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p.153]~[Dhp.154]
부처님께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감회를 읊으신 게송 이야기
싯달타 태자는 고따마(Gotama)의 가계로서 사끼얀(Sakyan) 족으로 캇띠야(Khattiya 혹은 Ksatriya:왕족) 계급이었으며,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어머니 마야 왕비 사이에 첫아들로 탄생하시었다. 태자는 태어날 때 아주 특출한 아기로서의 신비롭고 기적적인 면을 보인 바 있었다. 이는 태자가 단순히 금생에만 공덕을 쌓은 것이 아니라 수없이 긴 세월을 두고 많은 공덕을 쌓아 왔고, 이제는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태자에게는 태자로서 장차 한 나라를 다스릴 영화가 보장된 탄생이었을지라도, 그보다는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일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엄청난 고통과 번민, 노쇠와 불합리가 더 중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태자는 나이 스물 아홉이 되던 해(그때는 결혼하여 귀여운 첫아들을 얻고 있었는데)에 진리를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명예와 왕실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수행자가 되었다.
수행자 고따마는 그 후 진리를 찾기 위해 육 년 동안 갠지스 강의 기슭을 따라가며 당시의 유명한 모든 수행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수행법을 통달하였다. 그러나 끝내 궁극적 목표였던 깨달음에는 이를 수 없었다. 그는 엄격하고 규칙적이며 맹렬하게 육신을 학대하는 고행자로서의 길을 가려고 초인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관습에 불과한 것이었고, 형이상학적이어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태자는 고행을 버리고 자기만의 길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리라 결심했다.
이때 태자는 지나치게 호화롭게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지나치게 자기를 학대하며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 둘을 다 버리고 중도(中道)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가장 평화롭고 고요하며 지나침이 없는 이 중도만이 현실에 부합하는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하시었다. 이 중도(맛지마빠띠빠다:Majjhimapatipada)를 가게 되면 완전한 평화인 닙바나(Nibbana:涅槃)에 이르게 되는데, 중도는 구체적으로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正聖道, Ariya-atthangika-magga)로써 설명되었다.
팔정도(八正道, ariya-aṭṭhaṅgika-magga) ariya-aṭṭhaṅgika-magga)는 다음과 같다.
①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
②바른 사유(正思惟, sammā-saṅkappa),
③바른 말(正語, sammā-vācā),
④바른 행동(正業, sammā-kammanta),
⑤바른 생계(正命, sammā-ājīva),
⑥바른 #정진(正精進, sammā-vãyama),
⑦바른 알아차림(正念, sammā-sati),
⑧바른 집중(正定, sammā-samãdhi)
①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 [정견][바른 이해] : Right Understanding(view)
: 존재의 진실된 성질에 대한 앎.
②바른 사유(正思惟, sammā-saṅkappa) [바른 생각] : Right motive(intension)
: 관능악의잔인성 등을 벗어난 생각
③바른 말(正語, sammā-vācā) [바른 말] : Right speech
: 거짓말, 험담, 거친 말, 쓸데 없는 잡담이 아닌 말.
④바른 행동(正業, sammā-kammanta) [바른 행위] : Right Action(conduct)
: 살생, 도둑질, 간음을 하지 않는 것.
⑤바른 생계(正命, sammā-ājīva) [바른 생계] : Right livelihood
: 의식을 가진 생물을 해치지 않는 직업을 갖는 것.
⑥바른 #정진(正精進, sammā-vãyama) [바른 노력] : Right Effort(endeavour)
: 마음의 때를 씻어 내는 것.
⑦바른 알아차림(正念, sammā-sati) [바른 새김]
: Right Interlectual activity : Mindfulness
: 평산적 주의력의 완성
⑧바른 집중(正定, sammā-samãdhi) [바른 집중] [바른 삼매]
: Right contemplation(concentration)
: 상대세계를 넘어서서 조건 지어지지 않는 것 즉, 궁극적 실재를 곧 바로 알기 위해 평상을 초월한 마음 상태 계발.
:하나로 집중된 마음[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ssa-ekaggatā]
여기에 제시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은 수행자만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당연한 길이자, 최상의 길로서, 사회의 길이며, 인류의 길인 것이다. 누구나 이와 같이 치우침 없이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진리가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싯달타 태자는 이 같은 진실을 깨달으셨다. 태자는 이같이 위대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극히 평이한 진리를 얻으신 다음 그날 저녁 때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에 으뜸가는 깨달음(Bodhiñāṇa 혹은 Sabbannutañāṇa)을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성취하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날 밤 초야(7~10시)에 과거 전생을 아는 지혜인 숙명통(宿命通, pubbenivāsa-anussati)를 성취하시었고, 중야(10~12시)에는 모든 물체의 막힘과 거리의 장애를 받음이 없이 보실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dibba-cakkhu)를 성취하시었다. 또 후야(12~3시)에 뭇삶들에 대한 자애에서 연기의 형태(paccayākāra)에 대한 궁극적인 앎을 일으켜 그것을 순관과 여관으로 명상하다가 아침 해가 떠오를 때에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Sammāsambodhi)을 곧바로 깨닫고 나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깨달은 님들에게 공통적인 감흥어(感興語, 우다나Udāna)로써 게공을 읊으시었다.
이와 같이 모든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께서는 그 이외에도 성스러운 진리의 특성에 관한 지혜, 진리의 활용에 필요한 지혜, 진리를 활용하여 결과에 달성시키는 지혜, 일체의 현상의 근본을 통찰하는 지혜를 다 갖추시게 되어 이때부터 완전하게 깨달으신 분(正等覺者, Sammā-Sambuddha)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으며, 고따마 붓다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에 관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12가지 관점에서 명확하고 바르게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이러한 부처님이야말로 완전한 깨달음을 스스로 성취하신 분으로서 모든 인간계와 천상계, 그리고 브라흐마 세계까지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으뜸가는 성인이시며, 스승이요, 붓다이시며, 아라한이신 것이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四聖諦, cattari ariya saccani)]는 다음과 같다.
▶고성제(苦聖諦, dukkha ariya sacca)
▶집성제(集聖諦, dukkha samudaya ariya sacca)
▶멸성제(滅聖諦, dukkha nirodha ariya sacca)
▶도성제(道聖諦, dukkha nirodha gāmiṇī-paṭipadā ariya sacca)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통하여 부처님을 이루시는 순간 다음 게송 두 편을 읊으시었다.
[Dhp.153]
나는 집을 짓는 자(주)를 찾으며
그러나 발견하지 못하고
많은 생애의 윤회를 달려왔으니,
거듭 태어남은 고통이다. (주)
[Dhp.154]
집짓는 자여, 그대는 알려졌다. (주) 그대는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주)
서까래 (주) 는 부서졌고 대들보 (주) 는 꺾였다.
많은 생애의 윤회를 달려왔으나,
마음은 형성을 여의고 갈애의 부숨을 성취했다.
▣ 집을 짓는 자 : 집은 인간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을 가리킨다. 그리고 집을 짓는 자, 즉 목수는 욕망, 갈망, 애착, 집착 따위를 비유하신 것이다.
▣ 이 게송의 의미는 '연등불 밝은 빛 여래(디빵까랑)께서 나에게 너는 먼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하신 이래 나는 집을 짓는 자를 찾고자 백방으로 힘썼다. 집을 짓는 자를 찾으려면 지혜(빤냐)가 있어야 하고, 지혜는 깨달음으로 얻어지며, 깨달음을 통하여 집을 짓는 자를 발견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윤회에 시달렸고, 크나큰 방황과 고통을 겪었다.'는 뜻이다. 이런 방황과 고통의 결과 문제의 근원을 밝혀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번뇌를 뿌리 뽑으신 감격은 다음 게송에서 토로된다.
▣ 집을 짓는 자를 봄 : 내적 현상 관찰의 지혜를 통하여 모든 고통의 원인과 욕망과 갈망임을 봄. 그러나 그 또한 하나의 현상일 뿐 실체가 없이 단지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함. 그러므로 그 조건의 출입문인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잘 다스리면 번뇌를 쉬어 해탈하게 된다.
▣ 집을 짓지 못함 : 윤회의 원인이 되는 갈망을 쉬었으므로 깜마가 남지 않아 다시는 사대 오온의 몸과 마음을 받지 않는다.
▣ 서까래 : 번뇌를 가리킴.
▣ 대들보 : 근원적인 어리석음(無明)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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