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옷감에 대한 비유의 경(Vatthūpamasuttaṃ, M7)

moksha 2021. 10. 2. 21:35

옷감에 대한 비유의 경(Vatthūpamasuttaṃ, M7)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왓티 시의 제따와난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에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불렀다. 수행승들은 세존께 “세존이시여”라고 대답했다.

 

3.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여기 더럽혀지고 때가 묻은 옷감이 있는데 염색공이 그것을 청색, 노랑색, 빨강색 또는 분홍색이나 어떤 다른 염료로 그것을 물들이면, 잘 물들지 않고 선명하게 물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옷감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더럽혀지면 나쁜 운명이 그대들을 기다린다.

 

4. 수행승들이여, 여기 깨끗하고 청정한 옷감이 있는데 염색공이 그것을 청색, 노랑색, 빨강색 또는 분홍색이나 어떤 다른 염료로 그것을 물들이면, 잘 물들고 선명하게 물들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옷감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으면 좋은 운명이 그대들을 기다린다.

 

5. 수행승들이여, 마음의 더러움이란 어떠한 것인가? 욕심내는 것과 부정한 탐욕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악의가 마음의 더러움이고, 화내는 것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원한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저주가 마음의 더러움이고, 격분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질투가 마음의 더러움이고, 인색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거짓을 행하는 것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기만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고집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선입견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자만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오만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교만이 마음의 더러움이고, 방일이 마음의 더러움이다.

 

6.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욕심내는 것과 부정한 탐욕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욕심내는 것과 부정한 탐욕으로 이루어진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악의가 더러움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악의를 품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화냄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화내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원한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원한에 찬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저주가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저주라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격분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격분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질투가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질투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인색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인색이라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거짓을 행하는 것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거짓을 행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기만하는 것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기만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고집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고집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선입견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선입견을 갖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자만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자만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오만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오만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교만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교만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고, 방일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알고 나서, 방일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버린다.

 

7. 그는 부처님에 관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공양 받을 만한 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 명지와 덕행을 갖추신 분, 바른 길로 잘 가신 분, 세상을 이해하는 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분, 사람들을 길들이시는 분,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분, 부처님, 세상에 존귀한 분입니다.’라고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 청정한 믿음을 성취한다.

 

8. 그는 가르침에 관해 이와 같이 ‘세존께서 잘 설하신 가르침은 현세에 유익한 가르침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가르침이며, 승화시키는 가르침이며, 슬기로운 이 하나하나에게 알려지는 가르침입니다.’라고 경험에 근거를 둔 청정한 믿음을 성취한다.

 

9. 그는 제자들의 참모임에 관해 이와 같이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참모임은 훌륭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참모임은 정직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참모임은 현명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참모임은 조화롭게 실천합니다. 이와 같이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참모임은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사람들로 이루어졌으니, 공양 받을 만하시고, 대접받을 만하시고 선물받을 만하시고 존경받을 만하시고 세상에 가장 높은 복밭입니다.’라고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 청정한 믿음을 성취한다.

 

10. 그가 어느 정도 마음의 더러움을 포기하고 쫓아내고 놓아주고 버려버리고 보내버렸을 때에, 그는 비로소 ‘나는 부처님에 관해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성취했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한 영감을 얻고, 현상에 대한 영감을 얻고, 가르침과 환희를 얻는데, 환희하는 자에게는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는 자에게는 몸의 상쾌함이 있고, 몸이 상쾌한 자는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운 자는 마음이 집중된다.

 

11. 그는 ‘나는 가르침에 관해 경험에 근거를 둔 청정한 믿음을 성취했다.’라고 생각하며 그 의미를 깨우치고, 가르침을 깨우치고, 가르침과 관련된 환희를 얻는데, 환희하는 자에게는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는 자에게는 몸의 상쾌함이 있고, 몸이 상쾌한 자는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운 자는 마음이 집중된다.

 

12. 그는 ‘나는 참모임에 관해 경험에 근거를 둔 청정한 믿음을 성취했다.’라고 생각하며 그 의미를 깨우치고, 가르침을 깨우치고, 가르침과 관련된 환희를 얻는데, 환희하는 자에게는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는 자에게는 몸의 상쾌함이 있고, 몸이 상쾌한 자는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운 자는 마음이 집중된다.

 

13. 그가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더러움을 포기하고 쫓아내고 놓아주고 버려버리고 보내버렸다.’라고 생각하며 그 의미를 깨우치고, 가르침을 깨우치고, 가르침과 관련된 환희를 얻는데, 환희하는 자에게는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는 자에게는 몸의 상쾌함이 있고, 몸이 상쾌한 자는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운 자에게는 마음이 집중된다.

 

14.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흰쌀죽과 여러 가지 수프와 조미료를 먹는다 해도, 이와 같은 계율, 이와 같은 법, 이와 같은 지혜를 갖추면 그것이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마치 더럽혀지고 때 묻은 옷감은 맑은 물에 넣어 깨끗하고 청정해지고, 금광석은 제련화로에 넣어 깨끗하고 청정해지듯이,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수행승이 흰쌀죽과 여러 가지 수프와 조미료를 먹는다 해도, 이와 같은 계율, 이와 같은 법, 이와 같은 지혜를 갖추면 그것이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15. 그는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

 

16. 그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

 

17. 그는 기쁨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 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

 

18. 그는 평정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

 

19. 그는 ‘이것이 있고 저열한 것이 있고 탁월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각을 넘어서서 그것에서 벗어남이 있다.’라고 안다.

 

20.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한다. 해탈하면 그에게 ‘나는 해탈했다.’는 앎이 생겨난다. 그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는 일은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수행승을 내면의 목욕으로 청정해진 수행승이라고 부른다.”

 

21. 그런데 그 때에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가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그래도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바후까 강으로 목욕하러 가십니다.”

“바라문이여, 바후까 강으로 무엇을 할 것입니까? 바후까 강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존이신 고따마여, 사람들은 바후까 강이 많은 사람을 해탈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사람들은 바후까 강이 많은 사람에게 공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후까 강에서 많은 사람이 악업을 씻습니다.”

 

22. 그러자 세존께서는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에게 게송으로 이야기했다.

바후까 강과 아디학까 강, 가야 강과 쑨다리까 강

싸라싸띠 강과 빠야가 강, 또한 바후마띠 강에

어리석은 자 항상 뛰어들어 목욕해도

언제나 검은 행위를 씻을 수 없네.

쑨다리까 강이 무슨 소용인가?

빠야가 강이, 바후까 강이 무슨 소용인가?

강들은 악업을 저지르는 자를 씻지 못하네.

그 잔인하고 죄 많은 사람들을.

청정한 자에게는 항상 축제일이 있고

청정한 자에게는 항상 포살이 있네.

마음이 청정하고 행위가 맑은 자는

항상 자신의 계행을 원만히 하네.

바라문이여, 여기에 참으로 목욕하라

그러면 모든 존재들이 그대에게서 안녕을 얻으리.

거짓을 말하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인색하지 않으면

가야 강으로 갈 필요가 있을 것인가?

가야 강은 그대에게 우물에 지나지 않네.

 

23. 이처럼 말씀하시자 바라문 쑨다리까바라드와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세존이신 고따마 앞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24.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세존의 앞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존자 바라드와자는 구족계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그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다. 마침내 존자 바라드와자는 거룩한 분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옷감에 대한 비유의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