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빠띠빳띠(paṭipatti)-수행/다섯 장애의 제거

쌍가라바의 경(Samgaravasutta, S46:55) :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한 다섯 가지 물의 비유와 여윔

moksha 2018. 11. 18. 17:27

쌍가라바의 경(Samgaravasutta, S46:55)

 

 

1.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시에 계셨다. 그 때 바라문 쌍가라바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2.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바라문 쌍가라바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쌍가라바]“존자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 어떠한 조건이 있어서 언젠가 오랜 세월 독송했던 경구들이 생각나지 않게 됩니까? 존자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 어떠한 조건이 있어서 독송한 경구는 말할 것도 없고 언젠가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았던 경구들이 생각나게 됩니까?”

 

I. 왜 경구가 생각나지 않는가?

 

3. [세존]

1) "바라문이여,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묶이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묶이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2) 바라문이여, 분노에 묶이고 분노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분노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불에 달구어져 끓어오르고 거품을 일으켰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분노에 묶이고 분노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분노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3) 바라문이여, 해태와 혼침에 묶이고 해태와 혼침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해태와 혼침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이끼와 같은 수초로 덮였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해태와 혼침에 묶이고 해태와 혼침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해태와 혼침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4) 바라문이여, 흥분과 회한에 묶이고 흥분과 회한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흥분과 회한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바람에 흔들리고 요동치고 소용돌이치고 물결친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흥분과 회한에 묶이고 흥분과 회한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흥분과 회한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5) 바라문이여, 의심에 묶이고 의심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의심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혼탁하고 혼란스럽고 흙탕물이고 어둠속에 놓여 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의심에 묶이고 흥분과 의심에 정복된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의심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독송해왔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4. 바라문이여, 이와 같은 원인, 이와 같은 조건이 있어서 언젠가 오랜 세월 독송했던 경구들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독송하지 않은 경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II. 왜 경구가 생각나는가?

 

5. [세존]

1)“바라문이여,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묶이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았던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새빨간 색으로 물들지 않았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묶이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 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2) 바라문이여, 악의에 묶이지 않고 악의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악의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았던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불에 달구어져 끓어오르고 거품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악의에 묶이지 않고 악의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악의에 대한 욕망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 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3) "바라문이여, 해태와 혼침에 묶이지 않고 해태와 혼침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해태와 혼침에 대한 욕망에서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았던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이끼와 같은 수초로 덮이지 않았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해태와 혼침에 묶이지 않고 해태와 혼침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해태와 혼침에 대한 욕망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 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4) 바라문이여, 흥분과 회한에 묶이지 않고 흥분과 회한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흥분과 회한에 대한 욕망에서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바람에 흔들리고 소용돌이치고 물결치지 않았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흥분과 회한에 묶이지 않고 흥분과 회한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흥분과 회한에 대한 욕망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 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5) 바라문이여, 의심에 묶이지 않고 의심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의심에 대한 욕망에서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았던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혼탁하고 혼란스럽고 흙탕물이고 어둠속에 놓여있지 않았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의심에 묶이지 않고 의심에 정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고 이미 생겨난 의심에 대한 욕망의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그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때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그 때 양자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았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 온 경구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6. 바라문이여, 이와 같은 원인, 이와 같은 조건이 있어서 언젠가 오랜 세월 독송하지 않은 경구들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독송해온 경구들을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7. 이처럼 말씀하시자 바라문 쌍가라바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쌍가라바]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존자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합니다.”

 

쌍가라바의 경이 끝났다.

 

   

▣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한 다섯 가지 물의 비유

오장애

물의 비유

 

감각적 쾌락의 욕망

(kāmarāga)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 가지 색깔로 물든 물

 

분노

(byāpāda)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불에 달구어져 끓어오르고 거품을 일으켰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물

해태와 혼침

(thīnamiddha)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이끼낀 수초로 덮였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끼가 낀 물

흥분과 회한

(uddhaccakukkucca)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바람에 흔들리고 소용돌이치고 물결친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 파도치는 물

 

의심

(vicikicchā)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혼탁하고 혼란스럽고 흙탕물이고 어둠속에 놓여 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흐린 흙탕물

 

▣ 다섯 가지 장애의 여읨(nissaraṇaṃ)

오장애

여읨의 내용

제거의 길

감각적 쾌락의 욕망

(kāmarāga)

① 선정에서의 진압에 의한 여읨.

② 통찰에서의 특별한 관점에 의한 여읨.

③ 고귀한 길을 통한 제거에 의한 여윔.

욕망과 탐욕(kāma-rāga)은 부정관(不淨觀)에 바탕을 둔 첫 번째 선정에서 제어됨.

아라한의 길에서  제거됨.

(여기서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넒은 의미에서 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탐욕을 포함해서 말한다.)

분노

(byāpāda)

자애에 바탕을 둔 첫 번째 선정에서 제어됨

불환과에 이르는 길에서 제거됨

해태와 혼침

(thīnamiddha) 

빛에 대한 지각에 의해 제어됨.

불환과에 이르는 길에서 제거됨

흥분과 회한

(uddhaccakukkucca)

안온에 의해 제어됨.

회환은  불환과에 이르는 길에서 제거됨.

흥분은 아라한의 길에서 제거됨.

회의적 의심

(vicikicchā)

원리에 대한 결정의 수용(dhammavavatthana)으로 억제됨.

예류자의 길에서 제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