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가르침
부처님이 설하신 고통의 발생(發生)과 고통의 소멸(消滅)의 길 그리고 도덕적, 철학적인 체계를 법(法, Dhamma)이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 법(法, Dhamma)의 체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가르침에 의한 종교를 불교(佛敎)라고 한다.
불교는 부처님의 제자들과 불자들을 이끌어 청정한 삶을 살게 하고 또한 그들의 생각 자체를 청정하게 만들어 마침내 최상의 지혜를 얻게 하고 모든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길이다.
불교에선 맹목적 믿음은 설자리가 없고 오직 지혜를 바탕으로 한 확신이 있을 뿐이다. 불자는 부처님을 유일무이의 지도자와 스승으로 받들어 그에게 귀의하지만 맹목적으로 복종하지는 않는다.
불교에는 강요하는 신앙과 숭배의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불자는 경전에만 얽매이는 사람도 아니요, 또 초자연적 신에 대해 충성을 바칠 의무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부처와 같은 존재에 예속된 노예도 아니다.
불자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닌 채로, 자유로운 의지를 활용하고 지혜를 계발하여 끝내는 부처의 경지에까지도 이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불자들은 물론 부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들지만 부처님은 한 번도 자신이 초자연적 권능자라는 식의 주장을 하신 적이 없다. 또한 팔만사천의 경전 어디에도 도그마1는 볼 수 없다. 불교에서는‘지금 여기에서[diṭṭhadhamma, 현법(現法)]2’의 직접적 깨달음만이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그 깨달음의 관건은 합리성에 바탕한 바른 이해[정견(正見)]이다.
불자들이 불단에 꽃이나 다른 공양물을 올리는 등 부처님을 공경하는 의례와 의식을 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살아 계신 동안 사람들로부터 높이 추앙을 받으셨으나 한 번도 자신을 신격화한 적은 없었다. 그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다만 놀랄 만큼 비범한 인간이었다. 불교의 출발은 인간이지만 그 밖의 모든 종교는 신(神)으로부터 출발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부처님만큼 신이 아니면서도 또한 그렇게 신보다 더 거룩했던 스승은 없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부처님은 가르침의 실천을 무엇보다 강조하셨다.
[세존]“믿음으로 베풀면 여러 가지로 칭찬받지만 보시보다 진리의 말씀을 실천함이 더 훌륭하네. 예전에도 그 이전에도 그러한 참 사람, 지혜로운 자는 모두 열반에 들었다네.”
사두 경(Sādhusuttaṃ, 좋은 것 경, S1:33)
이러한 가르침에 복종이라든지 맹종 혹은 창조신(創造神)이나 유일신(唯一神)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올바른 견해와 도덕적 삶 그리고 자유의지에 의한 자기 자신의 노력만으로 자기 구원을 얻을 것을 강조하신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굳이 믿어야하는 교리도 없고, 이치를 떠나 믿음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교의도 없으며, 신자가 되기 위해 치뤄야 할 허례적 의식이나 예식도 없고, 속죄를 위한 무의미한 희생이나 고해의식도 없다.
종교가 인간을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으로의 길로 인도하는 구원체계라고 한다면 불교는 “‘나’를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는 자는 ‘나’ 스스로일 뿐이다.’는 의미를 되새겨 볼 때 종교중의 종교인 위대한 종교이다.
- 도그마(dogma) : 원래 이 말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구제를 위해 신(神)이 계시한 진리로써 교회가 신적권위를 강조한 신앙신조를 말한다. [본문으로]
- 지금 여기(diṭṭhadhamma) : 한역하여 현법(現法)이라 한다. 주석에 따르면 놀랍게도 “여기서 감각기능[근(根)]에 감각대상[경(境)]이 아닌 선(禪)의 경지등도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감각기능의 대상처럼 간주될 수가 있다.”라고 했다. 선정수행에서 체험 역시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현법열반론자들은 자아가 있다고 여겨 이 자아가 다섯 가지 감각을 소유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자아는 지금 여기에서 최상의 열반에 도달해 있다고 주장한다.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이것이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현법열반론은 자아(自我)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눈, 귀 등 오감으로 지금 여기서 느끼고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에서의 ‘지금 여기’의 의미는 존재론적 자아에 기반한 유신견(有身見)으로서의 현법열반론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현세에서의 직접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 > 다나상가(Dānasaṅgha)담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불자(佛子)란 누구인가 (0) | 2017.04.04 |
---|---|
(5) 시계생천(施戒生天)의 가르침 (0) | 2017.04.04 |
(4) 행운의 겁에서 불법을 만난 축복 (0) | 2017.04.04 |
(3)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자의 의지처 (0) | 2017.04.04 |
Ⅰ. 불교(佛敎)의 이해와 불자(佛子)의 삶 - (1) 거룩한 부처님 (0) | 2017.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