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니까야(Nikāya) 항수 독송집

웰라마 경(Velāmasutta, A9:20) : 진정한 보시의 결실,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만큼이라도 무상(無常)이라고

moksha 2016. 8. 23. 17:14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3번)

    나모    땃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쌈마쌈붓닷싸 (3번)

그 분,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예경하나이다.(3번)

 

웰라마 경(Velāmasutta, A9:2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세존]“장자여, 그대의 가정에서 보시를 합니까?”

[아나타삔디까]“세존이시여, 저의 가정에서 보시를 합니다. 그것은 거친 쌀가루와 산죽입니다.”

 

4. [세존]“장자여, 거친 것이건 세밀한 것이건 보시하는데 정중하지 않게 주고, 공손하게 주지 않고, 손수 주지 않고, 쓰레기를 주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주면, 그 보시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뛰어난 음식을 즐길 수 없고, 뛰어난 옷도 즐길 수 없고, 뛰어난 수레도 즐길 수 없고, 뛰어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즐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 아내, 하인, 노예, 일꾼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장자여, 그것은 정중하게 주지 않은 행위의 과보입니다.

 

5. 장자여, 거친 것이건 세밀한 것이건 보시하는데 정중하게 주고, 공손하게 주고, 손수 주고, 쓰레기를 주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여 주면, 그 보시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뛰어난 음식을 즐길 수 있고, 뛰어난 옷도 즐길 수 있고, 뛰어난 수레도 즐길 수 있고, 뛰어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 아내, 하인, 노예, 일꾼이 그의 말을 듣고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를 배려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장자여, 그것은 정중하게 주는 행위의 과보입니다.

 

6. 장자여, 옛날에 웰라마라는 바라문이 살았는데, 그는 이와 같은 보시, 굉장한 보시를 했습니다. 그는 팔만사천 개의 황금 그릇을 보시했는데 그 속에 은이 가득했고, 그는 팔만사천 개의 은 그릇을 보시했는데 그 속에는 금이 가득했고, 그는 팔만사천 개의 동 그릇을 보시했는데 그 속에는 황금이 가득했고, 그는 팔만사천 마리의 코끼리를 보시했는데 그들은 금치장을 하고 금 깃발을 달고 금그물을 덮었고, 그는 팔만사천 대의 수레를 보시했는데 그것들은 사자가죽을 깔고 호랑이 가죽을 깔고 표범의 가죽을 깔고 황모포를 깔고 금 치장을 하고 금 깃발을 달고 금 그물을 덮었고, 그는 팔만사천 마리의 암소를 보시했는데 황마포로 치장하고 동 그릇의 착유통을 차고 있었고, 그는 팔만사천 명의 소녀를 보시했는데 그녀들은 보석이 박힌 귀고리를 하고 있었고, 그는 팔만사천 개의 침대를 보시했는데 그것들은 긴 털의 흑색 양모를 깔고 백색 양모를 깔고 꽃무늬의 양모를 깔고 값비싼 카달리 사슴의 가죽을 깔았고 그 위에 차양을 하고 양쪽으로는 붉은 베개가 있었고, 그는 팔만사천 꼬띠의 옷을 보시했는데 그것들은 섬세한 아마, 섬세한 비단, 섬세한 모직, 섬세한 면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물며 누가 씹을 만하고 삼킬 만하고 맛볼 만하고 마실만한 음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강물들이 흘러넘치는 듯했습니다.

 

7.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그 당시에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바라문 웰라마는 누군가 다른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당시에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사를 행한 바라문 웨라마는 바로 나였습니다.

 

8. 장자여, 그 보시가 주어질 때에 아무도 보시받을 만한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그 보시를 정화시키지 못했습니다.

 

9.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행한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보다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1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0.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1.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2.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3.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4.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5.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6.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7.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2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8.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9.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0.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1.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보다, 사방의 참모임3을 위해 승원을 세운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2.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보다,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3.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보다,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하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을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갖춘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4.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보다,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하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을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보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5. 장자여, 바라문 웰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보다,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하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을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보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4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보다,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웰라마 경이 끝났다.

 

 

▣ 웰라마 경은 그 어떠한 물질적 보시보다도 견해를 구족한 사람(수다원) → 한 번 돌아오는 님(사다함) → 돌아오지 않는 님(아나함) → 거룩한 님(아라한) → 연기법을 깨달은 님(연각불, 벽지불) →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음 님(정등각불)  사방의 참모임(사방승가)  청정한 삼보귀의   청정한 믿음의 오계수지  짦은 시간동안의 자애의 마음을 닦음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무상(無常)’에 대한 지각을 닦는 것이 가장 큰 과보를 가져온다는 가르침을 붓다께서는 설하고 계신다.

 

 

 

 

 

 

  1. 견해를 갖춘 님(diṭṭhisampanna) : 흐름에 든 님(수다원)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연기법을 깨달은 님 : 빳쩨까붓다(paccekabuddha)의 번역으로 산스크리뜨어로는 프라티에카붓다(pratyeka-buddha)라고 한다. 고요한 곳에서 홀로 수행하는 사람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연(緣)으로 해서 무상(無常)을 느끼고 세상과 떨어져 생활하며 12인연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성자(聖者)를 말한다. 연각(緣覺) 혹은 독각(獨覺)ㆍ독성(獨聖) 또는 벽지불(僻支佛) 이라고도 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네 가지의 부처님이 있다고 한다. 즉, 성문불(聲門佛, sutabuddha), 사제불(四諦佛, catusaccabuddha), 연각불(緣覺佛, paccekabuddha), 일체지불(一切知佛, sabbaññubuddha)이다. 많이 배운 수행승은 성문 부처님이 되고, 번뇌를 부순 수행승은 사제 부처님이 되고, 이십만 아승지겁이 넘는 동안 바라밀을 닦아 스스로 연각의 지혜를 꿰뚫으면 연각 부처님이 된다. 그리고 사십만, 팔십만, 백육십만 아승지 겁이 넘는 동안 바라밀을 닦아 세 악마의 머리를 부수고 일체지의 지혜를 꿰뚫으면, 일체지 부처님이 된다. [본문으로]
  3. 사방의 참모임(cātuddisaṃ saṅghaṃ) : 승가에는 사방승가(四方僧伽, Cattudisasaṃgha)와 현전승가(現前僧伽, Sammukhīsaṃgha)가 있다. 사방승가는 시간적으로 삼세에 걸쳐 확대되고 공간적으로는 우주적으로 확대되는 보편적 승가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사방승가 안에는 재가신도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방승가도 재가 신도에 관한 언급이 없이 비구, 비구니 승가의 확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현전승가는 시간, 공간적으로 제한된 사방승가의 지역승가로서의 생활공동체이다. 이 현전승가 역시 비구, 비구니 승가 공동체로 언급된다. [본문으로]
  4.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gandhūhanamattampi)이라는 말은 두 손가락으로 값비싼 향료덩어리를 집어서 냄새 맡는 시간을 말한다. 달리 gadduhanamatta라고 읽고는 송아지가 어미소의 젖통을 한번 빠는 시간을 의미한다. 자애의 마음(mettacitta)은 모든 존재에 대하여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무상에 대한 지각이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무상과 함께 강력한 통찰(balavavipassanā)이 일어나면, 존재의 나머지 특징을 통찰하여 고귀한 참사람의 지위에 도달하고 마침내 완전한 통찰을 얻어 열반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