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진보의 역사인가 퇴보의 역사인가? 대승불교와 테라와다불교의 본질에 대하여
불교가 망할 뻔 했는데
한때 불교가 팔릴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1년도의 일입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에서 소위 ‘종교평화선언’을 추진했었을 때 입니다. 그때 당시 블로그에 문제점에 대하여 수십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초기경전과 초기불교 가르침에 따르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불교지식인들은 침묵했습니다. 불교가 기독교에 팔려 가는 듯 한데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일을 추진하는 것 자체를 몰랐는지 알 수 없으나 하마터면 불교가 망할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이명박정부당시 기독교가 득세했는데 상대적으로 불교는 매우 위축되었습니다. 이른바 ‘땅밝기’라 하여 기독교인들이 절에 들어가, 그것도 법당에 들어가 자신이 믿는 신의 땅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명진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봉은사땅밝기’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때 당시 기독교인들의 땅밝기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는데 놀랍게도 불교계에서는 종교평화선언이라 하여 마치 화해를 요청하던 것처럼 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종교평화선언, 일명 ‘아쇼카선언’
종교평화선언을 일명 ‘아쇼카선언’이라 했습니다. 고대 인도의 마우리아왕조 당시 아쇼카대왕의 종교관용정책에 따른 것이라 합니다. 도법스님을 비롯하여 조성택교수 등이 추진한 종교평화선언 멤버에는 놀랍게도 목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찬수목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것은 종교평화선언의 내용입니다.
초안을 보면 ‘모든 종교의 진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대전제를 깔아 놓았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진리란 특정 종교나 믿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진리는 모두에게, 모든 믿음에 다 열려 있습니다.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초안)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그때 당시 시대상황과 관련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땅밝기 등으로 불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고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열린 진리관’”을 강조한 것입니다.
종교평화선언을 보면 안타깝게도 ‘기독교와 불교가 근원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산에 올라가는 길은 달라도 정상에서 만나듯이, 불교나 기독교나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근원을 따져 가면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기독교계통의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던 것입니다. 길희성, 김경재, 오강남 등이 대표적입니다. 만일 종교평화선언이 시행 됐더라면 한국불교는 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 실재(Reality)에 대하여
불교와 기독교는 근원에 있어서는 정말 같은 것일까요? 길희성 등 기독교신학자들은 한결같이 ‘산’의 비유를 들어 궁극적으로는 같은 것이라 합니다. 길희성 교수는 한겨레신문 조현기자가 운영하는 ‘휴심정’에서 발표한 칼럼에서 모든 종교의 ‘궁극적 실재(Reality)’는 이름과 표현방법만 다를 뿐 근원에서는 같은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여하튼 중요한 점은 이들 사상이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단 하나의 궁극적 실재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보는 일원적 사고를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고 둘이 아니며,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실재 내지 원리 또한 하나이지 여럿이 아니다. 만물은 이 궁극적 실재에서 하나로 통하고 통일된다.” (길희성, 종교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도법스님의 열린 진리관을 보면
길희성교수에 따르면 하느님이나 하나님, 알라, 브라만, 상제, 바이로차나, 불성, 참나 등 이름만 다를 뿐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학자 오강남교수는 불교평론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대승불교의 참나는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교에서 종교다원주의적 주장을 하는 스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법스님은 2011년 당시 자승원장 하에서 화쟁위원장으로 종교평화선언을 추진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자들, 현자들이 하는 얘기는 사실 대동소이합니다. 누구는 하느님이라고 하고, 누구는 붓다라고 하고, 누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언어, 개념이라는 것은 강을 건너기 위해 잠시 필요하고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하는 나룻배, 뗏목입니다. 그 말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가가 중요한데 그것은 실상 다 같은 얘기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부처님 이런 것은 인격화시킨 개념이고, 도나 진리, 법이라는 말들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입니다. ... 문제는 우리가
불교 수행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156쪽)”
(도법 스님 《지금 당장》서 일갈 “종교집단 물신화, 영혼이 없어”, 불교닷컴 2013-02-12)
2011년 추진되었던 종교평화선언은 물거품 되었습니다. 대부분 불교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문제점을 알게 된 용기 있는 스님들과 학자, 그리고 재가불자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도 큰 이유입니다. 결정적으로는 그때 당시 종정인 법전스님이 인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승원장 임기내에 언젠가 추진 되리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자승원장은 올해 10월 30일 퇴임 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승원장 임기 8년동안 종교평화선언이 추진 될까 봐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런데 불교닷컴에 실린 도법스님의 글을 보면 자승원장 임기내에 시도하려는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회만 되면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길희성교수의 생각과 조금도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계통의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정상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나 모두 실상은 같은 것이라 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항복선언
궁극적 실재 또는 존재의 근원이 모두 같은 것이라면 불자들은 굳이 불교를 믿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궁극적 실재가 하느님 또는 하나님, 바이로차나, 불성, 참나가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것이라면, 길희성교수나 오강남교수 등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곧 비로자나불이고 불성이고 참나가 됩니다. 불자들은 힘들게 산중에 있는 절에 올라갈 것이 아니라 동네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2011년 한국불교가 기독교에 먹힐 뻔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승원장 하에서 도법화쟁위원장이 추진한 소위 ‘아쇼카선언’이라는 이름의 종교평화선언이 그것입니다. 종교평화선언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항복선언’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만일 그때 종교평화선언이 선포 되었다면 불자수 3백만명 이탈이 아니라 더 많이 빠져 나갔을지 모릅니다. 상당수의 불자들이 교회에 앉아 있었을지 모릅니다.
무아와 열반만은 예외
2011년 당시 블로그에 종교평화선을 반대하는 수십개의 글을 올린 것은 한국불교의 위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승불교의 전통이 기독교가 득세하는 현실에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진리는 같은 것이라 하여 스스로 불교를 하나님에게 바치는 듯한 종교평화선언문 내용을 보고 경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보면 길희성 등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정상론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열반’을 들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의 실현입니다. 괴로움을 소멸하는 것은 윤회의 소멸과 같은 말입니다. 더 이상 재생이 되는 업을 짓지 않아 재생연결식이 일어 나지 않았을 때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라 합니다. 이런 열반에 대하여 궁극적 실재이니 존재의 근원이니 하는 명칭을 붙일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하느님 또는 하나님, 브라흐마, 바이로차나, 참나, 불성 등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까 종교다원주의자는 자신의 칼럼에서 열반 하나만큼은 예외로 했습니다. 열반을 궁극적 실재에서 제외한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사상이 무아와 열반입니다. 이런 사상은 전세계적으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불교를 불교답게 만드는 것이 무아와 열반입니다. 그러나 후대를 내려 갈수록 가르침은 변질 되었습니다. 공사상이 도입되고 여래장사상으로 전개되어 중국에서는 불성사상이 성립되었습니다. 최근 한국선종에서는 참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煎 本來面目)’ 화두와 요한복음
후대로 갈수록 불교는 부처님 근본 가르침과 멀어져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도로 브라만교로 되돌아 간 듯 합니다. 그래서일까 기독교 계통 종교다원주의자 길희성교수는 “여하튼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사용된 여러 가지 신의 암호들을 알고 있다. 도(道), 천(天), 태극, 공(空),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 무(無), 일자(一者), 절대자, 무한자, 절대 정신, 스스로 존재하는 자, 존재의 근거 혹은 존재 자체, 세계의 건축가 혹은 설계자, 창조주 같은 개념들이다.”라 했습니다.
길희성교수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공도 궁극적 실재의 범주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불성이니 참나이니 하는 말도 궁극적 실재의 또 다른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일까 이런 사실을 진제스님이 추인한 듯 합니다. 뉴욕에서의 일입니다.
진제스님은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종교다원주의자인 폴 니터(Paul Knitter)의 초대로 뉴욕의 어느 교회에서 법문했습니다. 진제스님은 종정이 되기 전에 뉴욕교회에서 “부모 몸에 들기 전에 어느 것이 참나인가?(父母未生煎 本來面目)”라는 법문을 하여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화두는 바이블 요한복음 1장에 있는 내용과 같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요한복음에는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시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분이 바로 내가 말한 그분이다.”(요한복음 1장) 라고 되어 있어서 ‘부모미생전본래면목’화두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불교는 진보의 역사인가 퇴보의 역사인가
어떤 이는 말하기를 불교는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불교가 시작 되었기는 하지만 이후 용수의 중론 등을 통하여 대승불교로 발전해 왔고,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가서는 선불교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마치 생물이 진화하듯이, 불교는 끊임 없이 발전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종교평화선언을 추진했던 도법스님은 21세기 적합한 새로운 대승경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법스님은 “우주에 충만 하사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영겁에 항상 하사 아니 계신 때 없으시는 부처님!”으로 시작되는 ‘생명평화경’을 스스로 만든 바 있습니다. 과연 이런 현상을 불교의 발전 내지 진화로 보아야 할까요?
불교진화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불교는 공, 유식, 여래장, 불성, 참나 사상으로 끊임 없이 발전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시대에 따라 새로 생겨난 사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불교경전이 편찬 될지 모릅니다. 이렇게 본다면 대승불교의 역사는 끊임 없이 변화되어 왔습니다. 좋게 말하면 발전의 역사이고 나쁘게 말하면 퇴보의 역사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불교가 발전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이래 시대 마다 새로운 경전이 편찬 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래서일까 어느 학자는 현재 시점에서 천년동안 대승경전이 생겨 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발전이 멈춘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적합한 대승경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과연 이를 불교의 진보로 보아야 할까요 불교의 퇴보로 보아야 할까요?
대승불교에서는 불교가 진보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테라와다에서는 정반대로 대승불교는 퇴보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가르침의 변질과 관련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근본 가르침이 훼손되어서 엉뚱한 불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남방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동아시아 대승불교와 티벳의 금강승불교를 불교로 인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일부 스님들은 부처님을 인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미완성이라고?
종종 스님들의 글을 보면 부처님에 대하여 “석가모니가”라고 하여 마치 친구부르듯이 하는 표현을 접할 수 있습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외도들이 부처님을 부를 때 “벗이여, 고따마여”라 하여 성씨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제자들과 재가신도들은 반드시 “세존이시여(Bhagava)”라고 극존칭을 사용했습니다. 존경하는 부처님에 대하여 감히 성씨로 부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스님들, 특히 선을 공부한 스님들은 마치 친구이름 부르듯이 “석가모니가”라 합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불로그에서 산중승(山中僧)이라는 필명의 스님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긴 바 있습니다.
“자꾸만 [초기불교]를 들먹이시는데, 과연 [초기불교]라는게 있었습니까? 혹시 [원시불교]를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것이라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지요. 그냥, 샤카무니'의 설법시대'였을 뿐이죠.
샤카모니 열반하신 후에 10대불제자를 중심으로, [불교적 교리]가 체계화되고, [불경]이 집대성 된후에 비로소 컬리큘럼이 만들어지면서 [佛敎]라는 宗敎가 성립되어진 것이지요. 그때로 부터 수천년을 지나오면서 [불교]는 진화되어온 것입니다. 즉, 사카무니'께서 확연하게 다 말씀 못하고 가신, 우주의 진리 아눝따라 삼먁삼보리'에 대한 이해 체계가, 그 수많은 히말라야 수행승들과 [대승불교의 중국 불교계]에서 수많은 고승들이 '깨달아 얻은 진리들로서, 불교교리는 엄청나게 진화되어온 것입니다. 감히 초기(원시)불교'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불교는 믿음'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여여하게 있는 우주의 진리]를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無常한 것이고 一體唯心造'인 것입니다. 끝없이 진화하는 교리체계'가 대승적인 현대불교입니다. 아무런 교리체계도 없던 시절의 초기불교'는 종교적인 수준이 아닌, 샤카무니의 개인적인 '깨달음'에 대한 견해 일뿐입니다.” (산중승님)
산중승의 이력을 보면 강원을 나오고 긴 세월 선방에서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말라야 깊은 숲속에서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스님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미완성’으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깨달음 역시 완전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불교는 부처님 당시의 작은 깨달음이 아니라 후대 부처님에 버금가는 인물이 나타나 발전과 진보를 이루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산중승은 부처님에 대하여 마치 친구이름 부르듯이 ‘샤카무니’라 하여 성씨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이라 했을까
선사들의 부처님에 대한 폄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듯합니다.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에서도 ‘석가의 특권’이니 ‘원시경전’ ‘원시불교’ 이니 하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미완성된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고 덜 깨달은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불교에 따르면 부처님 깨달음 그 자체는 완전한 것이고 완성된 것입니다. 이는 초전법륜경(S56.11)을 보면 삼전십이행상이라 하여 사성제를 세 번 굴린 것으로 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세상에 가르침을 선포했습니다. 만일 깨달음이 조금이라도 미흡했다면 선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45년 전법과정에서 차츰차츰 깨달아 간 것도 아님을 말합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Yato ca kho me bhikkhave, imesu catusu ariyasaccesu evaṃ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 yathābhūtaṃ ñāṇadassanaṃ suvisuddhaṃ ahosi, ath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 paccaññāsiṃ.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akuppā me ceto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ti.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나의 앎과 봄이 세 번 굴려서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청정해졌기 때문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언했다. 나에게 ‘나는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앎과 봄이 생겨났다.”(S56.11)
부처님이 선언한 깨달음에 대하여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이라 했습니다. 이를 빠알리어로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라 합니다. 또 다른 말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합니다. 한자어로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합니다. 빠알리어 ‘anuttara’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위 없는’최상의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후대 사람들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의혹을 품고 미완성된 것이라 하는가 하면 덜 깨달은 것이라 하여 공사상, 유식사상, 여래장 사상, 불성사상 등에 이어 심지어 참나사상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런 사상이 불교의 진보일까요 불교의 퇴보일까요?
담마 아닌 것이 득세하기 전에
진리 아닌 것이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이미 조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나이 든 비구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자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다. 그는 “그대들은 슬퍼하지 마시오.”라며 말하고는 “우리는 ‘이것은 그대들에게 옳다. 이것은 그대들에게 그르다.’라고 간섭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Vin.II.285) 라며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사실을 목격한 부처님의 수제자 마하깟사빠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이대로 놔 두면 정법(dhamma)이 훼손되고 ‘비법(adhamma)’이 득세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늦기 전에 경과 율을 외우자고 결집을 제안했습니다.
[마하 깟싸빠]
“벗들이여, 우리는 가르침과 계율을 결집합시다.
예전에 가르침이 아니었던 것이 번영하고 가르침이었던 것은 쇠퇴하고,
예전에 계율이 아니었던 것이 번영하고 계율이었던 것은 쇠퇴하고,
예전에 가르침이 아니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강해지고
가르침이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약해지고,
예전에 계율이 아니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강해지고
계율이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약해집니다.”(Vin.II.285, 율장소품)
마하깟사빠 존자가 제1차 결집을 주도한 것은 비법(非法), 즉 ‘담마 아닌 것(adhamma)’이 득세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비법이 득세하기 전에 정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하여 합송했습니다. 합송한 것은 구전으로 전승되었고, 기원전에 스리랑카에서 패엽경에 기록되어 가르침이 변질 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우리말로 된 원음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처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 온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이자 진리입니다.
가르침은 잘 전승되어 왔다
부처님 가르침은 잘 전승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이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하여 회의하고 의심하는 자들에 의하여 변질 되었을 때 전혀 다른 불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 ‘과거칠불’ 이야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연기법은 부처가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원리로서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가 출현해도 정법이 변질되면 사라지고 맙니다. 정법이 사라진 세상은 암흑의 시대나 다름 없습니다. 누군가 연기법을 발견하여 부처가 출현하면 다시 정법시대가 됩니다. 상윳따니까야에서 과거칠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연기법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으로 보아 깨달음의 내용은 모두 동일합니다. 지금까지 가르침은 잘 전승되어 왔습니다.
각각의 본질에 충실한 불교
부처님이 출현했을 때, 즉 부처님이 가르침을 펼쳤을 때가 가르침을 가장 이해하기 쉬었을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순수 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 후에 전승된 가르침은 조금씩 오염되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불교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불교의 발전 내지 진보로 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부처님 당시를 정점으로 보고 그 이후 점차로 불교가 퇴보해 왔다고 말합니다.
테라와다의 불교의 경우 부처님 가르침을 완성된 것으로 알아 변질되고 오염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경우 부처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지만 시대에 맞게 끊임 없이 발전되고 진화해야 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 적합한 경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테라와다의 경우는 부처님 가르침에 충실 하는 것이 본질이고, 대승불교의 경우는 시대에 맞게 끊임 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어쩌면 각각 본질에 충실한 것이 각불교전통이자 역할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는 진보의 역사일까요 퇴보의 역사일까요?
2017-11-0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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