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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따니빠따(Suttanipāta)/숫따니빠따 독송

Sn3:11 날라까의 경(Nālakasutta) : 아씨따 선인의 예언, 성자의 경지와 최상의 삶이란?

moksha 2016. 10. 20. 15:17


Sn3:11 날라까의 경1(Nālakasutta)

 

679. 아씨따 선인2은 한 낮의 휴식하는 장소에서 깨끗한 옷을 입은 도리천의 신들이3 윗옷을 들고 기뻐하고 환희하면서 공손히 제석천을 극구 찬탄하는 것을 보았다.

 

680. 기쁨에 넘쳐 있는 신들을 보고 선인은 존경을 표하며 물었다.

[아씨따] “왜 신들은 기쁨에 넘쳐 있습니까? 무슨 이유로 윗옷을 들고 흔들고 있는 것입니까?

 

681. 만일 아수라들과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할지라도 몸의 털이 곤두설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떤 희귀한 일을 보고 그처럼 기뻐하는 것입니까?

 

682. 그들은 소리치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춥니다.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그대들에게 묻습니다. 존자들이여, 제 의혹을 어서 풀어 주십시오,”

 

683. [하늘사람] “비할 데 없이 묘한 보배인 저 보살은 세상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인간세계에, 싸끼야 족 마을 룸비니 동산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족해하고 기쁨에 넘쳐 있는 것입니다.

 

684. 모든 뭇삶 가운데 가장 위없는 님, 가장 높으신 님, 인간 가운데 우두머리, 모든 생류 가운데 위없는 님께서 뭇 짐승들의 왕인 용맹스런 사자가 포효를 하듯, ‘선인’이라 불리는 숲에서 수레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685. 그는 그 말을 듣자 서둘러 하강했다. 그리고 쑷도다나 왕의 궁전을 방문해서 자리에 앉아서 싸끼야 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씨따]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도 뵙고 싶습니다.”

 

686. 그리하여 싸끼야 족들은 훌륭한 금세공사가 만든 화로에서 정련된 빛나는 황금처럼, 영광으로 반짝이며 찬연하게 빛나는 왕자 아이를 아씨따라는 선인에게 보였다.

 

687. 그는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체처럼 맑으며, 구름 한 점 없는 가을의 태양처럼 밝은 왕자를 보자 환희가 솟아나 커다란 기쁨을 얻었다.

 

688. 천상의 신들은 수많은 뼈대가 있고, 천 개의 테가 달린 양산을 공중에 펼쳤다. 또 황금 자루가 달린 총채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총채나 양산을 손에 쥔 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689. 깐하 씨리4라는 상투를 튼 선인은 머리 위에 흰 양산을 가리고 빨간 모포에 싸여 있는 황금 패물 같은 그 님을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690. 지혜에 능통한 그가 싸끼야 족의 황소를 안고 인상을 살피더니 기쁜 마음으로 ‘이 분은 위없는 님,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라고 환성을 질렀다.

 

691. 그리고 그는 자기가 멀지 않은 죽음을 생각하고, 거침없이 눈믈을 흘렸다. 선인이 우는 것을 보고 싸끼야 족들은 물었다.

[싸끼야 족] “우리 왕자에게 무슨 위험이라도 닥칩니까?”

 

692. 싸끼야 족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선인이 말했다.

[아씨따] “왕자에게서 어떤 불길한 징표를 본 것도 아니고, 왕자에게 위험이 닥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결코 열등한 자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693. 이 왕자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가장 으뜸가는 청정을 보고,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고 많은 사람을 애민히 여겨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삶은 널리 펼쳐질 것입니다.


694. 이 세상에 내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내게는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견줄 데 없는 힘을 지닌 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리니, 너무나 불행하여 나는 슬퍼하는 것입니다.”

 

695. 싸끼야 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고, 그 청정한 수행자는 궁중을 떠나갔다. 그는 자기의 조카를 불러 견줄 데 없는 힘을 지닌 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였다.

 

696. [아씨따] “만일 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세존’이라는 말과 ‘올바로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길을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듣거든, 그 때 그 곳으로 가서 그에게 가르침을 묻고 그 세존의 밑에서 청정한 삶을 닦아라.”

 

697. 그러한 유익한 생각을 지니고, 미래에 최상의 청정한 삶을 보는 자의 가르침을 받아, 날라까는 온갖 공덕을 쌓으며 승리자를 기다리면서 감각능력을 수호하며 살아갔다.

 

698. 최상의 승리자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가서 선인 가운데 으뜸가는 선인을 보고 기뻐하며, 아씨따라고 불리는 선인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자, 뛰어난 지혜, 최상의 해탈에 대하여 물었다.

 

699. [날라까] “아씨따가 알려 준 말을 잘 듣고 찾아왔습니다. 고따마시여, 모든 현상의 피안에 도달하신 바로 당신께 묻겠습니다.

 

700. 저는 집 없는 삶을 찾아 탁발의 삶을 추구하오니, 성자시여, 성자들의 최상의 삶에 대하여 제가 여쭈오니 말씀해 주십시오.”

 

701. [세존] “그대에게 성자들의 삶에 관해 알려 주겠소. 그것은 성취하기 어렵고 도달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주겠으니, 굳건히 하여 견고하게 새기십시오.

 

702. 마을에서 거친 욕을 먹든지 예배를 받든지 한결 같은 태도로 대하고, 정신의 혼란을 수습하여 고요히 하고, 교만을 떨쳐버리고 유행하십시오.

 

703. 가령 숲 속에 있더라도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나고, 아낙네는 해탈자를 유혹합니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704. 성적 교섭에서 떠나 온갖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적대하지 말고, 애착하지도 마십시오.

 

705. 내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그렇고, 그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그러하니, 스스로 자신과 비교하여 그들을 죽여서도 죽이게 해서도 안 됩니다.

 

706. 일반 사람들이 집착하는 욕망과 탐욕을 떠나 눈을 갖춘 님이 된다면,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707. 배를 가득 채우지 말고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탐욕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욕망이 없어지고 버려져서, 욕망을 여읜 것이 적멸입니다.

 

708.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고, 숲 속의 빈터에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709. 슬기롭게 선정에 전념하고, 숲속에서 즐기며, 스스로 만족해하며, 나무 아래서 선정을 닦으십시오.

 

710.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오면, 마을 어귀로 가는 것이 좋지만, 마을에서의 초대나 가져온 것에 너무 반겨서도 안 됩니다.

 

711.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마을에 이르러 가정집에서 조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되고, 음식을 얻고자 하는 이야기를 끊고, 암시적인 말조차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712. 얻은 것이 있다면 좋고, 그러나 얻지 못한 것도 잘 된 것이니, 어떤 경우에라도 나무로 되돌아오듯, 그와 같아야 합니다.

 

713. 손에 발우를 들고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그를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 같이 생각하니, 시물이 적다고 꾸짖지 말고, 시주를 경멸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714. 수행자로서 높고 낮은 여러 가지 길에 대해서 나는 말했습니다. 거듭 피안에 이르지 못하지만 생각건대 단번에 이르지도 못합니다.5

 

715.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승, 그에게는 집착이 없고, 선하거나 악한 모든 일이 끊어졌기 때문에 타오르는 번뇌가 없습니다.

 

716. 그대에게 해탈의 길에 대하여 말하겠으니,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면도날처럼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배에 집중하여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6

 

717.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 되고,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비린내가 없이7, 집착이 없이, 청정한 삶을 궁극으로 삼으십시오.

 

718. 홀로 앉아 명상을 닦고 수행자로서의 수행을 배우십시오. 홀로 있는데서 기쁨을 찾으십시오. 홀로 있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 불립니다.

 

719. 그렇게 하면 시방을 비출 것입니다. 그러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선정에 든 현자들의 칭찬의 소리를 들으면, 나의 제자라면 더욱 겸손과 믿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720. 여울들이나 골짜기들과 흐르는 강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릅니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님은 가득 찬 연못과 같습니다.

 

722. 수행자가 많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자각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며,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는 것입니다.

 

723. 그리고 자각적으로 자제해서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누릴 만하며, 그는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성취한 것입니다.”


날라까의 경이 끝났다.




  1. 이 경은 아쇼카왕((Asoka, 대략 BC268~232)의 캘컷타 바이라뜨(calcutta-Bairāt) 비문에 언급된 ‘성자(聖者)의 삶의 경’이다. 과거불인 빠두뭇따라(Padumuttara) 부처님(과거 29불 중에서 13번째의 부처님)의 제자가 성자의 삶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한 남자가 자신도 그것을 실천하고 싶어 했다. 그는 10만 겁 동안 바라밀을 닦아서 아씨따(Asita) 선인의 조카인 날라까(Nālaka)라는 고행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 경(經)안에서는 아씨따 선인이 부처님을 살아서 볼 수 없을 것을 알고 자신의 조카인 날라까에게 즉시 출가하여 유행자가 되어 나중에 부처님을 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날라까는 엄청난 부를 버리고 출가하여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여 초전법륜을 굴린 지 7일만에 그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날라까의 실천으로 알려진 ‘성자의 삶의 실천(Moneyyapaṭipadā)’에 대하여 부처님께 질문하면서 성립한 것이 이 경이다. 날라까는 이 가르침을 듣고 다시 히말라야로 들어가 아라한의 경지를 성취했다. 다른 빠알리 문헌인 ‘마하바스투[Mahavastu, 대사(大事)]’나 ‘자따까[Jātaka, 본생경(本生經)]’에도 등장하는 경이다. 제3품 큰 법문(Maha-Vagga)의 11번째인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날라까 경(Nālakasutta)]는 1번째의 출가의 경[빱바자 경(Pabbajjasutta), Sn.3:1)과 2번째의 경인 정진의 경[빠다나 경(Padhānasutta), Sn.3:2]과 더불어 석존(釋尊)에 관한 전기(傳記)로써는 가장 오래 된 자료이다. 바이라트(Bairāt) 바위 담마칙령에 5번째로 언급된 ‘성자의 길에 대한 말씀’(모네야-수떼 : Moneya-sute)에 소속경전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2. 아씨타(Asita)라는 선인(仙人)은 원래 고따마의 할아버지이자 쑷도다나의 아버지인 씨하하누의 사제였다. 따라서 그는 쑷도다나의 선생이었다가 나중에 제사장이 되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쑷도다나 왕을 찾아 뵙고 문안을 드렸다. 왕이 서거하자 아씨따는 세상을 버리고 왕의 유원에서 살았다. 그는 여러 가지 신통력을 구사해서 천상 세계에 노닐기도 했는데, 어느 날 도리천에서 신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씻다르타 고따마가 부처님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경이 시작되고 여기에 등장하는 날라까는 아씨따 선인의 누이동생의 아들이었다. 아씨따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깐하 시리(Kaṇha Siri), 깐하 데발라(Kaṇha Devala, Kāḷa Devala) 등으로 불리었다. [본문으로]
  3. 도리천의 신들(tidasagane) :‘서른 셋의 무리’라는 의미로 서른 셋 하늘나라(tāvatiṃsa, 33천) 즉 도리천(忉利天)의 무리라는 말이다. 고대 인도의 베다 성전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든 신들의 숫자를 서른 셋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문으로]
  4. 깐하 시리(Kaṇha Siri) : 아씨따(Asita)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깐하 시리, 깐하 데발라 등으로 불리었다. [본문으로]
  5. 주석서에 따르면 한 길을 통해 두 번 열반에 이르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 피안에 단번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6. 배에 집중하여~합니다. : 원래 ‘창자에 대하여 제어하라’는 것인데 Prj. Ⅱ. 498에 따르면 ‘오염된 마음과 더불어 생겨난 조건들에 종사하지 않도록’이란 말이 부가되었을 뿐, 이에 대하여 언급이 없다. [본문으로]
  7. 비린내가 없이 : Prj. Ⅱ. 499에 따르면 ‘번뇌가 없이’의 뜻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