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아! 그분 고따마 붓다/고따마 붓다의 생애

4. 깨달음

moksha 2017. 5. 14. 18:46

4. 깨달음

 

깨달음을 이룰 자리. 보리수 아래에서 보살은 독이 있는 가시를 뽑아버리고 진리의 깃발을 당당히 울렸다. 보살은 애욕과 선하지 못한 생각들을 떠나 사색과 사려를 갖추었다. 그러자 애욕을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선정의 첫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어 사색과 사려마저 고요히 하자 안으로 깨끗해지고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하여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선정의 두 번째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어 기쁨에 대한 탐착마저 떠나 담담히 바라보고 빛을 돌이켜 반추하자 몸이 가볍고 편안해졌다. 선정의 세 번째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어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렸다. 그러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가 되었다. 보살은 담담히 바라보고 반조하여 청정한 선정의 네 번째 단계에 도달하였다.1

보살은 맑고, 고요하고,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무엇에도 장애를 받지 않아 자유로워졌다. 보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밤이 찾아왔다.


‘삶의 모든 고통과 즐거움은 원인이 있다. 원인이 된 지난 삶은 어떠했을까?’


보살은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앎을 얻기 위해 자유롭고 흔들림 없는 마음을 쏟고 기울였다. 그러자 지난 생애가 기억났다. 보살은 맑고 고요한 마음을 기울여 하나의 생애. 둘 셋 넷 다섯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백 천의 생애, 우주가 생성되던 시기까지의 무수한 생애를 기억해냈다.


‘저곳에 태어났을 때 내 이름은 무엇이었고, 성은 무엇이었으며, 종족은 이러했고, 인종은 이러했구나. 어떤 음식을 먹었고, 수명은 얼마였으며, 어디서 얼마큼 머물렀고, 이러저러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구나. 나는 그곳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다시 태어났고, 또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었구나.’


갖가지 모습으로 갖가지 능력을 발휘하며 갖가지 형태로 살았던 지난 삶들이 선명히 눈앞에 펼쳐졌다. 열심히 노력하고 게으르지 않았던 까닭에 어둠이 사라지고 첫 번째 빛이 밝았다. 보살은 초저녁에 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자기와 다른 중생들의 무수한 과거 생애를 아는 숙명통(宿命通, pubbenivāsa-anussati)을 얻었다. 밤이 깊었다.


‘모든 삶에는 결과가 있다. 중생들은 죽어 어떻게 될까?’


죽음 너머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세계였다. 보살은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의 죽음 너머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지금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떤 이는 지금보다 추한 모습으로, 어떤 이는 지금보다 안락한 곳에, 어떤 이는 지금보다 괴로운 곳에, 어떤 이는 지금보다 부유하고 귀한 집안에, 어떤 이는 지금보다 가난하고 천한 집안에, 저마다 자기가 지은 업의 힘에 끌려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고 있었다.


‘저 중생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험한 말과 못된 마음씨를 쓴 까닭에 힘든 삶을 받는구나. 저 중생은 선한 행동을 하고, 곧고 부드러운 말씨로 따뜻하게 마음을 쓴 까닭에 좋은 삶을 받는구나.’


어둠이 사라지고 두 번째 빛이 밝았다. 보살은 한밤중에 맑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중생계의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낱낱이 아는 천안통(天眼通, dibba-cakkhu)을 얻었다.

날이 희끗희끗 새고 있었다.


‘고통스런 생사의 굴레에서 끝없이 윤회하며 중생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번뇌 때문이구나.’


보살은 번뇌를 없애는 앎을 얻기 위해 맑고, 고요하고,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자유롭고, 흔들림 없는 마음을 쏟고 기울였다. 그리하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사라짐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았다.

‘이것은 번뇌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이것은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이것은 번뇌의 사라짐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이것은 번뇌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았다.


그리하여 애욕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어리석음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모든 번뇌에서 해탈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어둠이 사라지고 세 번째 빛이 밝았다. 모든 번민과 고통은 사라졌다.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깨달음을 완성한 보살에게 더 이상 번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보살은 다시는 고뇌의 생존으로 뛰어들지 않게 되었음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되었다. 보살은 모든 더러움이 말끔히 사라진 누진통(漏盡通, āsavakkhaya-ñāṇa)을 얻었다.

눈을 떴다. 샛별이 마지막 빛을 사르는 동녘 하늘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이 땅에 오신 지 35년, 진리를 찾아 집을 나선 지 6년째인 기원전 589년 12월 8일의 일이었다.


  1. 사선정(四禪定) : 색계(色界) 사선(四禪)을 의미한다. 새김의 토대의 큰 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대념처경(大念處經), D22]에 나타나는 사선정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서 떠난 뒤, 사유[일으킨 생각(vitakka), 심(尋)]와 숙고[지속적 고찰(vicāra), 사(伺)]를 갖추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喜, pīti)과 행복(樂, sukha)을 갖춘 첫 번째 선정(定, samādhi)에 들고, ②사유[일으킨 생각, 심(尋)]와 숙고[지속적 고찰(vicāra), 사(伺)]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와 숙고를 여의고,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喜, pīti)과 행복(樂, sukha)을 갖춘 두 번째 선정(定, samādhi)에 들고, ③희열(喜, pīti)이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세 번째 선정(定, samādhi)에 들고, ④행복도 고통도 버려지고, 기쁨도 근심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定, samādhi)에 든다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집중이라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