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 없음의 경(Anaṅgaṇasutta, M5)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존자 싸리뿟따는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불렀다. 수행승들은 존자 싸리뿟따에게 ‘존자여’라고 대답했다.
3. 그 때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 “벗들이여,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네 종류란 어떠한 것입니까?
1)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합니다.
2) 세상에 어떠한 사람은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합니다.
3) 세상에 어떠한 사람은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으면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압니다.
4) 세상에 어떠한 사람은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으면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압니다.
벗들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더라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를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 열등한 자라고 부릅니다. 벗들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더라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아는 자를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탁월한 자라고 부릅니다. 벗들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지만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를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 열등한 자라고 부릅니다. 벗들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으면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아는 자를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 탁월한 자라고 부릅니다.
4. 이와 같이 설하자 존자 마하 목갈라나가 존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목갈라나] “벗이여 싸리뿟따여, 이러한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를 열등한 자, 하나를 탁월한 자라고 부르는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벗이여 싸리뿟따여, 또한 이러한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를 열등한 자, 하나를 탁월한 자라고 부르는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5. [싸리뿟따]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애써 정진하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을 오염시킨 채 죽어갈 것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발우가 먼지나 때로 덮여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닦아내지 않고 먼지구덩이에 방치해 둔다면 벗이여, 그 청동 발우는 나중에 점점 더 더러워지고 때가 끼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6. [목갈라나] “벗이여, 그렇습니다.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애써 정진하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이 오염된 채 죽을 것입니다.”
7. [싸리뿟따]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아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애써 정진합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지 않고 성냄을 지니지 않고 어리석음을 지니지 않고 더러움을 지니지 않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 죽을 것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발우가 먼지나 때로 덮여있어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면서 닦아내고 먼지구덩이에 방치해 두지 않는다면, 벗이여, 그 청동 발우는 나중에 점점 더 깨끗하고 정갈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8. [목갈라나] “벗이여, 그렇습니다.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으면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아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애써 정진합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지 않고 성냄을 지니지 않고 어리석음을 지니지 않고 더러움을 지니지 않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 죽을 것입니다.”
9. [싸리뿟따]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을 쓰게 됩니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임으로써 탐욕이 마음을 덮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이 오염된 채 죽을 것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발우가 깨끗하고 정갈해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닦아내지 않고 먼지구덩이에 방치해 둔다면 벗이여, 그 청동 발우는 나중에 점점 더 더러워지고 때가 끼는 것이 아닙니까?”
10. [목갈라나] “벗이여, 그렇습니다.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을 쓰게 됩니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임으로써 탐욕이 마음을 덮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이 오염된 채 축을 것입니다.”
11. [싸리뿟따]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으므로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아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탐욕이 마음을 덮치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지 않고 성냄을 지니지 않고 어리석음을 지니지 않고 더러움을 지니지 않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 죽을 것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발우가 깨끗하고 정갈해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면서 닦아내고, 먼지구덩이에 방치해 두지 않는다면, 벗이여, 그 청동 발우는 나중에 점점 더 깨끗해지고 정갈해지는 것이 아닙니까?”
12. [목갈라나] “벗이여, 그렇습니다.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으므로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아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탐욕이 마음을 덮치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지 않고 성냄을 지니지 않고 어리석음을 지니지 않고 더러움을 지니지 않고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고 죽을 것입니다.
13. [싸리뿟따] “벗이여, 목갈라나여, 이러한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를 열등한 자, 하나를 탁월한 자라고 부르는 그 원인은 이와 같고 그 조건은 이와 같습니다. 벗이여, 목갈라나여, 또한 이러한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를 열등한 자, 하나를 탁월한 자라고 부르는 그 원인도 이와 같고 그 조건도 이와 같습니다.”
14. [목갈라나] “벗이여, ‘더러움, 더러움’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무엇을 이르는 말입니까?”
15. [싸리뿟따] “벗이여, 더러움이라고 하는 말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영역을 이르는 것입니다.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는 참으로 죄를 지었지만 수행승들은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모르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승들은 그 수행승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수행승들이 참으로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16.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는 참으로 죄를 지었지만 수행승들은 나를 비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대중이 있는 데서 질책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승들은 그 수행승을 대중이 있는 데서 질책하고 비공개적으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수행승들이 참으로 나릉 대중이 있는 데서 질책하고 비공개적으로 질책하지 않았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17.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는 참으로 죄를 지었지만 동년배들만이 나를 질책하고 동년배가 아닌 자들은 질책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년배가 아닌 자들이 그 수행승을 질책하고 동년배들은 질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동년배가 아닌 자들만이 나를 질책하고 동년배들은 질책하지 않았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18.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스승께서는 참으로 나의 거듭되는 질문에만 답변하여 가르침을 설하고, 다른 수행승의 거듭되는 질문에는 답변하여 가르침을 설하지 말길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서는 다른 수행승의 거듭되는 질문에는 답변하여 가르침을 설하고 그 수행승의 거듭되는 질문에는 답변하여 가르침을 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승께서는 다른 수행승만의 거듭되는 질문에만 답변하여 가르침을 설하고, 나의 거듭되는 질문에는 답변하여 가르침을 설하지 않았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19.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수행승들은 참으로 나만을 앞장 세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야지, 다른 수행승을 앞장 세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지 말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승들은 다른 수행승을 앞장 세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고, 그 수행승을 앞장 세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수행승들은 다른 수행승만을 앞장 세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고 나를 앞장 세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0.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식당에서 최상의 자리, 최상의 물, 최상의 음식을 얻고 다른 수행승은 식당에서 최상의 자리, 최상의 물, 최상의 음식을 얻지 못하길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이 식당에 최상의 자리, 최상의 물, 최상의 음식을 얻고, 그 수행승은 식당에서 최상의 자리, 최상의 물, 최상의 음식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만이 식당에서 최상의 자리, 최상의 물, 최상의 음식을 얻고 나는 식당에서 최상의 자리, 최상의 물, 최상의 음식을 얻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1.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식당에서 식후에 감사의 말을 해야지 다른 수행승이 식당에서 식후에 감사의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이 식당에서 식후에 감사를 드리고 그 수행승은 식당에서 식후에 감사를 드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만이 식당에서 식후에 감사의 말을 하고 나는 식당에서 식후에 감사의 말릉 하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2.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해야지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그 수행승은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만이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나는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3.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녀들에게 가르침을 설해야지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녀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녀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그 수행승은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녀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만이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녀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나는 승원에 모여 있는 수행녀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4.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해야지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그 수행승은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만이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나는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5.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해야지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이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그 수행승은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만이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나는 승원에 모여 있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6.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수행승들은 나만을 참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해야지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승들이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그 수행승은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수행승들이 다른 수행승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는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7.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수행녀들은 나만을 참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해야지,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녀들이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수행녀들이 다른 수행승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는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8.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재가의 남자신도들은 나만을 참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소 숭배해야지,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가의 남자신도들이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재가의 남자신도들이 다른 수행승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는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29.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재가의 여자신도들은 나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해야지,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가의 여자신도들이 다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만, 그 수행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재가의 여자신도들이 다른 수행승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는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30. 벗이여, 어떤 수행승은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훌륭한 옷을 얻고 다른 수행승은 훌륭한 옷을 얻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은 훌륭한 옷을 얻고 그 수행승은 훌륭한 옷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은 참으로 훌륭한 옷을 얻었으나 나는 훌륭한 옷을 얻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31.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훌륭한 음식을 얻고 다른 수행승은 훌륭한 음식을 얻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은 훌륭한 음식을 얻고 그 수행승은 훌륭한 음식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은 참으로 훌륭한 음식을 얻었으나 나는 훌륭한 음식을 얻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32.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만이 참으로 훌륭한 처소를 얻고 다른 수행승은 훌륭한 처소를 얻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은 참으로 훌륭한 처소를 얻고 그 수행승은 훌륭한 처소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은 참으로 훌륭한 처소를 얻었으나 나는 훌륭한 처소를 얻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33.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나만이 참으로 훌륭한 필수약품을 얻고 다른 수행승은 훌륭한 필수약품을 얻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행승은 참으로 훌륭한 필수약품을 얻고 그 수행승은 훌륭한 필수약품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수행승은 참으로 훌륭한 필수약품을 얻었으나 나는 훌륭한 필수약품을 얻지 못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34. [싸리뿟따] “벗이여, 어떠한 수행승이라도 그가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리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면, 그가 누구든지 숲에 거주한건, 외딴 거처에 자주 가건, 탁발하며 지내건, 집집마다 구걸하건, 누더기 옷을 입건, 거친 옷을 입건, 세상에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고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가 존자라고 할지라도,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리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발우가 깨끗하고 정갈해도, 주인이 그것을 뱀의 시체나 개의 시체나 사람의 시체로 채우고 다른 청동 발우로 덮어서 시장에 내온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여보시오, 그 보물처럼 들고 가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그것을 들어서 열어 제키면, 사람들이 들여다 볼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자마자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메스껍고, 혐오스럽게 느낄 것입니다. 배가 부른 사람은 물론이고 배가 고픈 사람마저도 먹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벗이여, 어떠한 수행승이라도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리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면, 그가 누구든지 숲에 거주하건 외딴 거처에 자주 가건, 탁발하면서 지내건, 집집마다 구걸하건, 누더기 옷을 입건, 거친 옷을 입건, 세상에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고 숭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가 존자라 할지라도,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리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35. 벗이여, 어떠한 수행승이라도 그가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린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면, 그가 누구든지 마을 근처에 거주하건, 초대를 받건, 장자가 준 옷을 입건, 세상에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자 존자일지라도,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린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발우가 깨끗하고 정갈한데, 주인이 그것을 흰 쌀죽과 여러 가지 수프와 조미료를 채우고 다른 청동 발우로 덮어서 시장에 내온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여보시오, 그 보물처럼 들고 가는 것인 무엇인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그것을 들어서 열어 제키면, 사람들이 들여다 볼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자마자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고 메스껍지 않고, 혐오스럽지 않게 느낄 것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물론이고 배가 부른 사람마저도 먹고 싶어 할 것입니다. 벗이여, 어떠한 수행승이라도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린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면, 그가 누구든지 마을 근처에 거주하건, 초대를 받건, 장자가 준 옷을 입건, 세상에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가 존자라 할지라도, 이와 같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경계를 버린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36. 이와 같이 말하자 존자 마하 목갈라나는 존자 싸리뿟따에게 말했다.
[목갈라나] “벗이여, 싸리뿟따여, 나에게 비유가 떠오릅니다.”
[싸리뿟따] “벗이여, 목갈라나여, 말해보십시오.”
37. [목갈라나] “벗이여, 한 때에 내가 라자가하 시의 기리바자에 있었습니다. 벗이어, 그 때 나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자라가하 시로 탁발하러 들어갔습니다. 마침 수레공의 아들 싸미띠가 수레바퀴의 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전에 수레공의 아들로서 사명외도(邪命外道)인 빤두뿟따가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마침 이전에 수레공의 아들로서 사명외도인 빤두뿟따에게 이와 같이 ‘오호, 수레공의 아들 싸미띠가 수레바퀴 테의 비틀린 곳, 굽어진 곳, 결함이 있는 곳을 교정하면, 이 수레바퀴 테는 비틀린 곳이 없어지고, 굽어진 곳이 없어지고, 결함이 있는 곳이 없어져서 깨끗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다.’라고 마음에 사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수레공의 아들로서 사명외도인 빤두뿟따가 생각한 것과 같이, 그와 같이 수레공의 아들 싸미띠가 수레바퀴 테의 비틀린 곳, 굽어진 곳, 결함이 있는 곳을 교정하였습니다. 벗이여, 그래서 이전에 수레공의 아들로서 사명외도인 빤두뿟따는 만족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건대 이심전심으로 교정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38. 벗이여, 이와 같이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믿음 없이 생계를 위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교활하고 기만하고 사기치고 변명하고, 교만하고 가볍고 수다스럽고 상스럽고, 감관을 수호하지 않고, 식사에 절제를 모르고, 깨어있지 못하고, 수행자의 정신이 없고, 배움에 전념하지 않고, 사치스럽고 태만하고, 퇴락에 앞장서서 멀리 여읨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나태하여 애써 정진하지 않고, 새김을 확립하지 못해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해 흩어진 마음을 지니고, 지혜가 없어 아둔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을 존자 싸리뿟따는 이 법문으로 이심전심으로 교정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39. 벗이여, 이와 같이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믿음을 갖추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교활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가볍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상스럽지 않고, 감관을 수호하고, 식사에 절제를 알고, 깨어있고, 수행자의 정신이 있고, 배움에 전념하고,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멀리 여읨에 앞장서서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나태하지 않아 애써 정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집중해서 통일된 마음을 지니고, 지혜가 있어 아둔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존자 싸리뿟따의 이 법문을 들으면서 마시듯이 말씀을 듣고, 소화시키듯이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동료 수행자를 악에서 일으켜 선에 세웁니다.
벗이여, 마치 여자나 남자나 처녀나 청년이 장식을 좋아하여, 머리를 씻은 뒤에 연꽃 화환을 받고 자스민 화환을 받고 장미 화환을 받아, 양손으로 받들어 머리 위에 장식하듯, 이와 같이 벗이여,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믿음을 갖추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교활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가볍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상스럽지 않고, 감관을 수호하고, 식사에 절제를 알고, 깨어있고, 수행자의 정신이 있고, 배움에 전념하고,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멀리 여읨에 앞장서서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나태하지 않아 애써 정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집중해서 통일된 마음을 지니고, 지혜가 있어 아둔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존자 싸리뿟따의 이 법문을 들으면서 마시듯이 말씀을 듣고, 소화시키듯이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40. 이와 같이 두 위대한 용들은 훌륭한 대화를 함께 나누며 서로 기뻐했다.
더러움 없음의 경이 끝났다.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옷감에 대한 비유의 경(Vatthūpamasuttaṃ, M7) (0) | 2021.10.02 |
---|---|
바란다면의 경(Ākaṅkheyyasutta, M6) (0) | 2021.10.02 |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Bhayabheravasutta, M4) (0) | 2021.10.02 |
가르침의 상속에 대한 경(Dhammadāyāda Sutta, M3) (0) | 2021.10.02 |
모든 번뇌의 경(Sabbāsavasuttaṃ, MN.2) (0) | 2021.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