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미자의 경(Būmijasutta, S12:25)
1.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부미자가 홀로 고요히 명상하다가 저녁 무렵에 일어나 존자 싸리뿟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존자 싸리뿟따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2.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존자 부미자는 존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부미자] “벗이여, 싸리뿟따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벗이여 싸리뿟따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3. 벗이여, 싸리뿟따여, 이것에 관해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제가 만약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를 설하신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설한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세존을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한 것이고, 저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4. [싸리뿟따] “벗이여, 세존께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까?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설한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한 것이고, 그대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5. 벗이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6. 벗이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7. 그 때 마침 존자 아난다가 존자 싸리뿟따와 존자 부미자의 이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존자 아난다는 존자 존자 싸리뿟따와 존자 부미자의 대화를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8. [세존] “아난다여, 훌륭하다. 아난다여, 훌륭하다. 싸리뿟따가 올바로 설명한 것과 같이 설명해야 한다. 아난다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무엇을 연유로 해서 생겨나는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내가 말한 대로 설하는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나를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하는 것이고, 그대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9. 아난다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즐거움과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10. 아난다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11. 아난다여, 또한 신체가 있으면 형성을 원인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또한 언어가 있으면 언어적 형성을 원인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또한 정신이 있으면 정신적 형성을 원인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1) 아난다여, 자신에 의해 신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아난다여, 타자에 의해 신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2) 아난다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신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아난다여,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며 신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3) 아난다여, 자신에 의해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4) 아난다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 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아난다여,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며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5) 아난다여, 자신에 의해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아난다여,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6) 아난다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아난다여,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12. 아난다여, 이 여섯 가지 경우는 무명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아난다여,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신체적 형성이 소멸하고,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언어적 형성이 소멸하며,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정신적 형성이 소멸한다. 곧 그것을 연유로 내적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터전이 소멸하고 기반이 소멸하고 영역이 소멸하고 관계가 소멸한다.”
부미자의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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