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빔비사라왕1의 제안
마가다국으로 들어선 보살은 새로운 문물과 사상의 도시 라자가하(Rājagaha)로 들어섰다. 왕성을 에워싼 다섯 개의 산2 가운데 하나인 빤다와(Pāṇḍava) 동쪽 기슭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출가 사문의 법식에 따라 아침 일찍 거리로 탁발하러 나섰을 때였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몸짓에는 위엄이 서렸고, 눈동자와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수없이 지나친 수행자들 가운데 이처럼 거룩하고 겸손하며 온화한 인물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곤거렸다.
“저분은 신일까, 신이 보낸 사자일까, 독수리봉의 산 깃자꾸따(Gijjhakūṭa, 영취산靈鷲山)의 신이 아닐까?”
신비한 사문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라자가하에 퍼졌다.
마가다국의 젊은 빔비사라(Bimbisāra)왕도 높은 누각에서 기품이 넘치는 보살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빔비사라왕는 신하에게 명하였다.
“저분은 틀림없이 훌륭한 가문 출신이다. 저분 뒤를 따라가 어디에 머무는지 알아오라.”
보살의 거처를 알아낸 빔비사라왕은 직접 수레를 몰고 빤다와산으로 찾아갔다. 작은 오솔길 앞에서 수레를 멈춘 왕은 수레에서 내려 직접 걸어 산을 올랐다. 그리고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당신은 젊고 기품이 넘치는 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대왕이여, 히말라야 기슭에 풍부한 재력과 기술을 갖춘 꼬살라의 백성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태양의 후예인 사꺄(Sakyā)족의 왕자였습니다.”
북방 히말라야 기슭의 사꺄(Sakyā)족 왕자 중에 지혜가 뛰어난 자가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빔비사라왕이었다. 그는 서른 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갖췄고 전륜성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첫눈에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빔비사라왕은 호의를 보이며 말하였다.
“사꺄(Sakyā)족 왕자여, 만약 생존해 계신 부왕 때문에 왕위를 이어받지 못해 출가한 것이라면 제 땅을 나눠드리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건 제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몇 마디로도 소문이 헛되지 않은 사람임을 빔비사라왕은 알아차렸다.
“작아서 싫다면 제 나라 전부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재상이 되어 받들겠습니다. 제 나라가 싫다면 군사를 동원해 다른 나라를 정복해 그 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미 왕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한 사람입니다. 무엇 하러 다시 나라를 다스리려 하겠습니까. 대왕께서 순수한 마음으로 저에게 나라를 주신다 해도 싫은데 어찌 군사를 동원해 다른 나라를 빼앗겠습니까?”
“사꺄(Sakyā)족 왕자여, 당신처럼 귀한 신분에 훌륭한 재능을 갖춘 분이 사문이 된다는 건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면 무엇이든 드릴 테니 이곳에서 삶을 즐기십시오.”
“욕망에는 근심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저는 검푸른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쾌락은 쉽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저는 참다운 행복을 찾아 사문의 길로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욕의 즐거움이 아니라 완전한 깨달은입니다. 대왕의 청을 거절했다고 섭섭하게 생각지는 마십시오. 대왕께서는 고귀한 신분과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현명하십니다. 부디 올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훌륭한 왕이 되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빔비사라왕은 두 손을 내밀며 부탁하였다.
“소원대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거든 가장 먼저 이 도시를 찾아주십시오. 제일 먼저 저를 깨우쳐주십시오.”
37년 동안 이어진 빔비사라왕과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빔비사라(Bimbisāra)왕 빔비사라(Bimbisāra)왕은 15세에 왕위에 올라서 52년간을 왕위에 있었고, 부처님보다 5살이 위였다고 한다. 주석서(SnA.ii.386)에 따르면 빔비사라왕은 세존께서 깨달음을 얻으면 제일 먼저 라자가하[Rājagaha, ⓢ라자그리하(Rājagrha), 왕사성(王舍城)]를 방문해 주시기를 청하였고 세존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 머물도록 지은 최초의 절이 죽림정사(竹林精舍, Veḷuvana)이다. 이렇게 빔비사라왕은 세존이 깨달음을 증득하신 때부터 아들 아자따삿뚜(Ajātasattu)에게 시해될 때까지 37년간을 부처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불교가 인도 중원에 정착하는데 큰 기여를 한 왕이다. 하지만 부처님을 해코지하려는 데와닷따(Devadatta)에게는 이러한 빔비사라왕은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데와닷따는 아자따삿뚜를 사주하여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도록 사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는 사전에 발각되었고 대신들은 아자따삿뚜와 데와닷따 무리를 처단할 것을 빔비사라왕에게 강력히 권했다. 왕은 사람을 보내어 아자따삿뚜가 왕위를 탐내고 있음을 듣고는 순순히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데와닷따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지따삿뚜에게 빔비사라왕을 죽여야 한다고 계속 종용하였다. 하지만 어떠한 무기로도 왕을 해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아자따삿뚜는 왕을 굶겨 죽일 작정으로 뜨거운 감방에 가두어 두고 왕비(아자따삿뚜의 모친)외에는 아무도 방문할 수 없게 했다. 왕비가 갖가지 방법으로 음식물을 반입하자 마지막에는 그녀마저 왕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왕은 방안에서 경행을 함으로써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자따삿뚜는 이발사를 보내서 왕의 발바닥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소금과 식초를 뿌렸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빔비사라는 곧 죽어서 사대왕천(四大王天, Cātummahārājika)에서 비사문천(毘沙門天, Vessavaṇa)을 모시는 자나와사바(Janavasabha)라는 야차(yakkha)로 태어났다. [본문으로]
- 다섯 개의 산 : 빤다와(Pāṇḍava), 깃자꾸따(Gijjhakūṭa, 영취산靈鷲山), 베바라(Vebhara), 이시길리(Isaigili), 베뿔라(Vepulla)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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