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자화상 호국불교, 전사의 경(S42.3)
전쟁영화를 보면
TV를 보면 중국드라마가 유행이다. 주로 케이블채널에서 볼 수 있는데 삼국지, 진시황, 측천무후 등 중국역사 드라마이다. 특징은 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장대한 스케일의 전쟁장면을 보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든다.
전쟁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인간의 존엄성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다. 병사 만명이라면 만개의 소모품이 있는 것과 같다. 평시에는 열심히 훈련하지만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소모되는 물품과 같은 것이다. 물품이 소모 되면 다시 보충하듯이 병사들이 소모 되면 또 다시 새로운 병사들로 채워 넣어 지게 된다.
현대전도 마찬가지이다. 총과 대포가 등장하고 비행기와 항공모함이 등장하는 현대전에서 병사들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특히 지상전을 벌이는 보병이 그렇다. 전쟁영화에서 돌격 명령이 떨어지면 총탄이 빗발쳐도 돌진한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픽픽 쓰러진다. 또 백병전이 벌어지면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축생의 세계나 다름 없다. 그런 전쟁은 생지옥과 같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을 하는 것일까?
호국불교가 있는데
한국불교에 ‘호국불교’라는 불교가 있다. 나라를 지키는 불교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호국불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지나간 역사의 예를 들면서 불교가 나라를 지켜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따른다면 호국불교는 비불교적이다. 부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살생을 금하였기 때문이다.
호국불교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자랑스런 불교유산일까? 박노자 교수에 따르면 ‘부끄러운 유산’이라 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국불교가 왜 부끄러운 것일까?
살생도 가려서 한다고?
오태양씨 사건이 있었다. 2004년 재가불자인 오태양씨가 입영을 앞두고 불살생의 계율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기독교 계통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종종 있었으나 불교계에서는 처음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재가불자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제도권의 불교에서는 무어라 하였을까? 한겨레 신문 기사에 따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은 국가권력이 듣기 싫어할 만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온 제도권 불교가 불교의 윤리를 제대로 지키겠다는 ‘진성불자’한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했다. 공식 반응은 없고 비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나왔다. “불교의 불살생계는 무조건적으로 살생을 금하고 있지 않다. 호국불교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신라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보여주듯 불교는 원칙적으로 살생을 금하지만 가려서 살생하는 살생유택 또한 가르치고 있다. 나의 보시와 희생이 더 많은 이웃들을 살리고 평화롭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불교를 실천하는 것이며 하화중생의 길이다.”
(박노자, 불교계 ‘산중공의’ 부활을 제안하다, 한겨레 신문 2011-10-21)
박노자 교수가 지은 ‘붓다를 죽인 부처’책 소개에 대한 기사이다. 기사에 따르면 재가불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제도권 불교의 반응은 호국불교에 대한 옹호이다. 그 이유로서 신라 원광법사가 만든 ‘세속오계’를 들 수 있다.
세속오계는 세속에서 사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오계를 뜻한다. 그러나 세속오계는 화랑도의 윤리적 지침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이렇게 다섯 가지 지침을 만들어 놓았다. 유교적 이념의 바탕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섯 번째 항목인 살생유택(殺生有擇)이다. 살생도 가려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호국불교의 토대가 되는 문구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살생도 가려서 살생을 해야 된다는 말인 초기경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살생하면 “오로지 괴로움 뿐인 지옥이나 몰래 기어다니는 종류의 축생으로 태어 나는 것이 자명하다고 나는 말한다. (A10:216)”라고 하였다. 이렇게 살생을 하면 그에 대한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고 초기경전 도처에서 말씀 하셨다. 그래서 살생도 가려서 해야 된다는 논리는 비불교적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도 아니다.
호국불교는 언제부터
호국불교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분명한 사실은 신라나 고려, 조선시대에는 호국불교라는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호국불교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일반적으로 보고 있다. 박노자 교수에 따르면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사찰령을 만든 것에서부터 호국불교라는 개념이 생겨 났다고 한다. 본사주지를 총독이 임명하고, 말사주지는 지방행정관이 임명권을 주게 하는 사찰령이 시행되자 ‘닭벼슬보다도 못하다던 중벼슬’이 치열한 다툼의 대상이 되면서 체제에 순응하는 호국불교가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스님들이 군복을 입고
호국불교는 정치와 체제와 밀접한 관계로 태어난 ‘사생아’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끊임 없이 권력과 유착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일제시대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지금까지 정치와 종교가 유착하는 좋지 않은 전통이 생겨 나게 되었다. 특히 70년대 유신정권 시절 호국불교가 절정을 이루었는데, 그 때 당시 불교신문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종단의 중진 스님들은 승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병영에 입소해 사격훈련을 받았다. 사찰이 향토 예비군으로 편성돼 예비군복을 입고 소총을 메고 문화재를 지키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유명 포교사들은 전국을 돌며 안보강연회 유신헌법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통합종단에서 개혁종단까지, 10월 유신과 불교계 협력, 불교신문 2011-03-30)
불교신문에 연재된 기사의 내용이다. 놀랍게도 스님들이 군복을 입고 연병장에서 제식훈련을 하였다는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맞아 출병했던 승병처럼 북한의 도발을 우려 하여 스님들이 집총한 것이다.
해인사 스님들이 사찰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대한뉴스의 한 장면.
사진: 불교신문
70년대 유신시절 기사를 보면 매우 충격적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스님들이 군복을 입고 사람을 죽이는 총검술을 연마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한국불교가 호국불교임을 강력하게 말해는 주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종교가 유착하여 스님으로 하여금 총을 들게 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호국불교의 전형이다.
어느 비구니스님의 전쟁불사론
호국불교의 뿌리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이다. 살생도 가려서 한다는 살생유택에 따라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옛날 승병처럼 스님들이라도 언제든지 총을 들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런 호국불교의 전통이 있어서일까 최근 어느 비구니 스님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쟁불사론’을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ㅈㅁ스님과 전쟁불사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러나 검색해 보니 글이 삭제 되어 있다. 누군가 신고를 하여 삭제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스크랩된 글을 발견하였다. 누군가 글을 스크랩해 간 것이다.
비구니 스님은 스타스님이다. 라디오스타를 말한다. 불교방송에서 ‘마음으로 듣는 음악’프로를 진행하였는데 인기가 매우 좋아 팬이 무척많다. 그래서 전국 순회강연을 하면 구름청중을 몰고 다닌다. 그런 스타스님의 입에서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 전국의 불자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스님은 성금 이야기를 하였다. 2010년 발생된 연평도 포격사태를 맞아 스님은 ‘조선일보’사를 직접방문하여 “임진왜란 때 승병이 나라를 지켰듯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성금을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보수신문에 보도 되었는데 스님은 “특히 해군 무기가 열악하다니 바꾸는데 써달라”고 특별 주문을 하였다는 것이다.
매우 놀라운 이야기이다. 그것도 불살생이라는 계율을 지켜야 하는 스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호국불교를 강조한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사는데 사용하라고 거금 5천만원을 성금으로 전달하였다는 소식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에서 스님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이 성금을 기탁하게 된 이야기를 하였다. 삭제된 글이지만 스크랩된 글에서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인터넷의 다시 듣기로 다시 들은 스님의 이야기는 매우 단호 하였다. 비구니 스님 답지 않게 결연하게 전쟁이 나면 “이제 피난 갈 곳도 없으니 사재기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이 자리에서 죽든지 살든지 결판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남자로 태어나야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스님은 어느 신문의 자료를 인용하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참전의지에 대해서도 소개 하였다. 전쟁이 났을 때 참전하겠다는 청소년들이 중국 다음으로 두번째로 높다고 소개한다. 또 국난극복의 의지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고 한다.
이런 기조의 발언은 음악방송 내내 유지 되었는데 “우리는 이제 전시상황과 같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강도 높게 말하며, 서울대 박효종 교수의 말인 “평화는 구걸하여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도발이 집요 할 수록 우리의 의지 또한 결연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도 인용 하였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그렇죠, 그래야 평화도 나라도 지켜 질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맞장구 치듯이 말한다.
(ㅈㅁ스님과 전쟁불사론)
이 글은 방송에서 직접들은 이야기이다. 너무 놀라운 내용이라서 불교방송 사이트에 들어 가서 녹취한 것을 토대로 작성한 글이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죽든지 살든지 결판을 내야 할 것”이라든가 “남자로 태어나야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등을 말하였다. 그러면서 시종 담담하고 때로는 비장한 어조로 “평화는 구걸하여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도발이 집요 할 수록 우리의 의지 또한 결연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거금 5천만원을 기탁한 것에 대하여 자화자찬식으로 방송하였다.
어느 스님의 눈물나는 군대이야기
비구니 스님은 호국불교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자라면 총을 들고 나가서 싸워야 된다는 논리이다. 이런 이야기를 보통 사람이 했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불살생에 대한 계율을 지켜야 하는 스님이 발언했다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스님들은 군대에 가는 것도 당연시 하는 것 같다.
재가불자도 불살생 계율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였음에도 아직까지 스님이 병역거부를 하였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스님과 군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님이 총을 들고 훈련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스님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매우 가혹한 것이라 본다. 그런 예를 어느 스님의 글에서 보았다.
나의 슬픈 군대 이야기
나의 군 생활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약 3년간이었다.
처음 논산훈련소로 입대했다.
승복을 입은 채 입영 버스에 올랐다.
그때 논산훈련소에서는 신체검사와 여러 가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사제복(집에서 입고 온 옷을 말한다)을 입고 생활했다.
입대 다음 날 아침 연병장에 집결했다.
승복에 검은 고무신을 신은 채였다.
조례가 끝나자마자 어떤 교관이 고무신을 신고 군대에 왔다는 이유로 큰 통나무를 들어 올리는 기합을 주었다.
연병장을 몇 바퀴 돌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어떤 군인이 내게 다가와서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기압을 받느냐고 물었다.
고무신을 신고 입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개했다.
아마 불자였을 것이다.
그 교관은 분명히 내가 스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기합을 준 것이 틀림없다.
그때부터 나의 힘든 군 생활은 시작되었다.
신병훈련소에서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내가 보급 받은 물건이 자꾸만 없어졌다.
점호 시간에 철모나 수통 등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날마다 몽둥이를 맞아야만 했다.
훈련을 시키는 기간병이 고의로 나의 물건을 숨기는 것이었다.
스님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맞지 않기 위해 남의 물건을 훔쳐야 할 것인가를 망설였다.
양심과 고통과의 치열한 갈등 속에서 맞기로 결정했다.
곡괭이 자루로 거의 매일같이 맞았다.
엉덩이에 핏자국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 이후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이러한 일은 반복되었다.
그러나 나는 양심상 남의 물건을 훔칠 수가 없었다.
어떤 지휘관이나 고참이 타종교인일 경우 나는 부대를 대표해서 맞았다.
그때 옆에 있던 동료들이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기도 했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었는데, 그때까지 말로만 듣던 강원도 철책선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서울 이북으로 한번도 올라와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광주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였기 때문에 군 내부에 지역감정이 팽배해져 있었다.
나의 바로 위 기수들이 전라도 병역이었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없이 맞았다.
하루도 맞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밤에 깨워 때리기 때문이다.
나는 탈영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나는 탈영하여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었다.
부대 근처가 거의 전부 지뢰밭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참들로부터 이유 없이 맞을 때 한번만 더 때리면 총으로 쏴버리고 나도 죽을 것이라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한번만 더 참자하고 나를 달랬다.
그렇게 하여 순간순간을 넘겼다.
그 결과 군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긴 했으니, 불보살님의 보살핌이라고 생각한다.
(M스님)
청소년기에 스스로 출가하여 절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스님이 부과된 병역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게 되어 겪은 눈물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보면 군대라는 조직은 스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곳이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불살생의 계율을 어기는 조직이다. 전쟁이 나면 총을 들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대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투도, 불사음, 불음주, 불망어 등 오계를 어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스님으로서 군대갔다 온 후에 환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사의 경(S42.3)에서
스님을 군대에 보내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병역의무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스님 출신 병사도 총을 들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처럼 스님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보통사람이 군대에 가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전쟁과 살생이 합리화 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부처님은 무엇이라고 하였을까? 그 해답이 상윳따니까야에 있다. 다음과 같이 촌장과 부처님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촌장]
“세존이신 고따마여,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 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세존]
“촌장이여,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Yodhājīvasutta-전사의 경, 상윳따니까야 S42:3, 전재성님역)
한 때 전사 마을의 촌장이 부처님에게 질문하고 부처님이 답하고 있다. 여기서 ‘전사 마을의 촌장(yodhājīvo gāmaṇī)’은 한평생 싸우면서 삶을 산 자를 말한다. 직업적으로 싸우는 군인일 수도 있다. 그런 이력을 가진 촌장이 부처님에게 전장에서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으면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처님에게 묻는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전사자의 하늘(sarañjitānaṃ devānaṃ)
마치 일하듯이 열심히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전사 마을 촌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으면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 난다고 믿고 있었다. 여기서 ‘전사자의 하늘(sarañjitānaṃ devānaṃ)’ 이란 각주에 따르면 ‘남에 의해 정복된 자의 하늘’이라는 뜻이다. 이런 전사자의 하늘에 대하여 ‘환희천’이라고 한다. 싸우다 죽은 자가 가는 하늘나라를 말하는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촌장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아마도 전쟁을 합리화 하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전쟁이 나면 수 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라 전사자들만 태어난다는 하늘나라 즉, 환희천에서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전쟁과 살생을 정당화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라 볼 수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어느 누가 전쟁터에 나가겠는가. 그래서 한 평생 전쟁터에서 보낸 촌장은 “전장에서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으면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다그 치듯이 부처님에게 묻는다. 아마도 부처님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부처님의 침묵
하지만 부처님은 답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똑 같은 질문을 두 번 하였으나 모두 답을 하지 않는다. 왜 부처님은 침묵한 것일까?
질문에 부처님이 침묵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말하기 곤란한 것일 수도 있다. 차라리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 같은 질문을 세 번에 걸쳐서 계속하게 되면 부처님도 말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들으면 실망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전사자의 지옥(sarañjito nāma niraya)
그렇다면 전사 마을의 촌장의 거듭 되는 질문에 부처님은 무어라 답하였을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였다.
addhā kho tyāhaṃ gāmaṇī na labhāmi. Alaṃ gāmaṇī tiṭṭhatetaṃ mā maṃ etaṃ pucchiti. Api ca tyāhaṃ vyākarissāmi. Yo so gāmaṇi yodhājīvo saṅgāme ussahati vāyamati, tassa taṃ cittaṃ pubbe hīnaṃ-2 dukkaṭaṃ duppaṇihitaṃ: ime sattā haññantu vā bajajhantu vā ucchijjantu vā vinassantu vā mā vā ahesuṃ iti vāti, tamenaṃ ussahantaṃ vāyamantaṃ pare hananti pariyāpādenti, so kāyassa bhedā parammaraṇā sarañjito nāma nirayo tatthuppajjati.
[세존]
촌장이여, 분명히 나는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라고 그대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촌장이여, 전사가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그의 마음은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을 구타하거나 결박하거나 절단하거나 박멸하거나 없애 버려야 한다’ 는 생각 때문에 이미 저열해졌고 불우해졌고 사악해졌습니다.
그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자를 적들이 살해하여 죽인다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전사자의 지옥이 있는데 있는데 그곳에 태어납니다.
(Yodhājīvasutta-전사의 경, 상윳따니까야 S42:3, 전재성님역)
부처님의 말씀은 단호하다.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으면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전사자의 지옥(sarañjito nāma niraya)’이라 한다. 전사자의 지옥이란 각주에 따르면 “아비지옥의 한 부분으로 거기서 온갖 종류의 싸움꾼들이 환호하며 괴로워한다.(Srp.II.103)”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촌장의 거듭된 질문에 침묵하였던 것이다.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촌장의 거듭된 세 번째 질문에 부처님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한 것이다.
왜 악처에 태어나는가?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서로 마주 보게 해 놓고 뺨때리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가볍게 터치 하겠지만 빈도가 높아 질수록 강도는 점점 더 세질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어느 누구 하나는 죽게 될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일지라도 전쟁터에서 동료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 눈이 뒤집혀 질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 지면 살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죽이려 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전사가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그의 마음은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을 구타하거나 결박하거나 절단하거나 박멸하거나 없애 버려야 한다’ 는 생각 때문에 이미 저열해졌고 불우해졌고 사악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대목을 보면 아비담마에서 임종의 순간에 일어나는 업, 업의 과보, 태어날 곳의 표상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이론과 동일하다. 전장에서 목숨걸고 싸우다 보면 나쁜 표상이 일어 날 것이기 때문에 악처에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쟁은 비극이다. 전장에서 산자나 죽은자나 모두 악처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설령 전쟁에서 살아 남았을지라도 살생한 과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죽임을 당한 자 역시 죽는 순간에 나쁜 표상이 일어 날 것이기 때문에 악처에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전(聖戰)을 하다 죽으면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라는 견해를 지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촌장이여, 잘못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지옥이나 축생이나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에 길이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Yodhājīvasutta-전사의 경, 상윳따니까야 S42:3,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라도 살생이 합리화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설령 조직을 위하여 국가를 위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살생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살생이 합리화 될 수 없음을 말한다. 또 종교의 이름으로 성전을 하여 죽으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 조차 합리화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전사자가 죽어 하늘에 태어난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micchādiṭṭhi)’라고 분명히 말씀 하시고 있다. 그리고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는 지옥이나 축생의 과보를 받을 것이라 하였다.
촌장의 통곡
이와 같은 부처님의 있는 그대로의 말을 듣자 한평생 싸움터에서 살아온 전사 마을 촌장은 통곡한다. 왜 촌장은통곡하였을까? 촌장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촌장]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에 슬퍼하여 통곡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 라고 오랜 세월 동안 속아 살고 기만당하고 현혹된 것입니다.
(Yodhājīvasutta-전사의 경, 상윳따니까야 S42:3, 전재성님역)
촌장은 한 마디로 속고 살았음을 말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전쟁에서 전력을 다 해 싸운자가 살해 당하면, 열심히 싸운 공로로 죽어서 천상에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열심히 싸웠으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보니 한 마디로 속아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분해서 통곡한다고 하였다.
스님도 군대에 가야 하는 나라
스님도 군대에 가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스님이 군대에 가서 집총을 하여 총쏘는 연습도 한다. 더구나 군대생활을 하다보면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와 같은 오계를 어기기 쉽다. 그래서 스님을 군대에 보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스님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라 아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 남자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스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단에서도 ‘스님입영’에 대하여 말이 없는 것 같다. 이는 다름 아닌 호국불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호국불교는 부끄러운 자화상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에 있어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권력과 체제에 순응된 불교를 뜻하기 때문이다. 닭벼슬 보다 못하다는 중벼슬을 차지 하기 위하여 기득권을 가진 승려들이 정권과 결탁하여 만들어낸 개념이 호국불교이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스님도 총을 들고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임란 때 승병활동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전통이 있어서인지 어느 비구니 스님은 자신이 진행하는 음악방송에서 “이 자리에서 죽든지 살든지 결판을 내야 할 것”이라든가 “남자로 태어나야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살인도 용인될 수 있다고?
이런 호국불교 이데올로기는 재가불자의 병역거부 사건이 일어 났을 때 여실하게 보여 주었다. 당사자는 “불살생과 생명존중의 종교적 신념과 평화·봉사의 인생관에 따른 양심을 지키기 위해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며‘민간대체봉사제도’ 도입을 호소 하였지만 대부분 비난하였다. 현대불교에 실린 어느 교수의 글이 아마도 호국불교 이데올로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불가에서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데 불가피한 살생과 부처님 가르침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던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최근 입대를 거부한 한 불자청년의 고뇌도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호국을 위해 무량공덕과 민족적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라면 불가의 살생은 대승적 차원에서 광의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M 교수, [열린마당] 한 불자청년의 병역거부 선언, 현대불교 2001.12.26 )
M교수는 신라시대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들어 호국불교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종교적 입장만을 내세워 나라의 처지를 모른 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국을 위해 무량공덕과 민족적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라면 불가의 살생은 대승적 차원에서 광의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결론 맺고 있다. 살생유택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승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이라면 살생도 용인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전쟁이 종교적 믿음으로 합리화 될 수 없다
부처님은 어떤 경우에도 살생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살생도 용인할 수 있다는 호국불교의 이념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부처님은 ‘전사의 경’에서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전사자의 하늘에 태어난다.’라는 견해를 지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S42.3)”이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에 기반한 호국불교는 잘못된 견해이다. 부처님은 ‘전쟁이 종교적 믿음으로 합리화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하셨다.
2013-09-2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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