살리로 모셔 가려 하니 왕께서 협조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빔비사라 왕은

“당신들은 참으로 지혜롭소. 그러시다면 부처님께 가서 직접 허락을 얻도록 하시오.” 했다.

이에 사절단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웨살리를 방문하시어, 자기들을 절망과 비참한 상태에서 구해 주십사고 청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고, 이번에 웨살리를 방문케 되면 많은 중생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시어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시었다.


부처님께서 웨살리를 방문하시기로 결정되자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은 라자가하에서 갠지스 강에 이르는 도로를 반듯하게 수리하고 새로 황토흙을 깔아 길을 부드럽게 만드는 한편, 매 1요자나마다 부처님과 빅쿠 일행이 하룻밤을 쉬어 갈 수 있도록 간이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처님을 맞을 왓지 국(웨살리는 왓지 국의 수도)에서도 이 같은 준비를 부탁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다 끝나자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행을 떠나시라고 권했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테라를 비롯한 오백 명의 아라한 빅쿠들과 함께 웨살리로 향하시었다.라자가하에서 갠지스 강까지의 거리는 5요자나3, 갠지스 강을 건너는 데만 뱃길로 1요자나, 그리고 갠지스 강에서 웨살리까지는 3요자나의 거리였다. 부처님 일행의 호위는 빔비사라 왕이 직접 지휘하는 왕실의 군대가 맡았는데, 부처님과 빅쿠 일행에게는 각각 일산과 수레가 따라서 행렬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하여 일행은 닷새째 되는 날 갠지스 강변에 도착했는데, 빔비사라 왕은 왓지 국의 왕자들에게 부처님께서 도착하였음을 통보했다. 그러자 웨살리 쪽에서도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보내드리는 것보다 더 장엄하고 정중하게 부처님을 맞았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릿차위(Licchāvi) 왕실에서 특별히 준비한 배에 오르시자 빔비사라 왕은 강물 속에 들어가 물이 그의 목에 차오를 때까지 배를 밀며 부처님의 뱃길이 무사하도록 기원하며 전송하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갠지스 강의 긴 뱃길 여행을 끝내시고 웨살리 쪽 강가에 도착하시었을 때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억수 같은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리하여 그동안 가뭄으로 인해 쌓였던 먼지가 씻겨진 것은 물론, 말라 있었던 풀과 나무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치우지 못하고 있던 시신과 많은 오물들이 전부 갠지스 강물로 쓸려 들어갔다.


갠지스 강가에서 웨살리 성까지는 3요자나로서 매일 1요자나를 가시는 부처님의 여행으로 3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갠지스 강에서 출발하여 웨살리에 도착하실 때까지 3일 동안 비가 계속 내려서 웨살리 성뿐만 아니라 왓지(Vajjī) 국 전체가 싱그럽고 밝게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러자 왓지 국의 국민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크게 감탄하여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부처님께 예배 공경을 올리는 것이었다. 부처님 일행은 마침내 웨살리 성에 도착하시어 특별히 마련된 곳에 머무시었다.


 이때 삭까천왕4 이 그의 권속을 거느리고 부처님을 뵙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그러자 온갖 잡귀들이 그를 피해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그 까닭은 삭까 천왕이 부처님을 뵙기 위해 내려오면서 잡귀를 물리치려고 위력 있는 야차들과 동행했기 때문이었다.한편 부처님께서 곧 아난다의 빅쿠 일행에게 라따나숫따(Ratanasutta, 보배경)를 설법하시고, 아난다로 하여금 각 성문을 돌면서 이 경을 외고 성수를 뿌리게끔 이르시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이 라따나숫따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며 삼보의 위신력을 나타나게 하는 경이었다. 빅쿠 아라한들이 이 경을 일념으로 독송하자 괴질을 앓거나 유행병에 걸린 사람들은 심신이 상쾌해지면서 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고, 그들은 아난다 테라를 따라 부처님을 찾아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경을 직접 독송하시면서 이레 동안 이 경을 가르치시고, 아라한 빅쿠들로 하여금 경을 계속 독송케 하시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는 웨살리 도시 전체가 모든 면에서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도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업에 전념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불안과 근심이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리차위 왕자와 웨살리 백성들은 부처님과 빅쿠 일행에게 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한편 부처님께서 웨살리에 머무시는 동안 백성들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다투어 공양을 올리며 여러 가지 법문을 들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웨살리(Vesāli)가 모든 면에서 정상을 되찾자 부처님께서는 다시금 라자가하로 돌아오시었다.

이때 릿차위(Licchāvi) 왕자들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는 길을 오실 때보다 더 장엄하고 화려하게 준비하여 갠지스 강가까지 모셨고, 갠지스 강에서는 강을 지키는 용왕과 여러 신들이 부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해 맞이하였다. 또, 빔비사라 왕도 마중을 나와 있었으며, 여러 천상의 천왕들도 부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부처님을 환영하였는데, 특히나 천신들은 부처님 주위에 하늘나라의 꽃을 뿌리는 한편 꽃으로 일산을 만들어 부처님의 머리 위를 가리며 공경예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갠지스 강의 용왕은 강물 위에 다섯 가지 색깔의 연꽃을 띄워 아름답게 장엄하는 한편, 갖가지 향수와 꽃으로 장식된 오백 척의 배를 준비했기 때문에 갠지스 강은 장엄한 연화세계(蓮花世界)가 벌어진 셈이었다. 그리고 용왕은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배를 준비하여 부처님 일행을 용궁으로 초청하였다. 이같이 갖가지 부류의 중생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을 찬탄한 예는 부처님의 전 생애를 통하여 단 세 차례뿐이었다.


첫 번째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장엄한 쌍용이 나타나 부처님께 여섯 줄기의 광명의 빛을 놓으면서 사방에 물을 뿌린 일인데 이를 쌍둥이의 기적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부처님께서 따와띰사 천상세계(33천)에 가시어 어머님을 위해 아비담마를 설법하시고 지상으로 내려오신 일이고, [상깟사(Sakassa)의 기적 : 법구경 게송 181번의 이야기 참조)

세 번째가 웨살리 여행 중에 보이신 위신력이었다.


부처님을 왕궁으로 초청하는 것은 용왕이 비할 데 없는 큰 영광으로 여기는 일인 줄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용왕의 초청에 의하여 용궁에 가시었다. 부처님 일행은 용왕이 마련한 오백 척의 배를 타시고 용궁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설법을 하시고 공양을 받으신 다음 용왕의 전송을 받으시며 빔비사라 왕이 기다리는 강가로 나오시었다.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의 영접을 받으시고 여행을 다시 시작하시어 강을 출발하신 지 닷새 만에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5에 도착하시었다.


부처님 일행이 수도원에 돌아오신 이튿날 빅쿠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웨살리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부처님과 관련된 장엄하고 찬란하며 웅장했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들어오시어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물으시었다. 그래서 빅쿠들은 웨살리 여행 중에 본 상상을 초월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리면서 이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지니신 위신력과 복력 때문이라고 찬탄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빅쿠들이여, 브라흐마나 삭까 등 천상의 왕들과 인간들이 모두 함께 여래를 존경하며 그들이 그같이 장엄하게 크나큰 공양을 올리게 된 것은 여래가 과거 보살 시절에 지었던 많은 공덕의 결과이니라.부처님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신 다음 당신께서 브라흐민 상카라는 이름이었을 때 지으신 공덕행에 대해 말씀해 주시었다.


한때 탁실리(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지방) 시에는 상카라는 브라흐민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의 이름은 수시마였다. 이 수시마가 자라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상카는 아들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고 소개장을 써서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자기 친구에게 보냈다. 상카가 아들의 교육을 의뢰한 바라나시의 친구는 유명한 점성학자이자 종교와 철학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카는 그가 자기 아들을 잘 교육하고 지도해 주리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수시마는 바라나시에 가서 몇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스승이 아는 모든 지식을 다 배웠다.

그러나 수시마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배움에 목마른 나머지 스승에게 다른 스승을 천거해 주십사고 부탁했다. 그러자 스승은 그에게 이시빠따나에 계시는 빳쩨까붓다6 한분을 수시마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수시마는 행정을 챙겨 이시빠따나에 계시는 빳쩨까붓다를 찾아뵙고 자기에게 최상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사고 청했다. 그의 청을 받으신 빳쩨까붓다는 최상의 공부는 오직 빅쿠가 되어야만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리하여 수시마는 빅쿠가 되었다. 빅쿠가 된 수시마는 빳쩨까붓다로부터 빅쿠로서의 모든 법도를 배운 다음 최고의 진리를 수행하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성제를 깨닫고 깨달음의 지혜를 성취해 자기도 빳쩨까붓다가 되었다.


수시마는 그와 같이 과거 전생에 지은 인연에 의해 빳쩨까붓다가 되었으나 오래 살지는 못하고 얼마 후에 바로 빠리닙바나를 실현했다. 그러자 수시마 빳쩨까붓다를 가르치신 빳쩨까붓다께서는 그의 사리를 수습하여 조그만 사리탑을 세우시었다. 한편 상카는 아들을 탁실라로 보낸 이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으므로 아들을 한 번 보려고 바라나시로 갔다.

그러나 그는 아들 대신 아들이 빳쩨까붓다를 이루고 남겨 둔 사리탑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아들 빳쩨까붓다의 사리탑 위에 정중하게 예를 올리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라앉혔다. 그는 아들의 사리탑 곁에 머물면서 탑 주위의 흙을 고르게 다지고 모래와 물을 뿌리는 등 사리탑을 관리했다. 그리고 그는 천을 준비하여 깃대에 매달아 높이 꽂고 가까운 숲에 들어가 야생화를 꺾어다 탑 주위를 아름답고 향기롭게 장엄했다.


이렇게 그는 한때 자기의 아들이었던 빳쩨까붓다를 공경 예배하면서 빳쩨까붓다의 사리탑을 지극 정성으로 관리해 나갔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보살의 이러한 공덕행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금생에 붓다가 되어 엄청난 이익을 얻은 것이니라.

보살이 그때 탑 주변의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른 공덕으로 큰비가 내린 것이며, 그때 꽃을 꽂아 공양한 공덕으로 거리에서 군중들이 꽃을 뿌리고 용왕이 갠지스 강을 오색 연꽃으로 장엄했던 것이며, 그때 깃대를 만들어 꽂았던 공덕으로 수많은 일산과 깃발이 여행길을 장엄했던 것이니, 이러한 모든 장엄은 여래가 과거 전생에 보살로서 쌓았던 여러 가지 공덕행 때문이니라. 빅쿠들이여, 그러므로 욕망을 버리고 여래에 대한 바른 신심과 공경심으로 착한 공덕을 지을지니, 그것이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쉼 없이 계속하여 행하게 되면 결국에는 엄청난 이익으로 되돌아오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Dhp 290]

Mattā sukhapariccāgā       만일 작은 행복을 포기한다면

맛따  수카빠릿짜가

passe ce vipulaṃ sukhaṃ   위대한 행복을 얻는다.

빠쎄  쩨  위뿔랑  수캉

caje mattāsukhaṃ dhīro    지혜로운 사람은 작은 행복을 포기하고

짜제  맛따수캉   디로

sampassaṃ vipulaṃ sukhaṃ  위대한 행복7의 결과를 바라본다.

  삼빠쌍   위뿔랑  수캉

 


  1. 웨살리(Vesāli) : 왓지(Vajjī) 국의 수도로 산스크리뜨어로는 바이샬리(ⓢVaiśālī)라고 하며, 한역으로는 광엄성(廣嚴城)이라 한다. [본문으로]
  2. 라자가하(Rājagaha) : 마가다(Māgadhā) 국의 수도로 한역으로는 왕사성(王舍城)이라 한다. [본문으로]
  3. 요자나(Yojana) : 한역으로는 유순(由旬)이라 하며,‘황소가 멍에를 걸고 하루에 가는 거리’를 의미하여 약 7마일(miles =11.2Km) 또는 4가우따(Gavuta))라고 했고, 4끄로사(Krosa)로 대략 9마일(14.4Km)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5요자나는 약 60Km 정도의 거리이다. [본문으로]
  4. 삭까(Sakka) : 인드라(Indra)라고도 하며, 삼십삼천(따와팀사Tāvatiṁsā, 33천)의 수장으로 한역하여 제석천왕(帝釋天王)이라 하며, 신(神)들의 왕이라고 베다(veda)에서는 일컬어지고 있다. [본문으로]
  5. 웰루와나 수도원 : 웰루와나라마((Veḷuvanārāma)의 번역이며, 한역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라 하며, 라자가하(Rājagaha, 왕사성王舍城)에서 북쪽으로 불과 560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칼란다카(Kalandaka) 장자로부터 죽림(竹林)을 희사받아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정사를 지어 부처님의 교단에 희사한 불교 최초의 사원이다. [본문으로]
  6. 빳쩨까붓다(pacceka-buddha) : 산스크리뜨어로는 프라티에카붓다(pratyeka-buddha)라고 한다. 고요한 곳에서 홀로 수행하는 사람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연(緣)으로 해서 무상(無常)을 느끼고 세상과 떨어져 생활하며 12인연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성자(聖者)를 말한다. 연각(緣覺) 혹은 독각(獨覺)ㆍ독성(獨聖) 또는 벽지불(僻支佛) 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7. 위대한 행복(vipulaṃ sukhaṃ) : 닙바나(nibbāna)의 지복(至福) 즉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