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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다나상가(Dānasaṅgha)담마 이야기

(8) 불교의 명상

moksha 2017. 8. 21. 20:45

불교의 명상

 

명상과 삼매

명상(瞑想)이란 문자적으로 눈감고 생각하는 것인데‘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것’혹은‘고요히 생각을 가라앉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대 이 명상이라는 말은 서구적인 전통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은 영어의 메디테이션(Meditation)을 번역한 말인데 메디테이션의 어원은‘깊숙이 생각에 잠겨 있는 상태’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메디타리(Meditar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의 뜻과 일치하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는 디야나(Dhyāna)이고 빨리어(Pali)에서는 디야나를 쟈나(Jhāna)라고 하는데 이를 선나(禪那), 선(禪), 선정(禪定), 참선(參禪) 등으로 음사를 하고 있다. 이 쟈나의 뜻은 ‘여실하게 숙고한다.’,‘번뇌를 태워 없앤다.’라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초기경전에서 초선(初禪)에서는 일으킨 생각[심(尋), 사유(思惟)]과 지속적 고찰[사(伺), 숙고(熟考)]으로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선(二禪) 이상에서는 언어적 사고 즉 생각 자체가 멈추고 희열과 행복으로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생각에 몰입해 들어가는 단계와 그러한 생각이 멈추게 되는 집중(定)의 일련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 명상을 행할 때에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생각을 일으켜 마음을 집중해 나가지만, 명상이 무르익어 충분히 몰입된 상태가 되면 생각 자체가 저절로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사종선(四種禪) = 색계(色界) 사선(四禪)

초선

(初禪)

ㆍ일으킨 생각(尋), 지속적 고찰(伺), 희열(喜), 행복(樂), 집중(定)

①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서 떠난 뒤, 사유(思惟)와 숙고(熟考)를 갖추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에 든다.

이선

(二禪)

ㆍ희열(喜), 행복(樂), 집중(定)

②사유(思惟)와 숙고(熟考)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와 숙고를 여의고,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든다.

삼선

(三禪)

ㆍ행복(樂), 집중(定)

③희열이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든다.

사선

(四禪)

ㆍ평온(捨), 집중(定)

④행복도 고통도 버려지고, 기쁨도 근심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에 든다.

그러므로 명상이란‘특정한 생각을 일으켜 거기에 몰입하고 마침내는 생각 자체가 멎은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요가수뜨라』에서는 그렇게 해서 생각이 멈춘 경지를 삼매(三昧, samādhi)라고 한다. 즉‘(집중의) 대상만이 홀로 빛나고 (집중하는 마음) 자체는 없어진 것 같이 된 상태가 바로 삼매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동서양의 명상, 선정, 삼매 등은 문화와 종교적인 측면의 이질성 때문에 실천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내면의 평안과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적 전통의 명상이란‘신의 은총에 의해 신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체험’또한‘신의 은총에 의해 드러난 신비로운 축복의 비전(vision)을 누리는 상태’등을 지향한다.

한편 동양 전통의 선정(jhāna)은 내면의 동요가 가라앉은 평정의 상태를 목적으로 한다. 즉 모든 범부의 생각과 의식은 탐욕과 분노 따위의 부정적 정서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또한 거기에 오염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번뇌에 물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정(禪定, jhāna) 혹은 명상(瞑想)이란 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방법이며 삼매(三昧)란 그 결과로 얻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생각이 멈춘 삼매에 대하여 무기력해진 상태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삼매의 체험은 단순히 생각이 가라앉은 상태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실상을 꿰뚫는 지혜[반야(般若), ⓟpañña, ⓢprajñā)의 증득을 최종 목적으로 한다.

 

사마타[samatha, 멈춤, 지(止)ㆍ위빠사나(vipassana, 통찰, 관(觀)]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로의 모습을 살펴보면 감정적ㆍ정서적 요인들에 더 많이 좌우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명상이 사마타1[Samatha, 지(止), 멈춤]수행이다. 사마타란 부정적 사고와 정서를 가라앉힌 상태로서 평온 혹은 고요함을 일컫는 용어이다. 사마타는 들뜨거나 흥분된 상태를 가라앉히기 위한 여러 기법들을 포함하는데 마음의 안정을 위해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든지 혹은 어떤 대상을 지속적으로 떠올려 거기에 몰입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일정한 집중의 상태를 의미하는 쟈나[Jhāna, 선(禪), 선정(禪定)]라든가, 모든 산란함이 멈춘 경지인 삼매(三昧, samādhi)까지를 포함한다. 즉 선정과 삼매는 사마타의 한 단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사마타는 내면적인 향상을 위한 첫걸음이며, 감정적인 동요와 흥분을 다스려야만 현실 여건에 올바른 대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타 수행을 통하여 한때 고요해진 마음이라 할지라도 내외환경, 주변환경이 변화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마타 수행만으로는 영속적인 평안과 행복을 얻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새롭게 고안된 명상이 위빠사나2[Vipassana, 관(觀), 통찰]수행이다.

 

위빠사나란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통찰(洞察)한다는 의미이다. 즉 주관적인 바람이나 의지를 배제하고 사물의 본래 모습을 통찰한다는 뜻이다. 위빠사나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종국에는 탐욕과 불만 따위의 부정적인 정서를 내려놓게 된다. 그 동안 선망해 왔거나 혹은 혐오해 왔던 그 무엇의 실재를 확인함으로써 탐욕도 분노도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위빠사나는 사마타를 통해 얻어진 평안의 경지를 더욱 확고하게 할 수 있다.

 

불교명상의 독창성

요가학파의 명상은 좌법(坐法)이나 조식(調息) 혹은 몸의 긴장을 이완하기 위한 갖가지 포즈와 심신의 안정을 꾀하는 다양한 기교 등의 육체적 수련단계를 반드시 포함한다.

그러나 불교의 명상은 오로지 정신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육체를 조작하는 기법이 전혀 없다. 모든 현상에 대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다만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이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호흡새김, 입출식념(入出息念)]에서도 마찬가지로 호흡을 길게 혹은 짧게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내면의 감정과 정서를 왜곡없이 지각하게 되고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중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게 되면 관찰해야 할 현상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위적 조작 자체에 탐욕이나 분노 따위가 미세하게 스며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불교명상은 심지어 육체적인 통증이나 심리적인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현상들마저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있는 그대로의 통찰을 강조하며 그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정서와 심리를 다스릴 수 있다. 즉 감정의 발생과 변화와 소멸을 있는 그대로 주시함으로써 오히려 그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1. 사마타(samatha)는 산스끄리뜨어 어근 √śam(고요하다, 평온하다, 그치다, 적멸하다)에서 온 명사이다. PED에서‘calm, quietude of heart.’이라고 설명되듯이,‘고요함, 맑음, 적정’ 등을 뜻한다. 모든 불선법(不善法)이 가라앉고 그친다는 의미에서 중국에서 지(止)로 옮겼고, 영어권에서는 calm이라 한다. 이 사마타는 선정(jhāna)를 가리키면서, 삼매(samādhi)와 동의어인 술어이다. 아비담마에서 사마타는 네 가지 색계선(色界禪)과 네 가지 무색계선(無色界禪)이라는 8가지 선정의 경지에서 하나로 집중된 마음[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ssa-ekaggatā]으로 정의한다. 이런 경지들은 마음이 한끝으로 집중되어서 마음의 떨림이나 동요가 가라앉았고 끝이 났기 때문에 고요함(사마타)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마타 수행은 근본집중(appanā-samādhi)과 근접집중(upacārā-samādhi)과 같은 깊은 집중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에는 사마타를 위한 다양한 수행대상이 언급되고 있는데 주석서에서는 38가지로 정리되어 나타나고 「청정도론」에서는 최종적으로 40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사마타 수행의 핵심은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인데 대상에 집중을 해서 그 대상에서 익힌 표상(Uggaha-nimitta)을 일으키고,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이 될 때 이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 다섯가지 장애(오개(五蓋, pañca-nīvaraṇa)가 극복되고 마음이 집중되는 것을 근본집중(appanā-samādhi)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마타 수행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타수행만으로는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탐욕(rāga), 성냄(dosa), 어리석음(moha)으로 대표되는 근본 번뇌들을 꿰뚫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마타란, 마음과 대상이 온전히 하나가 된 그런 밝고 맑고 고요함에 억눌려서 이런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잠복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집중의 상태를 풀면 다시 이러한 번뇌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위빠사나의 강력한 통찰지혜를 계발하여 이 지혜의 힘으로 그 뿌리를 뽑아,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본문으로]
  2. 위빠사나란 vi(분리해서)+passati(보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분리해서 다르게 본다'는 뜻이다. 어원상으로 볼 때, 그냥 보는 것(sight)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보는 것(insight)을 의미한다. PED에서도 ‘inward vision, insight, intuition, introspection.’이라 설명되듯이, ‘안으로 들여다 봄, 꿰뚫어 봄, 직관(直觀), 내관(內觀)’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보통 insight라 옮기고, 중국에서는 과거에 관(觀)으로 옮겼는데 요즘은 어원에 더 충실하여 내관(內觀)으로 옮기고 있다. 위빠사나는 바로 지금 일어나는 정신과 물질의 현상에 대한 무상(anicca)ㆍ고(dukkha)ㆍ무아(anatta)의 세 가지 성품을 통찰, 혹은 꿰뚫는 것을 뜻한다. 오온(五蘊)의 무상ㆍ고ㆍ무아를 철견함으로써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사견, 자만, 의심 등과 같은 열 가지 번뇌를 제거할 수 있고 그렇게 했을 때 모든 괴로움의 종식인 깨달음에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찰나집중(khaṇika-samādhi)이 필요한데 이러한 찰나집중은 오온(五蘊)에 대한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알아차림(sati)을 통해 얻어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