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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나무심에 비유한 작은 경(Cūḷasāropamasutta, MN.30)

moksha 2023. 10. 1. 22:01

나무심에 비유한 작은 경(Cūḷasāropamasutta, MN.3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바라문 삥갈라꼿차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앉은 바라문 삥갈라꼿차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3. “세존이신 고따마여, 이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는데, 승가의 지도자들이며, 무리의 지도자들이며, 무리의 스승들이며, 잘 알려진 사람들이며, 유명한 사람들로서, 종파의 창시자들이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들입니다. 즉 뿌라나 깟싸빠, 막칼리 고쌀라, 아지따 께싸깜발린, 빠꾸다 깟차야나, 싼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스스로 일컫듯이 깨달았습니까, 혹은 깨닫지 못했습니까? 또는 어떤 사람들은 깨닫고 어떤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까?”

 

4. “바라문이여, ‘그들 모두는 스스로 일컫듯이 깨달았습니까, 혹은 깨닫지 못했습니까? 또는 어떤 사람들은 깨닫고 어떤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바라문이여, 내가 그대에게 가르침을 설하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잘 새기십시오, 내가 설명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바라문 삥갈라꼿차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5.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 도달한다고 합시다. 그 때 그는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서, 가지나 잎사귀를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와 같이 벗이여, 참으로 이 사람은 나무심을 알지 못하고, 백목질을 알지 못하고, 속껍질을 알지 못하고, 겉껍질을 알지 못하고, 그 가지나 잎사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다가,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서, 그 가지나 잎사귀를 잘라서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6.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 도달한다고 합시다. 그 때 그는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와 같이 벗이여, 참으로 이 사람은 나무심을 알지 못하고, 백목질을 알지 못하고, 속껍질을 알지 못하고, 겉껍질을 알지 못하고, 그 가지나 잎사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다가,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7.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 도달한다고 합시다. 그 때 그는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와 같이 벗이여, 참으로 이 사람은 나무심을 알지 못하고, 백목질을 알지 못하고, 속껍질을 알지 못하고, 겉껍질을 알지 못하고, 그 가지나 잎사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다가,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그 속껍질을 잘라서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8.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 도달한다고 합시다. 그 때 그는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와 같이 벗이여, 참으로 이 사람은 나무심을 알지 못하고, 백목질을 알지 못하고, 속껍질을 알지 못하고, 겉껍질을 알지 못하고, 그 가지나 잎사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다가,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잘라서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9.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 도달한다고 합시다. 그 때 그는 나무심을 잘라서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와 같이  ‘벗이여, 참으로 이 사람은 나무심을 알고, 백목질을 알고, 속껍질을 알고, 겉껍질을 알고, 그 가지나 잎사귀를 안다. 그래서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다가,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잘라서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10. 바라문이여 여기 한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그는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괴로움에 빠져서 괴로움에 정복되었다. 나는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이 이득과 칭송과 명성에 환희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해서, 이득과 칭송과 명성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며 나는 이득을 얻고 명성이 높지만 그들 다른 수행승들은 알려지지도 않고 환대 받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득과 칭송과 명성보다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거기에 탐닉하고 태만해집니다.

 

11. 바라문이여, 마치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다가,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서, 그 가지나 잎사귀를 잘라서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 사람을 이와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12. 바라문이여 여기 한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그는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괴로움에 빠져서 괴로움에 정복되었다. 나는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이 이득과 칭송과 명성에 환희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이득과 칭송과 명성보다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 계행을 성취합니다. 그는 계행을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만족합니다. 그는 그 계행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하며,  ‘나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갖춘, 계행을 지키는 자이다. 다른 수행승들은 악하고 불건전한 원리를 갖춘, 파계자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른 계행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거기에 탐닉하고 태만해집니다.

 

13.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만이여, 그 사람을 이와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14. 바라문이여 여기 한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그는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괴로움에 빠져서 괴로움에 정복되었다. 나는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이 이득과 칭송과 명성에 환희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이득과 칭송과 명성보다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 계행을 성취합니다. 그는 계행을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계행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 그는 계행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 삼매를 성취합니다. 그는 삼매를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만족합니다. 그는 그 삼매를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합니다. ‘나는 삼매를 성취했고 마음이 통일되었다. 그러나 다른 수행승들은 삼매를 성취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삼매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거기에 탐닉하고 태만해집니다.

 

15. 바라문이여, 마치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지나치고, 그 속껍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 사람을 이와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16. 바라문이여 여기 한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그는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괴로움에 빠져서 괴로움에 정복되었다. 나는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이 이득과 칭송과 명성에 환희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이득과 칭송과 명성보다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 계행을 성취합니다. 그는 계행을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계행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계행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서 삼매를 성취합니다. 그는 삼매를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그 삼매를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서 앎과 봄을 성취합니다. 그는 앎과 봄을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만족합니다. 그는 그 앎과 봄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하며, ‘나는 앎과 봄을 성취했다. 그러나 다른 수행승들은 앎과 봄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거기에 탐닉하고 태만해집니다

 

17. 바라문이여 마치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나무심을 지나치고 백목질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 사람을 이와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18. 바라문이여 여기 한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그는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괴로움에 빠져서 괴로움에 정복되었다. 나는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이 이득과 칭송과 명성에 환희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이득과 칭송과 명성보다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 계행을 성취합니다. 그는 계행을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계행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계행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서 삼매를 성취합니다. 그는 삼매를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그 삼매를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성취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아서 앎과 봄을 성취합니다. 그는 앎과 봄을 성취함으로써 환희를 얻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그 앎과 봄을 성취한 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를 깨닫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탐닉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습니다.

 

19. 바라문이여,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오묘한 다른 원리란 어떠한 것입니까

1) 바라문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2)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3) 바라문이여,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4)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6)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완전히 미세한 물질계에 대한 지각을 완전히 뛰어넘어 감각적 저촉의 지각이 사라진 뒤에 다양성의 지각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공간이 무한하다.’라고 알아채며 무한공간의 세계를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7)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무한공간의 세계를 뛰어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라고 알아채며 무한의식의 세계를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8)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무한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아무 것도 없다.’라고 알아채며 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9)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10)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합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보아 번뇌를 부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앎과 봄보다도 한층 더 높고 한층 더 오묘한 원리입니다.

 

20. 바라문이여, 마치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 다니는 사람이, 나무심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그 나무심을 잘라 나무심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져간다면, 그가 그 나무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적합할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 사람을 이와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21.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청정한 삶은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계행의 성취를 공덕으로 삼지 않고, 삼매의 성취를 공덕으로 삼지 않고, 앎과 봄을 공덕으로 삼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부동의 마음에 의한 해탈이 있는데, 바라문이여, 청정한 삶은 이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것을 나무심으로 하고, 이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합니다.”

 

22.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삥갈라꼿차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옵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나무심에 비유한 작은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