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쌍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제22 존재의 다발

나꿀라삐따의 경(Nakulapitāsutta, S22:1) : 유신견의 타파

moksha 2018. 10. 22. 21:58

나꿀라삐따의 경(Nakulapitāsutta, S22:1)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박가국1쑹수마라기리2에 있는 베싸깔라 숲의 미가다야3계셨다.

 

2. 그 때 장자 나꿀라삐따4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3.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장자 나꿀라삐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 드렸다.

 

[장자] “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노쇠하고 고령인데다가 만년에 이르러서 몸에 병이 들어 종종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과 존경스러운 수행승들의 모습을 친견하러 오는 것조차 힘듭니다. 제가 오랫동안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4. [세존]“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그대의 몸은 허약하고 낡아버렸습니다. 장자여, 하물며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아주 잠시라도 건강하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나의 몸은 괴로워하여도 나의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배워야 합니다.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5. 그러자 장자 나꿀라삐따는 세존께 하신 말씀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존자 싸리뿟다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싸리뿟따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6. 한 쪽으로 물러나 앉은 나꿀라삐따에게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다] “장자여, 그대의 감관은 고요하며 안색이 청정하고 밝습니다. 오늘 세존을 친견하고 설법을 듣지 않았습니까?”

[장자] “존자여,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저는 지금 세존께서 가르치신 설법으로 감로와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7. 존자여, 바로 전에 제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저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노쇠하고 고령인데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몸에 병이 들어 종종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과 존경스러운 수행승들의 모습을 결코 친견하러 오는 것조차 힘듭니다. 제가 오랫동안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제게 이와 같이

'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그대의 몸은 허약하고 낡아버렸습니다. 장자여, 하물며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아주 잠시라도 건강하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나의 몸은 괴로워하여도 나의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배워야 합니다.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가르치신 감로와 같은 설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8. [싸리뿟따] “장자여, 그런데 그대는 세존께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몸도 괴로워하고 마음도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까?’ 라고 더 질문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9. [장자] “존자여, 저는 존자 싸리뿟따를 뵙고 그 말씀하신 것의 뜻을 알려고 멀리서 온 것입니다. 존자 싸리뿟다께서 그 말씀하신 것의 뜻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 [싸리뿟따] “장자여,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숙고하십시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장자]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장자 나꿀라삐따는 존자 사리뿟따에게 대답했다.

 

11. 존자 싸리뿟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장자여, 어떻게 해서 몸도 괴로워하고 마음도 괴로워 하는 것입니까?

 

1)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②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③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④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겨 속박됩니다.5 그는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이 생겨납니다.

 

2)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느낌을 자아로 여기거나, ②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③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거나, ④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이 생겨납니다.

 

3)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지각을 자아로 여기거나, ②지각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③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거나, ④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겨 속박되어 지내지만 그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이 생겨납니다.

 

4)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형성을 자아로 여기거나, ②형성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③자아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거나, ④형성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이 생겨납니다.

 

5)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의식을 자아로 여기거나, ②의식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③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거나, ④의식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이 생겨납니다.

장자여, 이렇게 해서 몸이 괴로워하고 마음도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12. 장자여. 어떻게 하면 몸은 괴로워하여도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까?

 

1)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②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③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④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6 그는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 라고 속박되지 않지만, 그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2)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느낌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②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③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④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3)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지각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②지각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③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④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 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4)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형성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②형성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③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④형성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5)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의식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②의식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③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④의식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ㆍ비탄ㆍ고통ㆍ근심ㆍ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렇게 하면 몸은 괴로워하여도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13.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장자 나꿀라삐따는 존자 싸리뿟따가 말한 것에 대하여 환희하고 기뻐했다.

 

나꿀라삐따의 경이 끝났다.

 

  1. 박가(Bhaggā)국 : 부족의 이름이자 나라의 이름. 수도는 쑹쑤마라기리(Suṃsumāragiri)였다. 박가(Bhaggā)는 꼬삼비(Kosāmbī)국의 속국으로 베쌀리(Vesali)시와 싸밧티(Savatthi)시 사이에 놓여 있었다. 부처님은 여행 도중 여러 번 이곳을 방문하였는데 꼬삼비(Kosāmbī) 시의 우데나(Udena)왕의 아들 보디 왕자(Bodhirājakumāra)가 부왕을 대신해서 총독으로 살고 있었다. [본문으로]
  2. 쑹쑤마라기리(Suṃsumāragiri) : 그 곳에서 ‘악어가 소리를 질렀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3. 미가다야(Migadāyā) = 사슴동산 : 베사깔라(Bhesakalā)숲 속의 녹야원(鹿野園)으로 사슴과 사냥으로 잡은 동물들이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게 되어 있는 동물원과 같은 곳이다. [본문으로]
  4. 나꿀라삐따(Nakulapita) : 나꿀라(Nakula)라는 소년의 아버지로 장자의 아내는 나꿀라마따(Nakulamātā)라고 불렸다. 부처님의 제자인 재가의 우바새(남자 신도) 가운데 ‘친절하게 말하는 님 가운데 제일’ 이다. 나꿀라삐따는 박가(Bhagga) 국의 쑹쑤마라기리(Suṁsumāragiri)에 살았다. 그의 아내는 나꿀라마따(Nakilamata)라고 불렀고, 그들은 과거 500생을 부처님의 부모로 살았으며 더욱 많은 세월 동안 가까운 친척으로 보냈다. [본문으로]
  5. 이와 같은 견해는 ‘개체가 있다는 견해[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에 속한다. ①물질을 자아로 여기는 것은 등잔불의 불꽃이 그 색깔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②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로 여기는 것은 비물질적 요소들을 물질을 소유한 자아로 여긴다는 것인데 그림자가 나무의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③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비물질적인 것을 그 속에 물질이 놓여 있는 자아라고 여긴다는 것인데 마치 향기가 꽃 안에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④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는 것은 비물질적인 정신을 물질 안에 있는 자아로서 여기는 것인데, 마치 보석이 산자 속에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갈애와 견해에 삼킨 바 되어 그것들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주석(Srp.Ⅱ.255)에 따르면,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 가운데 어느 하나와 일치 시키는 것은 허무주의이고 다른 것은 모두 영원주의의 유형에 속하는 이교도적인 세계관이다. 따라서 다섯 가지 허무주의가 있고 열다섯 가지 영원주의가 있다. [본문으로]
  6. 이러한 견해는 흐름에 든 님[예류자(豫流者)]을 묘사하는 일반적 형식이다. 흐름에 든 님이 되려면, 3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 즉 ①개체가 있다는 견해 ②회의적 의심 ③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을 극복해야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