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쌋짜까에 대한 큰 경(Mahāsaccakasutta, M36)

moksha 2025. 2. 24. 20:30

쌋짜까에 대한 큰 경(Mahāsaccakasutta, M3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베쌀리 시의 마하 숲에 있는 꾸따가라 강당에 계셨다.

2. 그 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베쌀리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마침 니간타의 교도인 쌋짜까가 산책을 하다가 마하 숲에 있는 꾸따가라 강당을 찾았다. 존자 아난다는 멀리서 니간타의 교도인 쌋짜까가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나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니간타의 교도인 쌋짜까가 오고 있습니다. (주) 그는 논쟁을 좋아하고 이론에 박학한 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성자로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을 비난하고 가르침을 비난하고 승가를 비난하고자 하는 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그를 연민하시고 불쌍히 여겨 잠깐 앉아 계시면 좋겠습니다.”

 

3.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니간타의 교도인 쌋짜가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앉아 니간타의 교도인 쌋짜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존자 고따마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몸을 닦는 수행에 열중하고 있으나 마음을 닦은 수행에는 열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몸의 괴로운 느낌과 만납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들이 만약 몸의 괴로운 느낌을 만나면, 다리가 마비되고, 심장이 찢어지고, 입에서 뜨거운 피를 토하고, 광기와 마음의 혼란에 이르게 됩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렇게 되면 마음은 몸에 복종하게 되며, 몸은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는 마음을 닦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마음을 닦는 수행에 열중하고 있으나 몸을 닦는 수행에는 열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음의 괴로운 느낌과 만납니다. 존자 고따마여, 만약 마음의 괴로운 느낌을 만나면, 다리가 마비되고, 심장이 찢어지고, 입에서 뜨거운 피를 토하고, 광기와 마음의 혼란에 이르게 됩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렇게 되면 몸은 마음에 복종하게 되며, 마음은 몸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는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존자 고따마의 제자는 마음을 닦는 수행에 열중하고 있으나 몸을 닦는 수행에는 열중하고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4. “악기베싸나여, 그대가 몸을 닦는 수행에 관해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난다 밧차, 끼사 싼낏차, 막칼리 고쌀라와 같은 자들이 있는데, 존자 고따마여, 그들은 벌거벗고, 편의를 거부하고, 손가락을 빨고, 오라는 초대를 거부하고, 머물라는 환대도 거부하고, 제공된 음식을 거부하고, 할당된 음식을 거부하고, 식사의 초대도 거부합니다. 그들은 옹기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냄비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가서 받지 않고, 지팡이를 가로질러 받지 않고, 공이로 찧고 있는 것을 받지 않고, 둘이 함께 식사할 때에 받지 않고, 임신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남자에게 안긴 여자에게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베풀어지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기다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물고기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곡주를 마시지 않고, 과일주를 마시지 않고, 발효된 차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끼를 위해 한 집에 머물고, 두 끼를 위해 두 집에 머물고, 세 끼를 위해 세 집에 머물고, 네 끼를 위해 네 집에 머물고, 다섯 끼를 위해 다섯 집에 머물고, 여섯 끼를 위해 여섯 집에 머물고, 일곱 끼를 위해 일곱 집에 머뭅니다. 한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두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세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네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다섯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여섯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일곱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삽니다. 그들은 하루 한 번 식사를 하고, 이틀에 한 번 식사를 하고, 사흘에 한 번 식사를 하고, 나흘에 한 번 식사를 하고, 닷새에 한 번 식사를 하고, 엿새에 한 번 식사를 하고, 칠일에 한 번 식사를 합니다. 이와 같이 해서 보름에 한 번 하는 정기적인 식사를 실천합니다.”

 

5. “악기베싸나여, 그들은 그것만으로 연명합니까?”

 “존자 꼬따마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들은 때로는 특별한(너무 좋은) 것을 씹고, 특별한 것을 삼키고, 특별한 음식을 맛보고, 특별한 음료를 마십니다. 그들은 이것으로 몸에 힘을 부여하고, 몸을 성장하게 하고, 몸을 비대하게 합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들은 처음에는 버리고 나중에는 다시 모으는(취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이 몸은 비대해지거나 여위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기베싸나여, 그대가 마음을 닦는 수행에 관해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는 마음의 수행에 관하여 세존께 질문을 받았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6. 그러자 세존께서는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에게 말씀하셨다.

악기베싸나여, 그대가 먼저 말한 몸을 닦는 수행은 성자의 계율에 비추어 가르침에 맞게 몸을 닦는 수행이 아닙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대가 참으로 몸을 닦는 수행에 관해 모르면서 어찌 마음을 닦는 수행에 관해 알 수 있습니까? 악기베싸나여, 몸을 닦지 않는 수행이 있고, 마음을 닦지 않는 수행이 있는 것과 같이, 몸을 닦는 수행이 있고, 마음을 닦는 수행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듣고 잘 숙고하십시오. 내가 설명하겠습니다.”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는 세존께 대답했다.

 

7.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악기베싸나여, 어떠한 것이 몸을 닦지 않는 수행이고 마음을 닦지 않는 수행입니까? 세상의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즐거운 느낌이 생겨나면, 그는 즐거운 느낌을 접촉하여 즐거운 느낌에 애착하며 즐거운 느낌이 지속되기를 애착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의 소멸에서 괴로운 느낌이 생겨납니다. 그는 괴로운 느낌에 접촉하여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비탄해하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면서 어리석음에 떨어집니다. 악기베싸나여, 그가 몸을 닦는 수행을 하지 않은 까닭에 이미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압도해버리고 군림하는),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지 않은 까닭에 이미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그의 몸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은 것이 몸을 닦지 않은 수행이고 마음을 닦지 않은 수행입니다.

 

8. 악기베싸나여, 어떠한 것이 몸을 닦는 수행이고, 마음을 닦는 수행입니까? 세상에서 가르침을 배운 고귀한 제자는 즐거운 느낌이 생겨나면, 그는 즐거운 느낌을 접촉하여 즐거운 느낌에 애착하지 않으며 즐거운 느낌이 지속되기를 애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이 소멸하면 괴로운 느낌이 생겨납니다. 그는 괴로운 느낌에 접촉하여도 슬퍼하지 않고, 우울해하지 않고, 비탄해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몸을 닦는 수행을 하는 까닭에 이미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며,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한 까닭에 이미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그의 몸을 사로잡지 않는 것입니다. 악기베싸나여,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와 같이 쌍방으로, 즉 몸을 닦는 수행을 하는 까닭에 이미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며,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한 까닭에 이미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그의 몸을 사로잡지 않는 것입니다.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은 것이 몸을 닦는 수행이고 마음을 닦는 수행입니다.”

 

9. “나는 존자 고따마에 대하여 참으로 존자 고따마는 몸을 닦는 수행을 했고 마음을 닦는 수행을 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그대는 공격하고 비방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시 내가 그대에게 설명할 것입니다. 악기베싸나여, 나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까닭에, 그러한 나에게 이미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거나 또는 이미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10. “즐거운 느낌이 생겨나면,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데, 존자 고따마께는 그러한 즐거운 느낌이 생겨나는 적이 없습니까? 괴로운 느낌이 생겨나면,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러한 괴로운 느낌이 생겨나는 적이 없습니까?”

악기베싸나여, 왜 아니겠습니까? 악기베싸나여, 나는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사는 것은 티끌로 가득 차 있지만 출가는 자유로운 공간과 같다. 집에서 사는 자는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소라껍질처럼 잘 연마된 거룩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 나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내가 나중에 젊은 청년이 되어 칠흑같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다복하고 혈기왕성한 인생의 청춘에 이르렀으나, 부모님은 원치 않아서 눈물 흘리며 우셨지만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11. 그러한 내가 바로 이와 같이 수행자가 되어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깔라마여, 나는 그대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악기베싸나여, 이처럼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존자여, 머무십시오.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그 스승과 동일한 경지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악기베싸나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나는 스승이 말하는 것과 똑같을 정도로 그 지혜의 이론을 말하고 그 장로의 이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와 남이 모두 나는 알고 또한 본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깔라마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단지 확신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깔라마는 이 가르침을 알고 본다.’

 

12.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깔라마여, 그대는 어떻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관해 알려주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새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김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집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집중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 이제 깔라마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뒤에 악기베싸나여, 나는 머지않아 곧 그 가르침을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13.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깔라마여, 그대는 이렇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존자여, 나는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존자여, 나도 이렇게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은 존자를 동료 수행자로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여 주장한 그 가르침을 존자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이 바로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한 가르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가르침을 존자가 알고, 또한 존자가 아는 그 가르침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 역시 그러했고, 존자처럼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들 둘이서 이 무리를 수호합시다.’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나에게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에 만족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싫어하여 그 곳을 떠났습니다.

 

14.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라마뿟따여, 나는 그대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악기베싸나여, 이처럼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대답했습니다.

존자여 머무십시오.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그 스승과 동일한 경지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악기베싸나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나는 스승이 말하는 것과 똑같을 정도로 그 지혜의 이론을 말하고 그 장로의 이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와 남이 모두 내가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라마뿟따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단지 확신함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라마뿟따는 이 가르침을 알고 또한 본다.’

 

15.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라마뿟따여, 그대는 어떻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관해 알려주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라마뿟따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새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김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집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집중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 이제 라마뿟따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뒤에 악기베싸나여, 나는 머지않아 곧 그 가르침을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16.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았다.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라마뿟따여, 그대는 이렇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존자여, 나는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존자여 나도 이렇게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은 존자를 동료 수행자로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여 주장한 그 가르침을 존자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이 바로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한 가르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가르침을 존자가 알고, 또한 존자가 아는 그 가르침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 역시 그러했고, 존자처럼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들 둘이서 이 무리를 수호합시다.’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싫어하여 그 곳을 떠났습니다.

 

17.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마가다 국을 차례로 유행하면서 마침내 우루벨라 근처의 쎄나니가마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고요한 우거진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마음에 드는 지역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요한 우거진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이 지역이 마음에 든다. 이곳은 정진을 바라는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그 정진에 집중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이다.’ 나는 이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18.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나에게 놀라운,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가지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습기를 머금은 생나무가 물 속에 던져져 있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좋은 부시막대목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을 지피고, 빛을 내게 하겠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기베싸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이 습기를 머금은 생나무가 물 속에 던져져 있는데, 거기에 좋은 부시막대목을 가지고 와서, 불을 지피고 열기를 내게 할 수 있습니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것은 습기를 머금은 생나무가 물 속에 던져져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사람은 지치고 곤혹스러워질 것입니다.”

 

19.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멀리 떠나지 못해서 그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대하여 감각적인 탐욕, 감각적인 사랑, 감각적인 혼미, 감각적인 갈망, 감각적인 고뇌가 안으로 잘 버려지지 않고, 잘 소멸되지 않았다면, 그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게 되고, 그들은 앎과 봄,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그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것이 나에게 놀라운,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첫 번째의 비유입니다.”

 

20.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나에게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두 번째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습기를 머금은 생나무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위에 놓여져 있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좋은 부시막대목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을 지피고, 빛을 내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기베싸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이 습기를 머금은 생나무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위에 놓여 있는데, 거기에 좋은 부시막대목을 가지고 와서, 불을 지피고, 열기를 내게 할 수 있습니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것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위에 놓여있더라도 습기를 머금은 생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사람은 지치고 곤혹스러워질 것입니다.”

 

21.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신체적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멀리 떠났더라도, 그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대하여 감각적인 탐욕, 감각적인 사랑, 감각적인 혼미, 감각적인 갈망, 감각적인 고뇌가 안으로 잘 버려지지 않았고, 잘 소멸되지 않았다면, 그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게 되고, 그들은 앎과 봄,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것이 나에게 놀라운,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두 번째의 비유입니다.”

 

22.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나에게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세 번째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습기를 머금지 않은 마른 나무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위에 놓여져 있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좋은 부시막대목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을 지피고, 빛을 내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기베싸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이 습기를 머금지 않은 마른 나무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위에 놓여져 있는데, 거기에 좋은 부시막대목을 가지고 와서, 불을 지피고, 열기를 내게 할 수 있습니까?”

존자 고따마여, 그렇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것은 습기를 머금지 않은 마른 나무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23.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신체적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멀리 떠났고, 그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대하여 감각적인 탐욕, 감각적인 사랑, 감각적인 혼미, 감각적인 갈망, 감각적인 고뇌가 안으로 잘 버려졌고, 잘 소멸되었다면, 그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참으로 이것이 나에게 놀라운,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번째의 비유입니다.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이것들이 나에게 놀라운,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가지 비유들입니다.

 

24. 악기베싸나여,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치아를 치아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리는 것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나는 치아를 치아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렸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 치아를 치아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리는 나에게 겨드랑이 아래에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마치 힘센 사람이 힘 약한 사람의 머리채를 붙잡거나 어깨를 붙잡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리듯, 악기베싸나여, 그 치아을 치아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 버리는 나에게 겨드랑이 아래에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 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ㅔ 나는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러운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25.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숨을 멈추는 선정을 닦아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나의 입과 코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내가 입과 코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커다란 바람소리가 귓구멍을 통해 나왔습니다. 마치 풀무소리가 요란한 것처럼, 내가 입과 코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커다란 바람소리가 귓구멍을 통해 나왔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 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26.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숨을 멈추는 선정을 더욱 닦아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나의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커다란 바람소리가 머리를 혼란시켰습니다. 마치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머리를 쪼개듯,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커다란 바람소리가 머리를 혼란시켰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 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27.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숨을 멈추는 선정을 더욱 닦아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나의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머리에 커다란 고통이 생겨났습니다. 마치 힘센 사람이 머리주위를 단단한 가죽끈으로 조이듯,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머리에 커다란 고통이 생겨났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 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28.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숨을 멈추는 선정은 더욱 닦아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나의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커다란 바람이 나의 창자를 찔러댔습니다. 마치 숙련된 도살자나 도살자의 제자가 날카로운 도살용 칼로 황소의 창자를 잘라대듯,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커다란 바람이 나의 창자를 찔러댔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29.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숨을 멈추는 선정을 더욱 닦아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나의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몸에 격렬한 불길이 생겨났습니다. 마치 힘센 장정이 약한 사람을 두 팔로 붙잡아 뜨거운 석탄 화로에 넣어 굽듯, 내가 입과 코와 귀를 통해 들숨과 날숨을 멈추었을 때에 몸에 격렬한 불길이 생겨났습니다. 악기베싸나여,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 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30. 악기베싸나여, 신들이 나를 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죽었다.’ 다른 신들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신들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죽은 것도 죽어 가는 것도 아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거룩한 님으로서 그렇게 사는 것이 거룩한 님의 길이다.’

 

31.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완전히 음식을 끊고 수행을 해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러자 신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벗이여, 그대는 완전히 음식을 끊고 수행하지 마십시오. 벗이여, 그대가 완전히 음식을 끊고 수행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대가 살 수 있도록 하늘의 음식을 그대의 털구멍을 통해 공급할 것입니다.’ 그러자 악기베싸나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완전히 절식을 선언했는데 이들 신들이 하늘의 음식을 공급하고 내가 그것으로 산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악기베싸나여, 나는 그들 신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필요가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32.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아주 적은 양의 음식, 각각 한 웅큼 분량의 콩 수프나 이집트콩 수프나 땅콩 수프를 먹어보면 어떨까?’ 악기베싸나여, 그래서 나는 아주 적은 양의 음식, 각각 한 웅큼 분량의 콩수프나 이집트콩 수프나 땅콩 수프를 먹었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내가 아주 적은 양의 음식, 각각 한 웅큼 분량의 콩 수프나 이집트콩 수프나 땅콩 수프를 먹었기 때문에 나의 사지는 포도 줄기나 대나무 줄기의 옹이처럼 되었고,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아씨띠까 풀의 마디나 깔라 풀의 마디처럼 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낙타의 발처럼 되었고 나의 척추는 회전하는 사슬처럼 울퉁불퉁해졌습니다. 나의 갈빗대는 오래된 지붕 없는 헛간의 흔들리는 서까래처럼 섬뜩하게 튀어나왔습니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눈빛은 눈구멍에 깊숙이 가라앉아, 깊은 우물에 멀리 가라앉은 물빛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머리가죽은 주름지고 시들어서, 푸르고 맛이 쓴 호리병박이 바람과 햇빛에 주름지고 시든 것과 같았습니다. 또한 악기베싸나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창자가 나의 등에 붙어버려, 내가 창자를 만지면 등뼈와 만났고, 등뼈를 만지면 창자와 만났습니다. 또한 악기베싸나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는 똥이나 오줌을 누려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습니다. 또한 악기베싸나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면, 털이 뿌리까지 썩어서 몸에서 떨어져나갔습니다.

 

33. 악기베싸나여,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검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푸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검지도 푸르지도 않고 황금생의 피부를 갖고 있다.’ 악기베싸나여, 이와 같이 너무 적게 먹었기 때문에 나의 맑고 밝은 피부색이 파괴되었습니다.

 

34.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했다고 해도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극심했던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미래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할 것이라고 해도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극심한 것일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없을 것이다. 현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극심한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고행의 실천으로도 인간을 뛰어넘는 법, 고귀한 님들이 갖추어야 할 탁월한 앎과 봄을 성취하지 못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35.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아버지 싸끼야 족의 왕이 농경제 행사를 하는 중에, 나는 장미사과나무의 서늘한 그늘에 앉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는데,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일까?’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 길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새김에 따른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36.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없는 즐거움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악기베싸나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가 없는 즐거움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37.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극도로 야읜 몸으로는 그러한 즐거움을 성취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으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었습니다. 그 때 악기베싸나여, 나는 다섯 수행승이 나를 기다리며 우리의 수행자 고따마가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면 우리에게 알리러 올 것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었다면 다섯 수행승은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사치스럽게 살며, 자신의 정진을 포기하고 윤택한 삶으로 돌아갔다.’라고 생각하며 나를 싫어하여 떠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38. 이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어 힘을 얻어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39. 나는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40.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 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41.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42.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의 기억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관하여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고 나는 그 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기억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했습니다.

 

43. 악기베싸나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야에 도달한 첫 번째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44.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뭇삶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삶들에 관하여 어떤 중생들은 신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중생들은 신체적으로 선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선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45. 악기베싸나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야에 도달한 후 두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즐거운 느낌이 생겨나더라도 그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46.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47.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는 앎이 생겨났습니다. 나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48. 악가베싸나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야에 도달한 세 번째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그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49. 그런데 악기베싸나여, 나는 수많은 대중에게 가르침을 설한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누구나 나에 대해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나를 위해 특별히 가르침을 설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여래는 지혜를 전하기 위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설합니다. 악기베싸나여, 대화가 끝나면 나는 언제나 항상 닦는 이전과 같은 삼매의 인상에 안으로 마음을 정립하고 고요히 하고 하나로 하고 집중시킵니다.”

사람들은 거룩한 님, 올바로 깨달은 님에 대하여 믿는 것과 똑같이 존자 고따마에 대하여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존자 고따마께서는 대낮에도 낮잠을 주무신 것을 기억하십니까?(주)

 

50. “악기베싸나여, 나는 여름의 마지막 달에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큰 옷을 네 겹으로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하고 누워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수면에 든 것을 기억합니다.”

존자 고따마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그것을 두고 어리석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악기베싸나여, 그것은 어리석거나 어리석지 않거나 하는, 그러한 문제가 아닙니다. 악기베싸나여, 어리석거나 어리석지 않은 것에 관하여 듣고 그것을 잘 새기십시오. 내가 설명하겠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51. “악기베싸나여, 누구든지 어떠한 사람이든지 오염을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에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를 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릅니다.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악기베싸나여, 누구든지 어떠한 사람이든지 오염을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를 버리면, 나는 그를 어리석지 않은 자라고 부릅니다. 악기베싸나여, 참으로 번뇌를 버리는 것 때문에 어리석지 않은 자가 됩니다

 

악기베싸나여, 여래에게는 오염을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에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그러한 번뇌들이 잘리고, 뿌리채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악기베싸나여, 마치 종려나무가 그 꼭지를 잘리면, 다시 자랄 능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여래에게는 오염을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그러한 번뇌들이 잘리고, 뿌리채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52. 이렇게 말씀하시자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는 말했다.

존자 고따마여,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3. 존자 고따마여, 내가 뿌라나 깟싸빠에게 논쟁을 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나를 따라서 논쟁을 시도하여 얼버무리고, 회피하고, 분노와 증오와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4. 존자 고따마여, 내가 막칼리 고쌀라에게 논쟁을 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나를 따라서 논쟁을 시도하여 얼버무리고, 회피하고, 분노와 증오와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5. 존자 고따마여, 내가 아지따 께싸깜발린에게 논쟁을 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나를 따라서 논쟁을 시도하여 얼버무리고, 회피하고, 분노와 증오와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6. 존자 고따마여, 내가 빠꾸다 깟짜야나에게 논쟁을 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나를 따라서 논쟁을 시도하여 얼버무리고, 회피하고, 분노와 증오와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7. 존자 고따마여 내가 싼자야 베랏티뿟따에게 논쟁을 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나를 따라서 논쟁을 시도하여 얼버무리고, 회피하고, 분노와 증오와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8. 존자 고따마여, 내가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논쟁을 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나를 따라서 논쟁을 시도하여 얼버무리고, 회피하고, 분노와 증오와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논박에 논박을 거듭하고, 비방하는 말로 대론을 하여도 마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그러하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피부색이 청정하고 안색이 맑습니다.

 

59. 존자 고따마여, 우리는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우리는 바쁘고 할 일이 많습니다.”

악기베싸나여, 지금이 그 때이니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러자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을 떠났다.

 

쌋짜까에 대한 큰 경이 끝났다.

 

니간타의 교도인 쌋짜까가 오고 있습니다 : 쌋짜까는 그가 이전에 부처님과 만나서 대론하는데 패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박할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 자신이 패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혼자 왔다. 그는 이 경전의 끝에 가서야 그가 질문한 것이지만, 부처님께서 대낮에 주무신 것을 가지고 논박할 작정이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대낮에도 낮잠을 주무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 이 질문이 원래 쌋짜까가 무기로 가슴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Pps. . 292에 의하면, 거룩한 님인 아라한에게는 모든 해태와 혼침(thīnamiddha)이 제거되었으니 몸에 고유한 신체적인 피곤을몰아내기 위해 잠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