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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제22 존재의 다발

할릿디까니의 경 ①(Paṭhamahāliddikānisutta, S22:3) : 성자는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벗어나

moksha 2019. 1. 30. 17:50

할릿디까니의 경 ①(Pahamahāliddikānisutta, S22: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존자 마하 깟짜나는 아반띠국의 꾸라라가라 시의 산 중턱에 있었다.

2. 그 때 장자 할릿디까니는 존자 마하 깟짜나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가까이 다가가서 장로 마하 깟짜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3.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장자 할릿디까니는 존자 마하 깟짜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할릿디까니]“존자여, 세존께서는 여덟 게송의 품의 학인 마간디야의 질문의 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재가의 삶을 버리고 주처를 여윈 유행을 하며 성자는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벗어나 선호를 뛰어넘고 결코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리.’” [Stn.971]

[할릿디까니]“존자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간략히 말씀하셨는데 그 상세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4.[마하 깟짜나]장자여, 어떻게 재가의 삶을 사는 자가 됩니까?

1) “장자여, 물질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물질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2) 장자여, 느낌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느낌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3) 장자여, 지각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지각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4) 장자여, 형성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형성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재가의 삶을 사는 자가 됩니다.

 

5. 장자여, 어떻게 출가의 삶을 사는 자가 됩니까?

1) 장자여, 물질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2) 장자여, 느낌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3) 장자여, 지각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4) 장자여, 형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5) 장자여, 의식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출가의 삶이란 이와 같습니다.

 

6.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까?

1) 장자여, 형상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2) 장자여, 소리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3) 장자여, 냄새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4) 장자여, 맛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5) 장자여, 감촉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6) 장자여, 사실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다.


7.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까?

1) 장자여, 형상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2) 장자여, 소리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3) 장자여, 냄새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4) 장자여, 맛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5) 장자여, 감촉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6) 장자여, 사실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하여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다.

 

8.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마을의 사귐에 매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사람이 속인과 교류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괴로움을 나누며 즐거울 때에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에 괴로워하고 해야 할 일에 연루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의 사귐에 매인 자가 됩니다.


9.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마을의 사귐을 여읜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사람이 속인과 교류하지 않고 즐거움을 나누지 않고 괴로움을 나누ㅈ 않으며 즐거울 때에도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울 때에도 괴로워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연루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의 사귐을 여읜 자가 됩니다.

10. 장자여, 어떻게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가득 채운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착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번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가득 채운 자가 됩니다.

 

11. 장자여, 어떻게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텅 비운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욕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번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텅 비운 자가 됩니다.

 

12. 장자여, 어떻게 선호에 묶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나는 미래에 이와 같은 물질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느낌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자각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형성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의식을 취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선호에 묶인 자가 됩니다.

 

13. 장자여, 어떻게 선호를 뛰어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나는 미래에 이와 같은 물질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느낌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자각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형성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의식을 취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선호를 뛰어넘는 자가 됩니다.

 

14. 장자여, 어떻게 다툼에 매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안다.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아는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고 나는 올바로 실천한다. 그대는 앞에서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하고 뒤에서 설해야할 것을 앞에서 설한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가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그대의 이론은 성취되었더라도 그 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행해야 한다. 그대는 싸움에서 진 것이다. 어디 해명해보라.’라고 논쟁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다툼에 매인 자가 됩니다.

 

15. 장자여, 어떻게 다툼을 여읜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안다.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아는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고 나는 올바로 실천한다. 그대는 앞에서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하고 뒤에서 설해야할 것을 앞에서 설한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가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그대의 이론은 성취되었더라도 그 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행해야 한다. 그대는 싸움에서 진 것이다. 어디 해명해보라.’라고 논쟁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다툼을 여읜 자가 됩니다.

 

16. 장자여, 세존께서는 여덟 게송의 품의 마간디야의 질문에 대한 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재가의 삶을 버리고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며

성자는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벗어나 선호를 뛰어넘고

결코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리.’

 

17. 장자여,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히 말씀하셨는데 그 상세한 의미는 이와 같습니다.”

 

할릿디까니의 경 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