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문답의 작은 경(Cūḷavedallasutta, M44)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라자가라하시의 벨루바나에 있는 깔라다까니바빠에 계셨다.
2.마침 재가의 신도인 비싸카(주)가 수행녀 담마딘나(주)가 있는 곳을 찾았다. 가까이 가서 수행녀 담마딘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 재가의 신도 비싸카는 수행녀 담마딘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3.[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개체(주)(존재의 무리), 개체(존재의 무리)(주)’라고 말하는데, 세존께서는 어떠한 것을 두고 개체(존재의 무리)라고 합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세존께서는‘개체(존재의 무리), 개체(존재의 무리)’라고 말하는 데,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 즉 물질의 집착다발, 느낌의 집착다발, 지각의 집착다발, 형성의 집착다발, 의식의 집착다발을 두고 존재의 무리라고 합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세존께서는 이러한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을 두고 개체(존재의 무리)라고 합니다.”
[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훌륭하십니다.”
재가 신도 비싸카는 수행녀 담마딘나가 말한 것에 환희하고 기뻐하여 수행녀 담마단나에게 다른 질문을 제기했다.
4.[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개체(존재의 무리)의 발생, 개체(존재의 무리)의 발생’이라고 말하는데, 세존께서는 어떠한 것을 두고 개체(존재의 무리)의 발생이라고 합니까?”
[담마딘다]“벗이여, 비싸카여, 다시 태어나고자 하고 환희와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서 향락을 구하는 갈애가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두고 존재의 개체(존재의 무리)라고 합니다.”
5.[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 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이라고 말하는데, 세존께서는 어떠한 것을 두고 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이라고 합니까?”
[담마딘다]“벗이여, 비싸카여, 그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되고 버려져서 보내버려지면 집착없이 해탈합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두고 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이라고 합니다.”
6.[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에 이르는 길, 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는데, 세존께서는 어떠한 것을 두고 개체(존재의 무리)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합니까?”
[담마딘다]“벗이여 비싸카여, 그 것은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두고 존재의 무리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합니다.”
7.[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그 집착은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 다발과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과 별도로 집착이 있는 것입니까?”
[담마딘다]“벗이여 비싸카여, 그 집착은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과 동일한 것도 아니며,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과는 별도로 집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에 대하여 욕망과 탐욕을 지니면, 그것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바로 그 집착입니다.”
8.[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개체(존재의 무리)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는 어떠한 것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이 세상의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거룩한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고, 참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참사람을 알지 못하고, 참 사람에 이끌리지 않아서,
1)물질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가 물질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고,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깁니다.
2)느낌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가 느낌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고, 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깁니다.
3)지각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가 지각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고, 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깁니다.
4)형성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가 형성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고, 형성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깁니다.
5)의식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가 의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고, 의식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깁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개체(존재의 무리)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는 이러한 것입니다.
9.[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개체(존재의 무리)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갖지 않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이 세상의 많이 배운 거룩한 제자는 거룩한 이를 인정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인정하고, 참사람을 알고, 참 사람에 이끌리지 않아서,
1)물질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가 물질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지 않다고 여깁니다.
2)느낌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가 느낌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3)지각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가 지각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4)형성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가 형성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형성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5)의식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가 의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의식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개체(존재의 무리)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주)를 갖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10.[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어떠한 것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그것은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입니다.”
11.[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은 조건지어진 것입니까?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입니까?”(주)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은 조건 지어진 것입니다.”
12.[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 세 가지 다발에 포합됩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 세 가지 다발에 포함되지, 세 가지 다발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에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이러한 현상들은 계행의 다발에 포함되고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은 삼매의 다발에 포함됩니다.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는 지혜의 다발에 포함됩니다.” (주)
13.[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어떠한 것이 삼매이고, 어떠한 것이 삼매의 바탕이고 어떠한 것이 삼매의 도구이고, 어떠한 것이 삼매의 수행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마음의 통일이 삼매이며, 네 가지 새김의 토대가 삼매의 바탕이고 네 가지 올바른 노력(주)이 삼매의 도구이고, 이들 가르침들을 공부하고 수행하고 복습하면, 그것이 삼매의 수행입니다.”
14.[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어떤 것이 형성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이와 같은 세 가지 형성이 있습니다. 즉 신체의 형성, 언어의 형성, 마음의 형성입니다.”
15.[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어떠한 것이 신체의 형성이고, 어떠한 것이 언어의 형성, 어떤 것이 마음의 형성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들이쉬는 것과 내쉬는 것이 신체의 형성입니다. 사유하는 것과 숙고하는 것이 언어의 형성입니다. 지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이 마음의 형성입니다.”
16.[비싸카] “존귀한 여인이여, 무슨 까닭으로 들이쉬는 것과 내쉬는 것이 신체의 형성이고, 무슨 까닭으로 사유하고 숙고하는 것이 언어의 형성이고, 무슨 까닭으로 지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이 마음의 형성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들이쉬는 것과 내쉬는 것은 신체에 속하고 그것들은 신체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이쉬는 것과 내쉬는 것은 신체의 형성입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먼저 사유하고 숙고한 뒤에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유하는 것과 숙고하는 것이 언어의 형성입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지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마음에 속하고 그것들은 마음에 묶여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마음의 형성입니다.”
17.[비싸카] “존귀한 여인이여, 어떻게 하면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합니까?”
[담마딘나] “벗이여 비싸카여,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 자에게 ‘나는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할 것이다’라든가‘나는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다.’라든가‘나는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치했다.’라든가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렇게 수련되어 그를 그러한 상태로 이끕니다.” (주)
18.[비싸카] “존귀한 여인이여, 어떻게 하면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 자에게 어느 것이 제일 먼저 소멸합니까, 신체의 형성입니까 언어의 형성입니까 마음의 형성입니까?”
[담마딘나] “벗이여 비싸카여,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 자에게 먼저 언어의 형성이 소멸하고 그 후에 신체의 형성이 소멸하고 그 후에 마음의 형성이 소멸합니다.” (주)
19.[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어떻게 하면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나옵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지각과 느낌의 소멸에 도달한 자에게는‘나는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나올 것이다.’라든가‘나는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에서 나온다.’라든가‘나는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나왔다’라든가 하는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렇게 수련되어 그를 그러한 상태로 이끕니다.”
20.[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나온 자에게 어느 것이 제일 먼저 생겨납니까, 신체의 형성입니까 언어의 형성입니까 마음의 형성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나온 자에게 먼저 마음의 형성이 생겨나고 그 후에 신체의 형성이 생겨나고 그 후에 언어의 형성이 생겨납니다.”(주)
21.[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퇴의 성취에서 나온 수행승에게는 어떠한 접촉이 경험됩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수행승에게는 세 가 지 접촉, 즉 비움의 접촉, 인상 없음의 저촉, 바램없음의 접촉이 경험됩니다.”(주)
22.[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나온 수행승의 마음은 어떠한 곳으로 기울고, 어떠한 곳으로 향하고, 어떠한 곳으로 나아갑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수행승의 마음은 멀리 떠남으로 기울고,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나아갑니다.” (주)
23.[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얼마나 여러 가지 느낌이 있습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입니다.”
24.[비싸카] “존귀한 여인이여, 어떠한 것이 즐거운 느낌이고, 어떠한 것이 괴로운 느낌이고, 어떠한 것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마음과 관련되거나 신체와 관련된 즐거움으로 유쾌한 느낌이 있는데, 이것이 즐거운 느낌입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마음과 관련되거나 신체와 관련된 괴로움으로 불쾌한 느낌이 있는데, 이것이 괴로운 느낌입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마음과 관련되거나 신체와 관련된 불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느낌이 있는데, 이것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25.[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즐거운 느낌은 무엇을 즐거움으로 하고 무엇을 괴로움으로 하고, 괴로운 느낌은 무엇을 괴로움으로 하고 무엇을 즐거움으로 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엇을 즐거움으로 하고 무엇을 괴로움으로 합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즐거운 느낌은 자신이 유지되는 것을 즐거움으로 하고 변화를 괴로움으로 하고, 괴로운 느낌은 자신이 유지되는 것을 괴로움으로 하고 변화를 즐거움으로 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앎을 즐거움으로 알지 못함을 괴로움으로 합니다.”
26.[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즐거운 느낌에는 어떤 잠재적 경향을 따르고, 괴로운 느낌에는 어떠한 잠재적 경향을 따르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어떠한 잠재적 경향이 따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의 경향이 따르고, 괴로운 느낌에는 분노의 경향이 따르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무명의 경향이 따릅니다.”(주)
27.[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모든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의 경향이 따르고, 모든 괴로운 느낌에는 분노의 경향이 따르고,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무명의 경향이 따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모든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의 경향이 따르는 것이 아니고, 모든 괴로운 느낌에는 분노의 경향이 따르는 것이 아니고,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무명의 경향이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28.[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즐거운 느낌에 대하여 무엇을 버려야 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하여 무엇을 버려야 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하여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즐거운 느낌에 대하여 탐욕의 경향을 버려야 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하여 분노의 경향을 버려야 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하여 무명의 경향을 버려야 합니다.”
29.[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모든 즐거운 느낌에 대하여 탐욕의 경향을 버려야 하고, 모든 괴로운 느낌에는 분노의 경향을 버려야 하고,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무명의 경향을 버려야 합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모든 즐거운 느낌에 대하여 탐욕의 경향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괴로운 느낌에 대하여 분노의 경향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하여 무명의 경향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1)벗이여 비싸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윔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그렇게 해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의 경행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주)
2)벗이여 비싸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지금 고귀한 님이 성취한 그러한 경지에 내가 반드시 도달하리라.’라고. 이와 같이 위없는 해탈에 대하여 서원을 세운 사람은 서원을 조건으로 불만은 생겨나지만, 그렇게 해서 분노를 버리게 되며, 분노릐 경향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주)
3)벗이여 비싸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미 생겨난 만족과 불만이 사라지면 즐거움도 뛰어넘고 괴로움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명을 버리게 되며, 무명의 경향을 잔재시키지 않습니다.”(주)
30.[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즐거운 느낌에 대응하는(주) 것은 무엇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즐거운 느낌에 대응하는 것은 괴로운 느낌입니다.”
31.[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괴로운 느낌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괴로운 느낌에 대응하는 것은 즐거운 느낌입니다.”
32.[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응하는 것은 무명입니다.”
33.[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무명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무명에 대응하는 것은 명지입니다.”(주)
34.[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명지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명지에 대응하는 것은 해탈입니다.”
35.[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해탈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해탈에 대응하는 것은 열반입니다.”
36.[비싸카]“존귀한 여인이여, 열반에 대응하는 것은 명지입니다.”
[담마딘나]“벗이여 비싸카여, 그대의 질문은 범주를 벗어난 것입니다.(주) 질문의 끝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참으로 청정한 삶은 열반으로 드는 것이며, 열반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열반을 궁극으로 하는 것입니다. 벗이여 비싸카여, 그대가 원한다면, 세존을 찾아뵙고 그 의미를 질문하십시오. 그래서 세존께서 그대에게 설명하시는 대로 받아 지니십시오,”
37.그래서 재가의 신도 비싸카는 수행녀 담마딤나가 말한 것에 기뻐하고 환희하며, 자리에서 이어나 수행녀 담마딘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세존께서 계신 곳에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 재가의 신도 비싸카는 수행녀 담마딘나와 함께 문답한 그 모든 것을 세존께 알렸다. 그것을 듣고 세존께서는 재가의 신도 비싸카에게 말씀하셨다.
[세존]“비싸카여, 수행녀 담마딘나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수행녀 담마딘나는 크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비싸카여, 그대가 나에게 그 의미를 묻는다면, 나도 역시 수행녀 담마딘나가 설한 것과 같이 그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그 의미는 그와 같으니, 그와 같이 받아 지니십시오,”
38.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재가의 신도 비싸카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며 기뻐했다.
교리문답의 작은 경이 끝났다.
▣비싸카(Visākha) : 비싸카는 마가다 국의 지방호족(Maṇḍalirājā)의 아들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빤짤라(Pañcāla)왕의 딸이었으므로 그는 빤짤라뿟따(Pañcālaputta)라고 불렀다. 그는 아버지를 계승했으나 어느 날 부처님이 그 근처에 도착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그곳으로 가서 가르침을 듣고는 곧바로 출가해 싸밧티(Sāvatthi)로 가서 수행한 뒤에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가르침을 설하는데 능숙한 장로였다. 부처님은 그의 설법을 듣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담마딘나(Dhammadinnā) : 비싸카(Visākha)의 출가전 아내였다. 그녀는 출가하자마자 거룩한 경지를 성취하였다. 부처님은 그녀를 두고 ‘가르침을 해설하였는데 최상의 비구니(비구니 설법제일)’라고 선언했다.
▣‘개체, 개체’라고 : sakkāyo sakkāyo ti의 번역어이다. 한역에서 유신(有身)이라고 번역한다.
▣삿까야(sakkāya) : 본질, 실체, 인성, 개성, 속성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다섯 가지 존재의 속성(오온)을 의미한다. 다섯 가지 속성은 실체가 없으며, 무상함을 가리킨다.
▣개체(존재의 무리)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sakkāyadiṭṭhi) : 이 경에서 소개된 것이 20가지의 ‘개체가 있다는 견해[유신견(有身見)]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물질에 관련된 개체가 있다는 견해를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불타는 등반의 불꽃이 불꽃의 색깔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물질을 자아(自我)로 여긴다. ②나무가 그림자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자아(自我)가 물질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긴다. ③향기가 꽃 속에 있는 것처럼 물질이 자아(自我) 안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④보석이 보석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자아(自我)가 물질 안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조건지어진 것,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 을 한역으로 ‘유위(有爲), 무위(無爲)’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는 도가적(道家的)인 유위(有爲)나 무위(無爲)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는 지혜의 다발에 포함됩니다 : 지혜의 다발은 혜온(慧溫, paññakkhanda)를 말하는 것으로 삼학(三學)의 구성요서이다. 불교윤리학의 차제(次第)인 계ㆍ정ㆍ혜 삼학의 존재상의 계기가 팔정도(八正道, ariyaṭṭhaṅgikamagga)의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지혜는 정견(正見, 올바른 견해)과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생각)를 포함하는 삼학의 최종단계이지만 팔정도의 최초의 두 단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부주의한 실수가 아니라 중요한 논리적 숙고에 의한 배려이다. 이것은 무명(無明)이 심이연기의 시작이지만 절대적인 출발이 아니라 다시 번뇌에 의해 조건지어진다는 원환적(圓環的)이고 수반적(隨伴的)인 배려에서 성립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려된 것이다. 부처님은 ‘손으로 손을, 발로 발을 씻는 것처럼 지혜(慧)는 계행(戒)을 통해 씻겨지고 계행(戒)은 지혜(慧)를 통해 씻겨진다. 계행이 있는 곳에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는 곳에 지혜가 있다. 계행을 수반하는 지혜와 지혜를 수반하는 계행인 계행 - 지혜는 세상에서 최상이라고 불린다.’ 초보적인 유형의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 즉 개념적으로 파악된 지혜는 삼학의 수행에 입문하는 데 길잡이가 된다.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는 방향감각을 키워주지만 이 둘은 예비적 역할로 끝나지 않는다. 도덕적 수행과 명상적 수행이 성취되고 나면 보다 탁월한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가 지혜 속에 함축되게 한다.
▣네 가지 올바른 노력 : 사정근(四正勤, cattāro sammappadhānā)을 말한다.
▣그의 마음은 그렇게 수련되어 그를 그러한 상태로 이끕니다 : 지각과 느낌의 소멸은 오로지 첫 번째 선정에서 지각하지도 않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를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하면서 뛰어넘어 8가지 선정을 이수한 자에게만 성취될 수 있다.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 자에게 먼저 언어의 형성이 소멸하고 그 후에 신체의 형성이 소멸하고 그 후에 마음의 형성이 소멸합니다. : 주석서에 따르면 2번째의 선정(dutiyajjhāna)에서 언어의 형성인 사유와 숙고가 멈추고, 4번째의 선정(catutthajjhāna)에서 신체적 형성인 호흡이 멈추고, 마음의 형성인 지각과 느낌은 9번째 선정이라고 할 수 있는 지각과 느낌의 소멸[상수멸(想受滅), saññāvedayitanirodha)을 성취함으로서 멈춘다.
▣먼저 마음의 형성이 생겨나고 그 후에 신체의 형성이 생겨나고 그 후에 언어의 형성이 생겨납니다. : 수행자가 소멸의 성취에서부터 일어날 때에 경지의 성취의식이 먼저 일어나고, 정신적 형성인 느낌과 지각이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신체의 형성인 호흡이 다시 시작한다. 이어서 수행자는 일상적인 언어의 형성을 회복한다.
▣비움의 접촉, 인상 없음의 저촉, 바램없음의 접촉이 경험됩니다. : 한역으로는 공촉(空觸), 무상촉(無相觸), 무원촉(無願觸)이다.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일어날 때의 의식의 초기상태는 비움(空), 인상 없음(無相), 바램 없음(無願)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고유한 상태와 그 대상이 열반(涅槃)이기 때문이다.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상태의 성취에서 수행승의 마음은 멀리 떠남으로 기울고,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나아갑니다 : 소멸의 성취에서 일어날 때에 인식의 대상인 열반은 모든 조건에서 격리되어 있으므로 ‘머리여윔(viveka)’이라고 불린다.
▣무명의 경향이 따릅니다 : 한역에서 수면(隨眠)이라고 불리는 ‘경향’은 정신적으로 잠재하며 버리지지 않고 적당한 조건이 나타나면 생겨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의 경행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 : 탐욕의 경향을 진압하여 첫 번째 선정(paṭhamajjhāna)을 성취한다. 선정에서 탐욕이 진압되면, 통찰(vipassana)을 닦아서 돌아오지 않는 길을 따라 탐욕을 제거한다. 그것이 돌아오지 않는 길에서 제거되더라도 첫 번째 선정을 통해 진압되기 때문에 ‘탐욕의 경향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분노를 버리게 되며, 분노릐 경향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 : ‘그러한 경지(tadāyatana)’란 아라한의 경지에서 도달한 최상의 해탈과 일치한다. 그리고 여기서 서원 때문에 일어나는 근심(domanassa)은 ‘버림에 기초한 근심(MN.137)’이라고 불린다. 분노의 경향은 그러한 근심에 의해서 버려지기보다는 최상의 해탈에 대한 열망에 자극되어 버려진다. 확고한 결정을 가지고 수행에 임하여 돌아오지 않는 길에 의해서 분노의 경향이 완전히 제거된다.
▣그렇게 해서 무명을 버리게 되며, 무명의 경향을 잔재시키지 않습니다. : 수행승은 네 번째 선정에서 무명의 경향을 진압한다. 무명의 경향이 진압되면, 통찰(vipassana)을 닦아서 거룩한 길을 따라 무명을 제거한다. 그것이 거룩한 길에 의해서 제거되더라도 네 번째 선정을 통해 진압되기 때문에 ‘무명의 경향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고 말한 것이다.
▣대응하는 : ‘대응’이라고 한 것은 paṭibhāga의 번역인데 이는 ‘반대, 유사, 보충’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무명에 대응하는 것은 명지입니다 : 무명(無明, avijjā)이란 단적으로 네 가지 거룩한 진리(carrāri ariyasaccāni, MN.141)에 대한 무지라고 정의되고 있다. “또한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무명이라 하는가?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생성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끄는 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것을 수행승들이여, 무명이라고 부른다.” 명지(明智, vijjā)란 그 반대이다.
▣범주를 벗어난 것입니다 : 열반은 그 반대개념으로 조건 지어진 상태 즉 유위(有爲)라는 표현이 대응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엄밀히 고찰하면 무조건적인 열반에 어떤 조건적인 것이 대응하거나 보충될 수 있다면 무조건적인 것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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