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라의 유혹과 위협
보살은 호흡을 가다듬고 주의력을 모았다.
그때 수행을 방해하는 자, 마라(Māra)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던지며 측은한 목소리로 말했다.1
“바싹 마른 데다 얼굴마저 일그러진 것을 보니 죽을 때가 다 되었군요.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목숨이 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완전한 해탈의 길은 참으로 힘들고 통달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번뇌를 끊으려는 수행은 애초부터 무리였습니다. 그만두십시오. 손쉬운 방법이 얼마든 있지 않습니까? 웨다(Veda)를 공부하고 불을 섬겨 제물을 바치면 얼마든지 공덕이 쌓일 것입니다.”
눈앞에 어슬렁거리는 마라(Māra)에게 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대 게으른 자여, 사악한 자여, 그대는 무엇하러 여기 왔습니까? 나에겐 세간의 복락을 구할 까닭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대는 세간의 복락을 찾는 자에게나 찾아가 말하십시오. 나에게는 확신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어찌 죽음을 이야기합니까? 목숨은 언젠간 죽음으로 끝납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내 열정의 바람은 흐르는 강물도 말려버릴 것입니다. 피가 마르면 쓸개도 가래도 마를 것입니다. 살이 빠지면 내 마음은 더욱 맑아질 것입니다. 나의 집념과 지혜와 마음의 집중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마저 감내한 나에겐 어떤 욕망도 없습니다. 보십시오. 내 몸과 마음의 깨끗함을.”
마라(Māra)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전 당신이 정말 걱정돼 하는 소립니다. 당신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헛된 일에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첫째 군대는 욕망(慾望)이요, 둘째는 혐오(嫌惡)며, 셋째는 기갈(飢渴)이요, 넷째는 갈애(渴愛)며, 다섯째는 나태(懶怠)요. 여섯째는 공포(恐怖)며, 일곱째는 의혹(疑惑)이요, 여덟째는 위선(僞善)과 고집(固執)입니다. 그대가 가진 이익ㆍ명성ㆍ존경ㆍ명예는 거짓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대가 가진 무기라고는 남을 경멸하는 오만함뿐입니다. 마라(Māra)여, 용기 없는 자라면 사방을 포위한 코끼리 부대와 같은 그대에게 맞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굳건히 하고 그대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내가 문자(Muñja)풀을 입에 물고 항복할 것 같습니까? 패배하여 비굴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용기 있게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마라(Māra)는 맛있는 비곗덩이라 여기고 쏜살같이 내려앉았던 까마귀가 단단한 차돌을 씹은 것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죽음을 부르는 자, 사악한 자, 마왕 빠삐요2(Pāpiyo, 파순波旬)는 천궁으로 돌아와 시름에 잠겼다. 튼튼하고 웅장한 궁전이 무너질 듯 진동하였다. 마라의 아들들이 몰려왔다.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사문 고따마가 지금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다. 그의 신념과 노력과 지혜라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성취하면 나의 궁궐 또한 온전하기 힘들 것이다.”
천 명의 아들은 두 무리로 의견이 나뉘었다. 오른쪽 무리는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포기하자고 하고, 왼쪽 무리는 수많은 병사와 무기를 자랑하며 승리를 장담했다.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자 마라(māra)의 세 딸 땅하(taṇhā, 갈애渴愛), 아라띠(aratī, 혐오嫌惡), 라가(ragā, 탐욕貪慾)가 나섰다.
“아버지, 저희에게 맡기세요. 그깟 까까머리 하나 타락시키지 못하겠습니까?”
보리수 아래로 내려간 마왕의 딸들은 갖가지 아양을 떨며 보살의 귓전에 속삭였다.
“보셔요, 봄이랍니다. 나무와 풀도 꽃망울을 터뜨린 한창 때랍니다. 사람도 젊은 시절이 즐거운 거죠,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당신은 젊고 멋지군요. 자, 저희를 보셔요, 어여쁜 이 자태 좀 보아주셔요. 저희와 함께 어울리지 않으시겠어요? 좌선해서 깨닫겠다는 건 당치도 않은 생각이죠.”보살은 부드럽게 타일렀다.
“육체의 쾌락에는 고뇌가 따릅니다. 그런 욕망이라면 저는 오래전에 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 욕정에 빠져 살아가지만 하늘을 지나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나는 붙잡지 못합니다.”
마라(Māra)의 딸들은 짐짓 우러르는 눈빛으로 슬며시 다가가 보살의 몸을 쓰다듬었다.
“당신은 참 굳건하고 당당한 사내군요, 거룩한 당신 곁을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항상 곁에서 저희의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당신을 장식하겠습니다.”“몸은 아름답지만 마음은 정숙하지 못하군요. 견고한 수행자의 의지를 꺾는 건 큰 죄입니다. 자그마한 선행의 공덕으로 천녀의 몸을 받았지만 악행이 쌓이면 다시 축생의 몸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시중이 필요치 않습니다. 물러가십시오.”세 딸의 미모와 교태는 일순간 허물어졌다. 그녀들의 곱던 피부가 검게 변하더니 푸석푸석 주름이 지고, 온몸 구멍마다 오물이 흘러나와 퀴퀴한 악취를 풍겼다. 마라(Māra)의 딸들은 통곡하며 보살 앞에서 사라졌다. 의기소침한 노파의 모습으로 돌아온 딸들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저희는 보았습니다. 보름달처럼 맑고 환한 얼굴, 진흙 속에서 솟아오른 연꽃 같은 모습, 아침 햇살처럼 산뜻하고 수미산처럼 의젓하며 타오르는 불길처럼 매서운 위엄, 그분은 분명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입니다. 아버지, 그분에게 대항할 생각은 그만 두세요. 수미산이 무너지고 해와 달이 떨어진다 해도 그분은 꿈쩍도 하지 않으실 겁니다.”
마라(Māra)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보리수 아래 앉은 보살을 굴복시키기 위해 마라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3의 마군(魔軍)4과 무기를 동원하였다. 악마의 군사들은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보살은 어떤 적의도 품지 않았다. 마라(Māra)는 폭풍과 회오리바람을 일으켰지만 보살의 옷자락도 흔들지 못했고, 폭우를 퍼부었지만 이슬방울만큼도 보살의 옷을 적실 수 없었다. 바윗덩이도 불덩이도 보살 앞에서는 꽃다발로 변했으며, 쏘는 화살마다 꽃송이가 되고, 내려치는 예리한 칼과 창은 꽃잎이 되어 흩어졌다. 재와 모래와 진흙을 퍼부었지만 향기로운 전단향 가루가 되어 보살의 몸을 단장할 뿐이었다. 어둠과 공포는 밝은 태양 아래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마라(Māra)에게 보살은 도리어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협박과 폭력도 효과가 없자 마라(Māra)는 큰 아량이라도 베푼다는 표정으로 거만하게 말했다.
“인간이 누리는 즐거움이 싫다면 하늘나라로 올라오시오, 내가 누리는 이익과 즐거움을 그대와 함께하리다.”
“마라(Māra)여, 그대가 누리는 즐거움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과거에 보시한 공덕으로 욕계의 지배자가 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당신도 언젠가는 다시 삼악도에 떨어져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을 것입니다.”
마라(Māra)는 눈을 크게 치뜨며 말했다.
“좋소, 나의 공덕을 우습게 여기는 그대는 대체 어떤 공덕을 쌓았단 말이오. 내가 과거에 보시하여 쌓은 과보가 있다는 것은 지금 그대가 말하였소. 그대 입으로 직접 증언해 주었소, 하지만 그대가 쌓은 공덕을 증언할 자는 아무도 없지 않소,”
보살의 얼굴에는 조금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보살은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고 다리를 어루만지다 조용히 말하였다.
만물이 의지하는 이 대지
움직이는 것이건 움직이지 않는 것이건
모든 것에게 공평한 이 대지가
나를 위해 진실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대지여, 나를 위해 증언해 주십시오.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땅을 누르자 대지가 동서남북과 상하로 크게 진동하였다. 그러자 보석으로 장식한 화병에 연꽃을 담은 대지(大地)의 여신(女神)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인간세계는 물론 하늘나라에도 당신만큼 공덕을 많이 쌓은 분은 계시지 않습니다.”
대지의 여신은 준엄한 목소리로 마라(Māra)를 꾸짖었다.
“헤아릴 수 없는 긴긴 세월, 보살께서는 목숨을 보시하며 중생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보살께서 중생들을 위해 흘린 피는 이 대지를 적시고도 남을 것입니다. 하물며 재물이겠습니까? 이제 그 과보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라(Māra)여, 그대는 보살을 괴롭힐만한 위력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마라(Māra)의 그림자가 사라진 뒤 대지의 여신은 보살의 발아래 절하고 보살에게 연꽃을 공양 올리고 사라졌다.
- 숫타니파타(Suttanipāta)의 정진의 경[빠다나 경(Padhāna sutta, Sn3:2)] 참조 [본문으로]
- 마왕 빠삐요(Pāpiyo, 파순波旬) : 마라 빠삐만(māra papiman, 악마파순惡魔波旬) 혹은 빠삐야스(Papiyas, 波旬)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 욕계 제6천을 말한다. 그러나 인도의 바라문교에서는 세계창조의 신인 마혜스와라(ⓢMaheśvara)를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마혜수라(摩醯首羅)라고 음역한다. 보통 3개의 눈에 8개의 팔을 가졌고, 하얀불자(拂子)를 들고, 흰소를 타고 있다. [본문으로]
- 마군(魔軍) : 마라쎄나(Mārasenā)의 번역으로 ‘senā’는 군대(軍隊)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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