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숫따니빠따(Suttanipāta)/숫따니빠따 독송

Sn3:4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의 경(Sundarikabhāradvājasutta) : 어디에 헌공하는 것이 공덕이 있나?

moksha 2016. 9. 30. 18:31


Sn3:4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의 경(Sundarikabhāradvāj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꼬살라 국에 쑨다리까 강 언덕에 계셨다.

그때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가 쑨다리까 강 언덕에서 불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불의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불의 신에 제물을 바치는 불의 제사를 준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두루 사방을 살펴보았다.

[쑨다리까] ‘누가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이 음식을 즐길 것인가? 그때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세존께서 어떤 나무 밑에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는 왼손으로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들고, 오른손으로 물병을 들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세존께서는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의 발자국 소리 때문에 머리의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생각했다.

[쑨다리까] ‘이 존자는 머리를 빡빡 깍았네. 이 존자는 머리를 빡빡 깍았네.’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쑨다리까] ‘어떤 바라문은 빡빡 깍은 자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출신을 물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쑨다리까] “그대는 어떤 가문 출신입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에게 시로써 대답하셨다.

 

455. [세존] “나는 결코 바라문도 아니고 왕자도 아닙니다. 나는 평민도 아니고, 혹은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가문의 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아무것도 없이 지혜롭게 세상을 거닙니다.

 

456. 나는 머리를 깍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더럽혀지지 않고, 법복을 걸치고, 집 없이 거닙니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내게 성을 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457. [쑨다리까] “존자여,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을 만났을 때에 ‘바라문입니까?’라고 묻지 않습니까?”

[세존] “만일 그대가 바라문이고, 나를 바라문이 아닌 자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삼행의 스물 넉자로 된 게송1에 대해 묻겠습니다.”

 

458. [쑨다리까] “이 세상에서 선인들이나 일반인들이나 왕족들이나 바라문들은 무엇 때문에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까?”

[세존] “궁극에 이르고 지혜에 통달한 사람이 제사 때에 어떤 사람의 헌공을 받는다면, 그 어떤 사람에게 공덕이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459. [쑨다리까] “분명히 그러한 나에게 헌공의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지혜를 통달한 그대와 같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그대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다른 사람이 그 헌과를 향유했습니다.”

 

460. [세존]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유익한 일을 찾아서 그대가 왔으니 가까이 와서 물으십시오. 아마도 이곳에서 고요하여, 연기2가 없고, 고통이 없고, 바램이 없는 총명한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461. [쑨다리까] “존자 고따마시여, 나는 제사를 즐기며, 제사를 지내려합니다. 그러나 알지를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어디에 헌공하는 것이 공덕이 있는 것입니까?”

[세존] “그럼 바라문이여, 경청하십시오. 그대에게 가르침을 설하겠습니다.

 

462.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십시오.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일지라도 성자는 지혜롭고, 고귀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제합니다.

 

463. 진리로 길들여지고 감관의 제어를 갖추고 지혜에 통달하고 청정한 삶을 이룬 님, 공덕을 기대하는 바라문이라면, 올바른 때에 공양 받을 만한 그에게 헌공하시오.

 

464.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거닐고, 자기를 다스리고, 베틀의 북처럼 곧은 님들, 공덕을 기대하는 바라문이라면, 올바른 때에 공양 받을 만한 그들에게 헌공하시오.

 

465. 달이 라후의 장애3에서 벗어나듯, 감관을 잘 다스려서 탐욕을 떠난 님들, 공덕을 기대하는 바라문이라면, 올바른 때에 공양 받을 만한 그들에게 헌공하시오.

 

466. 집착 없이,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내 것이라는 것을 버리고, 세상에서 거니는 님들, 공덕을 기대하는 바라문이라면, 올바른 때에 공양 받을 만한 그들에게 헌공하시오.

 

467. 모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이겨내어, 태어남과 죽음의 끝을 알고 시원하고 맑은 호수처럼, 완전한 열반을 성취하였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68. 같은 님들과는 같고4, 같지 않은 님들과는 거리가 있는, 이렇게 오신 님은 한량없는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때가 묻지 않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69. 그는 허위나 독단을 지니지 않고, 탐욕을 떠나고 내 것을 두지 않고, 바램을 떠나고, 분노를 몰아내고, 자아를 소멸시키고, 슬픔의 때를 제거한 바라문이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0. 마음이 거처5를 제거하여 어떠한 소유도 갖지 않으며,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나 집착이 없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1. 삼매에 들어 거센 흐름을 건너고, 가장 뛰어난 견해로써 진리를 알고, 번뇌가 부수어져 최후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2. 존재의 번뇌와 거친 언어는 흩어져서 사라져 없어져 버렸고, 지혜에 통달하고 모든 것에 해탈하였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3. 집착을 뛰어넘어 그에게는 집착이 없고, 자만에 얽매인 자들 가운데 자만에 매이지 않고, 괴로움에 대하여 그 영역과 기반을 잘 아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4. 욕망에 기대지 않고 멀리 여읨을 보고, 남들이 가르치는 견해6를 초월하여, 다시 태어나게 될 아무런 조건도 갖고 있지 않은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5. 높고 낮은 현상들을 깨달아 그것들을 제거하고 사라지게 하여, 적멸을 성취하고 집착을 부수고 해탈하였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6. 장애와 태어남이 소멸하는 궁극을 보고 탐욕의 길을 남김없이 제거하여 잘못 없이 티끌 없이 오염 없이 청정하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7. 자기에게서 자아를 보지 않고, 집중되고, 곧바르고, 확립되어, 동요가 없고 황무지가 없고, 의혹이 없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8. 그에게는 어떠한 것에도 어리석음이 없고, 그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앎과 봄을 지니고, 최후의 몸을 가지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이처럼 최상의 청정함을 얻었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479. [쑨다리까] “당신과 같은 지혜에 뛰어난 사람을 만났으니, 저의 제물은 참다운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하느님으로 저의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저의 헌과를 받아주십시오.

 

480. [세존] “나는 시를 읊은 댓가를 향유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로 보는 이에게 옳지 않습니다. 시를 읊은 댓가를 깨달은 이는 물리치니, 바라문이여, 법이 있다면 그것이 진솔한 삶입니다.

 

481. 번뇌가 부서지고 의심이 소멸된 완전한 위대한 선인에게 다른 음식과 음료수로 봉사하십시오. 공덕을 바라는 자에게 그것은 복받이 될 것입니다.”

 

482. [쑨다리까] “세존이시여, 누가 저와 같은 자의 보시를 향유할 수 있는지, 누구를 제사지낼 때에 찾아서 공양을 올려야 하는지, 그대의 가르침을 받아 알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483. [세존] “격정을 떠나서 마음에 혼탁이 없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벗어나 혼침을 제거한 님.

 

484. 한계의 끝을 제거하고 태어남과 죽음을 잘 알고, 해탈한 님의 덕성을 몸에 갖춘 그러한 님이 제사에 왔을 때,

 

485. 눈썹을 찌푸리지 말고 그에게 합장하여 예배하시오. 음식으로 공양하시오. 이러한 보시를 행하면, 뜻을 이룰 것이오.

 

486. 깨달은 님은 헌과를 받기에 마땅하고 으뜸가는 공덕의 밭이고 온 세상의 공양을 받을만한 님입니다. 세존에게 보시하면,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쑨다리까] “존자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을 갖춘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꼬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세존이신 고따마 앞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존자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양가의 자제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그는‘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다.

마침내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거룩한 님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의 경이 끝났다.


  1. 리그베다(Rg-Veda)에 나오는 시형(Sāvitrī)의 이름인데 3행시 24음절로 되어있다. 태양신 사비트리(Savitṛ)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불교의 싸비트리는 삼귀의를 말한다. 삼귀의의 빠알리 형태는 바로 3행시 2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Saṅghaṃ saraṇaṃ gacchāmi.) [본문으로]
  2. 연기 : 분노의 연기가 없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3. 인도의 민간설화에 따르면, 일식과 월식의 현상은 악마적인 존재인 라후가 해와 달을 삼키는 현상이다. [본문으로]
  4. 부처님들은 부처님과 같다는 말이다. 모든 부처님은 통찰력이 동등하고 통찰에 의해 얻어진 덕행도 동등하고 버려져야 할 결점에서도 다른 점이 없지만, 다만 각각의 부처님들은 시기, 수명, 가문, 신장, 출가, 정근, 보리수, 광명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다. 부처님들은 부처님이 아닌 연각불들이나 성문들이나 중생들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5. ‘갈애와 견해가 거처’를 말한다. [본문으로]
  6. 남들이 가르치는 견해 = 62가지 사견 ⇒ 하느님의 그물의 경(Brahmajālasutta, DN.1)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