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아! 그분 고따마 붓다/고따마 붓다의 생애

제2장 구도의 길 1. 집을 나서다

moksha 2017. 5. 8. 13:39

1. 집을 나서다

 

새로운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밤낮으로 이어진 칠 일 동안의 떠들썩한 잔치가 끝났다. 모든 이들이 지쳐 잠이 들었다. 넓은 궁전에 깨어있는 사람이라고는 태자 한 사람뿐이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고요한 달빛을 받으며 태자는 생각에 잠겼다.

 

‘한 나그네(=중생)광야(=끝없는 무명의 긴 밤)를 거닐다가 코끼리(=무상)를 만나 도망치고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눈빛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마을은 아득하고 나무 위건 돌 틈이건 안전한 곳은 없다. 숨을 곳을 찾아 사방으로 내달리다 겨우 발견한 곳이 바닥이 말라버린 우물(=생사)이다. 저곳이면 그래도 괜찮겠지, 우물 곁 등나무 뿌리(=목숨)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다가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컴컴한 바닥에 시커먼 독룡(=죽음)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서야 먹잇감을 노리며 사방에서 혀를 널름거리는 네 마리의 독사(=사대)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할까, 그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쫓아온 코끼리가 코를 높이 치켜들고 포효하고 있었다. 올라오기만 하면 밟아버릴 태세다. 믿을 것이라고는 가느다란 등나무 뿌리 한 줄기뿐이다. 그러나 그 뿌리마져 흰 쥐와 검은 쥐(=밤과 낮)가 나타나 번갈아가며 갉아먹고 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얼굴 위로 무언가 떨어져 입으로 흘러들었다. 꿀이었다. 등나무 덩굴 위에 벌집이 있었던 것이다. 똑, 똑, 똑, 똑, 똑, 다섯 방울의 달콤함(=오욕)과 감미로움에 취해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벌(=삿된 소견)들이 쏟아져 나와 온몸을 쏘아대고, 두 마리 쥐가 쉬지 않고 뿌리를 갉아먹고, 사방에서 독사들이 쉭쉭거리고, 사나운 들불(=늙음과 병듬)이 일어나 광야를 태우는 데도 그는 눈을 꼭 감고 바람이 다시 불기만 기다렸다. 다섯 방울의 꿀맛만 기억하고, 그 맛을 다시 볼 순간만 기약한 채 그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잊고 있었다. 나의 삶도 이 나그네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달이 서쪽으로 기울 무렵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자비의 방으로 소리없는 걸음을 옮겼다. 얇은 휘장 너머로 산통과 젖먹이 치다꺼리로 지친 야소다라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 아이는 달콤한 꿈이라도 꾸는지 엄마 품에서 꼬물거리며 연신 방긋거렸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 얼굴을 태자는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 천천히 발길을 돌려 찬나(Channa, 차익車匿)의 방으로 향했다.

“일어나라, 찬나야.”

“태자님, 이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깐타까(Kanthaka)에게 안장을 얹어라. 갈 곳이 있다.”

쥐죽은 듯 고요한 까삘라성의 문턱을 넘으며 태자는 다짐하였다.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 이 고통과 근심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최상의 진리를 얻기 전엔 결코 나를 키워주신 마하빠자빠띠와 아내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태자는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길을 재촉하였다.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른 찬나는 떨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으로 고삐를 늦췄다. 그러나 속내를 모르는 깐타까의 걸음은 날래기만 하였다. 동쪽 하늘이 밝아올 무렵 태자는 아노마(Anomā)1강가의 은빛 모래언덕에 다다랐다. 강 너머는 말라(Mallā)의 땅이었다. 비단처럼 보드라운 안개 너머로 붉게 물든 아침 풍경이 신비로웠다. 말에서 내린 태자는 깐타까의 새하얀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끝났다. 곁에서 시중드느라 수고 많았다. 찬나야, 깐타까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라.”

 

찬나는 나무둥치 같은 두 팔을 벌려 태자의 앞을 막아섰다.

“안 됩니다. 뜻을 거두고 왕궁으로 돌아가십시오. 부디 부왕과 왕비님, 태자비님과 새로 태어난 왕자님에게 슬픔을 안겨주지 마십시오.”

도도한 강물의 흐름 같은 태자의 결심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결연한 눈빛으로 찬나를 바라보던 태자가 천천히 칼을 꺼냈다.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던 태자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어졌다. 태자는 상투를 장식했던 화려한 구슬을 찬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부왕께 전해다오, 나라를 내놓고 새로운 길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 왕들은 예전부터 있었다고, 그러니 못난 짓이라 너무 나무라지만은 마시라고 전해다오. 젊고 건강하다지만 병들어 죽는 일엔 정해진 때가 없으니 마냥 안심하고 지낼 수만을 없었다고, 최상의 진리를 얻기 전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다오.”

태자는 몸에 지녔던 장신구들을 하나하나 풀었다.

“이것은 왕비께 드리고, 이것은 태자비께 드려라. 부디 슬픔에 오래 잠기지는 마시라고 전해다오.”

찬나는 태자의 발아래 허물어졌다. 거칠고 강인한 찬나의 두 눈에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뜻을 거두지 않으시겠다면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맹수와 뱀이 득실거리고 포악한 도적들이 출몰하는 이곳에 태자님을 혼자 버려둘 수 없습니다.”

“찬나야 인생이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것, 어찌 영원한 동반자가 있겠느냐.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여정 속에서 너와 난들 어찌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겠느냐. 나는 이제 새 길을 갈 것이다.”

찬나는 애원하였다.

“저 혼자 왕궁으로 돌아가면 왕께서 저를 벌하실 게 분명합니다. 저는 태자님을 따라가겠습니다.”

평생을 태자 곁에서 시중들며 지낸 찬나였다. 태자는 흐느끼는 찬나의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도 이레 만에 죽음으로 이별해야 했는데 너와 헤어짐이 없을 수 있겠느냐. 더 이상 부질없는 연민으로 괴로워 말라. 깐타까와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 내 말을 전해다오. 너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태자는 황금 신발을 벗었다. 완전한 진리를 찾아 영겁을 떠돈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보살(菩薩)2은 피를 토하는 찬나의 울음을 뒤로하고 낯선 풍경 속으로 걸어갔다.

스물아홉 되던 해인 기원전 595년 2월 8일의 일이었다.


  1. 아노마(Anomā)강 : 아노마(Anomā)는 까삘라왓투(Kapilavatthu)에서 동쪽으로 30리그(90마일) 떨어져 있는 강의 이름이다. 하지만 북방불교의 불전인「랄리따위스따라(Lalitavistra)」에 따르면 이 강은 까삘라왓투에서 오직 6유순 정도만 떨어져 있다고 한다. 이 강가에서 보살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고 범천 가띠까라(Ghaṭikāra)가 건네준 황색가사를 걸치고 사문이 되었다. 이 강은‘영광스러운’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자따까 주석서와 다른 문헌에 인용된 전승에 따르면 이 강은 보살의 서원을 성취하는 데 길조로 간주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보살이 마부 찬나(Channa)에게 이 강의 이름을 묻자, 찬나는 “아노마(영광스러운)”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보살은 “나의 출가도 이 강의 이름처럼 영광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J.i.64) [본문으로]
  2. 보살(菩薩)의 원어인 보디삿따(Bodhisatta)는 bodhi(覺, 깨달음) + satta(有情, 존재)의 복합어이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해서 붓다라고 불리기 이전의 상태를 이렇게 보살로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 원음 Bodhisatta를 보리살타(菩提薩埵)로 음역한 것을 다시 보살(菩薩)로 줄여서 부른다. 그리고 이 개념은 본생경(本生經)에서 금생만을 보살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모든 전생을 다 보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초기불교에서는 보살이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하기 전의 붓다 또는 붓다의 전생을 말한다. 보살이 성불하기 위해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겁(劫)동안 윤회를 반복하며 십바라밀(dasa-pāramī)을 닦아야 한다. 이 십바라밀에는 ①보시(布施, dāna) ②지계(持戒, sīla) ③출리(出離, nekkhamma) ④지혜(智慧, paññā) ⑤정진(精進, viriya) ⑥인욕(忍辱, khanti) ⑦진실(眞實, sacca) ⑧결의(決意, adhiṭṭhāna) ⑨자애(慈愛, mettā) ⑩평온(平穩, upekkhā)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