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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다나상가(Dānasaṅgha)담마 이야기

3. 업(業)과 업(業)의 과보(果報)

moksha 2017. 6. 12. 22:25

3. 업(業)ㆍ업(業)의 과보(果報)


‘업(業)’이란 용어는 까르마(Sk. karmma)의 번역어이다. 까르마(karmma)의 어원은 √kṛ(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래서 까르마는 광범한 행위 일반을 나타낸다. 빠알리(Pāli)어로는 깜마(Kamma)이며, 영어로는 액션(Action)이다. 그렇다고 불교에서 모든 행위를 다 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행위 중에서도 의도(cetanā)가 개입된 행위를 업이라 한다.

앙굿따라니까야(Aṅguttara-Nikāya, 증지부)에 나타나는 업에 대한 경전적 근거의 내용을 보면,

 

“수행승들이여, 그리고‘행위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행위의 원인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행위의 다양성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행위의 소멸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행위의 소멸에 이끄는 길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조건으로 말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나는 의도가 행위라고 말한다. 의도하고 나서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행위한다.(Cetanāhaṃ, bhikkhave, kammaṃ vadāmi. Cetayitvā kammaṃ karoti—kāyena vācāya manasā.)” 

                                   [꿰뚫음의 경(Nibbedhikasutta), A6:63]

 

라고 나타나는데 업(業)을 정의하는 인용문으로 아주 잘 알려진 구문이다. 꿰뚫음의 경의 내용에서 의도가 행위이고 의도의 원인은 무명(無明)이다.

 

무명(無明) ⇒ 의도(意圖) ⇒ 행위(行爲) ⇒ 업(業) ⇒ 과보(果報)

 

인간의 행위를 업(業)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모든 행위를 업이라 하지 않는다. 업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과보(果報)를 초래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행위여야 한다. 과보를 초래할 수 있는 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의도적인 행위여야 한다.

짝꾸빨라 장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행위는 과보를 초래할 힘을 가지지 못 하기 때문에 업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둘째, 도덕적ㆍ윤리적인 측면에서의 행위여야 한다.

즉 선한 행위이거나 악한 행위여야 한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행위, 즉 무기업(無記業)은 중성적인 업으로서 선과 악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과보를 초래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이 무기업은 무정란(無精卵)과 같이 결과를 초래할 원인이 되지 못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업이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