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아! 그분 고따마 붓다/고따마 붓다의 생애

4. 스승을 찾아 웨살리로

moksha 2017. 5. 13. 20:37

4. 스승을 찾아 웨살리로

 

보살은 스승을 찾아 꾸시나라를 지나 왓지(Vajjī)1연맹의 땅으로 들어섰다. 먼저 위데하(Videhā)족의 도시 미틸라(Mithilā) 인근에 선인 박가와(Bhaggavā)를 찾아갔다. 보살이 그를 찾아 깊은 숲으로 들어서자 온갖 새들이 반가운 소리로 지저귀고, 다람쥐와 원숭이가 달려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오솔길을 열었다. 숲에는 박가와를 의지해 살아가는 많은 수행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물과 불을 섬기고, 해와 달과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소를 키우고 젖을 짜 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일과로 삼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고행자였다. 나뭇가지나 풀을 먹는 사람, 쇠똥을 먹는 사람, 풀이나 나무껍질로 몸을 가린 사람, 사슴가죽을 걸친 사람, 땅바닥에 눕는 사람, 벌거벗은 채 가시 위에서 자는 사람, 개미집에 웅크리고 앉은 사람, 빗질하지 않은 머리를 기른 사람, 상투를 튼 사람,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뽑은 사람 등 그들의 차림새와 수행법은 가지각색이었다.

보살은 정중히 인사하고 물었다.

“당신들이 하는 수행은 흉내조차 내기 힘든 것들이군요. 이런 고행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입니까?”

선인 박가와가 말하였다.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육체는 속박입니다. 온갖 고통 덩어리인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 스스로 정화하면 그 보상으로 다음 생에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되지요. 만약 단식을 하다 죽거나 절벽에서 몸을 던지거나 태운다면 그 보상으로 천상에 태어나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하늘나라에 즐거움이 있다지만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복인들 영원할까요? 그 복이 다하면 다시 생사의 윤회를 계속하지 않을까요? 결국 고통의 연속이 아닐까요? 당신들은 고통스럽게 수행해서 결국 고통스런 결과를 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보살은 나지막이 탄식하였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물을 구하려고 험난한 바다로 나가고, 왕들이 나라를 넓히려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우듯, 이곳 수행자들은 하늘나라의 즐거움을 쟁취하려고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는구나.’

보살이 말이 없자 박가와가 물었다.

“왜 실망한 모습으로 침묵만 지킵니까? 우리가 하는 수행에 잘못이라도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이 남들이 하기 힘든 고행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수행을 통해 구하는 결과는 결국 윤회라는 괴로움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괴로움을 감내해야만 한다면 끝없는 즐거움을 위해 당신들은 끝없이 극심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건 고통의 연속일 뿐입니다.”

종일 박가와와 토론하고 하룻밤을 보낸 보살은 자신이 찾는 길이 아님을 알고 떠났다. 보살의 총명함과 진지함에 감탄한 박가와가 떠나는 길을 일러주었다.

“당신은 이곳에 만족하지 않으시는군요. 웨살리(Vesāli) 인근에 알라라깔라마(Āḷārakālāma)라는 훌륭한 선인이 계십니다. 그곳으로 찾아가 보십시오.”

 

보살은 고행자들의 숲을 떠나 웨살리를 향해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 타기에 능숙하고 장사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릿차위(Licchāvi)족의 도시 웨살리는 부유하고 활기가 넘쳤다. 시장 골목마다 수북이 쌓인 화려한 옷감이 도시의 생활수준을 말해주고 있었다. 웨살리에서 알라라깔라마의 명성을 대단했다. 도시 인근에 자리 잡은 그의 사원은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사원 한가운데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제단으로 향한 길은 수많은 참배객들고 북적였으며, 주변 나무 그늘에는 삼백에 명의 수행자들이 선정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보살은 사원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주의의 부산한 움직임에 눈길도 주지 않던 제자들이 허둥지둥 일어나 스승에게 달려갔다.

“스승님, 멀리서 기이한 나그네가 찾아왔습니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빛나는 눈동자가 마치 태양 같습니다.”

알라라깔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살을 환대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표정과 움직임이 부드럽고 눈동자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앚은 알라라깔라마에게 물었다.

“알라라깔라마시여, 당신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고통스런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가르칩니다.”

“알라라깔라마시여, 당신의 가르침은 스스로 터득한 것입니까, 누구로부터 들은 것입니까?”

“나의 가르침은 오랜 옛날부터 여러 선인들에게로 이어온 것입니다.”

“저도 당신의 법과 율 가운데서 수행하고 싶습니다.”

“이곳에 머물러도 좋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면 머지않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 괴로움을 벗어날 길은 무엇입니까?”

“생사에 윤회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인간의 무지(無知) 때문입니다. 바른 수행으로 지혜를 얻으면 이 고통의 굴레에서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를 얻으려면 신념과 노력과 집중과 선정이 필요합니다. 생사의 근본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고 인욕하면서 조용한 곳을 찾아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알라라깔라마는 쉽게 그의 수행법을 가르쳐주었다. 조금만 배워도 그가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믿음이 가는 스승이었다. 보살은 오래 걸리지 않아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그가 가르쳐준 선정을 터득하였고, 입술의 움직임과 몇 개의 문구만 듣고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보살은‘나는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알았다.’고 선언하였고, 다른 사람들 역시‘그렇다’고 인정해 주었다. 보살은 생각하였다.

‘알라라깔라마는 이 정도를 가르침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이 이상의 가르침을 가지고 있으리라.’

보살은 알라라깔라마에게 찾아가 자신이 이해하고 터득한 바를 말하고 물었다.

“알라라깔라마시여, 당신이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고 나서 가르치는 최상의 경지는 무엇입니까?”

알라라깔라마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나는 열여섯에 출가해 104년 동안 수행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에 옛 선인들의 가르침에서 내가 터득한 최고의 경지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입니다.”

보살은 생각하였다.

‘알라라깔라마가 가진 신념이라면 내게도 있다. 그가 가진 노력과 집중과 선정의 힘과 지혜라면 나 역시 갖추고 있다. 지금껏 살펴보았지만 그의 신념과 노력과 집중과 삼매의 힘과 지혜는 결코 나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가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본 것이라면 나도 반드시 스스로 알고 똑똑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좋다, 노력하자. 그가 성취한 최고의 진리를 나 역시 실현하리라.’

열심히 수행한 보살은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삼매를 경험하고 그 전모를 스스로 알고 똑똑히 보게 되었다. 보살이 찾아가 말하였다.

“알라라깔라마시여, 저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삼매를 스스로 알고 똑똑히 보았습니다.”

알라라깔라마가 감탄하였다.

“벗이여, 나도 그것을 알고 똑똑히 보았을 뿐입니다. 벗이여,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대처럼 뛰어난 수행자를 만난다는 건 행운입니다. 그대가 알고 본 것이 바로 내가 알고 본 것이며, 내가 알고 본 것을 이제 그대가 알고 보았습니다. 내가 터득한 선정과 지혜가 곧 그대가 터득한 선장과 지혜입니다. 그대와 나 사이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벗이여, 우리 둘이 이 교단을 함께 이끕시다.”

알라라깔라마는 보살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무소유처의 선정에 들면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안하였다. 그러나 선정에서 깨어나면 늙음과 질병과 죽음 앞에 여전히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여겼던 우울과 슬픔과 공포가 찾아들었다. 보살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 가르침에 의지하면 무소유처의 선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선정으로는 결코 고뇌와 탐착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 선정은 모든 고뇌가 소멸된 것이 아니고, 진정한 고요함도 아니며, 수승한 지혜와 원만한 깨달음도 아니다. 이 가르침으로는 진리의 세계에 이를 수 없다.’

완전한 가르침이 못된다고 판단한 보살은 알라라깔라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스승을 찾아 남쪽으로 길은 나선 보살은 드넓은 강가(Gangā)2강을 건너 마가다(Māgadhā)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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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가(Gaṅgā)강 : 한역하여 항하(恒河)라 음역하고 영어로 갠지즈(Ganges)강이라 한다. 강가(gaṅga), 야무나(yamunā), 아찌라와띠(aciravati), 사라부(sarabhū), 마히(mahī)는 북인도의 오대강(五大江, pañcamahānadā)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