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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Bhayabheravasutta, M4)

moksha 2021. 10. 2. 13:26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Bhayabheravasutta, M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가 승원에 계셨다.

 

2. 그때 바라문 자눗쏘니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3. 한쪽으로 물러앉아 바라문 자눗쏘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존자 고따마여,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존자 고따마에게 귀의하여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자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안내하는 자입니까?

또한 그 사람들은 존자 고따마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까?”

 

4. “바라문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은 나에게 귀의하여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자이며, 나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나는 그들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은 나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다.”

 

5. “존자 고따마여, 숲속 총림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컨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6.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숲속 총림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컨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7. 바라문이여, 내가 아직 깨닫기 전에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에 주의 깊게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숲속 총림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 어렵다. 생각컨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간다.’

 

8.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신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9.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언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언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언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언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언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0.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정신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정신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연고로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정신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정신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1.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증오하는 생각을 가지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증오하는 생각을 가진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증오하는 생각을 가지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비스러운 마음을 지닌다. 나는 자비스러운 마음을 지닌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비스러운 마음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2.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의혹과 의심에 가득 찬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의혹과 의심에 가득 차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의심을 떨쳐버린다. 나는 의심을 떨쳐버린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의심을 떨쳐버린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3.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한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은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4. 바라문이여, 그 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겁을 먹고 겁에 질려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겁을 먹고 겁에 질린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겁을 먹고 겁에 질려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겁을 먹지 않는다. 나는 겁을 먹지 않는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겁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5.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는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아주 적게 바라는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아주 적게 바라는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6.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게을러 정진 없이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게을러 정진 없는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게을러 정진 없이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부지런히 정진한다. 나는 부지런히 정진하는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7.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깊이 새기지 않고 잘 알아채지 못하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깊이 새기지 않고 잘 알아채지 못하는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깊이 새기지 않고 잘 알아채지 못하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깊은 새김을 성취한다. 나는 깊은 새김을 성취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깊은 새김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8.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집중하지 못하고 흩어진 마음으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집중하지 못하고 흩어진 마음의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흩어진 마음으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집중을 성취한다. 나는 집중을 성취한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집중을 성취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9.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되어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된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되어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지혜를 성취한다. 나는 지혜를 성취한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지혜를 성취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20.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특정한 밤, 즉 보름기간의 14일, 15일 내지 8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면 어떨까? 아마도 그 두려움과 공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그 후 특정한 밤 달이 떠있는 14일, 15일 내지 8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냈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그 곳에서 지낼 때에 맹수가 접근하고 공작새가 나뭇조각을 떨어뜨리고 바람이 낙엽더미를 흩날려 보냈습니다. 그때에 나는 생각했다.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바라문이여, 마침 나에게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내가 반드시 두려움을 기대해야 하는가?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하면 어떨까?’

 

21. 바라문이여, 내가 걷고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걸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서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서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서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앉아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앉아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누워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누워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습니다.

 

22. 바라문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낮을 밤으로 인식하고 밤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그들 성직자들이나 수행자들에게‘그것은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나는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합니다.(주)

바라문이여, 누군가에 대해 ‘어리석음을 뛰어넘은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라고 올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누군가에 대해‘어리석음을 뛰어넘은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23.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혼란스럽지 않아 깊은 새김을 확립하고 격동하지 않고 몸이 고요하며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어 있어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했습니다.

 

24. 바라문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고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취했습니다.

 

25. 바라문이여, 나는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안으로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통일하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을 취했습니다.

 

26. 바라문이여,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아직 신체적인 즐거움을 느끼지만 깊이 새기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평정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고귀한 이들이‘평정하고 새김이 깊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는 세 번째 선정을 취했습니다.

 

27. 바라문이여, 나는 행복을 버리고 고통을 버려서 이전의 쾌락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괴로움도 뛰어넘고 즐거움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이 깊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취했습니다.

 

28.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의 삶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고 나는 그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합니다.

 

29.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도달한 지혜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났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30.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뭇 삶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봅니다. ‘죽거나 거듭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 삶들을 본다. 어떤 뭇 삶들은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마음으로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난하고 잘못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나 다른 뭇 삶들은 몸으로 선행을 하고 입으로 선행을 하고 마음으로 선행을 한다.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관찰하고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 삶들을 봅니다.

 

31.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에 도달한 지혜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32.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33.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해탈되었다’는 앎이 일어났으며 나는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34.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에 도달한 지혜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35. 그런데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아직까지도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바라문이여, 그대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는 것은 거기에서 두 가지 유익한 점을 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자신의 현세의 행복한 삶을 보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느낍니다.

 

36. “세존이신 고따마께서 거룩한 분이시고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이시므로 참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이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이 끝났다.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 : 선불교에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山是山水是水)’라는 말은 부처님의 이 말씀에 근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의 청원유신(靑源惟信)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노승이 30년 전 참선하기 이전에는 산은 청산이요 물은 녹수였다. 그러던 것이 그 뒤에 어진 스님을 만나 깨침에 들어서고 보니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더라, 마침내 진실로 깨치고 보니 이제는 산이 의연코 산이요 물이 의연코 물이더라.” 이 말은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한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연유한 것이다. 성철 선사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山是山水是水)’라는 이 말을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